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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3월호, 세상마주보기] 남향집 - 윤정혁

신아미디어 2012. 5. 3. 15:03

수필과 비평』 3월호에 수록되었으며, 4월호에 이달의 문제작으로 선정하여 작품론으로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번 소개된

'윤정혁'님의 수필 전문을 올립니다. 즐거운 감상되세요.

 

 

남향집


  이 선생, 내가 언제 아파트 삼 층에 산다는 말을 한 적이 있던가요?
그리로 이사한 게 엊그제 같은데 또 이사를 했습니다. 바로 코앞으로
옮긴 거니까 뭐 이사랄 것도 없지요.
   요즘 이사라는 게 그렇더군요. 이삿짐센터라는 데서 대여섯 명이 우
루루 몰려와서는 여자 한 명이 주방을 점령하고, 나머지 사내들이 거실
과 방 하나씩을 접수하더니 그야말로 일사불란하게 시근뚝딱 한칼에 해
치우더라구요. 살림이라야 허섭스레기밖에 없으니 짜드라 묶고 싸고 할
것도 없었지요.
   그 포장이사라는 게 그래요. 큰 놈 작은 놈 할 것 없이 모조리 상자에
집어넣거나 휘감아 싸는지라 궁상스런 살림붙이들이 드러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전에 삼층으로 이사 할 때는 좀 남세스러웠거든요.
   오후 두 시가 넘어서 시작한 일을 여섯 시가 조금 넘자 손을 탁탁 털며
삯을 챙기고 떠나는 겁니다.
   “힘으로 하면 이 일 못해요. 당장 드러누워요. 요령으로 하는 거지요.
이틀만 쉬어 봐요 다시 못해요. 죽자꾸나 쉬지 않고 해야 돼요.”
   사는 일이 만만찮은 거라는 소리겠지요. 예전에 우리가 그랬잖아요.
이사 후에는 영락없이 초죽음이 돼서 드러눕잖았습니까?
   왜 이사 갔냐구요, 아파트 삼 층으로 이사 가기 전에 내가 살던 집이
단독가옥이었어요. 직장 다닐 때 마누라가 바득바득 우겨서 사 놓은 집
이었지요. 그간 남이 살던 것을 나이 들어 직장에서 쫓겨나자 아쉬운
대로 손을 보고 내 집이라고 찾아든 겁니다. 마당이라야 손바닥만 한데
다 코앞에 삼층집이 바투 서 있어서 하루 내 햇볕 한 자락 구경할 수
없는 집이었습니다.
   전등을 켜지 않으면 잡서 한 줄 읽을 재간이 없었지요. 까짓, 책이야
차치하더라도 사람 사는 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수형자가 따로 없더
라구요. 그 집이, 늘 갇혀 있다시피 했던 아내에게 우울증을 싹 틔우게
하지 않았을까, 나름대로의 짐작입니다. 햇볕이 세라토닌이라는 항우울
호르몬을 생성한다잖아요. 그 집은, 볕이 그냥 밝고 따뜻하다는 인식을
넘어 인간에게 절대적 에너지원이라는 생명적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함
을 절감케 해 주었어요.
   그즈음의 아내는 볕이 드는 베란다에 대여섯 개의 화분을 놓을 수 있
는 아파트에 살기를 바랐습니다. 그것들이 햇볕을 받아 싱싱한 잎을 키
우고 꽃을 피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원이 없겠다는 한 줌도 안 되는
꿈을 가지고 있었지요. 미안하더라구요.
   살아오면서 남에게 구차한 소리 한번 한 적 없었습니다. 주변머리가
담배씨만큼도 없어서였지요. 서울 사는 큰딸에게서 얼마간의 돈을 빌렸
습니다. 아내가 아파트에 살도록 해 주고 싶었지요. 그래서 얻은 게 전에
살던 삼층입니다.
   음습하고 꽉 막힌 집에 비하면 그곳은 가히 천국이었습니다. 툭 터져
밖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베란다의 창도 창이려니와 오전 내 볕이 드는
것도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더라구요. 문득 햇볕은 사람의 영혼까지도
따뜻하게 적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표정이 밝아진 아내가 부지런히
화초들을 사다 나를 때, 나는 소파에 번듯이 누워 책을 얼굴에 덮은 채
오수를 즐기기도 했지요.
   그 집을 살 때, 그것이 동향임을 몰랐던 것은 아닙니다. 알기는 했는데
전에 살던 집에 비해 가히 천양지차였던지라 감지덕지 코를 처박은 거
지요. 새집냄새도 가시어지고 그런대로 살 만하다 했는데 동네 주변이
술렁거리더니 삼십 층이 넘는 고층아파트가 우후죽순으로 들어서기 시
작한 겁니다.
   그중 하나가 내 집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올라가더니 급기야는 툭 터
졌던 시야를 가로막고는 아침나절 열 시 이전의 햇볕을 잡아먹어버린
겁니다. 막혀버린 시야가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볕 드는 시간이 노루꼬리마냥 짧아진 일 또한 여간 기가 막히는 게 아니
었습니다.
   아내와 나는 앞을 가로막은 아파트의 시공업자를 비난하고, 당국이
건축허가를 남발하고 있다고 투덜거렸습니다. 새삼스럽게, 광합성을 제
대로 못해 화초도 기를 못 펴는 동향집은 돼 먹지 않았다고 툴툴댔습니
다. 창을 열면 무시로 뛰어드는 아이들의 재잘거림도 성가셨습니다. 온
종일 햇볕을 받아 하얗게 눈부신 건너편 101동의 남향집에 사는 사람들
이 부러웠어요. 나는 다시 아내의 우울증이 음울한 기운으로 집안 구석
구석을 채우지는 않을까 걱정되었습니다.
   아내는 또 다시 이사를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일이 되려고 전에
살던 헌집이 좋은 가격에 팔렸어요. 남향에다 고층이 아니면 안 된다.
이게 이사지침이었지요. 그래서 101동 19층으로 옮긴 겁니다.
   이사 첫날밤은 낯선 데다가 설레기까지 해서 잠을 설쳤습니다. 그런
데도 꼭두새벽에 눈이 떠지는 겁니다. 아내가 베란다의 롤 스크린을 드
르륵 올리는데 비 갠 아침의 앞산이 구름 걸린 이마를 코앞에 들이미는
거예요. 이사 전 서너 차례나 와 본 적이 있는데 어찌 느낌이 그리 다를
수 있는지요. 하루 내 거실 깊숙이 들이붓는 햇볕은 또 어떻고요, 생기가
흘러넘쳐 대뜸 화초의 색깔이 달라 보이는 겁니다. 남으로 창을 내겠다
던 시인이 생각났습니다.
   장모께서는 남향집을 얻으려면 삼대의 적선이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
다. 나의 적선은 기억되는 바가 없으니 이는 분명 나의 아버지와 조상님
들 덕이라 여겼지요.
   그런데 일이 우스꽝스럽게 꼬이는 것 같습니다. 허 참, 내가 이사하자
마자 맞은편에 사십오 층짜리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선다지 뭡니까.
이런 낭패가 어디 있습니까? 내가 남향집을 갖게 된 것이 조상 덕이라면,
이제 고층아파트가 들어서는 일은 아마도 내 적선의 부재 탓이겠지요.
땅 위에 방 한 칸이 부러웠던 적이 있었음을 잊은 과욕에 대한 경고일지
도 모르겠습니다.
   이 선생, 집들이 같은 걸 할 형편은 아니고요, 언제 시간 나면 놀러
한번 오시지요. 소주나 한잔 하십시다.

 


 

윤정혁  -----------------------------------------------------------------------
2008년 ≪에세이문학≫ 천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