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사랑을 하고 계신가요.. 김사랑님의 사랑에 대한 울림을 느껴보세요. 사랑합니다!!!!
사랑은 현재진행중
잠결에 들려오는 전화벨 소리는 밤새 참았던 속마음을 대신하는 사랑
의 세레나데다. 창밖에 눈발이 꽃비처럼 날려도 그리운 사람이 생각나
고, 잠시 부재중이라 통화할 수 없으면 입을 한 자나 빼물고 아이처럼
토라져 있다. 이 절절한 사랑, 뜨거워 데일 것 같은 이 사랑은 현재진행
형이다.
지난해 아버님은 네 차례나 수술을 받으신 후 퇴원하여 현재는 우리
집에서 계신다. 낮에는 토막잠을 수시로 주무시고, 정작 밤에는 잠이
안 온다며 구시렁거리신다. 다리가 불편하여 벋정다리로 걸으시니 그
울림이 문을 닫고 있어도 전해온다. 문틈으로 들어오는 밝은 불빛, 티브
이와 라디오 소리에 깊은 숙면을 취해본 지가 언제인지 달콤한 잠이 그
립다.
설핏 잠이 들었다가 큰소리에 깨어 나가보니 아버님은 침대에 앉아서
누군가를 애타게 부르고 계신다. 꿈을 꾸다 깬 아이처럼 감겨진 두 눈에
서 눈물이 흐른다.
“여보, 여보!”
아버님이 그리워하는 여보는 어떤 여보일까? 오십 년을 동고동락하시
고 눈맞춤할 시간도 없이 영영 이별한 어머님을 꿈속에서 만나 눈 뜨면
사라질까 두려워 두 눈 감은 채 애타게 부르는지, 아니면 재혼하여 미안
한 마음에 눈물까지 흘리며 부르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것도 아니면
목숨을 버리고 싶을 만큼 절박했던 시기에 천사처럼 만난 젊은 여보를
부르고 계신 건지. 놀라서 뛰어와 바라보다가도 순간순간 치미는 의문
을 누를 수 없다. 여쭤보고 싶지만 아직도 묻지 못하고 있다.
어머님의 교통사고는 불시에 두 분을 갈라놓았다. 어머님의 죽음을
목격하신 충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당신 혼자 온 세상 외로움의 중심에
홀로 떨어진 듯 절규하셨고, 바라보는 자식들도 그 고통을 함께 겪어야
했다.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고희를 지나서 젊디젊은 여인을 아내로 맞
이하신 아버님. 새로 시작한 달달한 인생은 흰머리 빠진 자리에 회춘을
증명하듯 검은 머리가 까맣게 자리를 잡아갔다. 지는 노을이 더 아름답
고 뜨겁다지만 적당함을 모르는 눈치 없는 사랑의 행보는 세 살배기처
럼 안하무인이 되어 자식들을 힘들게 했다. 바짝 곁에 있기만 해도 살이
묻어날 것 같은 뜨거운 사랑. 남루하지 않게 찬란한 노년을 보내실 수
있게 재혼시켜 드린 것은 참 잘한 일이라 생각하다가도, 너무 민망하여
때론 밉살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또 어쩌랴, 열 자식 대신인 것을…….
설상가상으로 새시어머니도 지난해에 두 다리를 수술하시어 두 분이
떨어져 계신다. 이 거리를 극복하지 못하여 아버님은 지금 조기치매와
상사병을 동시에 앓고 있다. 이 깊은 밤에 눈물지며 간곡히 부르는 저
애절함도 아버님의 한 증상이다. 그러나 정신이 맑은 날엔 아버님 눈에
비친 나는 언제나 애처로운 며느린가 보다.
바쁜 며느리를 대신하여 세탁물을 널어 주신다며 다른 일 하라고 등
을 떠미시는 아버님. 결혼 초부터 아버님 앞에서는 주눅 들기보다 응석
을 부렸던 기억이 더 많아 그런지, 요즘도 가끔 드시는 막걸리를 잔에
따라 드리며,
“아버님, 오늘은 막걸리가 우유처럼 고소해 보이네요. 그치 아버님?”
“그려? 맛있어 보이면 니도 한 모금 마셔 봐라.”
처음에는 사양했지만 이젠 막걸리 잔에 먼저 입을 대어 홀짝거리는
버릇없는 며느리가 된 지도 오래되었다. 이렇듯 서로 살갑게 지내게 된
것이 결코 하루아침에 쌓인 정이 아니다.
불같은 사랑을 하다 결혼하면 깨소금 냄새만 피우며 살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생각은 일찌감치 접어야 했다. 시어머님은 며느리의 기를 꺾
어놓고 단번에 무슨 일이든 하길 원해서 두려웠다. 언제나 어려운 과제
를 툭 던져놓고 혼자 해결하게 만드셨다. 시댁에서 함께 살게 되니 한번
도 경험하지 않았던 일들과 낯선 환경은 정신이 반쯤 나가서 바보가 되
어 가는 것 같았다. 늘 할 줄 몰라서 허둥대다보니 부엌의 그릇은 부뚜막
에 부딪혀서 담장 구석에 쌓여가고, 멀쩡하던 청각마저 어머님 앞에선
전혀 들리지 않아 귀머거리로 오해받기 일쑤였다. 그때 며느리사랑은
시아버지란 말처럼 남편이 아닌 아버님이 나의 방패막이 되어서, 아버
님은 시어머니 모르게 많은 일들을 처리해 주시곤 하셨다.
나는 국수를 잘 먹지 않는다, 국수만 보면 결혼 초 겪은 아픈 추억의
늪으로 빠지고 말아서. 그날은 일꾼을 많이 얻어 모내기를 하는 날이었
다. 어머님은 내게 국수를 삶아 건져 일 인분씩 사리를 만들어서 대소쿠
리에 담아 놓으라고 지시하고는 들로 나가셨다. 커다란 솥에 물을 채우
고 불을 지폈다. 김이 펄펄 솟는 솥에 마른 국수를 쏟아 넣었다. 얼마
되지 않아 칙칙 소리를 내며 국수물이 넘쳐흘렀다. 재빨리 조리로 건지
려 애를 써도 늘어진 국수가닥은 조리 밖으로 흘러내렸다. 겨우 조리에
걸린 것은 한데 뭉쳐져 밀가루 떡처럼 엉켜 붙었고, 솥 안에 남아 있는
국수는 퉁퉁 불었다. 새참을 가지러 오신 어머님은 이 사태를 보시고
벼락같이 꾸지람하셨다. 뜨거운 화기와 김에 데여 벌겋게 터져버린 상
처보다 그날 받은 마음의 상처는 깊게 박혀 오늘도 아픔을 전하고 있다.
얼마 후에 어머님은 당면을 삶아 놓으라며 여쭤볼 새도 없이 던져놓
고 나가셨다. 마루 끝에 사색이 되어 앉아 있다가, 탕탕거리는 경운기
소리에 정신이 돌아왔다. 경운기에서 내리신 아버님은,
“새아가, 너 어디 아프냐?”
고개를 저었다. 왜 그리 무거운 얼굴이냐며 재차 물으셨다. 그제야
당면 삶을 일을 말씀드리자, 아버님은 잠시 생각하시더니 대소쿠리를
가져오셨다. 물이 끓는 솥 안에 대소쿠리를 집어넣고, 당면을 넣어 알맞
게 삶아지면 대소쿠리를 그대로 들어내라신다. 쉽고도 간단한 방법이었
다. 그 일 이후 스스로 할 수 있게 방법을 알려주시는 자상한 아버님이
좋았다. 아무도 모르게 비상금을 풀어 손에 쥐어주고 마음을 다독여주
시는 멋진 아버님, 그런 시아버님의 지혜를 익히며 살았다. 그 믿음이
한해 두해 쌓이다 보니 마음속에 아버님에 대한 신뢰와 존경심이 잴 수
없는 부피로 깊이 형성되었다.
그 아버님이 지금 치매증세로 한밤중에 씨갑씨를 찾아 헤매시며, 헛
손질에 비설거지하는 일로 잠을 설치는 날도 잦고. 더러 음모를 계획하
다 들킨 사람처럼 무서운 표정을 지어 내 가슴 서늘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도 난 그 아버님이 좋다. 철없던 시절에 내게 주셨던 큰 사랑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어 다행이다. 축적된 사랑이 없었으면 지금의 상
황은 매우 고통스럽고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현재 아버님을 어리광
부리는 어른아이로 생각을 하니 지내기가 수월하다. 아버님이 계신다고
특별하게 음식을 준비하거나 유난을 떨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평상시
먹던 대로 드리고 단지 생선가시를 발라서 수저 위에 얹어드리며, 국물
김치만을 떨어지지 않게 담가 두면 된다. 산다는 것, 된비알 올라선 후들
거림도 있었고, 외로움에 갇혀 호흡 곤란을 겪기도 하였으며, 호주머니
에 넣고 다니고 싶을 만큼 정을 주는 젊은 여인도 곁에 있으니 남아있는
노년을 즐겁게 보내시리라.
오늘도 아침 식사 얌전하게 잘하시고는 느닷없이 어머니에게 가자 보
채시는 울아버님. 그 생떼에 반항도 못한 채 며느리와 아들은 출근도
못하고 새시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대전으로 달려가고 있다. 아이처럼
기분이 좋아진 아버님은 차창 밖을 내다보며 미소 짓고 계신다.
* 씨갑씨: ‘씨앗’의 충청도 방언.
김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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