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 감사와 사랑의 마음을 전하셨는지요.. 류인석님의 수필도 같이 감상해보세요.
하늘 보고 오늘을 본다
오늘도 무심히 하늘을 올려다본다. 먼 산 능선 너머로 새털구름 한
조각 가볍게 흐른다. 넓고 높음이 한없으니 어느 지혜, 어느 도량으로
헤아리랴. 어제까지 뿌옇던 황사黃砂안개도 말끔하게 걷혔다. 하늘빛은
꾸밈도 없고, 가꿈도 없다. 언제나 곧이곧대로 그 빛이다. 그래서 사람들
은 변함없는 하늘의 마음을 천심天心이라 일렀고, 하늘의 이치를 천리天
理라 믿으며, 천도天道 순리順理대로 살기를 근본으로 삼아왔다.
하늘과 땅, 사람의 존재질서가 서로 다를 수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을
게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선조 때 문신文臣 양사언
楊士彦(1517~1584)의 시조는 교훈이다. 윤동주 시인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자.”라고 노래했다.
어렸을 때 할머니는 “자기 얼굴로 떨어지니 하늘보고 침 뱉지 말라.”
라고 하셨다. 어려서는 할머니 말씀을 흘려들었다. 우리는 어려울 때마
다 하느님을 찾는다. 천심에 의지하려는 인간 심리다. 세상이 아무리
넓고 높다 한들 하늘 아래 존재하고, 인간의 지혜가 아무리 많다 한들
천도 순리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자비를 중심이념으로 세운 석가도, 사랑을 선교이념으로 세운 예수도
하늘 아래 존재다. 하늘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신앙은 없다. 모든 신앙의
중심은 하늘이다. 지배와 추종도 없고, 허세와 위선도 없고, 과거와 미래
도 없다. 오로지 영원한 현실의 섭리일 뿐이다. 우주의 모든 생명이 하늘
아래에 있고, 만물의 존재가 하늘 아래 있으니 삶이 있는 한 우리의 운명
또한 하늘을 초월할 수 없는 것 아닌가.
세월을 바꾸는 사계절의 순리도, 문명을 지배하는 인간 지혜도 하늘
아래 존재할 뿐이다. 하늘은 정지된 듯하지만, 잠시도 쉼 없이 움직임의
연속이다.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것도, 세월이 가고 오는 것도, 또한 인간
이 죽고 태어남도 모두 그렇다. 촌각의 정지도 없이 모든 존재의 명멸과
윤회가 쉼 없이 반복되게 하는 게 하늘의 이치다.
“순간은 최후”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은 정곡을 찌른다. 정직한 하늘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 ‘곧이곧대로’의 삶을 찾아야 한다. ‘참되고 참됨의
세상’은 곧이곧대로 하늘의 뜻 지켜 살 때만이 가능하다. 거짓의 어미母
는 거짓의 새끼를 낳게 마련이다. 헛됨의 악순환이 반복될 때 희망과
번영은 없다.
모든 생명은 하늘의 섭리 속에 존재한다. 들녘에 피어난 꽃 한 송이도,
시궁창에 서식하는 미물 한 마리에게도 거짓 없이 살라 하는 하늘의 진
실이 있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임을 자처하는 인간 삶의 이치야 말하여
무엇하랴. 아무리 남루해도, 아무리 화려해도 삶은 하나의 우주질서 속
에 형성되어 존재하는 것이다.
우주질서는 곧 하늘의 질서다. 억겁의 세월이 지나도 해와 달은 변함
없이 뜨고 지며, 수많은 별들도 어김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늘의
질서는 어떤 경우라도 ‘곧이곧대로’ 정직하다. 정직한 삶의 정신으로 눈
이 떠 있는 한, 캄캄한 밤하늘도 어두울 수만은 없다. ‘곧이곧대로’의 섭
리는 암흑을 밝히는 정직한 등불이 되기 때문이다.
‘곧이곧대로’는 정직함이다. 융통성 없는 고지식한 사람으로 몰아붙이
는 것은 위선자들의 모순된 논리다. 바른 숨결을 거역하는 천리의 역행
이다. 하늘에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바른 숨결이 있다. 억겁을 쌓아도
변함없는 영원한 숨결이다. 하늘의 바른 숨결은 천리의 현신인 하느님
의 섭리다.
그래서 하느님은 태곳적부터 동서고금을 통해 생명신앙으로 전승되
고 있다. 조물주의 섭리마저 침범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도 누구나 하늘
을 믿지 않는 사람은 없다. 비가 내려도 하늘을 쳐다보고, 가물어도 하늘
을 쳐다보고, 천둥 번개가 일어도 하늘을 쳐다본다. 눈물이 나도록 감동
이 솟구쳐도 하늘을 쳐다보고 사랑하는 사람이 그리워도 하늘을 쳐다본
다. 하늘은 애환의 감성까지도 끌어안고, 윤회의 섭리까지도 포용한다.
때문에 생명을 가진 것들 모두가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산다. 하찮
은 풀뿌리 하나도 새순을 낼 때는 하늘을 향하고, 나뭇가지 하나도 성장
의 수관을 세울 때는 반드시 하늘을 향한다. 사람은 물론, 산짐승들까지
도 우짖을 때는 머리를 들어 하늘을 향한다. 갓 깨어난 병아리들까지도
물 한 모금 마시고 하늘 한 번씩 쳐다보는 생태의 관성은 무엇 때문일까.
4월의 하늘을 다시 바라본다. 우리는 흔히 죽음을 비유해서도 하늘로
갔다고 한다. 영혼이 구천에서 떠돈다고도 한다. 모든 삶과 죽음이 하늘
에 있고, 존재와 부재의 섭리가 하늘에 있고, 과거와 현재가 하늘에 있는
것이다. 생명의 고향은 하늘이다. 그러나 과학적인 증거논리는 없다. 그
래서 신성神聖시하는 하늘의 위엄이 더욱 높아졌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하늘에다 겁 없이 인공위성도 쏘아대고, 핵폭탄도
쏘아대고, 또 온갖 공해물질도 쏟아낸다. “하늘에 대고 침 뱉지 말라.”
하시던 할머니 말씀이 연상된다. 사람들이 마구 쏘아대는 인공위성이나
핵폭탄들이 나중엔 어디로 떨어질까. 여름이면 겨울처럼 살려 하고, 겨
울이면 여름처럼 살려 하는 간교한 인간들의 이기주의에 오염된 하늘의
신음 소리가 들린다. 때로는 태풍도 되고, 벼락도 되고, 폭설도 되고,
폭우도 되어 곳곳에서 재앙으로 증거한다. 현대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
는 신종질병들이 발생하고 있다. 우주정복을 소리치는 게 결코 현대문
명의 승리만은 아니다.
우리는 툭하면 “하느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를 외쳐대고 있지
만, 위선으로 가득 찬 인간들의 사악함을 하느님은 과연 공감하고 보호
해줄까. 하늘은 무한한 존재의 생명과 영혼을 모두 끌어안고 있다. 어둠
이 내려도, 밝음이 찾아와도 하늘의 섭리현상은 변함이 없다. 밤에는
달과 별을 높이 달고, 낮에는 해를 높이 달아 세상의 존재들을 빛과 어둠
으로 보호하고 있다.
나는 다시 또 하늘을 보고 오늘을 본다. 혼돈과 갈등 속에 불투명한
시국이지만, 4월의 하늘빛은 오늘도 그 빛이다.
류인석 ----------------------------------------------------------------------
1991년 ≪문예운동≫ 등단,
수필집: ≪그 하나를 찾는 방황≫ 9권.
칼럼집: ≪이제는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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