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에는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을까요...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벗꽃......
4월에는
1. 꽃들의 축제
4월입니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그대가 돌아오면 빗속에서도 꽃이 피
고 집니다. 월초에는 목련과 개나리와 진달래가 절정을 이루지만, 정작
수목樹木류보다 야생화들이 한 발 앞서 꽃을 피우곤 하지요. 성질이 급
한 복수초만 얼음이 채 녹기도 전에 피더이다. 눈이 솔아서 쇠눈이 된
그 사이로 노란 얼굴을 내밀고 핀 복수초를 보고 있노라면 생명의 강인
함이 나를 부끄럽게 합니다. 경칩이 되도록 옷을 몇 겹씩 껴입고도 집안
에서만 지냈기 때문이죠. 복수초가 이울 무렵이면 길가나 묵정지에선
민들레와 꽃다지가 앙증맞은 모습으로 뒤를 잇습니다.
초봄에 꽃들은 하나같이 땅에 다붙어 핍니다. 바람과 추위로부터 제
몸을 보호하기 위해 키를 낮추는 것입니다. 식물이건 동물이건 생명 있
는 것들은 누가 일러주지 않았어도 적재적소에 맞추어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할 줄을 압니다. 실로 경이로운 일이지요. 민들레는 곤충들
이 가루받이를 해 주지 않아도 스스로 씨를 맺고, 공중낙화로 씨를 퍼뜨
립니다.
꽃들이 피는 것을 보면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많습니다. 그중에 목
련이 북쪽으로 향하여 피는 까닭도 들어있더군요. 관목과로 무려 210종
이나 되는 목련은 원추형의 꽃송이가 일제히 북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피어나기 때문에 ‘북향화’라고도 부릅니다. 그 까닭은 햇빛 때문입니다.
식물학자들 말에 따르면 성장을 돕는 ‘옥신’이라는 생장호르몬이 햇빛을
받으면 일부가 파괴되어 남쪽 부위는 성장이 느려져 모든 꽃받침은 자
연스럽게 북쪽으로 굽어진다고 하네요.
다음은 개나리꽃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봄이면 우리 주
변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꽃이 개나리란 것을 그대도 알고 있지요?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개나리는 통꽃으로 네 개의 꽃부리가 갈라져 있
습니다. 여름 장마철에 가지를 잘라다 흙에 꽂기만 해도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휘감아 묻어도 잎눈에서 새순이 돋습니다. 까탈을 떨지 않고 어
디든 습기만 있으면 잘 자라기 때문에 도시 주변에 있는 빈 땅이나 강둑,
언덕배기에 군락을 이루도록 심어 놓아 봄이면 노란 황금 종소리를 울
리며 화사하게 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대신 열매를 맺는
일이 극히 드물어졌어요.
살펴보면 식물들도 나름대로 종족을 보전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습
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빠른 방법으로 개나리꽃을 보기 위해서 휘묻이
나 삽목을 시키는 통에 수꽃의 꽃가루가 암꽃 씨방에다 수정시켜 줄 기
회를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암꽃이 수꽃의 꽃가루를 받아 새로운 유전
자를 지니고 있어야 할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사람이 대신 번식을 대행
하여 아예 아비와 어미가 똑같은 복제품을 대량으로 생산하니 염색체의
기능이 퇴화되어 버린 셈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아주 수꽃과 암꽃이 피
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더러는 꽃부리가 네 개로 갈라진 노란색 원통
안에 암꽃 꽃술이 수꽃으로부터 가루받이를 하기 위해 꽃술을 보다 길
게 내밀기도 합니다.
목련과 개나리가 이울고 벚꽃이 피기 시작하면 산천은 하루가 다르게
변합니다. 햇살에도 윤기가 흘러 손등에 와 감기는 햇살이 마치 누에고
치에서 방금 뽑아올린 명주실처럼 빛납니다. 물론 황사가 몇 번 지나갔
지만, 4월의 화신花神인 그대는 더 이상 신생하는 것들로 인한 앳됨도
아리따움도 지니고 있지를 않습니다. 농염합니다. 뿐만 아니라 벚꽃가
지에 매달린 음표들이 일제히 3박자 리듬을 타면서부터 물감을 풀어 어
둡고 칙칙하고 낡은 것들을 가차없이 지워버리더군요. 마치 연체된 통
장을 정리하듯 구석진 음달에 남아 있던 묵은 찌꺼기까지 걷어내고 새
로운 풀빛으로 채워 넣습니다. 이렇게 되면 산과 들녘은 연두와 연초록
과 분홍과 노랑으로 빛의 향연饗宴이 벌어집니다. 이럴 때 나는 ‘봄’이란
명사에서 맑음, 향기, 풀빛, 설렘 등의 추상적이고도 달콤한 단어들을
떠올립니다.
2. 고요한 숲에서
숲이 짙어지면 나는 자주 산으로 들어갑니다. 주로 뒷동산으로 올라
가 리기다소나무와 낙엽송이 군락을 이룬 숲을 거닐곤 합니다. 그런데
해마다 진달래와 철쭉이 시나브로 자리를 뜨고 있습니다. 13년 전까지
만 해도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는 온통 진달래밭이었습니다. 위로는
푸른 소나무 가지가 멋스럽게 늘어지고, 또 좌측으론 하늘을 찌를 듯
곧게 뻗어 올라간 낙엽송으로 하여 더없이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었지요. 지금도 낙엽송은 변함없었는데, 철쭉과 진달래가 급속히 줄
어들고 있습니다.
이유는 땅이 너무 비옥해진 탓입니다. 진달래는 척박한 산성 땅에서
잘 자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산에는 유기물이 넘쳐
납니다. 숲이 건강해졌기 때문이지요. 내 어린 시절에만 해도 주변의
산들이 거반이 벌거숭이였습니다. 땔감으로 나무를 베어다 썼고, 가랑
잎마저도 갈퀴로 긁어다 불쏘시개로 이용하다 보니 산이 점점 헐벗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오직 진달래만이 홀로 붉었습니다. 낙엽관목
과로 꽃부리가 다섯 잎으로 갈라지고 열 개의 수술 중 암술 하나가 유난
히 돋보이는 진달래는 경쟁자 없이 무더기로 피었었습니다. 아름 따다
가시는 ‘임’이 아니어도 소꿉놀이하던 옛 동무의 발아래다 뿌려주고도
남을 만치 흔했습니다.
진달래만이 홀로 붉었던 그 벌거숭이산이 마침내 푸른 옷을 입게 되
었지요. 1960년대부터 정부에서 식목일까지 정하고, 봄이면 연중행사로
나무심기 캠페인을 벌였던 것입니다. 그것도 물오름이 제일 좋은 4월
5일경을 위주로 가족들끼리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산에다 나무를 심
었고, 행정기관에선 기념수로 공원 등지에도 심었습니다. 자그마치 반
세기가 넘도록 경제성은 생각지도 않고, 오직 산을 푸르게만 하기 위해
서 속성으로 자라고 번식력이 강한 나무만 심도록 권장했습니다. 주로
아까시와 리기다소나무와 수원은사시원이었지요. 특히 수원은사시원과
아까시는 번식률이 강했습니다. 그 종들은 열매보다는 뿌리로 새끼를
쳐 나가는 것이 더 빠르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었습니다. 뿌리에서 돋아
나는 새순은 적어도 단번에 30센티미터 이상으로 자랄 수 있으니 씨로
자라는 것보다 열 배는 더 빠른 편이지요.
이렇게 번식률이 빠른 나무들은 잎이 무성합니다. 가을이면 낙엽이
쌓이고 쌓여서 봄이 돌아와도 풀들이 자랄 수가 없게 만듭니다. 나뭇잎
이 완전하게 썩으려면 적어도 1년 이상 걸리고, 이미 썩은 부토는 흙에
서 한 뼘 이상 쌓여 있기 때문에 풀씨가 바람에 날아와 씨를 발아시킬
수도 없습니다. 설령 싹이 돋아난다고 해도 흙에다 뿌리를 내릴 수 없어
이내 시들고 말아요. 때문에 산나물도 자라지를 못합니다. 원추리도 취
나물도, 삽주 싹이며 두릅도 귀해지지만 산짐승들의 먹잇감조차 귀해지
고 있습니다.
이렇게 유기물이 넘치게 되니 자연히 진달래와 철쭉이 시나브로 자취
를 감추고 있는 것입니다. 나무가 무성하니 일조량도 부족해지고, 게다
가 지구온난화현상으로 소나무마저 점점 그 수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우리 집 뒷동산의 소나무도 활엽수에 밀려 1년이면 몇 그루씩 고사되고
겨울이면 폭설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쓰러집니다. 이런 현상으로 나
가면 10년 후에는 소나무는 물론 소나무가 뿜어내는 방어물질에도 끄떡
없던 진달래도 철쭉처럼 높은 고산지대로나 올라가야 볼 수 있을 것입
니다. 철쭉이 고산지대에서 군락으로 필 수 있는 것은 냉기를 잘 견디는
특성도 있지만, 곁에 키가 큰 나무가 없어 햇볕을 충분하게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은, 활엽수들이 열매와 뿌리로 새끼를 쳐나가면
서도 서로의 몸이 닿지 않도록 간격을 조정한다는 사실입니다. 심지어
도토리 다섯 알이 한자리에 떨어져 한꺼번에 싹이 돋아 자라는 것을 보
았습니다. 그런데 몸통과 가지의 간격이 좁아진다 싶으면 그중 열세한
놈을 가려 고사枯死시키기도 하고, 키가 크면 커갈수록 아래에 있는 가지
들 쪽으론 줄기세포로 타고 올라오는 수액을 차단시켜 삭정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를테면 몸에 붙어 있는 군살을 빼 버리는 식이지요. 특히
낙엽송과 리기다소나무에서 이런 현상을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몸이
쪽 뻗어 올라간 나무일수록 상순 쪽으로만 가지가 붙어 있으니까요.
저- 고요한 침묵의 숲에서는 이렇게 살아남기 위한 영악스러운 방법
이 동원되고 영역다툼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몸에 붙은 가
지들을 쳐내고, 간격이 좁으면 그중에서 가장 열세한 나무를 죽이는 살
목의 현장이 숲입니다. 오죽하면 지구에 유일한 생산자는 식물이란 말
이 나왔겠습니까. 쇠귀 신영복 선생은 “지구의 생산은 식물이 유일하지
만, 그 생산을 완벽하게 소비하는 층은 동물이고, 그 동물 중에서도 최대
의 소비자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그 말이 백 번 옳다고 고개를
끄덕이었습니다.
4월이여! 어느덧 저녁별이 뜨기 시작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별이
뜨는 이 시간대가 그럴 수 없이 편안합니다. 서편 하늘에 샛별이 등대의
불빛처럼 반짝이는 것을 보고 있으면, 생명으로 가득 찬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꽃 피는 봄날을 예순아홉 번이나 맞이할 수 있음이 기적처럼
여겨집니다.
이제 그대는 총총히 돌아설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해후는 1년 후에
나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대와 나의 건강한 해후를 위해 성호를 긋습니
다. 부디 잘 가십시오.
김애자 ----------------------------------------------------------------------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
월간수필문학상(1997), 충북수필문학상(1998), 신곡문학상(2004) 수상.
수필집: ≪달의 서곡≫(1996), ≪숨은 촉≫(2003), ≪수렛골에서 띄우는 편지≫(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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