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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4월호, 다시 또 봄의 노래를] 고려여인 평강공주 - 강순희

신아미디어 2012. 4. 26. 18:17

평강공주를 찾습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찾으셨나요 ??  멀리 보지 마세요, 바로 옆에 있을 것이니까요..

 

 

고려여인 평강공주


   ≪온달전≫을 읽었다. 천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일목요연하게
전개되는 글의 짜임이 돋보인다. 내용 전개가 빠르기도 하지만 과감하
게 본론으로 진입해서 이야기를 끌고 간다. 여백의 묘도 갖고 있는 작품
이다.
   저자인 뇌천 김부식은 고려 중기의 학자이고 정치가이면서 문인이다.
≪삼국사기≫의 저자이기도 하다. ≪삼국사기≫는 고려 중기의 역사의
식과 문화 수준을 아는 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우리나라에
현존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역사책이다. 이런 훌륭한 책을 편찬할 만큼
역량 넘치는 작가이니 한낱 재미로 읽힐지도 모를 ≪온달전≫이지만 많
은 세월이 흘렀어도 문체의 간결함이나 주제를 이끌고 가는 강한 힘이
돋보일 뿐 아니라 장엄하기까지 하다.
   흔히 시를 논할 때도 주제가 형상화되는 작품이 오랫동안 사랑받으며
명시로 남아 독자의 사유를 일깨운다. ≪온달전≫도 동화책에서부터 시
작하여 고전소설로 독자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하
겠다.
   이 작품에서 가장 감명 깊은 부분이라면 주저하지 않고 평강공주의
절개를 꼽겠다. 어릴 때, 울보여서 “사대부의 아내는 되지 못하겠으니
바보온달에게나 시집보내야겠다.”라는 평강왕의 놀림을 받는다. 열여
섯 살에 이르러 “온달에게 시집가겠다.”라고 하는 평강공주. 이 대목에
서 작가의 의중은 무엇이었을까? 귀하디귀한 한 나라의 공주이면서도
찌들게 가난하고 눈먼 시모와 바보온달을 신랑으로 설정한 대목이 안
타깝기까지 하다. 그 시대상을 염두에 둘 때 과히 파격적이다. 왕실의
금지옥엽인데.
   자신이 선택한 길을 걸으면 어떤 고난과 어려움이 닥쳐도 헤쳐나갈
힘이 생긴다. 한 집안을 일으키고 남편을 성공시키는 훌륭한 여성상의
부각과 삶을 과단성 있게 개척하는 주체적인 여성상을 강조한 평강공주
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더불어 삶의 보람 뒤에 행복이 깃드는 자명한
이치를 일깨우는 교훈성 또한 짙다.
   또한 평강공주는 가난하고 빈천한 신분에 인물됨이 모자라는 온달을
사랑으로 감싸며 인격을 존중해 준다. 그리하여 남자의 기상을 살리게
한다. 수백 년 전 고려시대이지만 저자는 비장애인의 정성과 가르침에
의해 바보 온달이 용감한 고려의 장수로 변신하는 모습을 그려냈다. 온
달이 유명한 장수가 되기까지 내조의 힘을 발휘한 평강공주를 다시금
그려 본다.
   우리나라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되긴 했지만, 현 시대에 견주어
보면 장애인 복지와 인권 존중의 표본이라고 생각한다. 계급사회 속에
서 서민이고 바보인 온달을 차별하지 않은 휴머니즘이 담겨 있다. 이제
야 제정한 장애인차별금지법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온달전≫은 문학으로서의 작품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열전에서보다 민중의식이 한층 두드러진다. 저자는 눈먼 어머니를 모시
고 나무껍질, 풀뿌리로 연명하는 바보 온달을 왕의 딸인 평강공주와 부
부로 맺게 함으로써 계층 간의 간격을 좁히려는 근대의식을 도모하려
했을 것으로 보인다.
   부드러운 붓의 힘, 그 위력을 시험한 것이다. 그런 근대적 계급의식의
발아發芽는 장차 준동하게 될 민중의식의 발효에 적지 않게 기여했으리
라는 상상을 하게 한다. 지금도 상류층은 비슷한 계층끼리의 결혼이 항
다반사인데 현시대를 앞질러 들여다본 것 같아서 작가의 혜안이 감탄스
럽다.
   역사란 현대적 관점에서 과거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여
성의 힘과 아내의 역할이 가정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널리 알릴 목적으로 ≪온달전≫을 쓰지 않았을까. 현대를 살아가는 여
성들도 평강공주처럼 개척정신과 절개를 지키면서 여성상위시대를 구
현해야 한다고 본다. 주어진 환경에 안주하는 나에게 작품이 주는 암시
적 훈계가 만만찮다.
   수백 년 전의 대제국 고려는 그 본바탕에 여성의 힘이 있었기에 번성
할 수 있었으리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된다. 평강공주를 내세워 신념
과 신의를 굽히지 않고 지키는 굳건한 마음을 표현한 이 작품이야말로
본보기다. ‘과거의 행적은 미래의 나침반’이라는 글귀를 떠올려 본다.
   요사이 흔히 접하는 ‘배우자 구함’란에 ‘평강공주를 찾습니다.’라는
광고를 본 적이 있다. 결혼을 앞둔 청년들이 현대판 평강공주를 일등
배우자감으로 선택하고 싶음이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문화가 바뀌
어도 한 집안의 안사람, 즉 아내의 역할은 중요하다.
   ≪온달전≫은 온달의 일대기를 다룬 내용이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여
인이 그 지아비를 위해 희생하며 헌신한 점이 단연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한 가정과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여성들의 정신과 발걸음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싶다. 얼마 전, 내 아들과 결혼해준 눈이
유독 반짝이는 며느리에게 넌지시 건네야겠다.

 

 

강순희  --------------------------------------------------------------------
2008년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