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에 대한 현실, 느낌, 상상..... 글을 통해 여러분들은 어떤 상상을 하시나요....
힘겨루기
TV 화면에는 민속 씨름이 벌어지고 있다. 걸때가 큰 선수들이 대부분
이다. 그중에는 외국인 선수도 몇 명 보인다. 실내에는 관중의 열기가
모래판을 데우는 듯해 보인다. 민속 고유의 씨름이 국제화 시대를 맞은
듯하다.
나는 대학 시절에 총학생회가 주최하는 체육대회에 사범대학 씨름 선
수로 출전했다. 이때 사회과 L을 처음 만났다. 체육관에서 씨름 연습을
하면서 자연히 그와 친해졌다. 그는 고교 시절에 유도로 몸이 다져진
친구였다. 나는 고교 시절에 유도장에서 씨름을 자주 했다. 키 큰 학생이
도전해 왔지만 보기 좋게 나가떨어졌다. 그 후로 키 작은 나에게 함부로
대하는 녀석이 없어졌다.
L과 나는 학군단에 입소하여 장교로 임관하여 같은 사단에 배치되었
다. 나는 인제에서, 그는 양구에서 근무했다. 일 년에 한두 번 만날 때면
으레 풀밭에서 삼판양승의 씨름으로 술내기를 했다. 서로의 실력이 비
금비금하여 내리 두 판을 이기는 경우는 없었다. 늘 일대 일에서 결승을
맞았다. 승률 역시 반반이었다. 그와 나는 들배지기가 특기였다. 시작과
동시에 기술이 들어갔다. 누가 먼저 들어 올리는가에 따라 승부가 결정
되었다. 씨름이 끝난 후 풀밭에 나란히 누워 하늘의 총총한 별을 바라보
면서 승패의 원인을 얘기하면서 숨을 고르곤 했다. 한참 후에 이마의
땀을 닦아내며 일어섰다. 그다음은 술집을 향했다.
그와 나는 씨름만큼이나 술 실력도 버금갔다. 술잔을 주거니받거니
하다 보면 자정이 넘어서야 끝이 났다. 적당히 술에 취한 둘은 장교의
체면은 접어두고 어깨동무를 하고 노랫가락을 뽑으며 숙소로 돌아오곤
했다.
나는 소대원을 씨름으로 장악했다. 소대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덩치가
큰 병사와 붙어 보기 좋게 넘어뜨렸다. 호기롭게 “누구든 나에게 이길
자신이 있는 사람은 환영한다.”라고 했더니 다행인지 도전하는 병사는
없었다. 그곳에서 이 년 동안의 소대장 생활을 마쳤다.
군 복무를 마친 그와 나는 교직의 길에 들어섰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는 교직을 떠나 사업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연락이 끊어졌다. 지금
은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하고 보고 싶기도 하다. 그저 잘살아가고 있기
를 바랄 뿐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고등학교에서는 매년 체육대회가 열린다. 나는
20여 년간 씨름 심판을 도맡았다. 씨름이 시작할 때면 많은 학생들이
씨름판을 에워싼다. 여학생도 더러 와서 남학생의 건장한 모습을 엿보
기도 한다. 심판을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제법 재치 넘치는 기술을 가진
학생을 발견하는 맛도 있다.
단체전을 치른 후에 개인전이 시작된다. 몸집이 크고 기술이 없는 학
생은 버티기만 한다. 그러나 기술이 있는 학생은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
여 쓰러뜨린다. 올해의 마지막 결승전 때였다. 선수는 연신 땀을 뻘뻘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선수들의 아랫배가 울룩불룩거렸다. 드
디어 삼판양승의 승패가 가려져 승자가 결정됐다.
휴식 후에 나는 그 승자와 번외 씨름을 했다. 나의 특기인 들배지기
기술은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상대를 들어서 중심을 뺏은 뒤에 왼쪽 엉
덩이와 허리의 힘을 이용하여 오른쪽으로 쓰러트린다. 나는 심판의 호
각 소리가 나자마자 들배지기 기술을 넣었다. 상대의 방심을 틈타 순식
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학생은 어처구니없는 표정이었다. 한 판 더 붙자
고 했다. 한 번 더 하면 내 기술이 이미 상대에게 알려졌기에 이긴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래서 거절했다.
씨름 기술에는 왼배지기, 들배지기, 밀어치기, 뒤집기, 발뒤축걸이, 바
깥다리걸기, 안다리걸기, 호미걸이 등 수십 종이 있다. 하지만 실전에
이용되는 기술은 몇 가지에 불과하다. 민속 씨름 선수들은 몇 가지 기술
만 주로 사용한다. 또 연습 때 그 기술을 집중적으로 익힌다. 어설픈
기술을 썼다간 되치기당하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우리 고유의 민속 씨름이 관중을 의식하여 여러 차례 규칙이
고쳐졌다. 예전에는 승부가 나지 않아 지루하기만 했다. 지금은 제한
시간이 짧아 재미있고 통쾌하며 바로 승부가 결정된다. 어느 한쪽이 공
격을 하지 않으면 바로 경고가 들어가며 경고 패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기업의 후원 하에 씨름이 전문화되고 선수들을 육성하고 또한 기술도
많이 발전되었다. 특히 어린 꿈나무의 발굴과 육성, 지원이 절실히 필요
하다.
씨름은 자기의 단련이며 반성이고 성장이다. 수많은 연습을 통해 수
양을 쌓고 고통과 인내를 배우는 자기 성찰의 기技며 도道이다. 겉으로
는 수양된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어 인격을 형성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래서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자기의 수련을 상대를 통해 확인하고 표출
하였다.
우리 민족의 미풍양속인 씨름 문화도 세계로 뻗어 우리의 정체성과
우수성을 알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지금은 모든 것이 세계화되고
개방되는 시대이다. 우리의 태권도가 세계에 전파되어 우리의 종주국을
넘보듯 씨름도 국제화 시대를 맞은 것 같다. 그럴수록 더욱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고 질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할 때다. 드디어 TV에서는 관중
의 열광 속에 우승자가 가려졌다.
민병옥 -------------------------------------------------------------
≪수필과 비평≫ 등단.
수필집: ≪질주≫.
'월간 수필과 비평 > 수필과비평 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수필과 비평 2012년 4월호, 사색의 창] 이유 - 송혜영 (0) | 2012.04.23 |
|---|---|
| [수필과 비평 2012년 4월호, 사색의 창] 어린 시절의 설날 - 박하 (0) | 2012.04.22 |
| [수필과 비평 2012년 4월호, 사색의 창] 귀는 천사다 - 김새록 (0) | 2012.04.20 |
| [수필과 비평 2012년 4월호, 사색의 창] 수석과 조약돌 - 김상환(동백) (0) | 2012.04.20 |
| [수필과 비평 2012년 4월호, 인연] 방 - 김귀선 (5) | 2012.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