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어머니, 엄마. 항상 가슴을 울리는 단어입니다. 그 어머니를 가슴으로 느껴봅니다.
어머님은 떠나시고
며칠 전 갑자기 열무, 얼간이물김치가 먹고 싶었다. ‘먹어본 지 십 년
이 넘었는데 왜 먹고 싶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이상했다. 가슴이 두
근거리고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흔히 말하는 우울증인가? 이러다가
말겠지 하고 그냥 지나쳐 버리려 해도 가슴은 계속 답답했다.
물김치 생각이 난 지 열흘이 채 되지 않아 어머님이 폐렴에 걸려 중환자
실에 계신다는 연락이 왔다. 서둘러 심야우등버스를 타고 울산에 갔다.
면회 시간이 되어 찾아뵈었을 때 어머니는 눈은 감고 우리가 말하면
고개만 움직이며 알았다는 표현을 하시는 것을 보고 하루 지나 서울로
왔는데 집에 도착하자마자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다. 갑자기 무슨 일
이냐고 물으니 폐에 물이 차서 호흡곤란으로 돌아가셨단다.
우리 가족은 허겁지겁 짐을 챙겨 고향으로 갔다. 어머님 영정 앞에
엎드리니 살아 계시는 것만 같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문득 얼마 전
먹고 싶었던 물김치 생각이 났다. 돌아가시려고 물김치 생각으로 나를
불렀던 것인가? 그런데 나는 그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으니…. 하염없
이 눈물만 흘러내렸다.
유언에 따라 삼일장에 화장해서 납골당에 모시고 그곳 절에서 곧바로
탈상재를 올렸다. 탈상이라니? 의아해하는 나에게 사십구재를 하기 때
문에 요즘은 이렇게 한다고 스님이 설명했다.
우리는 어머님 영정을 모시고 또다시 집에서 가까운 절에 가 사십구재
를 올렸다. 이 절은 어머님이 평소 다니시던 고찰이다. 형님과 시누이들
도 어려서부터 다니던 절이다. 입재를 올린 후 절을 떠나려 할 때쯤 우리
와 헤어지는 것이 섭섭했는지 어머님의 눈물처럼 이슬비가 보슬보슬 내
렸다.
둘째시누이 차를 타고 오는 도중에 큰길에 접어드니 둘째가 아는 오
리집이 있는데 모두 가자고 했다. 나는 좀 당황해서 지금 절에서 내려오
는 길인데, 웬 오리고기냐고 물으니 탈상을 했기 때문에 괜찮다고 했다.
내 친정하고는 풍습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면서 식당에 들어갔다.
세월이 바뀐 탓인지 몰라도 영안실과 화장장, 납골당, 절에서 뚝뚝 흘
리던 눈물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고, 형님, 남편, 시누이들과 시매부들
의 모습을 보니 방금 전에 장례 치른 가족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울어서 벌겋던 눈은 먹는 것을 두고 언제 그랬냐는 듯 초롱
초롱했다. 식사 후엔 피곤하다고 찜질방에 가자는 걸 나는 거절하고 우
리는 심야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버스를 타기 전에는 차에서 자야
겠다고 생각했는데 차 속은 덥고 답답해서 잠은커녕 온갖 생각에 눈물
만 흘렀다. 자려고 하면 더욱더 생각이 났다. 살았을 때 잘 해드리지
못하면 떠난 뒤에 후회한다더니 눈물만 흘렸다.
어머니는 백 평 남짓한 마당의 한 모퉁이에 텃밭을 일구어 놓았다.
봄부터 가을까지 온갖 푸성귀를 심었다. 추석에 가면 김장무와 배추가
제법 자라 물김치를 담가주시는데 참으로 맛있었다. 어머님은 내가 좋
아한다고 어린 무와 배추를 솎아 물김치를 담가 놓으셨다. 양념이라고
는 보리쌀 삶은 물과 찹쌀풀, 어린 쪽파, 마늘, 생강, 붉은 고추와 풋고추
를 잘게 다진 것과 약간의 산초며 맑은 액젓이 전부다. 어린 무며 배추를
국물이 자박하게 해서 담가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우리가 가면 꺼내주
셨다. 시원하고, 산초 냄새에 맛은 한결 좋아서 나는 염치불구하고 참으
로 많이 먹었다. 이제는 이런 김치맛도 볼 수 없다.
어쩌다 집에 갔을 때 아침에 부엌에서 소리가 나서 얼른 일어나 들어
가면, 먼 길 오느라 고생했으니 더 자라고 방까지 따라오시며 말씀하시
던 모습도 이젠 볼 수 없게 되었다.
어느 명절에 시매부들과 고스톱을 하다가 돈을 다 잃고 그만하겠다고
하자, 어머님은 돈을 내밀며 사위들보다 며느리인 내 편에서 눈웃음치
며 응원하셨다. 한번은 동서가 “그동안 하지 않았으니 형님이 설거지
하세요.”라고 부탁이 아닌 지시를 “누가 손위야.” 하고 함지박을 차버린
적이 있었다. 와장창 하는 소리에 어머님이 놀란 얼굴로 오셔서 동서로
부터 자초지종을 듣더니 “큰애는 먼 길 온다고 고생했으니 작은애가 해
라.” 하셨다. 절대 내 편이 되어 주셨던 그 말씀도 내 기억의 한 모서리에
맴돌 뿐이다.
나는 어머님께 참으로 못난 맏며느리였다. 남편의 계급이 올라가면
지휘관은 자리를 비울 수 없다는 핑계로 때마다 찾아뵙지도 못했다. 그
래도 괜찮다며 늘 내 편에 계셨는데. 이제는 아무리 찾아뵈려도 뵐 수가
없어서 나를 더 아프게 할 것이다.
돌아가시기 전에 갑자기 물김치 생각으로 나를 불렀듯이 어머님은 언
제나 나를 그리워했나보다. 이젠 내가 흙으로 갈 때까지 어머님을 그리워
할 것 같다. 어머님, 편히 잘 가세요. 이승의 일은 모두 잊어버리시고요.
이금희 ------------------------------------------------------------------------
2007년 ≪수필과비평≫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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