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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4월호, 다시 또 봄의 노래를] 찔레꽃 마중 - 신노우

신아미디어 2012. 4. 27. 16:50

신노우님의 수필을 소개합니다. 한편의 영화처럼.... 시처럼..... 여러분들도 느껴보세요.

 

 

 

찔레꽃 마중


   ‘꼭 한 번 가야지’하면서도 일상에 파묻혀 몇 번이나 미루었던 산사로
가는 길이다.
   굽이굽이 국도를 돌고 돌며 긴 하품을 하는데 저만큼에 지장사 표지
석이 나타났다.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움이 앞선다.
   산사로 들어가는 길섶이 하얗다. 무리지어 마중하는 찔레꽃이 방글방
글 웃고 있다. 차창으로 들어오는 은은한 향이 시간을 거스르게 한다.
어린 시절 하굣길에 주린 배를 찔레 순으로 헛헛함을 달렸던 아린 기억
들이 떠오른다. 소꿉친구들은 굵은 찔레 순을 먼저 따기 위해 앞 다투어
넝쿨 속을 헤집느라 손등에 피가 나는 줄도 몰랐었다. 껍질을 까고 씹으
면 풋내와 달짝지근한 맛에 입가가 퍼렇게 물이 들었다.
   가파른 언덕길을 어지럽도록 몇 구비를 돌았을까, 한참 만에 지장사
가 나타났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푸른 솔숲 가운데 산사는 안온하고 단
정하게 자리하였다. 두 손 모아 머리 숙여 삼배를 했다. 초파일을 지난
지가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경내가 너무 조용하다. 먼저 대웅전에 들
렀다. 준비해 간 수박을 올려놓고 아내와 절을 올렸다. 법당의 은은한
향내가 무릎을 자꾸 꿇게 한다.
   주지스님은 아내와 절친한 같은 여고 동기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직
접 뜨개질로 만든 옷을 곧잘 보내오던 친구다. 테니스 선수이었던 사람
이 어느 날 승가대학이라고 연락을 해서 우리 부부는 무언가에 심하게
얻어맞은 듯 멍해졌었다.
   무심한 세월이 기억을 지우며 흘렀다. 승가대학을 마쳤다며 집에 들
른 친구. 파르스레 까까머리에 낯빛이 맑고 차분했다. 지난날 운동하던
때의 기운 넘치는 모습은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다. 승가대학이 어렵
지 않느냐는 물음에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에 견디어 냈단다.
   스님이 되고 그동안 몇 군데 사찰을 옮겨 다니다가 이곳에 온 지도
3년이 되었다고 했다. 지장사는 겹겹이 둘러쳐진 병풍 같은 산들을 내려
다보고 있다.
   탁 트인 조망으로 속이 다 후련해져서 수양이 절로 되겠다고 했다.
날더러 수필집이나 시집을 낼 때 정리 작업은 이 한적한 산사에서 와서
하라고 했다. 창문을 통유리로 교체해서 눈만 들면 밖이 발아래로 훤히
내려다보이는 방을 내 주겠단다. 환담 중에 다기에서 녹차가 끓는다.
차향이 서로의 마음을 연줄마냥 자꾸만 끌어당긴다. 녹차를 자꾸만 따
라주며 스님은 그동안 사찰 손질에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들어 보란다.
   스님이 주지로 부임해서 전체를 한 번 둘러보았는데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았단다. 먼저 요사채와 공양할 수 있는 건물 두 채를 지었다고
했다. 건물 지을 예산을 지원받기 위해 도청에 수없이 방문하다보니
나중에는 담당자가 스님이 오시면 도망가고 싶다고까지 했다며 쓰게
웃었다.
   건물을 지을 때도 일일이 참견하며 같이 일을 해서 얼굴은 까맣게 타
고 머슴 손이 되었다며 손을 내 밀었다. 스님 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거친 손에 상처 흔적이 훈장처럼 군데군데 보인다.
   주차 장소도 협소해서 좀 더 넓게 확보하고 사찰에 맞는 조경을 다시
하느라 키보다 훨씬 높은 축대를 모두 허물어서 다시 쌓았다고 하였다.
장비를 동원했지만 스님 마음에 들도록 하자니 몸뻬를 입고 직접 뛰었
단다. 그때는 몰골이 말이 아니어서 누구도 찾아오지 않기를 바랐다고
했다.
   아, 그렇게 애를 썼기에 사찰 내에 정원수가 군데군데 키 높이에 맞게
잘 배치되었더라고 말했다. 야생화도 무덕무덕 조화롭게 심겨져 있는
것을 절에 들어오면서 보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했다.
   이제 일은 그만 하시고 스님답게 지내시라고 하였다.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았단다. 건물도 더 지어야 하며, 잉어가 노닐고 수련 꽃이 피는
아담한 연못과 그 옆에 쉴 수 있는 정자도 있어야 한단다.
   이 큰절에 혼자이냐고 아내가 묻는다. 도와주던 보살이 집안에 일이
있어서 떠났는데 이제 오지 않을 거란다. 그럼 이 큰절을 어떻게 감당하
며 무섭고 힘들지 않느냐며 눈을 바라보았다. 산짐승이 법당 안으로 들
어오는 일은 없으며, 가끔 고향 아버지가 들러 며칠씩 묵으며 일을 찾아
서 해 주고는 가신단다. 하지만 어머니는 한 번도 오시지 않았다는 말을
원망처럼 덧붙이며 눈가가 붉어진다. 쌓인 낙엽처럼 그간의 궁금했던
두 친구간의 세월의 이야기가 조금씩 풀리고 있다.
   귀한 걸음 했으니 저녁을 먹고 가란다. 스님이 만들어 주는 음식은
어떤 것일까. 기대와 호기심이 발동한다. 한참 절 마당을 서성이다가 저
녁을 먹으러 공양실로 갔다. 초피 잎으로 전을 부쳤고, 살짝 구운 두부를
초피가루로 만든 양념장에 찍어 먹으란다. 된장 속에 박아 두었다가 꺼
내온 고추가 입맛을 돋운다. 머위, 뽕잎, 취나물 장아찌가 속세에서 먹은
것과 또 다른 맛이다. 사찰 음식을 대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욕심의 갖은
양념을 하지 않아도 담백하고 깔끔해서 좋다. 절간 음식처럼 화려하지
않은 찔레꽃마냥 번뇌에서 벗어나 비우는 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고요한 산사,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에 붙잡혔다. 사위四圍가
서둘러 어둑해지자 대구로 출발하였다. 들어올 때 만난 찔레꽃이 어둠
속에서 하얗게 웃으며 배웅한다. 찔레꽃 무리 속에서 스님도 편안 미소
를 짓는다.

 


신노우  ----------------------------------------------------------------------
2002년 계간지 ≪해동문학≫ 詩 등단.
2005년 ≪수필과비평≫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