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남님의 수필을 소개합니다. 즐거운 감상되시기를....
군무群舞
천사의 날갯짓 같은 아름다운 가창오리 군무를 보고 있다. 나도 그들
과 하나 되어 밝아오는 아침을 함께하고 있다. 새아침의 해맞이를 하려
는 군중들이 바닷가 모래밭에 가득 차 있고,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오직 한곳으로 붉은 태양이 솟아오르기를 기다린다. 이 순간, 모두 간절
한 새해 소망들을 안고 가장 순수한 아침을 맞고 있다.
가창오리 떼는 둥글게 기다랗게 전진하다 꺾이고, 뭉쳤다 풀어지는
아름다운 곡선을 이룬다. 어느 순간 상승하는가 하면 아낌없이 하강하
는 저 유연함을 보라…. 숨을 죽이고 나도 따라 날고 있다. 수평선에는
여명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이제 막 떠오르는 엷은 햇살을 받아 신비로
운 풍경이 만들어진다. 한 폭의 추상화를 보는 듯 황홀하다. 저들의 군무
를 한 순간도 놓칠 수가 없다. 가슴 가득 채우고 싶다. 일 년 내내 이
순간의 환희를 맛보기 위해서다. 바닷가에서 해맞이를 하는 군중들, 그
들도 지금 마음속으로 군무를 추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해맞이 행사가 심드렁해졌다. 추우면 추울수록 더
새해의 기운이 충만해지고 신이 났던 연례행사였다. 아직도 마음은 젊
은이들처럼 더 높은 곳으로, 더 바다 가까이에서 정면으로 새해 첫 태양
을 가슴 가득 안고 싶다. 보는 것도 모자라 영상으로 담아 오고 싶기도
하다. 가슴 설레며 추운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군중들 사이에 동참을 해
본다. 어느 순간 붉은 해가 떠오를 기미가 보이자 함성이 터져 나오고
한마음으로 기도하는 나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기도의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다. 꼭 해야 할 일, 하고 싶은 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참으
로 황당하고 무력한 실체를 본다. 나도 모르게 새어나오는 기도는 우리
가족 건강한 한 해 되기를 빌고 있다. 이토록 새날에 대한 소망이 없었단
말인가. 어제와 다른 새날을 아무런 감각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나 자신
이 썰렁하기도 하였다.
날아가는 가창오리 떼를 보면 우리가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질서, 규칙
이나 사랑법이 있지 싶다. 그러지 않고 저토록 일사분란하게 날아갈 수
가 있을까. 저 많은 무리 중에는 모자라는 놈도, 같이 날기엔 힘이 부치
는 낙오자도 있을 터, 어찌하여 한 마리의 낙오도 없단 말인가.
그들은 어디서 저 아름다운 소통법을 배웠을까? 바람에게 배웠을까.
구름에게 배웠을까. 우주의 섭리대로 흐르는 것일까. 어쩜 우리가 그토
록 소망하는 소통의 법칙을 그들은 실천하고 있지 싶다. 가창오리 떼의
화려한 군무를 하기까지는 젊은 암컷과 수컷들이 앞뒤를 호위하고, 어
린새끼와 늙은 무리들은 가운데로 모아서 이동하는데 무리의 선두를 이
끄는 그룹이 있다고 한다. 알면 알수록 자연은 오묘하고 신비로울 뿐이
다. 동물의 왕국에서 코끼리가족을 본 적이 있다. 새끼들과 약한 무리를
에워싸고 적으로부터 보호하면서 먹이를 찾아 먼 길을 이동하는 모습을
보았다. 강자가 약자를 보호하는 것은 생명이 있는 존재들의 위대한 본
능인지 모를 일이다.
군무는 웅장한 오케스트라를 연상케 한다. 나는 그 하모니에 몰입되
고 있다. 그들은 지휘자에 따라 통일되고 단결된 교향곡을 펼친다. 한
음의 오차도 없이 호흡을 맞출 때 예술이 된다. 내 안에도 군무의 열정이
남아 있다. 운동회날의 부채춤 율동은 잊을 수가 없다. 오래된 추억 한
자락이 눈앞에 오버랩된다. 떨리는 가슴으로 군무를 추었을 것이다. 크
고 작은 군무 속에서 살아 왔음을 돌아본다. 우리의 삶도 군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열광하는 축구응원단을 눈앞에 그려본다. 2002년 월드컵을
치르면서 대한민국은 전세계에 위상을 높였다. 응원의 힘은 경기를 하
는 선수들이나 관중들이 하나 되어 대단한 힘을 보여주었다. 기적의 군
무를 세계 앞에 연출한 것이다.
고령화 시대에 즈음하여, 나라 곳곳에 소통이 필요함에 잠시 멍해진
다. 가창오리 떼의 군무처럼 살아가자고, 질서는 아름답다는 말을 새삼
깨닫는다.
물결 같은 곡선, 하늘거리는 저 자유로움, 유연한 군무가 있을 뿐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군무를 추어야 하는, 군무 속의 우리는 하나가 된다.
김덕남 ----------------------------------------------------------------------
2005년 ≪에세이문학≫ 등단.
수필집: ≪강물처럼 흐르고 싶다≫, ≪틈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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