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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4월호, 역사기행수필 연재] 남도기행 : 장성을 지나며 - 황인용

신아미디어 2012. 4. 24. 17:28

『수필과 비평』에서 '장성'에 대한 애정을 수필로 표현한 황인용님의 기행수필을 소개합니다.

기행수필의 묘미를 느껴보세요.

 

 

 남도기행 - 장성을 지나며


   노령蘆嶺, 즉 갈재굴을 지나면 장성 땅이다. 나를 낳아준 산천을 응시
하는 감회는 늘 새삼스럽다.
   나의 호 강성자江城子는 진관秦觀의 송사宋詞 제목이지만 강성여화에
서 따왔다. 30년 전 백양사白羊寺에는 ‘강성여주江城如晝’란 편액이 걸려
있었다.
   나중에야 강은 황룡강黃龍江이요 성은 장성長城, 즉 노령산맥의 뜻임을
알았다. 노령산맥이 장성의 서북쪽을 긴 성처럼 막아주는 지세인 것이다.
백양사는 고불총림古佛叢林의 절이다. 당연히 부도밭이 비좁을 정도다.
백양사의 원래 이름은 정토사淨土寺였다. 주봉인 백학봉白鶴峰은 활짝
날개 편 학의 모습이라고 한다. 갈 데 없이 서방정토에 막 내려앉으려는
자세가 아니랴.
   일주문에 도착하면 줄 지어 선 홍송紅松 위로 백학봉의 자태가 그야말
로 그림 같다. 옛사람들은 정월 초하룻날 소나무 위에 학이 앉으면 최고
의 길상으로 여겼다던가?
   운문암雲門庵은 전국 암자 중 4대 길지인데 춘백양春白羊, 추내장秋內藏
의 명예를 안겨주었느니 비자나무다. 봄이면 신록의 눈부신 담록과 기
존 잎새의 진녹색이 황홀한 대위법 그 자체다.
   나무 이야기라면 빼놓고 싶지 않나니 손룡의 7백 년생 느티나무다.
우리나라 최대의 느티나무로 밑둥의 둘레가 12.5미터라면 우주수宇宙樹
같은 굉장한 풍모 짐작될지?
   손룡巽龍은 증산교甑山敎에서 말하는 4대 명당이다. 나머지는 순창의
회문산會文山, 태인의 배례전拜禮田, 무안의 승달산僧達山이다. 승달산에
는 목포대학교가 있다.
   손룡은 ‘동남쪽 방향에서 흘러온 산맥’이라는 뜻이다. 순창의 용규산龍
龜山에서 뻗어내린 산맥이 담양의 추월산秋月山, 삼인산三人山, 병풍산屛風
山을 거쳐 장성의 불태산佛台山에서 대미를 장식하였다.
   용틀임한 지역이 바로 손룡으로서 선녀봉이 있다. 손룡을 선녀직금仙
女織錦-선녀가 비단 짜는 형국의 명당이라고 하는 까닭이다. 손룡에는
손룡정사巽龍精舍가 있다. 금석학金石學의 대가셨던 변시연邊時淵 선생님
께서 지으신 정사다. 신령스러운 거북이가 하산하는 영귀하산靈龜下山의
명당터라고 한다. 손룡 가운데서도 핵심적인 명당인 셈이다.
   앞서 말한 느티나무가 손룡정사 앞에 있다면 ‘상서로운 거북이의 나
무’가 아니랴? 그 아래에 서귀정瑞龜亭이 있는 까닭이다.
   선생님은 손룡이 후천세상에 복락福樂이 무궁무진한 명당이라고 말씀
하셨다. 모교인 광주고의 교훈인 학행일치學行一致를 왕양명王陽明의 지
행합일知行合一과 결부해 쓴 글을 읽으시고는 ‘진짜 학자다운 글’이라고
과찬하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장성은 석회암 지층이어서 고려시멘트 공장이 있다. 물맛이 좋아 보
해양조 공장도 있다. 그 가까이에 호남 4대 명천名泉이라는 영천鈴泉이
있다. 석회암 지층을 방울방울 솟아오른다고 해서 그 이름을 얻었다는
방울샘!
   인걸은 지령地靈이라는 말이 있다. 영천리는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명
당이라고 한다. 무수한 인재 배출은 당연한 귀결이 아니었으랴? 앞으로는
대통령도 나온다는데 자고로 봉황은 임금의 상징이었다는 사실이다.
   임금이라면 정수장학회 이사장은 군사독재자를 나랏님으로 부른다던
가? 그 따님은 국민을 백성으로 어여삐 여긴다면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
   장성읍 영천리는 군청 소재지다. 장성군은 군정郡政 평가에서 전국 1
위를 떼어놓은 당상처럼 독차지해왔다. 선진 장성의 저력은 혁혁한 문
화의 전통에 있지 않을까? 대원군은 “문화는 장성만 한 곳이 없다(文不如
長城).”라고 감탄했던 것이다.
   대원군은 조선조 6대 성리학자인 기정진奇正鎭을 두고 “서울사람 만
명이 장성사람 한 명만 못하다.”라고 극찬하였다. 노사는 부친이 순창
출신이었지만 태어난 곳도 자라난 곳도 황룡면 아곡리였다. 문수산文殊
山의 정기를 타고 태어났음이 틀림없으리라.
   아곡리에서 출생한 청백리가 박수량朴守良이다. 그가 별세하자 이틀
간 식음을 전폐하고 사흘간이나 조회를 열지 않았다는 명종 임금!
   “청백을 익히 알면서 새삼스레 글을 새김은 오히려 누累가 될 뿐이니
흰 비석 그대로 세우라.”
   명종은 전무후무한 백비白碑를 하사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떠한 칭
찬의 말도 흠이 될 뿐임을 알았던 명종은 임금이기 이전에 언어의 한계
를 명징하게 깨닫고 있었던 언어철학자였다고 하겠다.
   지금 백비 참배는 사무관 승진자들의 교육과정에 포함돼 있다. 참배
자들은 형언 못할 감동을 안고 돌아간다니 효과 만점인 셈이다.
   아곡리에서는 또 한 사람의 유명인이 고고성呱呱聲을 울렸으니 홍길동
이 그 주인공이다. 외환위기 때 보수는 정권을 잃고 보수를 보수라 하지
못했다. 그 운명의 날이 멀지 않았기에 어느 축산 농부는 아침에 일어나
면 크게 웃는다던가? ‘실용失用’정권의 임기가 또 하루 지나갔음을 경축
한다는 의미라면 얼마나 쓴웃음 금치 못할 ‘검은 희극’인가?
   한편 아곡리 이웃 마을인 맥동리에서 태어난 대학자가 하서河西다. 뒷
산에 필암筆岩이 있어서 그를 모신 사당 이름도 필암서원이다. 필암서원
의 뒷산이 문장산文丈山임도 칼 융이 말한 바 ‘동시성의 원리’에 틀림없으
리라.
   필암서원의 정문 이름이 확연루廓然樓다. 우암尤庵 송시열의 친필로서
그 뜻은 ‘텅 비어 넓은 모양’이다. 우암은 하서의 학풍과 인품은 ‘확연’
두 글자를 압축해 표상한 것이다.
   “천지는 부모요 인간은 형제며 만물은 동포다. 어찌 다른 존재로 대할
수 있는가? 오직 순수한 감정으로 사랑할 뿐이다. 천지를 슬퍼하고 만물
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아가야 시비가 가려질 터이니 여기서 정치가
시작된다.”
   하서 회심의 대동주의 정치론으로 한국판 조론肇論이라 할 대목이다.
조론에서는 “천지는 한 뿌리요 만물은 한 몸이다(天地同根 萬物一體).”라고
설파했음이다.
   이처럼 도저한 대동주의 앞에서 “우리가 남이가?”를 외쳤던 배타적 독
점주의자들은 얼굴을 들지 못해 마땅하리라. 무슨 염치로 또 정권을 달
라고 하는지…….
   ≪왜 어느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양대 선거의 해에
참으로 의미심장한 책이 출간되었다. 저자는 길리건 하버드 정신과 교
수다. 그는 범죄 심리를 연구하다 흥미로운 통계를 발견했다. 보수파인
공화당 집권 시에는 자살률이 큰 폭으로 증가하는데 민주당 집권 시에
는 현저히 감소한 것이었다.
   공화당의 문제는 불평등 조장하는 폭력적인 경제정책에 있었다. 당
연히 빈부격차가 커지고 실업률이 증가하면서 범죄율과 자살률이 증가
했다.
   정작 문제는 사회가 불안하고 범죄율이 증가할수록 공화당에 표를 던
지는 미국 시민에 있었다. 비슷하게 우리의 군사독재자들도 냉전 등 불
안심리를 조장해놓고 안정 희구 심리를 자극했다. 그 시절 여당의 선거
구호는 ‘안정이냐, 변화냐.’였던 것이다.
   로마 황제는 중산층과 극빈층을 이간질해 그들의 적이 상류층임을 망
각하도록 하는 통치술을 구사했다. 이를 정치학에서는 분할 통치 전략
이라고 한다. 우리의 군사독재자들도 지역 감정을 악용해 자신에게 쏟
아질 비난을 회피했다는 사실이다.
   길리건에 따르면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결은 수치심과 죄의식의 싸움
이다. 가령 기독교는 죄의식의 종교다. 교만을 가장 나쁜 죄악으로 여긴
다. 당연히 우월감을 못 느끼도록 평등주의를 옹호한다.
   수치심의 윤리는 우월한 사람이 자부심을 만끽하도록 하는 문화다.
약자는 수치심을 느껴 자살의 유혹을 느낀다. 바로 신자유주의 문화이
자 지역패권의 배타적 우월감 논리가 아니겠는가? 나치 또한 극단적인
수치심의 문화로서 자신의 폭력을 정당화했다고 함에랴!
   ‘실용失用’정부의 정책이 또한 폭력적인 불평등 정책 아님이 없었다.
신냉전, 부자감세, 4대강 죽이기, 공안통치, 방송장악, 고소영인사, 지역
차별 등 철저히 퇴영적이었다.
   “정치가 국민의 생사를 가른다. 담배가 폐암 유발하듯 보수정책은 사
망률을 높인다.”
   길리건의 결론이다. 왜 개혁세력이 장기집권해야 하는지 이보다 명쾌
한 진단과 처방을 일찍이 본 일이 있는지?
   그나저나 개혁 중의 개혁이라면 단연코 언론개혁이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재벌, 사법, 언론 중에서도 핵심은 언론인 까닭이다. 현대는 여론
정치인데 그걸 좌지우지하느니 언론 아니던가?
   요컨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국민의 통제 아래에 둠이 개혁의 요체
다. 작금 문화방송, 한국방송, 와이티엔, 연합뉴스, 부산일보, 국민일보
등 언론기관의 파업사태가 봇물 터진 듯 벌어지고 있다. ‘절름발이 오리’
신세인 ‘실용失用’정권이 어떻게 막아내랴?
   “승리는 또 다른 승리를 가져온다.”
   신자유주의 반대(반세계화) 선봉에 섰던 카셍의 말이다. 역사와 시대
의 편에 선 기자, 제작자들의 승리는 이미 기정사실이다. 그 바탕에서
개혁세력은 승리에 승리를 거듭해 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까닭이다.

 

 

황인용 ------------------------------------------------------------------------
1991 월간 ≪에세이≫ 천료.

1994 한국어문상 수상.

1998 ≪수필과비평≫ 수필평론 당선.
2007 신곡문학상 수상. ‘한글+漢字문화’ 지도위원.

수필집: ≪흐르는 강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