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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4월호, 다른 시각으로 읽다] 가족, 그리고 사랑의 변증법 : 신경숙<풍금이 있던 자리> - 김경희

신아미디어 2012. 4. 24. 17:44

김경희님의 다른 시각을 만나보세요. 4월호에는 신경숙님의 <풍금이 있던 자리>에 대해 소개하고 있네요.

 

 

 

가족, 그리고 사랑의 변증법
         - 신경숙 <풍금이 있던 자리>


1. 풀무질
   온종일 비가 내린다. 이틀 동안 하늘이 내려앉아 희뿌윰한 운무 속으
로 산이 숨어들고 세상은 온통 빗속에 잠겨있다. 그런데도 지루하게 내
리는 비가 싫지 않다. 외려 차분하게 가라앉혀 느긋한 여유와 평온을
맛보게 한다. 뭘까, 그 이유가. 술렁이는 바람을 동반한 가을비와는 다르
게, 맵찬 가시를 품은 겨울비와도 달리, 다소곳하게 내리는 빗속에서 새
색시 닮은 따듯하고 설레게 하는 봄을 보았음일까.
   해 질 녘, 느슨해진 빗줄기 사이로 산밑 수양버들이 눈에 들어온다.
칙칙한 겨울의 흔적을 벗고 연둣빛 봄 빛깔로 갈아입는 중이었다. 양지
바른 산 능선에는 그예 매화꽃 벙글고 있겠다. 이번 호 주제를 무엇으
로 삼을까 책상 앞에 앉아 머리를 되작거리던 순간의 느낌과 생각들이
었다. 봄엔 사랑이다. 신기루 같기도, 마약처럼 빠져들기도, 죽을 만큼
고통스럽기도 할 사랑. 문학에서의 사랑은 생의 주기처럼 순리대로 흐
르기보다는 거센 파도가 앞을 가로막고 태풍이 몰아치거나 장애물이
가로막아 건널 수 없는 은하수가 되지 않던가. 신경숙의 <풍금이 있던
자리>다.


   마을로 들어오는 길은, 막 봄이 와서,
   여기저기 참 아름다웠습니다. 산은 푸르고… 푸름 사이로 분홍 진달
래가… 그 사이… 또… 때때로 노랑 물감을 뭉개놓은 듯, 개나리가 막
섞여서는… 환하디환했습니다. 그런 경치를 자주 보게 돼서 기분이 좋
아졌다가도 곧 처연해지곤 했어요. 아름다운 걸 보면 늘 슬프다고 하시
더니 당신의 그 기운이 제게 뻗쳤던가 봅니다. 연푸른 봄산에 마른버짐
처럼 퍼진 산벚꽃을 보고 곧 화장이 얼룩덜룩해졌으니.


   <풍금이 있던 자리>의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외국으로 떠나려고 부
모님께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오지만, 고향이 주는 묘
한 안정감과 그로 인해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성찰이 사랑하는 ‘그’에게
편지를 쓰게 한다. 서간체 형식의 이 소설은 편지를 쓰는 것으로 시작하
여 끝내 보내지 못할 편지를 마치는 것으로 끝난다. 즉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의 이야기이다. 불륜의 사랑이었던 만큼 고백하는 화자의 어조는
망설이는 말더듬이투다.
   역에서 내려 집으로 오는 소설의 시작부터 보여주는 전경화된 분위기
를 구체화하면 ‘고향’과 ‘가족’이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마을로 들어선
화자는 집으로 바로 들어가질 못하고 송두리째 텅 빈 것 같은 마을을
한 바퀴 돌고도, 또 들어가질 못하고 서성대다가 시끄러운 새소리를 듣
는다. “미루나무를 올려다보니 부부일까? 두 마리의 까치가, 참으로 부
지런히 둥지를 … 둥지를 틀고 있었어요.” 화자의 시선을 끄는 대상은
모두 그의 내면이 투사된 현상들이다. 따라서 화자의 눈에 들어오는 것
은 가족을 상징하는 새의 둥지나 우사, 그리고 사랑으로 깊이 상처받은
여자들, 그리고 아픔을 공유한 가족이다.

 

 

2. 여자, 어머니, 그리고 화자
   마을을 서성이다 집에 들어온 나는 텅 빈 집 마루에 앉아 봄볕이 가득
찬 마당을 바라보고 있다가 대문에 시선이 옮겨졌을 때, 자신 속에서
친숙한 느낌의 어떤 것이 불쑥 치솟는다. 어린 시절 자신이 이 자리에
앉아 집을 떠난 엄마를 기다리던, 지금과 똑같은 풍경이 제 삶을 뚫고
지나간 적이 있음을 기억해낸 것이다. 일곱 살이 되었을 때 저 대문을
통해 아버지가 사랑하는 여자가 들어왔고, 어머니는 백일 된 막내를 두
고 그 대문을 통해 집을 나갔다. 화사한 봄볕을 거느리고 들어온 여자는
억척스런 살림꾼이었던 어머니와는 다르게 노란 나비같이 화사하고 예
뻤다. 어머니가 호박구덩이에 똥물을 붓고, 논물에 사는 거머리가 물어
뜯은 상처가 서너 개씩 있던, 계절 없이 살갗이 튼 여자였다면, 여자는
배추를 뽑을 때는 배춧잎같이, 텃밭지기 노랑나비가 그 여자 머리 위에
내려앉으니 날개를 바꿔 단 듯했다. 여자는 천사였다. 그러나 여자는
내 집에 들어와 이십 일을 살다 떠났다. 아버지 일생에서 그토록 환하게
빛나던 시절이 없었을 정도로 아버지는 여자를 사랑했음에도, 당신의
사랑을 믿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여자는 떠났다.
   여자와 어머니의 위치가 바뀌어 있던 어느 날, 어머니가 집에 들어왔
다. 여자에게서 아기를 받아 안은 어머니는 힘줄이 울룩불룩 튀어나온
퉁퉁 불은 젖을 물렸다. 봄볕이 내리쪼이는 그 봄날에 마루에 앉아 젖먹
이는 어머니와 그 곁에 서서 그저 마당만 하염없이 내려다보고 있는 그
여자에 대한 기억이라니. 엄마의 젖을 먹은 아기가 혼곤한 잠에 빠져들
자 아기를 눕히고 어머니는 단추가 잘못 꿰어진 나의 옷을 다시 입혀주
고는 어린 내 눈을 하염없이 들여다보다 다시 대문을 나갔다. 말없음,
그것이 어머니가 견디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여자가 그토록 살뜰하게
보살펴 주었건만 빈 구석이 드러난 것을 보면서 여자는 제 어미의 빈자
리를 완전하게 채워주지 못했음을 알았던 것일까. 천륜이라는, 노력으
로 대체될 수 없는 무엇이 있다는 것을. 여자는 다음 날 뒤란 마당까지
깨끗이 쓸어놓고 왔던 들길을 되짚어 읍내로 떠났다. 아버지가 물으시
거든 모른다,고 하라는 말만 남기고.
   여자가 집을 나가자 그녀로부터 아낌없이 사랑을 받았던 나는 어떤
부채감으로 들길을 가고 있는 여자에게 달려간다. 그녀가 잊고 간 칫솔
을 챙겨들고서. 그 칫솔은 여자가 아버지와 사는 동안 훼방만 놓던 아이
들과의 갈등으로 고통이 있을 때마다 숨던 은둔처였다. 여자는 내게 칫
솔질을 가르쳐 주면서 비로소 울 수 있었으니까. 그 여자의 눈물이 어린
내 손등으로 툭 떨어졌던 기억을 나는 오랫동안 기억하고 있었다. 여자
의 뒤에 서서 옷깃을 잡아당기자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얼굴은 온통
눈물로 얼룩투성이였다. 칫솔을 내미는 어린 나에게 여자는 말했다.
“나… 나처럼은… 되지 마.” 그러나 현재 편지를 쓰고 있는 나는 그 여자
처럼, 가정 있는 남자를 사랑하고 그와 함께 멀리 떠나기로 약속하고
있질 않던가.
   편지를 쓰면서 나는 비로소 아버지의 여자와 어머니를 생각하게 된
다. 그뿐만 아니라 소설 속에는 남편의 바람으로 남은 생 동안 고통스럽
게 살다 간 점촌 할머니와 에어로빅 강사였던 내게 와서 남편의 여자
이야기를 눈물로 하소연하던 중년 여자가 있다. “용서하십시오… 제
가… 바로, 그 여자들 아닌가요?”

 

 


3. 가족, 산맥 같은 것


   오늘은 비가… 명주실 같은 저, 봄비… 가 (중략)
움막 집집마다 한 가족들이 보입니다. 남편과 아내와 여러 아들과 딸
들이 그 속에서 서로 엉켜 삽니다. (중략) 여자들은 누구나 자식을 덩실
덩실 여럿 낳고 싶어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산맥
같이 얽혀서 사냥해온 멧돼지나 오소리, 때때로 곰을 그 움막집 앞의
불길에 굽는 겁니다.


   화자인 내가 생각하는 가족이라는 것은, 남편은 식구를 위해 사냥을
하고, 아내는 자식을 여럿 낳아 자손을 번창시킬 뿐만 아니라, 각자 자기
의 역할을 하면서도 모두 ‘산맥’같이 얽혀 사는 존재다. 산은 하나하나
독립체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개개의 산을 이어주는 게 산맥
아니던가. 그래서 가족은 거대한 산맥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 여자의 사랑, 나의 사랑은 말없는 그 산맥 속으로 스며들고 만다.


   아버지는 그 여자를 정말 사랑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여자가 저녁 설
거지를 마치고 들어오면 손 크림을 발라주셨지요. 왜 그것만이 유난히
생각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아버지의 손과 그 여자의 손이 스스럼없
이 서로 엉키는 것이 꼭 꿈결인 것만 같았어요. 손크림을 통에서 찍어내
그 여자의 손에 골고루 펴 발라주실 때 아버지의 그 환한 모습을, 그
이후에도 그 이전에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 해도 가족이라는 세계를 창조하는 순간 사랑이 완성된다거나
실현될 것이라는 생각은 그다지 만족스런 답이 될 수 없다. 가족이라는
세계가 사랑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은 전적으로 가족으로
환원할 수는 없다는 뜻에서다. 사랑과 가족은 함께 갈 수 없는 어긋난
운명에 서 있는가. 이럴 때 개별적 사랑은 꽃피우지도 못하고 공동의
산맥 속으로 복속되어 버린다.
   사랑과 가족은 자연스레 연결되는 하나의 구조 속에 묶여있다고 생각
할 수 있지만, 오히려 분리되어 있을 때 빛나는 단어이기도 하다. 슬프게
도 가족이라는 한 운명의 배를 탄 남녀에게 사랑이 존재하는가의 물음
은 우문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늘 대상을 옮겨다니는 습성을 지닌
사랑은 오랜 시간 한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사랑은 영원하지만 그것을
대하는 조건이나 방법이 변화할 것이다. 보편적으로 아내가 되고 난 후
의 여자는 한 운명으로 묶인 소중한 존재일지언정 열정으로 빛나는 사
랑은 되지 못한다. <풍금이 있던 자리>의 여자들 또한 그런 운명에 처해
있다. 한 사람의 생에서 사랑하는 순간처럼 빛나던 때가 또 있던가. 아버
지 역시 사랑하는 여자와 사는 이십 일 동안 가장 환하게 살았다.
   나는 어떤가. 나 역시 사랑하는 남자의 손을 좋아했지만 그의 손에는
늘 결혼반지가 끼워 있었다. 그걸 볼 때마다 내 가슴엔 쓰라림이 지나갔
지만 당신은 그걸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 위로할 수밖에
없다. 나는 반지 말고 다른 것을 받았다고. 이를테면 반지 따위로는 감히
상계하지 못하는 당신의 사랑을 받았다고. 그러나 당신의 반지는 나를
사랑하는 것과는 무관한 아내와의 상징성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라 해도
두 사람의 바꿀 수 없는 운명임에야. 이미 그에게는 아내와 자식으로
이어지는 산맥이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지난 사흘 동안, 저는 눈먼 송아지를 돌봤습니다.… 점촌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평생을 춥게 살다 가신 분, 가여우신 분입니다.… 언젠가
당신이 겪은 경험으로 그 분의 쓰라리고 고됨을 이해하시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우사에서 눈먼 송아지의 입술을 제 어미의 젖꼭지에 대주
고 도랑가로 나와 철길 너머를 바라봤는데, 점촌 할머니 떠나시는 모습
이… 하얗게… 멀리 보이더군요.


   이미 마을에 들어와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여러 기억들을 떠올리
고 있는 나는 지치고, 어린 시절 그 여자가 떠나면서 무슨 약속인가를
했고, 지금이 그 약속을 지켜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중첩적인 회상과
눈먼 새끼를 대하는 어미소의 행동과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나르는 까치
를 보면서 나의 내면은 자꾸 가족이라는 숙명 쪽으로 기운다. 그때 그
여자가 떠나주지 않았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 가족은 지
금 이만한 평온을 얻어낼 수 있었을까? 그 여자가 떠나고 아버지는 오랫
동안 술에 취해 살았다. 사랑을 잃은 상실감으로 자신의 세계 하나를
떼어내는 아픔을 견뎌야 했다. 지금이나 그 전이나 아버지 인생에서 가
장 환했던 때는 그 여자가 있던 그 시절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것
만이 우리 삶의 다는 아니라고 자신에게 다짐을 준다. “양잿물을 들이마
신 것같이 쓰라리게 당신이 그리워요.”라고 쓰면서도. 그것이 아버지를
사랑한 여자가 떠난 이유이고,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그를 따라가지 않
는 이유이다.

 

 


4. 사랑, 완전한 진리의 세계
   사랑 이야기는 우리 모두를 매료시킨다. 까닭이 무엇일까. 사랑한다
는 것은, 온갖 고독을 넘어서 세계로부터 존재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모든 것과 더불어 포획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므로, 이 세계
에서 타자와 함께하는 행복의 원천이 나에게 주어진다. ‘나는 너를 사랑
해.’는 내 존재를 위해 네가 있는 그 원천이 이 세계에 있다는 것이 된다.
이러한 원천에 담겨있는 물속에서 나는 우리의 기쁨을, 그러나 무엇보
다도 너의 기쁨을 본다. 말라르메의 시처럼, “물결 속에서 발가벗은, 네
기쁨에 이른 너를” 나는 본다. 그래서 알랭 바디우는, ‘시련을 받아들이
고, 지속될 것을 약속하며, 바로 그 차이에서 비롯된 세계의 경험을 수용
해나가는 모든 사랑은 자기 고유의 방식으로 차이에 관한 새로운 진리
하나를 생산해낸다.’고 말한다.


   지금… 막, 당신과의 약속시간이 지났습니다. 순간, 숯불이 얹어지는
듯한 뜨거움이 가슴에 치받쳤습니다. (중략) 당신을 만날 때의 반가움,
당신의 얼굴을 만져보고 싶은 수줍음, 당신이 없는 동안의 그리움, (중
략) 그렇게 익숙한 것이지만 방금 것의 치받침은 한 세계를 무너뜨리느
라고 쉬이 가라앉지 않을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세상에는 가까이 가선
안 될 게 얼마나 많은지요. 그 안 된다는 것 때문에 또 얼마나 애가 타는
지요.
   당신이 제게 주었던 즐거움이나 고통이나 슬픔, 허무로 뒤바뀌어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 했던 처음 며칠은, 마비된 듯이 누워만 있
었습니다. 이제 당신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제가 엄청난 일을 저질
러놓은 것 같았어요. (중략) 벼랑 앞에 선 것같이 아찔했어요.


   나는 이 마을에, 집에 오지 않았어야 했다. 태어나고 자라면서 이 마을
사람들의 도덕과 관습과 표현할 수 없는 분위기까지 함께했던 내가 어
떻게 어머니에게 씻을 수 없는 아픔을 안겨준 여자의 과거를 되풀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나는 사랑을 떠나보내야 했고, 그 아픔으로 자신
안의 한 세계를 무너뜨려야 했다. 사랑하는 당신을 못 만나는 나는 마비
된 듯 살아야 할 만큼 내 세계가 무너졌지만, 그러면서 내가 할 수 있었
던 것은 기껏 그래서는 안 된다는 금기 운운이었다. 그것은 그를 떠나기
위한 자기 최면이었다.
   나는 이 편지를 마무리짓지도 못했는데 당신은 거기(자신의 집)에, 나
는 여기에 있게 된다. 나와 그는 서로 예전의 자리로 돌아간다. 하지만
그 자리는 나와 그 모두에게 이전과는 다른 자리가 된다. 사랑의 아픔이
지나간 자리, 즉 ‘풍금이 있던 자리’다. 생의 원형처럼, 생채기가 남아있
지만 그건 아픔과 고통과 기쁨과 환희와 생의 경이로움이 혼융된 흔적
이다. 생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빛나는 시간, 완전한 시간의
세계였다.
   “어제는 빨래터에서 이 사실이 어찌나 낯선지 물밑을 오래 들여다봤
습니다.… 그래도 몇 년 만에… 숨을… 깊은… 숨을… 들이쉬는 것 같습
니다.” 사랑의 변증법. 사랑이 인생의 재발명이라면, 사랑은 그 어떤 것
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진리의 구축인 셈이다. 이제 그들은 사랑의 시련
을 겪은 자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시간성과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각각의 사랑은 보편적인 세계의 법칙들에 의해서는 계산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이 되지 않던가.
   다시 바디우의 말처럼, 사랑은 만남을 통해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과
정이다. 세계의 열림은 사랑의 경이와 행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경이
와 행복은 불확실성과 고통을 반드시 수반한다. 경이로움과 불확실성의
공존, 행복과 고통의 공존.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을 사랑은 반드시 동시
적으로 포함하게 된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사랑의 본성이다. 그래서
사랑은 당사자들에게 변증법적인 변화를 가져다 준다. <풍금이 있던 자
리>가 보여주는 사랑의 철학이다.

 

 

 


김경희  ------------------------------------------------------------------------
조선대학교 초빙 교수.
≪수필과비평≫, ≪월간문학≫으로 수필 등단.
≪전북일보≫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
작품집: ≪울 수 있는 행복≫, ≪표면적 줄이기≫.
소설집: ≪새들 날아오르다≫.
수상: 수필과비평문학상, 신곡문학상, 국제문화예술문학상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