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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6월호, 신인상수상작] 엄마, 그리고 딸 - 홍재운

신아미디어 2012. 6. 25. 14:44

지금은 멀리계시는 엄마에게 전화를 해보고 싶네요. 요즘 가뭄으로 땅이 많이 말라있어서 물을 가져다가 부어도 아직도 부족한 것 같은데 괜찮으신지 물어보고 싶네요.

 

 

 

 엄마, 그리고 딸


   “고기리 가지 않을래?”
   31년 전에 아버지와 사별하고 올해 팔순잔치를 하신 엄마가 전화 속
에서 묻는다.
   “엄마, 나 바빠!” 이렇게 엄마의 청을 매번 거절한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배울 것도 많고, 읽어야 할 책들도 많아서 엄마와
같이 있을 시간이 없다는 핑계다. 도서관에서 매주 서너 권씩 책을 빌려
와서 읽느라고 더 바쁘다. 이번에는 딱 한 권만 빌려야지 다짐을 해도
그게 잘 안 된다. 읽고 싶고, 보고 싶은 책이 눈에 띄면 그냥 두고 오지
못한다. 게다가 그림도 그려야 하고 글도 써야 하고… 건강을 위해서
운동도 해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기 때문에 언제나 바쁘고 무언가에
쫓긴다. 돌아보면 제대로 한 것이 하나도 없는데도 자꾸 또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처럼 나는 쫓기고 있다.
   엄마는 설악에 작은 집을 마련해 놓고 가끔 내려가서 그 텃밭에 감자
나 고구마, 콩 같은 것을 심어 놓고는 가꾸는 것을 취미로 삼고 있다.
작은언니가 고기리에 지어놓은 별장에 가서 고추장을 담가서 아들딸들
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 취미시다. 텃밭에 심은 푸성귀를 반찬으로 이
자식 저 자식들을 불러 함께 밥을 해 드시는 것을 아주 좋아하신다. 남동
생과 함께 사는 대치동 집이 본집이지만 적적해서 그런지 여기저기 다
니면서 소일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전화를 하신다.
   “얘야, 뭐하니?” “감자 필요하지 않니?” “설악에 가지 않을래?” “고추장
아직 남았니?” 하면서 같이 가기를 권하신다.
   “엄마, 나 바빠! 다른 사람한테 물어봐요.” 그게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대답이다. 일곱 형제 중에 셋째 딸인 나는 그렇게 매번 다른 형제들에게
미루지만 아무도 거기 갈 사람이 없다는 걸 나도 잘 안다. 아무튼 다들
뭔지 모르지만 바쁘다.
   내 차로 모셔다 드려야 하는데, 또 버스를 타고 가시겠구나 하는 생각
에 마음이 조금 불편하지만 그저 불편한 것으로 끝나곤 했던 적이 더
많다. 못 가면서 오히려 짜증을 낸 적도 있다.
   “시간 없어요. 까짓게 몇 푼 된다고 그래. 그냥 나 사 먹을 거야.” 나의
이런 퉁명스런 변명에 엄마는 한 번도 왜 바쁜지, 뭔 일이 그렇게 많은지
따지거나 묻지 않으셨다. 그저 힘없는 목소리로 “그러냐. 그래 알았다.”
하시면서 뜻을 접으신다.
   나에겐 캐나다로 조기 유학을 보낸 딸이 하나 있다. 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그곳에 사는 사내와 결혼했다. 정신없이 얼떨결에 시집을 보내고
난 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섭섭하고 딸을 빼앗긴 기분이 들면서 괜스
레 분하고 다시 데려오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예쁜 귀고리를 볼 때마다, 맛있는 김치를 담글 때마다 딸이 생각난다.
마트에 데리고 가면 신나서 이것저것 가져다 카트에 담던 모습이 눈에
어른거린다. 그 애가 좋아하는 비빔국수라든가, 떡볶이 불고기도 함께
먹고 싶고, 나란히 미술전시회나 콘서트에도 가서 연예인 흉도 보고 미
용에 대한 이야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나는 딸과 함께하지
못한 것도 많지만 이제라도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피부미용을 전공
한 그 애를 위해 이것저것 나 혼자 사업 계획도 세우면서 딸의 꿈이 어느
순간, 내 꿈이 되어버렸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나의 입과 귀, 나를 감싸
고 있는 모든 세포들이 캐나다를 향해 열려있다.
   때로는 밤을 새워 대하소설처럼 긴 메일을 써서 보낸다. 하지만 돌아
오는 답장은 언제나 “엄마, 나 잘 있어.”가 전부였다. 이렇듯 매정한 딸은
나 없이도 저희들끼리 잘살고 있는 것 같다. 보통의 딸들처럼, 남편 흉이
나 시집에 대한 불만, 일상생활의 사소한 푸념을 한 번도 털어놓지 않는
다. 하기야 전화나 메일로 그런 이야기를 나누기도 쉽지 않겠지만. 내게
딸은 있으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차라리 없으면 기대도 안 하겠는
데, 태평양 건너 저쪽에 살고 있으면서 자주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내가 왜 이러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바로 내가 박복하기 그지
없는 사람이지 하는 생각으로 처량해질 때가 많다. 이제 딸과 오순도순
정답게 보내는 시간은 단념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쉽사리
단념이 되지 않는다. “딸은 그저 남과같이 바라보아야 해.”라고 조언해
준 친구 생각이 난다.
   “그래, 내가 딸을 시집보낸 것이 맞구나! 그걸 깨닫지도 못하고….” 달
라진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내가 바보스럽기만 하다. “그래 맞아.
딸도 이제 한 남자의 아내고, 한 아이의 엄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해.”
이와 같은 다짐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잘못이 있는 것처럼 현실을 수긍
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안타깝다. 딸을 시집보냈지만 내 마음속엔 아
직도 그 딸을 그대로 잡아두고 있었나보다.
   지금도 나는 딸의 인터넷 홈을 기웃거리며 오지 않은 메일을 클릭하
고 가뭄에 콩 나듯 오는 전화를 향해 귀를 열고 있다. 왠지 딸은 나에게
서 자꾸 도망치는 것 같고 나는 끝없이 좇아가는 것같이 느껴진다. 그런
데 웬일인가. 이 짝사랑이 낯설지가 않은 것이.
   엄마에게 바로 내가 이런 느낌을 들게 했다는 사실 말이다. 그렇다.
나는 딸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내 엄마의 딸이라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
던 것이다. 엄마는 고추를 심어서 나눠주시기도 하고, 상추를 심어서
가져가라고 하시면서 어떻게든 일을 만드는 엄마, 끊임없이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채소를 가꾸시는 것은 우리를 그렇게 해서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었던 때문이 아니었을까. 미련한 나는 그걸 알면서도 여태
그 사실을 외면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딸로도 엄마로도 늘 모자란 행동만을 하며 산 나. 책 한 권 더 읽으면
무얼 하며 그림 한 장 더 그려서 무얼 한단 말이냐. 생각해 보니 미련한
짓만 거듭해 온 것 같다. 지가 자식을 낳아 보아야 비로소 부모의 마음을
안다고 했는데, 나야말로 딸을 시집보내고 나서 겨우 엄마의 마음이 어
떠한지 깨닫고 있으니… 이제 겨우 어른으로서의 철이 드는 모양이다.
   흔히 내리사랑이라고들 하지만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 사이에는 이렇
게 큰 거리가 있는 줄 미처 몰랐다. 딸에게 향하는 마음 백분의 일이라도
엄마에게 보였더라면 진작 효녀 소리를 들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일
이 되면 딸을 향한 짝사랑을 또 시작할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안다.
   얼마 전부터 나는 엄마가 즐겨 보시는 드라마를 일부러 본다. 전화를
할 때나 만났을 때, 그 드라마에 대해서 물어보면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화제에 초점을 맞추어 얼마든지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엄마는 또 얼마나 즐거워하실까. 나는 엄마의 이야기를
재미있다는 듯이 듣는다. “그래서… 왜… 우와….” 하고 추임새만 넣어
주면 엄마는 그 드라마보다 더 실감나게 이야기하면서 나와 즐거운 시
간을 보낼 것이다.
   여자들이 하루에 소비해야 하는 단어가 6천 개에서 8천 개라고 한다.
그 단어를 모두 쓰지 못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한다. 심지어 우울증
에 걸린다고도 한다. 엄마의 말을 멈추지 않게 하는 것, 아니, 냇물처럼
흘러갈 곳을 터주는 것이 나의 임무가 아닐까. 나를 짝사랑하고 있는
엄마에게 그나마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 있는 작은 방법이 될 것도 같다.
   어젯밤에는 딸에게 메일을 보냈다. 한번 메일을 쓰면 만리장성을 이
룬다. 때론 내 신세를 생각해서 눈물을 짓기도 한다. 나의 짝사랑은 이렇
게 맹목적이고 터무니없다. 어머니는 지금 무얼 하고 계실까. 혹시나
이 딸이 보고 싶어 눈물을 흘리시지는 않는지.
   문득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볼 생각을 한다.
   “엄마, 어제 <해를 품은 달> 그 드라마 어떻게 끝났어?” 이렇게 단지
묻기만 해도 엄마는 금방 감동해서 그동안 막힌 긴 이야기를 풀어놓을
것이다.
   “엄마!” 입속으로 나는 가만히 이렇게 불러본다.

 

 

홍재운  -----------------------------------------------------------------------
≪시와세계≫ 2005년 등단.

시집: ≪정자역지나 오리역에도 비가 흐른다≫, ≪붉은 뱀을 만나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문학미디어 취재기자.


 

수상소감
   몇 달 전 이사를 했습니다. 아직 낯선 이곳은 유난히 안개가 많은 지역
입니다. 안개가 새벽을 끌고 어디서부터 왔는지 세상이 거대한 고치 속
같습니다. 지난 밤, 그 속에서 나비의 꿈을 꾸었습니다.
   지금은 건물, 신호등, 도로 위 모든 자동차까지 형체를 잃어갑니다.
형체가 없는 부드러움이 거대한 콘크리트 아파트를 지웁니다. 그의 위
력이 경이로우면서 한편 두렵기도 합니다. 전조등을 켜고 조심조심 도
로를 따라갑니다. 글을 쓴다는 것도 이와 같을까요? 하지만 이렇게 안개
가 많은 날은 그만큼 더 날씨가 맑다고 합니다.
   앞으로 나아갈수록 보일 듯 보이지 않은 형체로 늘 망설여집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점점 어려워집니다. 하지만 전조등을 켜고 안개 속을 달려가
듯 모니터를 켜고 사람들에게 다가갑니다. 수필을 쓴다는 것은 사람들 가
까이 다가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들의 손을 잡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더욱 노력하고 겸손한 자세로 수필의 길을 가겠습니다.
   제 글을 선택해주신 심사위원님, 부족한 제 손을 잡아준 교수님 그리
고 많은 문우들, ≪수필과 비평≫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