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비평에서 고 변해명선생님의 수필세계를 조명해봅니다.
변해명 수필의 감동 코드와 청결한 영혼
“그림자조차 지워진 어둠 속에서 암각화 하나를 새긴다. 내 마음
속 그리움의 징을 들어 어둠의 바위에 어머니를 새긴다.” 변해명의
수필 <그림자 그리기> 중에서의 한 구절을 ‘그리움의 징’으로 가슴에
새기며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진솔하게 토로하건대, 나는 그동안 고 변해명 선생의 작품을 간헐적
으로 읽기는 했지만, 긴장해서 읽지는 못했다. 강한 인상을 받지는 못했
다. 그 이유는 그의 수필에는 강한 메시지가 없고, 우리 수필의 정통
반열에 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수필의 새로운 지평
을 여는 실험적인 수필이 아니라는 고정 관념 때문이기도 하다. 충격적
인 모티프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작가 변해명
의 수필 미학을 탐색해 보려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판단되기
도 한다. 수필의 미적 장치, 혹은 미학은 쉽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기회를 통해 나는 그의 작품 세계의 일단을 탐색할 수
있었다.
김열규는 변해명의 테마에세이 ≪우주목과 물푸레나무≫의 발문에서
“변해명은 정감에다 교훈을 담는 기술이 아주 뛰어난 작가다. 이념을
감각에 무쳐서 한 쟁반 잘 차려 내놓는 솜씨가 아주 그럴듯한 작가다.
그것은 피와 살로, 살갗이며 뼈마디로 삶을 진맥하면서 삶을 살아온 내
력을 글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삶의 굵고 잔 마디마디를 감각으로 생각
하고 정감으로 사념해온 기나긴 편력을 담아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를 요약하면, 변해명의 수필은 교훈적 경향이 강하고 작가의
생각(주제 혹은 이념)을 거기에 알맞은 느낌(표현 구조)으로 잘 버무려
놓는 육화된 글을 쓰는 작가임을 말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그의 에세이 <피라미드의 받침돌 하나가>를 통
해 작가의 문학관과 수필에 대한 견해를 살펴봐야 할 것이다.
독자는 책을 읽으며 스스로 작가가 되어(독자의 상상력) 미완의 여지
를 찾아내어 스스로 메꾸어 나가려고 한다. 작품을 작품답게 만들어 가
는 것은 작가가 쓰는 글이되 그 자리에 독자들이 참여하여 작품의 세계
를 자신의 세계로 확장하고 생략된 부분을 완성시켜 가는 것이어서 거
기에는 필자와 독자가 공유하는 심상의 통일과 정서의 흐름이 일관되게
이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화가 앤디 워홀처럼 마릴린 먼로의 얼굴
만 그려서 전시를 해도 그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녀 얼굴의 입술만
을 바라보면서도 그녀의 관능적인 전신全身과 성적인 매력까지도 자신
들의 상상력으로 채워나갈 수 있게 그려진 것처럼 글도 그런 생략과
압축된 여지를 독자들이 자신들의 상상력으로 채워나갈 수 있는 여백이
주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글을 쓰면서 가끔은 그런 글을 쓰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글을 쓰려고 노력한다. 지금까지 내가 쓴 글이
그런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 있나 살펴보고 글을 쓰는 자신을 돌아보
기도 한다.
- <피라미드의 받침돌 하나가>중에서
변해명 작가는 위의 글에서 첫째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할 수 있는
‘미완의 여지’를 주어야 하며, 독자와 공감할 수 있는 ‘심상의 통일과 정
서를 일관’되게 진행되는 글이 좋은 글임을 역설한다. 그리고 작가의 대
표작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그리고 대표작을 남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피라미드를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피라미드의 맨 윗돌이 되는 대표작을 남기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돌
이 받침돌이 되어야 하는데, 주춧돌이 되는 밑돌을 쌓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함도 역설하고 있다. 그것은 곧 꾸준한 습작이 필요함을 의
미하는 것일 것이다.
작가 변해명은 같은 맥락에서 수필의 본질에 대해서도 이렇게 이야기
한다.
수필을 쓰는 우리가 거듭 생각해야 할 것은, 언어예술로서의 수필문
학이 되기 위해서는 작가의 체험(주제)은 작가의 정서 속에 녹아 있어야
하고, 작가의 상상은 독자의 상상과 감정 정서에 호소되어야 하며, 독자
의 상상을 환기시키고 감정을 자극하여 독자를 감동시켜야 한다는 생각
을 가져야 한다. 수필쓰기가 다만 이야기를 알리고 전달하는 데 있다면
독자는 감동하지 않는다. 감동이 없는 글이란 한낱 말장난에 불과하며
전달의 목적이 있다면 굳이 수필이란 문학양식을 통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어떤 소재나 주제로 글을 쓰든 우리 시대의 보편적인 진실과
그 진실의 영속성에 매이게 됨을 생각하고 피라미드의 마지막 윗돌을
찾아내기까지 글의 탑을 쌓아 올려야 할 것이다.
- <피라미드의 받침돌 하나가>중에서
위의 인용문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수필이 문학이 되기 위
해서는 작가의 체험인 주제가 작가의 정서 속에 녹아들어야 하며, 독자
의 상상력을 촉발시켜 감동을 주어야 한다는 것과 그 감동은 우리 시대
의 보편적인 진실과 진실의 영속성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30여 년간 써온 내 글, 한 편의 대표작을 고르라면 어느 작품이
될까? 마지막 윗돌을 찾아내기 어려울 것 같다.”도 자신의 작품을 되돌
아본다. 특히, 오늘의 작가들에게 귀감이 되는 부분을 작가는 자신이
체험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고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작품이 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작가 변해명의 작품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살펴
야 할 것이다. 위의 에세이 <피라미드의 받침돌 하나가>에서 처럼 ‘윗돌’
과 ‘밑돌’이라는 비유적 표현 등 미적 장치가 무엇인가를 탐색해볼 필요
가 있을 것이다.
우선, 수필 <주인 없는 꽃수레>를 통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일요일 성당에 들어설 때마다 성당 입구에서 한 걸인과 만난다. 모자
를 깊이 눌러 쓰고, 얼굴을 가능한 한 보이지 않게 숙이고 쭈그리고 앉아
동냥그릇을 들고 있는 걸인은 벌써 몇 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는 그 걸인을 볼 때마다 Y가 떠오른다. 걸인의 동전 그릇에 동전을
넣으면서 Y처럼 따뜻한 말이라도 건네고 싶은데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아
스치듯 지나칠 뿐이다.
-<주인 없는 꽃수레> 서두 부분
이 부분은 수필 <주인 없는 꽃수레>의 첫 단락이다. 성구 입구의 한
걸인을 통해 Y라는 인물을 떠올린다. 여기에서 독자들은 성당 앞 걸인과
Y라는 인물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호기심을 갖게 된다. 독자들의 상상력
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이때, 작가의 상상력과 독자의 상상력이 일치하
게 될 때 독자는 환희를 느끼게 된다. 그 다음 단락에서 이 수필은 “미사
가 끝나고 나오면 걸인이 있던 자리에는 꽃을 담은 수레가 와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꽃을 판다.”로 이어진다. 주인은 보이지 않고 ‘한
단에 1,000원’이라는 안내문이 쓰여 있는 꽃수레. 주인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미사를 보기 위해 비워둔 것이다. 여기에서도 독자들은 그 꽃수
레와 Y와의 관계가 또 궁금해진다. 하지만 그 관계는 잠시 후 밝혀진다.
“걸인에게 아침을 먹이려고 대신 걸인 행세를 하고 있었던 사람”이 Y임
이 밝혀진다. Y는 교사다. “학생들을 학생이 아닌 친동생처럼 사랑하고
돌보면서도 결국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학원 강사로 자리를 바꾸면서
자신으로 해서 가족이 상처를 받지 않을까 고민하던 착하기만 한 사람”
이 Y다. “사립학교라 재단의 간섭이 싫다는 이유 때문”에 그만 두고 밑바
닥 생활을 하면서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에 대해서
작가는 이 수필의 결말 부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Y의 친구들은 “현
실적인 삶에 성공했을 것이”지만, “마음 착한 Y는 여전히 어린이 같은
순진함으로 가난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희망의 삶을 주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작가는 “주인 없는 꽃수레를 보며 Y 생각을”하
게 된다고 토로하고 있다. 작가는 왜 Y의 미래적 삶과 꽃수레를 연결시
켰을까? 단순하게 꽃수레 주인이 미사 보는 동안 자리를 지켜주었기 때
문일까? 우리는 ‘꽃수레’가 상징하는 바는 무엇인가? 등등에 의혹을 갖게
된다. 삶의 아름다움, 행복, 행운 등을 나누어 주는 사람으로 Y를 비유하
고 싶어서일까? Y는 분명 아름다운 사람이다. 이 세상을 아름다운 세상
으로 만들고 싶은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꽃’이 표상하는 바를, 교
사 생활을 할 때 나누어 주려고 했다가 좌초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와
꽃수레를 연결시킨 것일까?
이 수필에서 작가는 Y와의 꽃수레와 얽힌 이야기 이후의 후일담에
여백을 두고 있다. 그 이유는 앞서 우리가 살펴온 작가의 문학관처럼
여백을 주기 위한 것인데, 그보다는 ‘꽃수레’라 표상하는 의미, 즉 독자들
이 생각하고 있는 ‘꽃수레’의 원형상징적 또는 체험적인 의미에 따라 독
자가 상상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작가 변해명은 작품상에서 자신이 천주교 신자임을 드러낸다. 성당과
연결된 소재를 통해서 발상하고, 그 발상된 것을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서, 그리고 자신만의 문채를 통해서 확산시켜나간다. 수필 <그림자 그리
기>도 이에 속하는 작품이다.
묵주기도를 마치고 촛불을 끄려다 성모상 뒤로 나타나는 그림자를
바라본다. 오늘따라 성모상의 초상이 선명하게 벽에 비친다. 머리에서
어깨선을 따라 흘러내려간 부드러운 베일의 윤곽이 기도하시던 어머니
의 뒷모습으로 보인다. 그림자를 그리던 옛 여인처럼 그림자의 윤곽을
따라가며 손가락으로 초상을 그려 본다. 촛불을 향해 앉아 계시던 어머
니를 그린다.
어머니가 기도를 드릴 때 언제나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였다.
지금은 내 뒤에서 나를 지켜보시는 분이 계신 것 같아 조용히 귀를 기울
인다. 그림자 속에서 어머니의 기도소리가 울려 나온다. 울컥 그리움으
로 가슴이 떨린다. 그리움은 마음에 드리운 그림자, 잡히지 않으면서도
벗어날 수 없는 그늘로 나를 감싼다.
- <그림자 그리기> 중에서
이렇듯 작가 변해명은 성모상 그림자를 통해서 기도하는 어머니를 떠
올리고,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그리움의 정체를 잔잔하게 격정적이지
않게 그리면서 성모상의 그림자를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자신의 마음으
로 표현하고 있다. 그 또한 작가의 미적 전략인 셈이다.
그런 뒤, 작가는 ‘그림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낯설게 하기’ 수법처럼
표현하고 있다. BC 6세기경 그리스의 도공 부타데스의 딸과 여인의 그
림자 이야기와 조세프-브누아 쉬베의 그림 <부타데스 혹은 그림의 기
원> 이야기가 그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서 ‘그림자’가 은유하고
있는 바가 무엇이며, 그것이 그리움과 기다림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설명한다. 그리고 그 그림들에 대해서 디테일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그
설명의 방식은 감성적 표현 구조를 통해서 전언한다. 생소한 관념적 언
어가 아닌 정서적 언어를 통해서 설명한다. “나는 눈을 감고 그리움의
바다를 헤엄친다.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다가오는 아름다운 모습, 그
모습이 있는 세상은 시공을 초월한 꿈의 바다다.”라는 표현이 그 예이다.
그리고 결말 부분에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다. 많은 작가
의 경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체험한 어머니와의 에피소드를 소개
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변해명 작가는 사적인 스토리를 소개하
기보다는 어머니와의 많은 체험이 육화된 상태의 것, 그 감회를 표현하
는 것으로 해도 어머니와의 체험담을 행간 속에 숨겨놓고 있어 독자의
상상력을 촉발시켜 감동 속으로 이끌어 가기를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
촛불을 끄고 어둠 속에 앉아 본다. 세상이 온통 검은 바위 동굴 속
같다. 그림자조차 지워진 어둠 속에서 암각화 하나를 새긴다. 내 마음
속 그리움의 징을 들어 어둠의 바위에 어머니를 새긴다. 성모님의 미소
뒤로 모습을 감춘 그림자를 찾아 간절한 고백의 기도를 바친다.
- <그림자 그리기> 결말 부분
위의 인용문에서 주목되는 단어는 ‘그리움의 징’이라는 표현이다. 바
위를 새길 때 쓰는 도구인 징. 그것을 그리움으로 표현하고 있다. 성모상
의 미소, 그 그림자와도 같은 어머니의 모습을 그리움이라는 징으로 새
기겠다고 한다. 작가의 마음이 독자들의 가슴을 망치로 때리듯이 울릴
때 감동은 배가 될 것이다.
새벽 1시. 빗소리가 머리맡으로 자꾸 다가선다. 잠을 청하려고 몇 번
이고 몸을 뒤채다 달아난 잠을 잡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모차르트
의 음악을 틀었다. 빗소리와 어우러져 누군가 내 집 문을 흔드는 것 같
은 느낌으로 텅 빈 공간을 채워간다. 주전자에 찻물을 끓이며 이명으로
남아 있는 그의 목소리를 되새김질한다.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의 목소리. 생소하기만 한 목소리가 빗소리처
럼 반복되며 다가선다.
미국으로 이민 가서 살고 있는 사람인데. 우연히 그곳에서 우리 잡지
를 보다가 내 전화번호를 발견하고 전화를 걸어봤다는 것이다. 이제는
서툴러진 우리말. 20여 년이 지나 낯선 노년의 음성으로 다가오는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고 실수를 거듭한 끝에 겨우 기억해낸 내게, 나
도 기억 못하는, 내가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이라며 내 기억에도 없는 글귀
를 외우면 나를 잊지 않고 있노라고 했다. 한번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그 말을 자동응답기의 테이프처럼 돌리다 전화를 끊었다.
나는 무엇에 흘린 사람처럼 말을 잃고 있다가 전화가 끊기고서야 새삼
부끄럽고 당혹스러워 몸 둘 바를 몰랐다.
- <다가오는 목소리> 서두 부분
이 수필도 전자의 수필처럼 빗소리, 모차르트 음악 소리, 그리고 주전
자 물 끓는 소리 사이로 걸려온 전화 소리의 묘사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다분히 소설적 기법을 차용하고 있다. 작가는 그 전화의 주인
공이 누구인지를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그런 뒤 그 전화 목소리 주인공
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낯선 노년의 음성은 대학 시절 어느 모임에서
만난 종씨 후배였다는 사실은 잠시 뒤에 밝히고, 그가 미국으로 떠날
때를 떠올린다. 20여 년 소식이 없던 사람. 작가는 그의 편지가 없는지
빛바랜 편지들을 뒤적인다. 그 편지 상자들 속에는 지난날에 알던 사람
들의 소중한 글들도 같이 들어있다. 그 편지들을 뒤적이면서 작가 자신
의 “삶의 여정에 각인 된 사람”들의 편지가 환상 교향곡으로 들리는 판타
지에 빠지게 된다. 그 음악 소리들은 “사랑과 고뇌와 열정”과 “이별과
그리움의 아픔”이 함께 담겨 있음을 깨닫게 된다. 세대에 따라 그 편지의
의미들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도 알게 된다. 그리고 생을 달리한 사람,
은사님 그리고 그리워했던 사람들이 글 속에서 살아 나오는데도 불구하
고 다시 만날 수 없음을 안타깝게 느낀다. 그리고 그 편지들 속에서 자신
을 보게 된다.
편지들을 뒤적이며 젊은 날의 나를 본다. 글 속에 되비치는 내 모습이
파도 위의 모습처럼 흔들리며 낯설게 일렁거린다.
아무리 뒤져도 그의 편지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 이 편지들도 모두 태울 날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나도 모두의 기억 밖으로 밀려난다는 생각과 함께.
누군가 이 비 오는 깊은 밤에 문을 흔드는 것 같은 모차르트의 음악
속에서, 편지조차 남겨지지 않은 사람의 이명 속에서 해묵은 편지들을
뒤적인다.
- <다가오는 목소리> 중에서
작가 변해명은 위에 인용한 결말 부분의 행간 속에 모든 사람의 기억
으로부터 언젠가는 밀려난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다. 이는 곧 죽음
에 대한 선험의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 수필에서 쓸쓸하다, 슬프다, 허무하다라는 말을 하고 있지
는 않지만, 소설의 내러티브처럼 빗소리와 깊은 밤 문 흔들리는 소리와
모차르트 음악 소리로 표현한다. 그리고 이명처럼 들리는 지난날의 사
람들,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애써 감동을 짜내지는 않지만, 소리 없이
내리는 눈처럼 그 감동의 물결을 창조하고 있다. 이것이 변해명의 수필
미학이다.
세상 바람에 시달리다 풀이 죽어 늘어진 옷을 벗어 빨래를 한다.
살아가기 힘겨워 땀에 배인 옷, 시끄러운 소리에 때 묻고 눌린 옷,
최루탄 연기에 그을고 시름에 얼룩진 옷을 빤다.
장맛비 걷히고 펼쳐지는 푸른 하늘처럼 밤마다 베개 밑으로 흐르는
물소리는 악몽에 시달리는 나의 잠을 깨운다. 그 물소리처럼 지심에서
솟구치는 물꼬를 찾아 콸콸콸 넘쳐흐르는 물에 빨래를 담가 절레절레
흔들며 빨래를 하고 싶다.
여름의 한 줄기 소나기는 도심을 태우던 열기를 식혀주고 악취와 쓰
레기를 쓸어가며, 시원하고 깨끗한 거리를 열어준다. 그처럼 소나기를
맞으면 머리카락 올올이 빗물로 감기고, 주머니에 담긴 먼지처럼 답답
한 가슴도 후련해지리라. 씹지 않고 삼킨 말의 응어리도 풀 수 있는 소
나기-빗질하는 가로수처럼 빨고 싶은 나날들.
- <빨래를 하며> 서두 부분
수필 <빨래를 하며>는 빨래를 하면서 느낀 심상들을 빨래라는 모티프
에 따라 마음과 정서가 흘러 가는대로 자연스럽게 쓴 수필이다. 물론
‘빨래’가 표상하는 바, 청결한 영혼 혹은 ‘청청한 영혼’들이라는 의미가
없는 바는 아니지만, 그 의미를 반추하기보다는 작가 자신의 심상의 흐
름에 쫓아 써내려간 수필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구절 한
구절이 의미하는 바가 다의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 하나
풀어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예컨대, 위의 첫 문장인 “세상 바람에 시달리다 풀이 죽어 늘어진 옷을
벗어 빨래를 한다.”에서의 빨래는 우리 모든 인간들을 표상하는 의미가
있다. 세상의 삶에 지친 사람들을 빨래로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빨래들도 소나기나 샘물, 강물, 그리고 지하수를 만나면 청청하게
살아나는 영혼이 됨을 결말 부분에서는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널어놓은 빨래를 “햇볕 아래 눕는 눈부신 정결. 비로소 자유롭
다.”라고 인식하고 있는 이 한 구절의 문장은 지나치기 쉬운 문장이지만,
이를 곱씹어 보면, 그 이유가 깊고 오묘함을 느끼기도 한다. ‘자유로운
눈부신 정결’ ‘햇볕 아래서 누리는 자유’를 빨래로 인식하고 있는 부분은
변해명 작가의 미적 경지가 어떤가를 짐작하게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작가는 빨래를 통해 어머니를 생각한다. “어머니는
날이면 날마다 빨래를 한다. …나도 어머니처럼 빨래를 한다./ 빨래를
비비면 열 손가락 사이로 옛날이 흐르고 아리고 쓰린 삶의 가락이 굽이
굽이 흐른다.”는 은유적 표현은 어머니라는 존재를 압축적으로 그리고
있는 부분임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그리고 어머니의 어머니, 어머니
의 딸이라는 모계 3대의 삶도 빨래를 통해서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빨래와 깊은 관계가 있는 ‘물’에 대해서는 작가는 이렇게 표현
하고 있다. “물은 언제나 고향/ 오늘의 빈 잔을 채우고 마른 혼을 적셔준
다. …나는 빨래이고 싶어 강물에 눕는다./ 심신이 투명해지면 학처럼
날개를 달고 구만리 장천으로 비상하리라.”라고. 이 문장에서도 우리는
작가의 죽음에 대한 선험의식을 탐색할 수 있다. ‘물’이 의미하는 바 탄
생이라는 원형적 의미와 함께 ‘강물’의 표상하는 바 이승과 저승의 경계
의 의미. ‘구만리 장천으로의 비상’이 의미하는 바가 죽음 모티프와 긴밀
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자신의 청결한 영혼에 대한
희구마저도 내포하고 있다.
그는 분명 청결한 영혼의 작가임은 분명하다. 작품 하나 하나를 깊게
탐색해 들어갈 때마다 그의 영혼의 청결함과 만나게 된다. 그것이 충격
적이지 않고 섬뜩하게 하지는 않지만, 차가우면서도 따뜻한 인간적 감
동을 주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또한, 작가 변해명은 수필의 미학적 탐색을 감동이라는 코드에 맞추
어 어떤 각도에서 시도한 작가로 하나의 일가一家를 이룰 만큼 주목받는
작가이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이 널리
회자되지 못하고, 몇 개의 ‘수필문학상’ 수상으로 폄하되고 있고, 특히
문학사가, 문학평론가로부터 외면당한 이유는 아마도 너무도 청결한 그
의 영혼 때문일 것이다.
유한근 -------------------------------------------------------------------------
중앙일보 신춘 동시, 동아일보 신춘 평론으로 등단.
시집: ≪사랑은 흔들리는 행복입니다≫ 외.
평론집: ≪문학의 모방과 모반≫, ≪현대불교문학의 이해≫, ≪한국수필비평≫ 등 다수.
명상언어집: ≪별과 사막≫. 동화집: ≪무지개는 내 친구≫ 등 저서 논문 다수.
만해불교문학상,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신곡문학상 등 수상.
현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교수. 동 교무처장, 학생처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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