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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4월호, 다시 또 봄의 노래를] 옆집 문구점 - 노서운

신아미디어 2012. 4. 26. 18:24

'옆집 문구점'하면 어떤 생각이 떠오르세요.. '옆집'이라는 단어가 정겹게 느껴지네요.

 

 

옆집 문구점


   영화 <아저씨>를 보러 극장에 갔다. 네 명의 아이를 키우느라, 바쁜
일상에 쫓겨 여유 있게 영화관을 찾는다는 건 내게 사치일 뿐이라 여기
며 살았다. 특별히 <아저씨> 영화만큼은 극장까지 가서 관람을 하려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영화의 한 장면이 내가 운영하는 어린이집 옆 문구
점에서 촬영되었기 때문이다.
   영화를 촬영하는 날, 주연배우 원빈을 직접 보고 싶어 소문을 듣고
몰려든 인파들 속에 나도 섞여 있었다. 원빈은 좀처럼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다. 문구점 안에서 거의 촬영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밖에서 기다리
다 지쳐 그냥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도대체 어떤 장면일까? 궁금증만
더해갔다.
   극장표를 사면서도 영화보다는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문구점이 저 큰
스크린 속에서 어떻게 비추어질까? 혹시 우리 어린이집이라도 살짝 나
오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와 설렘이 더 컸다. 하지만 영화가 상영되자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시나리오와 흥미진진한 장면 속으로 푹 빠져들
고 말았다.
   마음의 상처를 입고 전당포를 꾸려가며 외롭게 살아가는 아저씨(원
빈)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옆집 소녀 소미와 서로 마음을 열며 친구
가 된다. 어느 날 소미 엄마가 범죄 사건에 연루되어 소미와 함께 납치된
다. 소미의 행방을 찾아 세상 밖으로 나온 아저씨는 소미를 위험에서
지켜 내기 위해 마약, 범죄, 장기매매 등의 사회악들과 치열한 싸움을
하여 마침내 소미를 구출해 낸다는 줄거리이다. 600만 관객을 동원하고
2010년 최고의 흥행작으로 기록된 <아저씨>는 잔인하지만 가슴 따뜻한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소미를 구하기 위해 총을 쏘고 칼을 휘두르며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피로 얼룩진 잔인한 장면들이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기다
리던 문구점이 나오는 장면은 아주 잠깐이었다. 그런데 그 잠깐을 위해
군산을 두 번이나 와서 꼬박 날을 새고 촬영을 한 것이다.
   옆집 문구점 아저씨를 만나 물어보니, 요즘 문구점들은 최신형으로
바뀌어 정리가 잘 되어 있다고 한다. 영화감독은 오히려 예스러운 어린
시절의 추억과 정취가 남아있는 시골스러운 문구점을 찾아 헤매다 이
문구점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 말에 늘 오가던 문구점을 자세히 보니,
내 어린 시절의 학교 앞 문구점과 참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우리들의 어린 시절에도 문구점은 딱지, 카드, 뽑기 등 신기한 볼거리
가 가득했다. 알록달록한 빛깔로 유혹하는 먹을거리가 아무렇게나 진열
된 아이들의 만물상이었다. 모두 갖고 싶고, 먹고 싶은 것들로 가득했다.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우리 쌍둥이들도 이 앞을 지날 때면 문구점 앞
에 전시된 식품이나 장난감에 한눈을 팔며 멈추어 선다. 나는 모른 체
손에 힘을 줘 당겨 보지만, 아이들은 움직이질 않는다. 별수 있나? 백
원짜리 동전 몇 개를 아이 손에 쥐어 준다. 금방 표정이 환해지며 원하는
걸 손에 든 아이는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향한다. 뿌옇게 내려앉은
장난감의 먼지를 털어내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도 문구점에서 엄마를
졸라 산 종이인형을 집에 가지고 와 가위로 오리며 즐거워했던 옛 추억
에 잠겨 웃음을 머금는다.
   시내에 세워진 깔끔하고 세련된 대형 문구점들을 죄다 놔두고 영화
속 주인공인 아저씨와 소미는 이곳에서 어떤 장면을 찍었을까?
   가방을 훔치다 들켜 야단을 맞던 소미는 지나가는 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그는 모른 체한다. 자기를 모른 체한 아저씨를 바로 이 문구점
에서 만난다. 홧김에 또 물건 하나를 훔쳐 나가서 그에게 울먹이며 말한
다.
   “아저씨, 아저씨도 제가 창피하죠? 그래도 안 미워요. 아저씨까지 미
워하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 하나도 없어. 그 생각을 하면 여기가 막
아파.”
하면서 문구점에서 훔친 카드 하나를 선물로 내민다. 요즘 아이들이 너
무나 좋아하는 유희왕 카드이다. 잠깐 관객들은 소미의 순수한 행동에
잔잔한 웃음을 웃었다. 그리고 혈투 끝에 소미를 구해 돌아오는데 마지
막으로 꼭 가야 할 곳이 있다며 찾는 곳이 바로 이 문구점이었다. 문구점
에서 소미에게 학용품을 사주는 장면은 정다운 아빠와 딸 같았다.
   잔혹한 장면이 연속되는 가운데 꼭 두 번 등장하는 문구점은 이 영화
를 따뜻한 영화로 기억하기에 충분한 공간이었음을 느끼게 했다.
   오늘도 옆집 문구점은 호기심 가득한 아이들이 몰려드는 분주한 시장
터다.
   이 문구점이 새 옷을 갈아입지 않고, 좀 더 오래오래 우리 곁에 남아
주었으면 좋겠다. 먼 훗날, 이곳을 지나던 우리 아이들이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만지작거리다가 잃어버린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꿈이 담긴 물건
을 살 수 있었으면 한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그대로 간직해준 옆집 문구점 덕분에 눈빛 연기
가 멋진 배우 원빈도 멀찌감치에서 볼 수 있는 행운도 얻지 않았는가?

그리고 영화 속에서 문구점이 나오는 장면에 아주 잠깐 우리 어린이집
간판도 함께 나왔다고 지금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고 다닌다.


 

노서운 ----------------------------------------------------------------------
2008년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