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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4월호, 사색의 창] 수석과 조약돌 - 김상환(동백)

신아미디어 2012. 4. 20. 08:54

수필과 비평』의 '사색의 창'공간는 수필을 통해 많은 상상을 하게 만드는 공간입니다.

독자분들의 상상력에 또다른 보탬 글을 기대합니다.

 

 

수석과 조약돌


   강변을 거닐다 햇빛에 반짝이는 조약돌 하나를 주웠다. 집으로 가져
와보니 놓아둘 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다. 하지만 차마 버릴 수가 없어
화분 위에 올려놨다. 그런데 그날 수석을 주워왔던 친구는 좌대까지 만
들어서 눈에 잘 띄는 곳에 놓아두었다고 자랑했다.
   똑같은 환경에서 만들어진 돌이라도 수석은 자기만의 특징을 가꾸고
발전시킨 돌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여러 가지 기묘한 형상을 하고 있어
많은 사랑을 받는다. 오래 겪으면 겪을수록 장점이 발견되는 사람처럼,
보면 볼수록 새로운 특징이 발견되고 싫증이 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
이 이러한 매력에 끌려 심마니가 산삼을 찾아 산속을 헤매듯 산수경석山
水景石을 찾아 강과 바닷가를 헤매 다닐 정도다.
   그렇지만 반질반질하게 생긴 조약돌은 발길을 잠깐 멈추게 할 뿐 이
리저리 만지다가 대부분 버려진다. 더러 집에 가져와도 기껏해야 화분
같은 곳에 놓여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게 된다. 이처럼 겉모습은 흠잡을
데 없이 잘생겼으나 뺀질뺀질한 사람처럼 대접받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
러다닌다.
   조약돌을 보고 있으려니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그는 귀공자처
럼 잘생긴 외모에 영리하고 재주가 많아 어려서부터 칭찬만 듣고 자랐
다. 많은 사람들이 곱게만 봐주고 웬만한 일에는 그를 나무라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기에게 이익이 없거나 귀찮은 일은
약삭빠르게 잘도 빠져나갔다. 반대로 좋은 일에는 모두 자기 공로로 내
세웠다. 하는 짓이 어찌나 천연덕스럽던지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의 말을 사실로 믿었다. 사람의 외모와 재주만 믿고 그의 말을 따랐다
가 경제적인 손실과 마음을 다친 사람들도 있었다. 그는 점점 신용을
잃어가게 되었고 가까운 사람들과도 교류가 끊어졌다. 언제부터인가 고
향 친구들 모임에서조차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지금도 회식
자리에서는 그에 대한 좋지 않은 소문이 술안주가 되지만 그의 행적을
아는 사람은 없다.
   그와 반대로 어린 시절 동무들 사이에서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던 친
구가 있었다. 그는 소년가장으로 성격이 좋은 것 외에는 내세울 것이
없었으나 어려운 환경에서 꿋꿋하게 살아간 덕분에 지방유지로 추앙받
게 되었다.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와 함께 있으면 사군자 병풍을 둘러
쳐놓고 앉아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드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환갑도
되기 전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흐르도록,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은 이름이 되어
그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한다.
   어떤 이는 위의 두 사람을 가리켜 “요절한 안자는 장수했다던 노팽을
부러워하지 않으리.”라는 당나라 때의 시인 백낙천의 시 한 구절을 인용
하여 비유한다.
   똑같은 조건에서 만들어진 돌이지만, 조약돌은 이름부터가 자질구레
하고 둥글둥글하다는 뜻으로 부르고, 수석은 물 수水자가 아닌 목숨 수壽
자에 돌 석石자를 써서 ‘수석’이라고 한다. 즉 수석이란, 볼품없는 돌이
새로운 의미로 탄생한다는 뜻이 아닌가 생각된다.
   수석을 보고 있으면 자연과 사람의 교감이 이루어지고 천변만화千變萬
化하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숨결이 느껴진다. 수석이 결점은 깎이고 장점
과 특성을 살려 더욱 아름답게 다듬어진 돌이라면, 조약돌은 나를 포기
한 돌이 아닐까 싶다.
   흔히들 세상 경험이 많아 꾀가 많고 눈치가 빠른 사람을 가리켜 닳고
닳은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조약돌처럼 세파에 견디지 못하고 적
당히 타협해버리는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지는 않는다.
   나는 수석을 좋아한다. 하지만 좋아한다고 닮을 수는 없다. 될 수 있
으면 남의 눈에 잘 띄지 않고 어디서나 어울리는 평범한 돌이고 싶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고 평범함 속에 평온한 행복이 깃든다고 믿기
때문이다.

 

 

 

김상환(동백) ----------------------------------------------------------------

2006년 ≪수필과비평≫ 등단.
수필집: ≪쉼표는 느낌표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