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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5월호, 세상마주보기] 동창생 - 윤영욱

신아미디어 2012. 5. 24. 18:59

한가지 , 동창. 무엇인가를 같이 공유하였다는 것이 아련한 그리움을 만들어냅니다.

그리움을 같이 공유해보시면 어떨까요. 그리움+그리움=행복?

 

 

 

동창생


   참으로 모를 일이다. 육 년을 한 방을 썼던 그녀와의 이별은 쉽게 잊혔
다. 그런데 이제 겨우 일 년 남짓 사귄 그녀와의 이별은 쉽게 잊지 못하
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껏 내 맘대로 찍으며 살아왔던 사진을 뒤늦게나마 다르게 찍으며
살아볼 요량으로, C대학 평생교육원의 사진반에 입학했다. 그런데 우연찮
게도, 우리 아파트의 같은 라인에 사는 그녀가 한 반이 된 것이다. 내 승용
차를 함께 타고 다닌 것에 대한 답례였던지, 어느 날 점심을 사겠다고 했다.
   점심 후 커피를 마시면서, 그녀의 친정 마을에 새로 생긴 골프장 이야
기가 우연히 튀어 나왔다. 어쩐지 이야기가 낯설게 들리지 않아 꼬치꼬
치 물어 보니, 바로 내 고향 옆 마을 이야기였다. 그래서 이것저것 묻다
보니, 결국 초등학교 동기동창생이 되고 말았다. 하마터면 영영 잊고
지낼 뻔했다고, 서로 찬찬히 쳐다보며 한바탕 깔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에 우린 한 학급뿐이었으니 따지고 보면, 육 년을 한방을 썼던 친구
였던 것이다.
   우린 그 시절에 남녀칠세부동석을 믿으며 살았다. 교실 중간을 기준
선으로 그어놓고 되도록 그 선을 넘지 않았다.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그렇게 지냈으니, 자연히 그녀와는 사적인 대화도 거의 없었다. 수업시
간이래야 대부분 필기 시간이고, 설명 좀 듣다보면 끝 종이 난다. 학생들
의 개성이 잘 드러나지 않아 더욱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게 우린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우연히 다시 찾은 것이 실로 반세
기 만인 것이다. 그동안 한 라인에서 일 년을 넘게 살았으면서도 서로
몰랐던 것이다. 나에게 그녀는 위층에 사는 여인들 가운데 하나였고,
그녀에게 나는 아래층에 사는 남정네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던 것이다.
아마도 초등학교 시절에도 우린 꼭 그랬을 것이다. 딱히 친한 것도 아니
고 그렇다고 전혀 모른다고도 할 수 없는, 어정쩡한 관계 속에 살았던
것이다. 그 어정쩡한 관계라는 것이 그 후로도 꼬리표처럼 나를 따라다
니며 어쩌면 지금까지도, 나와 타인들과의 관계를 수없이 만들어 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일을 계기로, 우린 하루아침에 갑자기 동창생으로 신분이 변하고
말았다. 우린 아파트 뒷산의 산책로를 걸으며 옛날을 함께 회상하곤 했
다. 육학년 때 우린 얼마나 많은 노동을 했던지. 정규수업 시간까지도
선생님의 인솔 하에, 온종일 남의 보리도 베어주고 온종일 모도 심어
주며, 수많은 날들을 허리 아프게 일했다. 그러나 수학여행 경비를 마련
한다고, 아무도 불평 한마디 없는 것이 신기했다.
   그날 우린 학교에서 영산포역까지 삼십 리 길을 걸었어도, 신나게 목포
행 완행열차에 몸을 실었다. 모두가 처음 타본 기차 속에서, 선생님은 감귤
두어 꾸러미를 사서 속 알갱이 두 쪽씩을 분배했다. 그때 생전 처음 맛본
그 감귤 맛의 달콤한 충격은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지만, 정작 그 감귤을
내 손에 쥐어준 당사자가 새침한 그녀였다는 실토는 뜻밖의 굿 뉴스였다.
   평생교육원 사진반에서는 야외출사를 자주 갔다. 우린 새벽 일찍부터
승용차로 출발하여, 임실 운정호로, 구례 산수유마을로, 광양 매화마을
로, 고창 학원농장으로, 보성 녹차밭으로, 그리고 오후에는 순천만 등으
로 누비며 돌아다녔다. 작품사진을 찍으려면, 사물을 나만의 새로운 각
도로 볼 줄 알고 새롭게 표현해 내야 한다. 이렇게 우린 뒤늦게 자연과
인간을 새로운 앵글로 잡아보고, 새로운 프레임으로 보는 방법을 연습
해 가고 있었다. 나이 들어 카메라를 메고 다니는 것도, 삶의 여정에서
헛고생만은 아닌 듯했다.
   똑같은 사물을 찍어도, 어느 한 부분을 트리밍하여 잘라내고 확대해
서 보면 새로운 주제가 선명히 나타난다. 아마도 우리네 인생도 사진처
럼 한 부분만 트리밍하여 확대해서 보면, 그 사람의 새로운 이미지가
창출되는가 싶다. 디지털 카메라는 한번 찍어버린 후일지라도, 약간의
보정작업만 하면 얼굴의 잡티도 제거할 수 있고, 밝고 어둠이나 색깔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우리네 인생도 사진처럼 이미 한번 살아버린
날들을, 후일에 다시 잘못 산 잡티는 제거하고, 어둡게 산 부분은 밝게
보정하는 방법이 찾아보면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나는 그녀의 인생도
어두운 부분이 있으면 사진처럼 밝게 보정해 주고 싶었다.
   많은 출사 중에서도 그녀가 유난히 좋아했던 날은, 아마도 영광의
불갑사로 상사화를 찍으러 갔을 때였던 것 같다. 상사화의 잎은 봄에
나지만, 가을에 필 꽃을 위해 꽃대가 나오기 시작하면 그 잎은 사라진
다. 잎이 붙어 있을 때는 꽃이 없고 꽃이 있을 때는 잎이 없으므로, 잎은
꽃을 그리워하고 꽃은 잎을 그리워한다고 하여, 상사화란 이름을 갖게
된 슬픈 식물이다. 연한 홍자색의 꽃이 줄기 끝마다, 네 개에서 여덟
개가 달리는 상사화를, 그녀는 왜 그리도 좋아하게 되었을까? 나는 그
녀가 사십대 초반에 남편과 사별하고, 홀로 애들을 키우며 고생했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도 남편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상사화를 닮지 않았나
싶었다.
   내가 퇴임 후에 성당에 다니며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고 하자,
그녀도 흥미를 보였다. 다음번 예비자교육 때는 꼭 입교해 보겠노라고
나와 굳게 약속을 했다. 나는 그녀와 함께 성당에 나갈 날을, 그 옛날
초등학교 시절 마을축제인 운동회날처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의 일이란 기약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어서일
까? 그녀가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갔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녀의 쾌
유를 두 손 모아 빌며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나 채 문병도 가보기 전에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다. 고혈압이었다. 모질고 모진 것이 인생길이라
던데 이렇게 허망할 수 있었던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얼마 전 사순시기가 시작되는 재의수요일 신부님은 내 이마에 재를
바르며, “사람은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시오.” 하였
다. 나 또한 흙으로 돌아갈 것인데 그녀가 한발 먼저 간 것뿐이다. 또한
죽음은 끝이 아니고 영생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영생
이 이어지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혹여 그녀가 마지막 가는 길에 신께
의지했다면 얼마나 위로가 되었을까? 그러나 그녀에겐 그런 신마저 있
어주지 못했다…….
   그녀와의 두 번째 만남은, 바로 나의 그 어정쩡한 인간관계를 바꾸도
록 만들었다. 서로 순수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좀 더 진솔한 인간관
계를 맺고 싶었던 것이다. 참으로 진정한 동창생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우린 그 옛날의 육 년보다도 더 긴 일 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 전에 시제를 모시러 고향에 다녀왔다. 길가에 우리가 함께했던
옛날의 연분홍 코스모스가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던, 초등학교 건물이 눈
안에 들어왔다. 우린 가건물에서 손발을 벌벌 떨며 고생하다가, 겨우 육학
년 때서야 들어간 꿈에도 그리던 건물이었다. 그때 우린 세상에서 가장
큰 대궐처럼 화려한 집에서, 신나게 복도를 뛰어보며 행복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폐교가 되어 퇴색한 허름한 단층 건물 하나만이, 홀로 남아 쓸쓸히
그 자리를 기키며 그 옛날의 메아리 없는 우리들을 다시 찾고 있었다.

 

 

윤영욱  --------------------------------------------------------------------------
2008년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