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 비평/수필과비평 본문

[수필과 비평 2012년 5월호, 세상 마주보기] 법은 법인 기라 - 류재홍

신아미디어 2012. 5. 22. 18:41

틈, 틈, 틈.... 그 틈을 법만으로 메울 수 있을까? 그렇다면 무엇으로.......

 

 

 

법은 법인 기라

   시간은 자꾸 가는데 차는 굼벵이 걸음이다. 앞지르기라도 하면 좋으
련만 퇴근길 남편은 느긋한 표정이다. 이대로 가다간 모임에 지각할 게
뻔하다. 급한 김에 내가 운전하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단속 카메라가 없어도 과속하지 마라, 신호 위반하지 마라.”
   같이 차를 타고 가면 잔소리는 언제나 내 쪽이다. 하지만 오늘은 위반
해서라도 빨리 가고 싶다. 조바심을 치다 보니 목도 뻐근하고 입 안까지
바삭거린다. 라디오를 들으며 마음을 진정해 본다.
   라디오에서 양심 없는 ‘식파라치’ 이야기가 한창이다. 국민 건강을 보
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포상금제가 그들의 부업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단
다. 콩나물 장사로 아들 병원비 대기도 빠듯한 사람이 벌금을 물게 되었
다며 울먹인다. 불량 식품은 뒷전이고 손쉬운 영세 무신고 업소만 찾아
다니는 얌체족이 많은가 보다. 심지어 그것을 업으로 삼아 몇 백만 원씩
타가는 사람도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식약청에서도 이참에 신고 포
상금제를 다시 검토 중이란다. 그나마 다행이다.
   법으로 꼼수를 부리는 사람을 보면 어김없이 그가 떠오른다. 삼십 년
이 넘은 일이지만 아직도 생생하다. 대도시 양복점에서 일하다 왔다는
사람이 우리 동네에 양복점을 열었다. 솜씨가 괜찮은 편인지 늘 손님이
북적거렸다. 그는 어느 날 고향에 다녀온다며 식구들과 함께 집을 비웠
다. 몇 개월 동안 감감무소식이자 가게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늘어났다.
대부분 외상값을 받으려는 사람이었다. 그중에는 연탄가게와 구멍가게
로 근근이 먹고사는 이도 있었다.
   그에게 세를 준 집주인은 더욱 난감했다. 월세도 못 받는 처지에 빚쟁
이가 따로 없었다. 채권자들이 가게에 남아있는 옷감이라도 가져가겠다
며 시나브로 몰려들었다. 일 년쯤 되던 어느 날, 참다못한 집주인이 가게
문을 열었다. 그러자 어디서 지켜보고 있었던 듯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의 집에 허락 없이 들어갔으니 ‘주거 침입죄’로 고발하겠다며 거액의
합의금을 요구했다.
   그런 일에 판설어 경찰관 입회 없이 문 열어 준 게 잘못이었다. 합의에
응하지 않은 집주인이 형사입건되고 동네는 벌집 쑤셔놓은 듯 어수선했
다. 다행히 동네 사람들의 탄원으로 구속은 면했지만, 된 시름을 앓았다.
민사소송에도 패소하자 그는 영영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훗날 채권자
들이 그의 고향을 찾아갔다. 놀란 노부모가 ‘진즉 내친 자식이니 찾아서
죽이든지 살리든지 마음대로 하라’더란다. 알고 보니 그는 상습범이었
다. 법은 좋은 습관과 인격을 만들어 주는 초석이라 했다. 그도 지금은
개과천선하였을지 모르겠다.
   살다 보면 법을 잘 몰라 낭패를 보는 경우가 더러 있다. 며칠 전에
본 할머니도 그랬을 성싶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오일장이라
도로변은 장꾼들과 행인들로 북새통이었다. 정류장 옆에도 등 굽은 할
머니가 채소를 팔고 있었다. 그때 요란한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교통
경찰관들이 노점상을 단속하러 나왔다. 한 경찰관이 할머니에게 다른
곳으로 옮기기를 종용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몇 미터 떨어져야 하는 법
을 어겼다는 것이다. 할머니는 그런 법도 있느냐며 승객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면 될 게 아니냐 했다. 달리 갈 데도 없다며 뭉그적거렸지만,
에누리가 없었다. 몇 번의 사정에도 어림없자 체념한 듯 보따리를 싸기
시작했다. 옆자리 상인이 어떻게 하느냐며 안타까워하니 힘겹게 일어서
던 할머니가 툭 내뱉었다.
   “하지 마라카이, 몬하는 거 아이가. 벱은 벱인 기라.”
   조그만 끌차에 짐을 싣고 사라지는 할머니 등 뒤로 설움이 진하게 배
어났다. 생전의 어머니도 저러셨을까. 자식들 교통비라도 벌겠다며 장
날만 되면 푸성귀를 이고 나가시지 않았던가. 콧등이 시큰했다.
   노점상 할머니의 말처럼 ‘법은 법’이므로 당연히 지켜져야 한다. 하지
만 모든 걸 법의 잣대로 행한다면 얼마나 삭막하겠는가. 모르긴 몰라도
그날 부모쯤 되는 할머니를 내몬 경찰관의 마음도 편치 않았으리라. 법
을 개똥같이 여기며 떠세 부리는 이들도 있다. 힘없고 불쌍한 사람보다
그들부터 단속해야 하지 않을까. 알 만한 사람이 신문을 더럽히는 게
얼마나 많은가.
   해야 하는 것과 하는 것 사이에는 틈이 생기게 마련인가. 나는 또 왜
이러나.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살피고 있다. 빈틈이라
도 생기면 얼른 새치기하라며 채근할 참이다. 자글거리는 내 마음부터
단속해야겠다.

 

 


류재홍 ----------------------------------------------------------------------
2009년 ≪에세이스트≫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