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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4월호, 세상마주보기] 메아리 - 김월미

신아미디어 2012. 5. 8. 18:01

김월미님이 소통이 없이 홀로 얼어버린 산과 산, 그 사이에는 메아리가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네요.

소통은 어떻게 하면 될까요. 따뜻한 메아리 소리가 울려 퍼지기를 기대해봅니다.

 

 

메아리


   백색의 남극에 태양이 메아리처럼 환하게 울려 퍼지는 풍경은 포근했다.
   지난겨울 42인치 창을 통해 본 얼음 위의 펭귄은, 따뜻한 둥지가 아닌
차가운 곳에 발을 딛고 서서 알의 부화를 기다렸다.
   삶의 순차를 지키는 어미와 아비가 건네며 주고받는 둥근 알은 발 위
에서 조금만 이탈해버리면 순식간에 얼음덩이가 된다. 빙하가 만들어낸
환경은 미래를 준비할 겨를도 없이 눈물짓는 안타까운 순간도 있다.
   펭귄은 허들링을 하면서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서로 자리바
꿈하는 것이 유일무이한 생존방법이며 그렇게 함께 모여서 알을 보호하
여 새끼펭귄으로 탄생시키는 그것이 그들의 과거, 현재, 미래가 된다.
   천지가 온통 얼음인 남극의 펭귄은 추위 때문에 눈물을 흘리지만 혼
자가 아니었다. 힘없는 어린 새끼의 머리 위에서 큰 새의 공격이 시작되
면 펭귄의 모든 아비들이 꾸짖어서 쫓아낸다. 무리를 지어 소통하는 모
습 속에 환경의 척박함을 이겨내는 훈훈함이 담겨있어 보는 내내 마음
이 따뜻했다.
   남극과는 아주 멀리 떨어진 동아시아의 끝자락, 내가 있는 이곳은 풍
족한 환경이건만 홀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만의 생존법을 가지고 시간을 쪼개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적이 되어 서로를 경계하고 있었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강조하는 현대 속에서 차별화되어야 하고 앞서야 하며 마음속에는 외로
움을 못 견디어 자살이라는 극단의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싸우지 않고, 이기지 않고도, 일등이
아니어도 잘살아갈 수 있는데 모두 일등이어야 한다고 아우성이니 척박
한 남극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일까?
   취업이라는 난관을 뚫고 직장에 들어가고, 짝을 만나고, 자식을 낳으
며 애면글면 살아가는 맞벌이부부는 공간이 없는 지하철에서 부대끼며
출근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속해있는 사회의 한 귀퉁이에서 떨어져 나
갈까 전전긍긍하면서 고달픈 삶을 견디어 내고 있다. 그런 젊은 맞벌이
부부의 애쓰는 모습이 마치 남극의 펭귄처럼 발등 위에 올린 알을 차디
찬 얼음 위에 떨어뜨리지 않으려는 모습인 듯 안쓰러워 보였다.
   그러나 그들이 서 있는 곳은 펭귄처럼 소박하고 따뜻한 무리들 속이
아니었다. 거대한 빌딩 속의 젊은이들은 남극의 얼음보다 더 차가운 곳
에 홀로 서야만 하는 외로운 삶 속에 서 있었다.
   그들이 더불어 나눌 수 있는 정서는 점점 멀어지고, 개개인의 욕망은
더 나은 것을 추구하고 있다. 결국 넘치는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열어
버린 판도라 상자, 그 상자 속에는 있어야 할 희망은 날아가 버리고 무엇
을 쫓는지도 모르고 뛰기만 한다. 바쁘게 달리는 사람들은 자신의 옆은
돌아보려 하지 않고 앞만 바라보며 달린다.
   사람이 길에 쓰러져있어도, 노인이 길을 물어도, 여중생이 성추행을
당하고 있어도 일으켜 세우고, 말려야하는데 어느 누구도 나서지 않는
다. 여유가 없고, 자기의 길만 가야 하는 다급한 마음뿐이다. 핑계도 있
다. 내가 아니면 다음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이 할 것이고, 그 길 위에는
수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니 누군가가 할 것이라고 쉽게 말해버린다.
   무엇을 쫓아다니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나 역시, 그 길 위의 사람
이건만 길을 지나치면서 바쁘다는 핑계만 찾고 있다.
   바쁘게 다니는 사람들이 족쇄처럼 달고 다니는 휴대폰, 최신형이라고
자랑하며 진화하는 그 하찮은 물건이 몇 년 사이에 2G, 4G 어쩌고 하면
서 도깨비처럼 변신한다. 끝도 없이 변화하며, 급하게 움직이는 현실이
혼란스러운 우리 아이들.
   사회과학이라는 현대 문명을 안고 바쁘게 살아가는 많은 군중들 속에
서 어쩔 수 없이 혼자가 될 수밖에 없는 아이, 공유하지 못하는 외로움
속에서 펭귄처럼 어른들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의 사고 속에 따
뜻함이 얼마나 있을까. 이겨야 하고 일류가 되어야 한다는 가르침이 미
래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 걸까? 일등만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아이들의
꿈과 희망이 잠식蠶食되어 버릴까 두려워진다.
   소통이 없이 홀로 얼어버린 산과 산, 그 사이에는 메아리가 없다.
   그러나 너와 나, 어른과 아이, 우리 모두의 경계가 허물어진다면 남극
의 펭귄처럼 소박하게 소통하는 무리를 만들어 낼 수가 있지 않을까.
   그리하면 먼 산골짜기에서 따뜻한 메아리 소리가 울려 퍼지리라.


 

김월미 ---------------------------------------------------------------------
2005년 ≪수필과비평≫ 등단.
공저: ≪오음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