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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4월호, 세상마주보기] 어머니의 수의 - 곽호자

신아미디어 2012. 5. 7. 13:06

어머니, 어머니.... 한없이 그립고 안타까운 이름입니다. 그 이름에 수의라는 글자가 더해지니 더욱 애달픕니다.

 

 

어머니의 수의


   올해는 윤년이다. 마음 같아서는 많이도 말고 열 살쯤은 덜어내도 좋
으련만 세월은 사정없이 흐를 뿐이다. 윤년은 어김없이 빛의 속도처럼
빨리 와 경이롭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다. 달력을 보니 양력 오월 이십
일에 윤달이 끝난다. 벌써 삼월에 접어들었다. 윤달에는 이장移葬하는
일이나 수의 만드는 일을 서두른다. 손損이 없으니 탈도 없고 간섭할
귀신이 없어 모든 속습으로부터 해방되는 달이라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준비할 것이 여러 가지로 많다. 어릴 때 과제물 챙기는
것에서부터, 자식이 크면 학자금을 준비해야 하고, 혼기가 차면 시집장
가 보내는 일이 기다린다. 그리고 노후 막바지에 와서는 그 좋은 옷들을
마다하고 삼베옷을 마련하기에 급급하다. 싫든 좋든 마지막 입고 가야
할 옷이어서 그렇다지만 씁쓸하다. 수의壽衣와 수의囚衣, 관 속에 갇히는
것이나 감방에 갇히는 것이나 그게 그거 같다는 느낌이 불시에 드는 것
은 무슨 조화일까.
   친정어머니께서 살아계실 때다. 어느 날 선반에 있는 함函을 내려놓았
다. 증조부님께 물려받은 한지로 만든 함이다. 손때와 세월의 때가 잔뜩
절어 있는 함은 종이 본래의 색은 사라지고 짙은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크고 작은 옛날 소품이 더러 있어서 건성으로 보았던지라 소중한 것이
들어 있을 것이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집 마련할
동안 친정붙이로 조무래기들을 거느리고 어머니의 일을 거들고 있을 때
였다. 늘 바빴다. 그러나 그날은 쉴 틈이 생겼다. 어머니께서 함을 보여
주기 위해 특별히 시간을 낸 것이었음을 뒤에야 알았다.
   “엄마, 이것 뭐꼬?”
   쉰일곱의 어머니는 천천히 창호지에 싸여 있는 것들을 내놓으셨다.
함 속에서 꺼낸 것은 내가 처음 보는 이상한 옷이었다. 그 옷은 바로
어머니의 수의였던 것이다. 연회색과 연분홍, 미색 등 자투리 비단을
이어서 만든 조각 수의였다. 비록 자투리로 만들어졌지만 부드러운 질
감과 조화를 이루어 묘한 신비감마저 들었다. 바느질 한 땀 한 땀을 허투
루 볼 수 없었다. 손수 수의를 만들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반평생
홀로 자식을 위해 살아오신 날들을 회상하면서 손발톱 주머니를 만들고,
관 속의 이불을 만들었을 것이 아닌가. 어머니의 삶과 죽음에 대한 혼란
이 엉켜왔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알게 되었지만 부모님의 수의와 치아齒牙는
자식 몫이라고 했다. 나에게 짐 지우기 싫어서 그리 일찍이 준비하셨을
까? 몰라서 불효하고 알면서도 불효하지만 부모의 자식 사랑만큼은 한
량없이 깊고 넓기만 한 것을 깨닫기에는 너무 부족함이 많은 딸이었다.
   어머니는 일흔넷을 일기로 내 곁을 홀연히 떠나시고 말았다. 팔 년
동안 병고에 시달리시다가 버텨내기 힘들어서 도망치듯 먼 곳으로 가셨
다. 어머니의 몸을 조각 수의로 입혀드렸다. 고운 비단결이 육신의 고단
함을 덮기라도 하듯 차분해 보였다. 비로소 편안해진 몸으로 영면하신
것이었다. 삼일장을 끝내고 들어선 어머니의 방에는 짙은 향이 타오르
고 있었다. 삶은 지루하도록 길지만 저세상으로 보내드리기란 삼 일이
면 족하다니. 어머니의 한평생을 산 자의 이기심으로 서두르는 절차가
야속했다. 하나, 그 와중에 가장 바쁜 사람은 바로 나였다.
   윤년. 사 년 만의 재회다. 돌고 돌아오는 이치가 인간인들 다르지 않음
을 깨닫게 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고 새로운 탄생이라고들 한다. 탄생의
껍질을 벗기기 위해 윤회하는 삶이 기다리는 것일까. 어머니가 가신 길
을 내가 가고, 내 자식들이 대를 이어 다시 뒤를 따르고…….
   텅 빈 함을 열어 본다. 어머니의 혼이 배어 있다. 여기에 나의 혼이
같이하면 외롭지는 않을 것도 같다. 펑펑 울고 싶을 때, 시름을 달래고
싶었을 때, 기쁨을 나누고 싶었을 때의 어머니를 이제는 훤히 알고도
남는 것을. 효도를 받고 싶어서, 오래 살고 싶어서, 아니면 손수 만드신
작품을 보이고 싶어서 나에게 내놓은 수의가 아니었을까. 모두가 어머
니의 소망이었을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내가 딸들에게 말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망설이듯이 어머니도 나와 함께 나누고 싶은 말씀이 얼마
나 많으셨을까. ‘자식 길러 봐야 내 속 알지.’ ‘내 손이 내 딸이다.’ 십팔
번 그 말씀. 그러나 나는 가까우면서도 멀리 있는 딸이었을 뿐이다.
   다시 돌아온 윤년. 어머니의 수의를 넣어 두었던 함을 볕에 내놓고
거풍을 한다. 내가 입을 수의가 들어갈 차례다. 선대로 거쳐 온 함이지만
아직까지 별 탈이 없다. 어머니의 생은 짧건만 함의 수명은 왜 이다지
길기만 한지. 케케묵은 냄새인지, 세월 냄새인지, 이마저 어머니를 더욱
그립게 한다.

 

 


곽호자  -------------------------------------------------------------------------
2011년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