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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4월호, 교단에세이] 이놈 아저씨 - 이용숙

신아미디어 2012. 5. 4. 17:33

TV에서 보는 이놈 아저씨에 대한 진지한(?) 생각... 우리는 부르면 달려올 이놈 아저씨가 있을까? 이제는 다른 사람을 기다리기 보다는 자신이 이놈 아저씨가 되어야........ 이용숙 교감선생님의 이놈 아저씨 역할은 힘들지만 즐거우시기를 기대해본다.

 

 

 

이놈 아저씨


   나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아니 눈물 나는 것보다는 웃는 것
이 좋다.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따라 웃다 보면 머릿속에 남는 것이
없어도 그냥 좋다. 대놓고 따라 웃기도 한다. 남편이 핀잔을 줄라치면
어린애들과 소통하려고 본다는 궁색한 변명도 한다.
   늦은 시각까지 잠자리에 들지 않는지, 재미가 있어서 그런지 아이들
은 개그 프로그램에서 보고 들은 것을 곧잘 써먹는다. 따라서 나도 가끔
봐야 말이 통한다. 무엇이 안 된다고 말할 때에도 그냥 안 돼라고 말하면
딱딱하고 무서워 보이지만 요즘 유행하는 어투로 “안 돼~.”라고 말하면
웃으면서 거절할 수도 있으니 그것은 덤이다. 진지하게 말해야 할 때에
도 프로그램의 내용을 따라 리듬감 있는 “감사합니다.”라고 해도 다 같
이 웃고 넘어갈 수 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개그 프로그램이라고 그냥 웃기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수학이 어렵
다는 학생에게 “어렵지 않아요.”라는 말을 빌려 와서 적절하게 써먹으면
재미도 있을 것이고, 학생들도 친근하게 느낄 수 있어 좋다. 더러 생각할
거리도 있다. 바로 ‘이놈 아저씨’라는 코너이다. 아빠는 없고, 자식은 많
은 가정이 배경이다. 엄마 말을 잘 듣지 않을 때마다 엄마는 “이놈 아저
씨 부른다.”라고 한다. 실제로 나타나는 아저씨는 사람 좋은 웃음을 가
득 띠고, 누가 엄마 말을 안 듣나? 하면서 집으로 고개를 쑥 밀어 넣는다.
비좁은 집에 덩치 큰 아저씨가 들어오는 게 무서운 아이들이 모두 겁을
낸다. 언제나 마지막에는 “엄마 말 잘 들어, 안 그러면 또 온다.”라는 말
도 잊지 않는다. 마치 옛날에 큰어머니가 내게 하던 망태아저씨처럼 무
서운 사람이다.
   망태아저씨를 본 적도 없다. 그러나 작은 일에도 잘 삐치고 우는 내게
“울면 망태아저씨가 잡아간다.”라고 하면서 겁을 주었다. 그러면 뚝 그
쳤다. 사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저씨보다 아버지가 더 무서웠는데
도 아버지 앞에서는 입을 쑥 내밀면서 마음대로 골난 표시를 할 수 있었
으니 망태아저씨가 더 무서운지도 모르겠다. 꾸중을 모르는 아빠와 사
는 우리 아이들의 망태아저씨는 외할아버지이다.
   친정 식구들의 모임에 가면 나이가 비슷한 아이들이 올망졸망했다.
동갑이거나 한두 살 차이가 나니 잘 놀다가도 한 명씩 울곤 했다. 때론
싸우기도 하고, 어디서 배웠는지 욕도 들리곤 했다. 그럴 땐 어김없이
아버지가 “누가 욕을 하느냐? 입을 째라.”라고 하셨다. 곁에서 엄마가
애들에게 끔찍한 말을 한다고 퉁을 주셨지만 어디 좋은 말을 다 두고
욕을 하느냐고 일부러 크게 말씀하셨다. 그러다 보니 집에 와서 저희
자매간에 놀면서 동생이 언니보고 “너, 어쩌고….”라고 말하면 그것도
욕이라고 외할아버지께 다 이른다고 했다. 교장 선생님이던 아버지의
원격 교육의 힘이 대단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이 욕을 모르고 자랐
다. 딱 한 번 아들이 욕을 하는 것을 본 적은 있다.
   유치원 때인가? 욕을 해야 할 상황이 아니었는데 아들이 “씨-발.” 하
고 욕을 했다. 온통 난리가 났다. 다섯 살 터울인 바로 위의 딸이 “욕
썼다.”라고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이 야단이었다. 바로 전화기 앞으로
달려가 외할아버지께 이를 참이었고, 나는 은근히 걱정되었다. “아들은
큰 도둑이 되어야 알고, 딸은 화냥년이 되어야 부모가 알게 된다.”라는
옛말이 있듯이 밖에서 욕을 쓰고 다니는 것을 나만 모르고 있는 줄 알
았다.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온갖 교육 이론을 끄집어내며 머리를 굴리
고 있었다. 욕을 한번 입 밖에 내었던 아들은 뜻밖의 상황에 놀라 울어
버렸다. 친구들이 쓰니까 자기도 흉내 내어 보려다가 혼이 났던지 청년
이 된 지금까지 공손하고 예의바르게 말한다. 다 알 수는 없다. 밖에서
는 욕을 하고 다녔는지. 밖에서 만나는 요즘 중학생들의 말에는 욕이
절반을 넘으니까.
   버스나 지하철에서 학생들이 아무리 욕을 해도 꾸중하는 사람이 없
다. 오고 가는 말의 절반은 욕이다. 꾸중하다가는 봉변을 당한다고 하니,
못 본 척, 못 들은 척하고 있어도 마음이 불편하다. ‘요새 아이들은….’
‘참으로 큰일이다.’라고 속으로 생각할 뿐이다. “이놈.” 하고 나서 줄 이
놈 아저씨가 없다. 아마 호랑이 같은 우리 아버지도 못하실 것이다. 자식
이고 손자고 가릴 것 없이 당신의 말씀이 법이었던 시대를 산 어른이라
아마도 젊은 사람이 눈을 똑바로 뜨고 가던 길이나 곱게 가시라면 지팡
이로 때릴지도 모른다. 뒷일은 생각조차 않을 것이다. 순식간에 인터넷
에는 지팡이할배라고 뜰지도 모르겠다. 용기있는 어른이라고 말하고 편
들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을 세상이라 외출을 하시지 않는 아버지가 다
행스럽다.
   주변에 이놈 아저씨의 역을 맡을 사람은 없다. 대놓고 욕을 먹을 용기
가 없어서 나도 못한다. 부모 중의 누군가가 감당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
게 역할을 주어서는 안 된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데 좀 크면 나아질
것이란 생각에 꾸중하지 않는 부모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입학 전에
최소한의 예절을 가르쳐야 하는데 그냥 두었다가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
꾸중한다.’라고 가르치면 학교는 두려운 곳이 되고 만다. 어릴 때부터
알아듣게 타이르고, 따끔하게 야단쳐서 반듯하게 길러야 한다. 최소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민주시민이 될 수 있도록 키워주는 것이 부모
의 도리일 것이다.
   평생을 교직에 몸담은 나도 용기가 없어 나서지를 못한다. 겨우 학교
안에서만 이놈 아저씨 역할을 흉내 내고 있다. 가끔 교무실로 호소하러
오는 학생이 시켜주면 주인공이 된다. 자기보다 윗학년 형이 욕을 하거
나 괴롭힌다고 이르러 오면 찾아 나서기는 하지만, 아이들 기죽인다고
할까 봐 좋은 말로 타이른다. 동생을 사랑하라고 말하고 둘에게 똑같이
사탕을 나눠준다. 눈물나고 슬픈 프로그램보다 웃는 것이 더 좋은 내게
도 꾸중보다 칭찬을 더 많이 하는, 사람 좋은 ‘이놈 아저씨’의 역할은
어렵다.


 

이용숙 -----------------------------------------------------------------------
≪수필과비평≫ 신인상 당선.
대구 효동초등학교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