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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5월호, 사색의 창] 너무와 정말 - 김옥춘

신아미디어 2012. 6. 4. 20:23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너무와 정말


   텔레비전을 시청하다보면 자막이 뜨는 화면이 있다. 자막을 보면서
종종 느끼는 일이지만 ‘너무’와 ‘정말’을 적절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
이 많은 것 같다. 출연자가 하는 말이 잘못되었을 경우엔 자막에서 바른
말로 고쳐준다. “너무 좋아요.”라고 출연자가 말하면 곧바로 “정말 좋아
요.”라는 자막이 뜬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남편은 우리말 바르게 사용하기에 관심이 많은 듯이 보인다. 텔레비
전을 보던 남편은 ‘너무’는 지나치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말인
데 출연한 사람은 물론 사회자까지 너무 좋다, 너무 예쁘다, 너무 맛있다
라고 하며, ‘너무’라는 말을 잘못 사용한다면서 혀를 찬다. 그런데 요즘
엔 달라졌다. 자막이 뜨지 않는 경우에도 출연자가 “너무 맛있어요.” 하
면 사회자는 “정말 맛있죠?”라고 응대한다. 남편은 이제야 저 사람들이
자기가 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면서 농담을 한다. 정말 그렇다고 할 정도
로 남편은 ‘너무’라는 단어의 잘못 사용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지적을
했었다. 그 영향 때문인지 나도 문우들의 글을 읽고 합평을 할 때, 너무
하다의 너무가 맞게 쓰였는지 따져보게 된다. 그랬었는데 근래엔 사람
들이 대화 중에 ‘정말’이라는 말을 지나치게 많이 사용한다는 생각이 든
다. 정말은 자신의 말을 강하게 긍정할 때 하는 말이다. 그냥해도 될
말을 ‘정말 맛있어.’ ‘정말 좋아.’ ‘정말 멋있어.’ 등등. 정말을 안 쓰면 정
말로 말을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강조해야만 믿기 때문일까?
   어른들은 아기들이 말을 배우고, 좋다 싫다의 표현을 하게 되면 물어
보는 게 있다. “엄마 좋아?” “응.” “아빠 좋아?” “응.” 하고 아기가 대답을
하면, 어른들은 한 번씩 더 확인을 한다. “얼마큼 좋아?” 아기는 팔을
쫙 벌리면서 “하늘만큼, 땅만큼”이라고 대답을 한다. 어른들은 이쯤에서
도 만족하지 못하고 “정말?” 하면서 다시 한 번 더 확인을 한다. “응, 정
말.” 하는 아기들의 대답을 듣고서야 어른들은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진
다. 그때 아기들은 어떻게 대답을 해야 어른들이 즐거워하는지 알게 되
는 것이다. 우리는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이거나 좀 더 강하게 표현을 해
야만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수필공부를 시작할 때 지도교수님께서는 바른 글쓰기를 강조하셨다.
잘 쓰지는 못해도 가르침대로 바른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 그래야 내
글이 출판되어 나왔을 때 부끄럽지 않다. 단어를 선택할 때도 자신 없는
부분은 몇 번씩 검색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대화를 할 때도 바른 말을
써야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아도 식구들은 내가
이상한 말을 하면 “수필가가?” 하면서 놀리기도 한다. 덕분에 ‘너무’와
‘정말’ 같은 말은 제대로 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한
말 때문에 내 자신에게 적잖이 실망한 적이 있다.
   얼마 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음악회 티켓 두 장이 생겼
다. 음악을 좋아하는 후배와 함께 갔다. 2008년에 세계 제1위의 관현악
단으로 뽑힌 ‘로열 콘세르트허바우’의 내한 공연이었다. 지휘자는 정명
훈이었다. 피아니스트 김선욱과 관현악단이 들려주는 베토벤 피아노 협
주곡은 대단했다. 김선욱의 연주는 전에도 듣고 감탄한 적이 있었지만,
그날의 연주도 대단히 감동적이었다. 이틀간 열리는 음악회의 두 번째
날, 좌석은 VIP석이었다. 지휘자 정명훈이 고개를 옆으로 돌릴 때, 그의
표정과 연주자들의 표정까지 읽을 수 있는 자리였다. 연주가 끝나자 나
는 옆자리의 후배를 바라보며 “와! 너무, 너무 멋지다.”라고 외쳤다. 순간
내가 한 말에 내가 놀랐다. 어째서 감동적인 연주에 “정말 멋지다.” 아니
면 “대단하다.”라고 하지 않고, ‘너무’라는 말로 지나치게 잘한다는 표현
을 했는지 실망을 했다. 기립박수를 치며 환호하는 후배가 나의 잘못된
감탄사를 알아듣지 못했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들었다면 후배도 의아해
했을지 모른다. 후배는 사람들에게 나를 수필가라고 소개할 때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자유스러워졌지만, 그 일이 있은 직후엔 말을
하기가 조심스러웠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대형서점이 생겼다. 오다가다 들러서 책
몇 권씩 들추어 보는 즐거움을 누린다. 어느 날 ≪벌거벗고 춤을 추다≫
라는 책 제목이 재미있어서, 책장을 넘기다가 ‘너무’라는 단어를 한 페이
지 가득 채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삶,
   나는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이하 생략), 먹고 사는 일이 피곤하다.’라고 쓴
글이다.
   이 글을 쓰면서 그 책이 생각나서 딸애한테 부탁을 했다. 인터넷으로
주문을 해주어서 바로 받아 보았다. 책을 펴자마자 ‘너무’를 세어 보았다.
작가는 먹고 사는 일이 너무 피곤하다고 일흔두 번씩이나 강조했다. 표
지에는 더 많이 썼다. 원문에는 어떤지 모르지만 번역해서 옮긴 책에는
그랬다. 나는 “너무를 정말 너무 많이도 썼네.”라고 중얼거렸다. 그렇지
만 ‘너무’를 아주 적절하게 쓴 글이다. 50대의 여류작가인데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흉내를 내어 본다.
   ‘우리 말
   나는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너무, 너무, (이하 생략), 우리말 바로 쓰기 힘들다.’

 

 

김옥춘  ------------------------------------------------------------------------
2005년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