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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5월호, 교단에세이] 빛의 속도 - 이용숙

신아미디어 2012. 6. 7. 20:59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세상에서 빛의 속도로 움직이 않았으면 하는 것이 많습니다. 이런 이런.

 

 

 

 빛의 속도


   어제가 옛날이라고 한다. 휴대폰 하나만 해도 금방금방 업그레이드
되며 몇 달 전의 물건이 구형이 되고 있다. 신세대라 적응이 빠른 학생들
은 ‘빛의 속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빛의 속도로 답장해 줘.”
   “빛의 속도로 먹어 주마.”라는 말을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으면서도 도
대체 얼마나 빠른지 가늠할 수도 없다.
   빛의 속도가 얼마인지는 초등학교 때 배웠다.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이나 돈다는 걸 듣고 놀랐던 것이 여태 남았다. 지구에서 달까지 빛이
가는 데는 약 1.4초 걸린다고 해서 그 시간 동안 무얼 할 수 있나 해서
이것저것 해보았다. 스톱워치를 눌러 놓고, 마우스를 잡는 동안 시간이
지나버렸다. 방금 내가 쏘아 보낸 휴대 전화기의 LED 불빛은 이미 달나
라에서 놀고 있겠다. 하도 바뀌는 일이 많아서 그런지 교사가 학생들의
말을 배워 따라 한다.
   ‘빛의 속도로 바뀌네.’
   복수담임제도가 그렇다.
   지난 1월이던가? 초등학교 6학년 교실에는 담임교사를 둘씩 배정할
계획이라고 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앉아서 불평하다가 ‘초등학
생 수준’으로 꾸중 들었다. 그즈음 한 학생이 학교폭력으로 시달리다가
세상을 등진 일이 있었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대놓고 이러저러한
불편함이 있다고 표현하지 못하고, 입속말로 중얼거렸다. 처음부터 두
명의 교사를 배정하는 것이 아니라 체육이나 음악, 영어를 가르치는 교
과전담 교사를 복수 담임으로 지정하는 일이다. 남는 시간을 이용하여
학습지도와 생활지도를 함께하라는 것이었다. 워낙 별난 요즘 아이들의
생활지도를 위한 방편이라고 하니, 모두 아무 말도 못 하였다. 문제점이
많았지만 복수담임제를 따랐다. 그런데 삼월 말 어느 연수회에서 교사
들이 불평하자 초등학교는 학교 형편에 따라 하라는 공문이 왔다. ‘우주
보다 귀한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면 빛의 속도로 갈팡질팡해도 참아야
할 일이다.
   정말 우주보다 귀한 아이들이다.우리 나라의 인구문제는 6학년의 교
과서에도 나올 만큼 심각하다. 인구 감소에 대한 대책과 저출산 예방
교육을 서둘러야 할 만큼 한 명의 어린이라도 다 소중하다. 하루가 다르
게 복지 대책이 쏟아져 나와도 여전히 국민 기르기는 힘이 든다고 아우
성이다. 외톨이 학생이 늘어나고 있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뜻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기르기가 벅차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세 명이나 낳아 기른 내가 애국자가 아닐까?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
니 정말 많이 변했다.
   내가 결혼하던 1970년대 후반은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
자.’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던 때였다. 육 남매를 어렵게 대학 공부시
키면서 힘들어하던 부모님을 보면서 나는 아들 한 명만 낳으려고 했다.
‘박가을’이란 이름부터 지어놓고 기다렸지만, 아기가 생기지 않아 밥값
을 못한다는 말도 들었다. 엄마, 고모, 나까지 외동딸이라 당연히 아들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낳고 보니 딸이었다. 남들도 둘은 낳던 때였으니 내
손으로 기르지도 못하면서 둘째를 낳게 되었다.
   하필이면 새 학기가 시작되는 삼월이 출산 예정이라 안절부절못하였
다. 지금이야 삼월부터 휴직한다고 하면 기간제 교사를 구하기가 쉬우니
오히려 더 고마워한다. 결혼하면 싫어하고, 아기를 낳으면 더 눈치 뵈던
시대를 살아온 나는 요즘 같은 세상이 올 줄을 상상도 못했다. 지금은
출산 휴가를 구십 일 얻고, 아기가 여덟 살이 될 때까지 골라서 휴직을
할 수 있지만 그때는 죄인이 따로 없었다. 더구나 학교를 옮기면서 출산
을 앞두게 되었으니 사표를 낼 생각조차 했다. 어찌나 배를 동여매고 갔
던지 그 당시의 선생님들이 지금도 “교무실에 처음 들어오던 이 선생을
보고 처녀가 똥배가 많이 나왔다고 생각했다.” 하고 놀릴 지경이다.
   지금 우리는 달리는 버스를 탄 것 같은 세상에 살고 있다. 휙휙 바뀌는
창밖 풍경처럼 나날이 변하고 있다. 철밥통이라고, 연금이 노후를 보장
해준다고 비아냥거리면서도 부러워한다고 희생과 봉사만 요구하던 교
직에도 맞춤형 복지제도가 생겼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미루고, 자녀를
낳지 않으니 국민을 낳아달라고 국가가 애원한다. 자녀를 낳으면 육아
수당도 지급하고, 만 5세부터는 국가가 책임을 지며, 호봉도 경력도 백
퍼센트 인정해준다고 셋째를 낳으라고 한다. 내가 우여곡절 끝에 세 번
째 아기를 낳았을 때와 비교하면 정말 좋은 세상이다.
   오 년 터울로 셋째 아기를 얻었다. 남편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낳았지만, 그때부터 천덕꾸러기였다. 출산 후 병원비를 계산할 때부터
현실이었다. 보험금 지원이 없었다. 세 번째가 받을 수 있는 어떤 혜택도
없었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제일 부끄러운 것은 “셋이나 어
떻게 낳았을까?”라는 말이다. 마치 괴물 보듯이 하던 말이다. 무통분만
이라서 제대로 배 아프지 않고 낳았는데도 그랬다. 사실 셋을 기르는
것은 너무나 힘이 들었다. 직장과 육아, 가사가 뒤돌아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들었다. 세 자녀가 들으면 자존감이 무너질 수도 있는 ‘무자식
이 상팔자’라는 말을 수없이 삼키면서 직장과 집을 오고 갔던 일들이
영상처럼 펼쳐진다. 큰딸이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때, 오히려
“그래, 잘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나는 달리던 버스에서 내렸다. 정거장에 멍하니 앉아 내 딸이 타고
있을 버스를 안타깝게 바라볼 뿐이다. 본인이 원하면 퇴근 시간을 한
시간 당겨주는 육아 시간, 보육 수당, 무엇보다 출산휴직 기간도 경력에
다 넣어 주는 좋은 세상이다. 그래도 출산을 미루는 사람이 많다. 할
수도 없지만 지금 다시 옛날로 돌아가라고 하면 나도 못할 것이다. 박사
과정을 하는 딸이 외손녀를 시댁에 맡겼다가 찾았다가 하는 모양새를
보고만 있을 뿐이다. 아기를 맡길 곳도 적당하지 않고, 양육비도 엄청나
다. 국가에서 온종일 돌봄 교실을 만들고, 무상 급식, 보육비 지원 등으
로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예전에 다른 나라에서 뱃속
의 아기를 축하하며 대학까지 보내 주겠다고 한다던 말이 거짓말은 아
닌 것 같다.
   빛의 속도로 사는 시대에 누리는 한 가지 호사가 있다. 딸이 날려주는
외손녀와의 영상 통화에서 전화기로 뽀뽀 받고, “안녕!” 인사하는 일이
다. 원시인 소리를 들어가며 낳아 기른 아들이 국제 대회에 통역봉사를
하는 것을 보면 “안 낳아서 못 큰다.”라던 어머님의 말씀과 함께 ‘어느
새….’ 라는 생각이 든다.

 

 


이용숙  ---------------------------------------------------------------------
≪수필과비평≫ 신인상 당선.
대구 효동초등학교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