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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4월호, 월평] 소재와 주제, 그리고 수필 - 김상태

신아미디어 2012. 5. 11. 14:19

김상태님의 수필과 비평 3월호에 대한 월평을 소개합니다. 비교의 미학을 느껴보세요.

 

 

 

 소재와 주제, 그리고 수필

                                       1.
   전체주의 국가가 아닌 이상 소재의 선택에 있어서 제한을 두는 예는
없다. 다시 말하면 작가는 어떤 소재이든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주제는 그렇지 않다. 국시에 어긋난다든지, 법에 저촉되
는 주제이든지, 미풍양속을 현저히 해치는 주제는 제재를 받을 수 있다.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문 일이다.
   소재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과 행위라고 할 수 있는 데 비해 주제는
작자가 의도하는 바의 어떤 것, 목적에 따라 가공해서 만든 어떤 것이라
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소재는 중립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라면, 주제
는 관점(point of view)을 분명히 세워서 바라본 글이다. 대체로 주제가
분명하지 않는 글은 독자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주제가 애매모호해서
이것인가 저것인가 헤매게 하는 글이 있는가 하면 주제가 분명하게 드
러나서 이것이다 하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글이 있다. 주제가 분명하
게 드러난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글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와 반대로
주제가 애매모호하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글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글의 종류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대체로 논술적인 글은 주제가 분명
한 반면에 문예적인 글은 주제를 금방 파악할 수 없는 글도 많다. 사람에
따라 다른 주제로 받아들일 수 있기도 하지만, 시대에 따라 혹은 당시의
사정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 대체로 시애매성이 가장 많은
문학이고 소설과 희곡은 그 다음쯤 된다. 그에 비하여 수필은 애매성이
가장 적은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수필도 시대에 따라 혹은 사람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글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그 진폭은 다른
장르에 비하여 적다고 할 수 있다.
   소재와 주제가 거의 분리할 수 없는 글이 있는 반면에 분명하게 구분
할 수 있는 글이 있다. 기행문, 일기 등이 전자의 경우라면 은유나 아이
러니 혹은 패러독스 등 문학적 장치를 많이 사용하는 글일수록 후자의
경우가 많다. 시가 애매성이 많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의할 점은 소재나 주제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전개해 가느냐의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을 강조해 두고 싶다. 소
재를 어떤 관점에서 전개해 갈 수 있느냐 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말이
다. 곧 그것이 글을 쓰는 능력이다. 아무리 뚜렷한 관점을 견지한다고
해도 문맥에 맞지 않는 글을 쓰거나 독자의 글 읽는 재미를 불러일으키
지 못하는 글은 그 가치가 의심된다. 물론 세월이 한참 지난 후 그 가치
를 인정받는 수도 가끔 있다. 잘 쓴 글은 감동적인 소재를 취택해서 독자
의 마음을 오래도록 저 깊은 곳까지 울리는 힘을 가지고 있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수필이 특히 그렇다.
   이제 지난 달 ≪수필과비평≫에 발표된 글 중에서 어떤 소재에서 어
떤 주제를 도출해 내고 있으며, 그 전개하는 과정이 어떠했는지 살펴보
기로 하자.


                                           2.
   125호의 ≪수필과 비평≫은 신곡대상을 받은 분들의 작품(1회에서 최
근의 수상자까지)을 청탁해서 게재하고 있다. 이분들의 작품에 대해서
평을 가한다는 것은 주제넘다는 생각이 들어서 간단히 언급하고 지나가
려 한다.(필자의 작품도 거기에 끼어 있어서 더욱 그렇다.)
   그런데 첫 인상이 각 작가의 작품들이 상당히 다양하다는 느낌이 들
었다. 소재도 그렇지만 주제도 그렇다. 나이 들어감을 한탄하는 글(김
학)이 있는가 하면, 전해 내려오는 옛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이한 글(정
진권), 큰 바람에 대해 쓴 글(이정림), 화분과 갈대밭에 대해 쓴 글(유병
근), 한옥 처마의 아름다움에 관해 쓴 글(정목일), 인간의 욕구에 대해서
쓴 글(김규련), 영정사진에 관해서 쓴 글(정호경), 젊었던 시절 술집 여인
과 인연이 맺어질 뻔했다가 헤어진 이야기(박양근), 어려웠던 군 입대시
절의 이야기(강돈묵), 시를 통해 봄이 오는 소리를 듣고 있는 글(김상태),
수필 쓰기에 주의할 점을 꼼꼼히 점검하고 쓴 글(변해명), 손자녀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시절을 추상하는 글(최병호), 시골 뒤뜰에서
놀던 어린 시절을 추상하는 글(유한근), 볕바른 양지에 앉아 봄을 나른
하게 즐기고 있는 이야기(맹난자) 등이다. 소재도 다양하고 전개하는 방
법도 달라서 마음을 열고 한번쯤 읽어볼 만한 글들이다.
   이제 취택한 소재를 통해서 작자들은 어떤 주제를 펼치고 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김나현의 <미인송>은 그야말로 ‘미인송’이 소재다. 합천호의 미인송이
잘려나갔다는 말을 듣고 작자는 매우 실망한다. 모두들 애석하게 생각
해서 대체 나무를 심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대체 나무가 그 환경
에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지 매우 걱정이 된다는 것이 주제다.


합천호의 미인송도 더 쾌적한 환경에서 자랐더라면 말라죽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많은 사람의 마음에 심겨졌을 테니 여한은 없
을 게다. 이처럼 식물도 처한 환경에 따라 소멸이 앞당겨지는 걸 보며
씨앗이 처음 뿌리내린 땅보다 더 나은 환경은 없다는 생각을 한다.
   식물뿐 아니라 사람도 옮겨심기할 때가 있다. 이사하게 되어 살던 곳
을 떠나거나 결혼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경우이다. 태어나 처음 뿌리
내린 자리보다도 옮긴 자리가 더 적응하기 힘든 것은 자명하다. 낯선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람도 식물도 더 많은 인내와 의연함이
필요하리.


   미인송의 처지를 보면서 사람을 생각한 것이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
이라고 하지만 대자연 속에서는 소나무와 다를 것이 없다. 작자는 범위
를 더 좁혀 자기 가족의 경우를 생각한다. “남편의 사고 후 단출해진
우리 가족도 스무 해 살던 동네를 떠나왔다. 얼떨결에 옮겨심긴 대체
나무처럼 들이닥친 환경에 조심조심 적응하는 중이다.” 미인송의 처지
를 보고 내 가족의 처지를 생각하게 되었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미인송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이런 주제를 도출해낸
것이다. 일종의 간절한 기도와 같다.
   선순례의 <빛바랜 구족화>는 ‘구족화’가 소재다. 연말이 되면 구족화
단체에서 그림과 함께 성금을 보내 달라는 지로 용지를 보내온다. 연례
행사처럼 청구하는 것이라 몹시 부담스러웠다는 것이다. 지난해는 매정
하게 거절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다음해에 곱게 물든 낙엽이 퇴색될
때쯤 배짱 좋게 두툼한 봉투는 여전히 찾아왔다. 참!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음이 나온다. 반갑잖은 손님처럼 받아들긴 했지만 거절했던 말을 후
회하면서 은근히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매달리듯 떨리는 그 목소리가
목에 걸린 생선가시처럼 삼키지 못했던 때문인가 보다.”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한번쯤은 가졌을 것이다. 사실 성금을 요구하는 구호단체가 우
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다. 그들의 딱한 처지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너무
많으니까 짜증이 날 때도 있다. 작자도 그런 마음이었으리라. 거절한
후 작자는 “한 해 동안 비에 젖은 낙엽처럼 내 가슴에 착 달라붙은 채
잊히지 않았다.”라는 것이다.


   몸을 지탱하기도 힘들 텐데… 입으로 발가락으로 캔버스에 상상을
표현하는 색채가 물결친다. 바위를 덮쳤다가 하얗게 부서지는 거품이
자르르 웃는 웃음처럼 아름답다. 붓을 문 입술 아래 목줄기에 불끈 솟은
힘줄이 문득 눈길을 잡는다. 몸부림치듯 그렸을 그림을 못 본 채 외면하
겠다고 냉정했던 순간이 부끄럽게도 느껴진다. 갑작스런 사고로 멀쩡하
던 자신이 장애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감당했을까? 고통과 절망
과 죽음에서 싸워 이겨낸 그 의지력에 깊은 감동을 받는다.


   “오직 살아있음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붓 끝에 희망을 담고 그림으로
승화시키는” 구족화가들의 마음이 되는 것이다. 이 글의 주제는 “순전히
남의 도움으로밖에 살 수 없는 그들에게 손톱만큼 작은 도움을 주고 가
슴이 벅차도록 받는 기쁨이 나눔의 행복이라고 느껴진다.”라는 것이 된
다. 구족화가를 통해서 진정한 인간애를 깨닫게 되는 작자의 마음을 나
타내고자 했다.
   안현숙의 <담장>의 소재는 말할 필요도 없이 ‘담장’이다. 온갖 곳의
담장을 통해서 떠오르는 상념을 적고 있다. 작자는 “계룡산 도예촌에서
도자기로 구운 옛 담장 조각 몇 개를 들고 와서 안방에” 두는 것에서부터
상상은 시작된다. 다음은 “하회 마을에 갔을 때 참으로 정겹게 다가온…
옛 돌담길이다.” 거기서 “소꿉놀이에 빠져 있는 소녀”를 본다. “돌담 앞에
서면 늘 떠오르는 얼굴” “비운의 천재 예술인 허난설헌”을 본다. 오늘날
태어났다면 “그녀의 재능은 훨훨 날개를 달고 온 세계로 날아갈 수 있을
텐데. 시공간을 초월하여 만나는 담장 안의 그녀가 언제나 안타깝게 나
를 부른다.”라는 것이다. “겨울밤 해운대 문탠로드를 걸으면서” “청사포
의 까만 밤하늘에 손톱처럼 달랑 걸린 초사흘 달이 담장 위에 떠” 있는
모습을 상상한다.


   볼 수 있는 공간만의 한계란 어떤 것일까. 담장 너머 보이지 않는 세
상을 향한 열망은 고통이었을까. 사랑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
법은 바라보는 것이라고 한다. 바라봄이란 그 무엇도 강요하지 않고 그
냥 내버려두는 것, 그러나 늘 바라보고 있는 것. 그 고통을 없애거나
버리는 것이 아니다. 체념과 초월의 경계에 마음의 담장을 치고 ‘바라봄’
의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동경을
바라보며 오랜 세월 그렇게 그 자리에 묵묵히 담장은 서 있다.


   형이하학形而下學의 세계인 담장에서 형이상학形而上學의 세계로 추상
하고 있다. 다시 소재인 ‘담장’에 돌아와 작자는 “내게 담을 넘게도 하고
스스로 담장 안에 가두기도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너무 높지도 그렇
다고 너무 낮지도 않은 담장의 높이, 딱 그만큼만 마음을 가두어 지키고
싶다. 내가 가보지 않은 세상을 향한 그리움과 동경을 멈출 수는 없다.
그러나 사랑만으로 날마다 충만한 기쁨을 느낄 수 있다.”라고 술회한다.
담장을 통해서 작자의 인생관을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황정희의 <쌀례>는 어린 시절 친정집에서 일하던 처녀의 이름이다.
물론 ‘쌀례’가 소재다. 친정아버지의 기일에 들렀다가 사십여 년 만에
만나 그간의 회포를 푼다. 작품은 쌀례와 지내던 시절의 이야기가 소재
로 되어 있다. 쌀례는 작자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친정집에 왔다는 것,
그때 나이 열여덟 살이었으니 일곱 살이나 차이가 진다는 것, 초등학교
6학년 때 작자는 자주 아파 쌀례가 점심 도시락을 매일 학교로 날랐던
일, 과외 선생님께 매일 새벽 영어를 배우러 갈 때 무섭다고 꼭 대동하고
갔던 일 등을 회상한다. 그러나 작자가 대학을 들어가고 집에 갔더니
쌀례는 이미 시집을 가고 없었다. 가난한 농사꾼에게 시집을 간 쌀례는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는 전언만 들었다. 그리고 지금 만나는 것이다.
내년 기일에도 꼭 와 줄 것을 쌀례에게 다짐을 한다. 그러나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사라” 했듯이 올케 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서울로 이사를 오는 통에 동안 만나지 못했다.


   쌀례를 만나고 벌써 15년. 만날 수 없는 아쉬움은 아랑곳하지 않고
세월은 많이도 흘러갔다. 이제부터는 해마마다 쌀례를 만날 수 있으려
니 생각했다가 영영 소식마저 끊겨버린 지금, 그때 사는 곳이라도 알아
둘 걸 하고 후회가 된다. 나는 가끔 쌀례 생각을 한다. 그럴 때면 늘
콧잔등이 시큰해지며 눈가에 눈물이 돈다. 그리운 사람. 보고 싶은 얼
굴. 어린 시절 항상 내 곁에 있었던 사람.


   이 작품은 소재를 따라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다. 바로 이 대목이
주제를 드러내는 곳이다. 어린 시절 자기를 살갑게 보살펴 준 쌀례를
향한 애틋한 정이 그리운 것이다.
   김재훈의 <걱정하지 마라>는 제목 자체가 소재이며 주제이다. 12월
중순쯤 시내 중심가를 걷고 있을 때 예년 같으면 크리스마스송이 흔하
게 들렸을 텐데 아주 조용하다. 그런데 쇼윈도에 빨간 색으로 “Don't
Worry, Be Happy”라는 글귀가 쓰인 것을 본다. 가수 맥페린이 불러 대히
트한 곡의 가사의 한 구절이다. “어디까지나 노래일 뿐 실제 세상살이는
걱정투성이라며 추위를 피해 얼른 지하철 안으로 들어갔다.”라고 했다.
퇴직 후 편하게 살려고 했는데, 원불교서울문인회 회장직을 맡아 이러
저러한 근심거리를 떠맡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사서 하는 걱
정이다. 돌아가는 팽이를 보면서 깨닫는다. “그래, 과감하게 생각을 놓
자.”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니 마음이 곧 편안해진다.”라고 했다.


   생각을 바꾸고 보니 세상 곳곳이 이 순간 보석처럼 빛나고 있음을
본다. 세상이 온통 은혜와 감사의 덩어리다. …중략…
   사람들은 미래에 대하여 필요 이상의 걱정을 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
닐까. 붓다는 삶이란 오직 지금 이 순간, 현재라는 ‘찰나’의 시간 속에서
만 존재한다고 가르쳤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는데 미래를 걱정하기에 여념이 없다.


   비유를 통해 여러 가지 좋은 말로 말하지만, 간단히 줄이면 “걱정하
지 마라.”이다. “평소 선을 통해 비우는 공부를 열심히 하다 보면 정력定
力이 쌓이고 옳게 생각하게 되고 행하는 일도 잘 된다는 말일 게다.”라
고 해석하며,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자신에게 하는 말 같지만 독자에게
도 넌지시 권고하는 말이 된다. 직설로 말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법이니까.
   오승휴의 <사랑의 자물쇠>는 러시아를 돌아본 일종의 기행문이다.
기행문은 소재와 주제가 거의 밀착되어 있는 것이 상례다. 그러나 이
작품은 러시아의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쓴 글이 아니다. 노보데비치라
는 여자수도원 주변의 경치만 둘러보고 썼다. “17세기 말 피터대제가
자기에게 반기를 든 여동생 소피아 공주를 이곳에 유폐시킨 이후 수도
원이 호수와 더불어 유명해졌다.”라고 한다. 호수의 작은 다리에 자물
쇠가 달려 있어 탄성을 지른다. 전해 오는 이야기로 여기서 만나 맹세
를 하고 자물쇠로 걸면 영원한 사랑이 맺어진다는 ‘사랑의 자물쇠’라는
것이다. 작자는 “빼어난 호수공원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싶지 않아” “호
수의 경관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었기에, 후손대대로 물려주고픈 욕심
에서 사랑의 자물쇠를 걸지 않았을까.” 하고 추측한다. 아마 이는 작자
의 아름다운 추측이다. 호숫가를 거닐며 “사랑의 자물쇠가 내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지.” 상상해 보는 것은 눈에 보이는 풍광만을 보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3.
   가끔 소재 자체만으로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수가 있다. 그러나 아무
리 소략한 주제라도 최소한의 담론이 필요하다. 그 담론의 무게가 어느
정도로 실려 있느냐 하는 것은 작자의 글쓰기 능력이다. 흔하게 보는
소재라도 작자의 글 쓰는 솜씨에 따라 보석과 같은 작품이 될 수 있다.
양자가 적절하게, 그리고 조화롭게 배합되어 있다면 명작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 제일 먼저 소재를 고르는 눈부터 갖추고 있어야 할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소재를 다듬는 솜씨일
것이다.

 

 

 

김상태  ------------------------------------------------------------------------
전북대·한양대·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역임.
한국비교문학회·한국현대소설학회 회장.
현, 이화여자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생활수필쓰기 지도.
저서-수필집 ≪참말과 거짓말 사이≫, ≪여자대학의 촌티 나는 교수≫,

≪먼 꿈 가까운 꿈≫, ≪선생님 우리 선생님≫, 콩트 ≪유리구슬≫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