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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4월호, 다시 또 봄의 노래를] 다시 또 봄의 노래를 - 이선화

신아미디어 2012. 4. 27. 16:57

봄, 봄, 봄.... 봄은 언제나 가슴을 설레이게 만드는 단어입니다. 다시 또 봄의 노래를 느껴보세요.

 

 

다시 또 봄의 노래를


   계절이 오고 가는 길목에서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오늘도 서성입니
다. 아니 나만 유독 그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변함없이
상큼하고 발랄한 모습으로 꿈과 희망을 잔뜩 싣고 찾아와 내 앞에 풀어
놓곤 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당신을 맞이할 생각으로 나의 가슴은
뛰고 설레기까지 합니다. 그러면서도 다가오는 당신이 나는 왠지 두렵
습니다.
   나의 인생에 당신이 머물고 간 시간이 너무 짧은 순간이기 때문일까
요? 꽃봉오리 같은 시절엔 멀리서 들려오는 당신의 달콤한 속삭임과 은
은한 노랫소리에 맘껏 취해도 보았고, 당신이 만들어 주는 천연의 배경
속에서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울 수 있었습니다. 때때로 계절이 알려
주는 서릿발 같은 냉엄한 가르침은 우리네 인간사와 별반 다르지 않았
습니다. 인간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인생의 바다에서 수많은 시행
착오에 부대끼기도 했습니다. 사랑도 하고 미워도 하면서 삶이라는 굴
레에 굳은살이 생길 즈음, 속절없는 날들 속에 나의 젊음은 조금씩 빛을
잃고 퇴색되어 갔습니다.
   사나운 풍랑과 땡볕을 통과한 자만이 얻어 내는 서늘하고 엄중한 결
실의 때를 무던히도 참고 기다렸습니다. 혹독한 눈보라와 추위를 견딜
수 있었던 것도 저 산모퉁이를 돌아 신비로운 아지랑이를 대동하고 곧
찾아 줄 당신의 따뜻한 품을 오매불망 사모한 까닭이지요.
   사방 천지에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자태를 뽐내고 이름 모를 새들
이 우짖던 그날, 인생은 그런 대로 살 만한 것이라고 등 떠밀려 한 남자
의 아내가 된 그날도, 어설픈 몸가짐으로 두 아가의 어미가 된 그날들도,
당신이 내 곁에 오래 머물러 향기로운 꽃밭에서 영원히 함께할 줄 알았
습니다. 당신이 부산하게 떠날 채비를 하는 줄도 모르고 내 인생의 봄날
을 태평하게 꿈꾸었지요.
   내 인생의 봄은 언제였나요? 마른 가지에 움이 트고 새순이 파릇파릇
돋아나서 묘목이 거목이 되는 희망의 정점이 있기는 했나요? 온 우주만
물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던 무지개처럼 찬란한 그 봄이 분명
나에게도 있었을 터인데…….
   허리병이 도져 침을 맞으러 갔었습니다. 젊은 한의사는 나의 속옷을
거침없이 쓰윽 내리더니 여기저기 꾹꾹 눌러보고는 침을 놓기 시작하
더군요. 그리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습니다. “몸이 나이가 들었다고 신
호를 보내는 것이지요.”라고요. 나이 든 여자는 부끄러움도 없는 줄 아
는 모양입니다. 내 기분이 얼마나 씁쓸했던지. 퇴락을 모르는 당신, 늘
생기발랄한 당신이, 어찌 상실의 아픔, 나이 듦의 서글픔을 짐작이나
하겠습니까?
   거리에 나가 보았습니다. 화들짝 피어난 싱그러운 여인들의 옷차림에
서 이미 당신이 왔음을 말해 주었지요. 나의 날개가 되어 주던 젊은 날의
즐겨 입었던 옷가지들이 머릿속에서 아른거렸습니다. 백화점 매장에 걸
려있는 옷을 만져 보았죠. 점원은 당신과는 상관없다는 듯 무표정한 얼
굴로 일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입성도 나이 따라 입어야 무리가 없다
는 걸 알면서도 자칫 위험한 욕심을 부려보는 것이 당신을 만날 수 있는
여성들에게 주어진 특권이기도 하답니다.
   세상의 쾌락도 부질없던 허영도 많이 잠재웠다고 생각했는데 이 무슨
또 반란이란 말입니까. 연세 높으신 어르신들의 알록달록한 원색의 옷
차림을 자주 봅니다. 몇 겹으로 늘어뜨린 목걸이며 장신구가 과하다 싶
지만 자신을 표현하는 그 노력과 열정이 있는 한 그 분들은 인생의 봄에
머물러 계십니다. 번잡하고 야하면 품위가 떨어지지만 지나치게 검소하
면 그 누추함이 안쓰럽습니다.
   나는 지금 어디쯤에 와 있는 것일까요? 인생의 가을, 아니 겨울에 초입
에 들어섰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난 언제나 당신을 기다리고 만
날 것입니다.
   이 봄에 다시 또 부를 나의 노래는 오래도록 내 곁에 머물러 있을 생명
력 넘치는 당신의 노래입니다.

 

 

이선화(파인) ------------------------------------------------------------------
2007년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