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현선생님의 창작동화를 소년문학에서 소개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새로운 선생님이 오시거나 교생선생님이 오셨을때의 기억이 나네요.
아이들을 위한 창작동화이지만 어른들도 읽어보세요. 소중한 기억들이 새록새록 가슴으로부터 피어날 거예요.
선생님 사랑해요
지금부터 4년 전 우리들이 1학년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것도 유난히 무덥던 여름, 우리가 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맞는
여름방학 때의 일이었습니다.
박미애 선생님. 선생님은 그해 2월에 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우리
학교로 오셨습니다. 교단생활의 첫 출발이셨고 부임해 오시자마자
1학년인 우리를 맡으셨던 것입니다.
아직 앳된 얼굴이었지만 보통은 벗어난 미인이셨고 우리에겐 마
치 상냥한 누나처럼 대해 주신 분이셨습니다.
1학기 동안 우리들의 학교생활은 퍽 즐거웠습니다.
가령, 숙제를 잘해 왔다고 우리 반 모두에게 부라보콘을 사 주신
일, 무릎이 꾀죄죄하다고 마을 앞 냇물로 데리고 가서 팬티만 입혀
물속으로 몰아넣은 일, 말을 똑똑하게 잘하면 향긋한 냄새가 풍기는
선생님 품속에 한 번씩 꼬옥 껴안아 준 일, 착한 일을 하면 양쪽 귀를
잡고 볼에다 뽀뽀를 해 준 일 등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 일입니다.
우리 학교는 도시 변두리의 조그만 농촌 학교입니다.
선생님은 방학 동안에 1주일쯤 일직을 맡으셨습니다. 일직을 하
시는 동안, 학교 가까운 동네에 사는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그
렇잖아도 조금씩 지루해지려던 때여서 우리는 얼마나 좋았는지 모
릅니다.
이틀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앞뒤 생각 없이 까불까불 말 잘하는 동길이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리 선생님 집에 따라가면 안 돼요?”
동길이는 선생님 손을 잡고 흔들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 선생님 앞으로 몰려가서, 선생님 얼굴을 빤히
올려다봤습니다.
선생님 얼굴엔 꽃처럼 웃음이 번졌습니다.
“그래, 너희들 엄마 떨어져서 잘 수 있니? 엄마 젖 안 만지고
자도 될까? 호호.”
“그럼요, 그럼요.”
“에이, 선생님도, 우리가 뭐 어린애인가요.”
우리는 제각기 한 마디씩 거들었습니다.
그러고서도 선생님과 우리는 기차를 타 봤느냐, 선생님 집엔 누
구누구 사느냐, 방이 몇 개 있느냐 등등 한동안 신바람나게 이야길
주고받았습니다.
결국 선생님께선 우리에게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면 말이지, 오늘 집에 가서 어머니께 허락을 받아 오기로
하자. 내일 오후 4시까지 학교에 온 사람은 나하고 우리 집에 같이
가는 거다. 어떠니?”
“야!”
우리는 입을 맞춘 듯 일제히 함성을 질렀습니다. 마치 하늘나라
에라도 초대된 듯 밝고 황홀한 표정이었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때까지만 해도 선생님 집에 초대받았다거나
가 봤다는 이야길 아무에게서도 들어본 일이 없었던 터였습니다.
또, 우리 선생님은 신혼생활 4개월째였다는 점도 우리에겐 은근히
호기심으로 작용했기에 더욱 그랬을 것입니다.
그날 밤, 우리 네 명은 요술나라의 왕자님처럼 대접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은 맨션아파트에 살고 계셨습니다. 농촌 우리의 집 구조
와는 너무 달랐습니다.
건강하고 훤칠하게 생긴 선생님의 남편, 우리도 그냥 따라서 ‘이
과장님, 이 과장님!’ 하고 불렀습니다.
이 과장님께 인사가 끝났을 때입니다.
민식이가 고추 부근에 두 손을 갖다 대면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요강 어딨어요? 오줌 마려운데요.”
“어이, 야단났구나. 우리 집엔 요강이 없는데 이 과장님, 어떡하
면 좋아요? 얘, 우선 고추를 꽉 잡고 이 과장님을 따라가서 해결해
야겠다.”
선생님 말씀에 아파트 안은 한바탕 웃음소리로 넘쳤습니다.
이 과장님은 우리 모두를 화장실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민식이 용변이 끝나자 좌변기 사용법도 일러주시고, 온 집 안을
다 돌아다니면서 안내해 주셨습니다. 이 과장님도 우리 선생님 못
지않게 자상하고 따뜻한 분이셨습니다.
식탁에 둘러앉아 먹은 저녁식사, 바나나를 곁들인 후식, <은하
철도 999> 녹화필름 보기, 그림자놀이, 노래 부르기 등 각별한 대
접과 놀이로 우리는 엄마, 아빠도 잊고 그날 밤을 지냈습니다.
아파트에서의 하룻밤 이야기는 이튿날 우리의 집집마다에 보고
되었습니다.
온 동네에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주었고, 개학한 후엔 우리 교실
에서 시작하여 온 학교 안에 이야깃거리로 퍼지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우리가 아파트 문을 나서려 할 때 선생님께선 선물
꾸러미를 하나씩 주셨습니다.
집에 와서 펴 보니 24색깔의 고운 크레파스였습니다.
나는 몇 번이고 껴안아 보았습니다. 볼을 비벼도 보았습니다.
“선생님, 고맙습니다.”
말하면서 상큼한 냄새가 나는 크레파스 위에 입맞춤도 해 보았
습니다.
그리고 2학기가 시작되어 미술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그 크
레파스를 내놓고 보란 듯이 신나게 그림을 그렸습니다.
방과 후, 집에 돌아와서 크레파스를 들여다보았습니다. 몇 개는
반절 가까이로 닳아져 버렸습니다. 순간 나는 눈물이 핑 돌았습니
다. 크레파스가 닳아진 것이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 받아 본 선물?’ 아닙니다. 그보다는 어쩌면 우리를 생각하
는 선생님 마음이 줄어드는 것 같아서였습니다.
‘아차, 내가 잘못했어. 이 크레파스는 쓰지 말아야지! 그래, 그래.
선생님 마음이 줄어드는 것은 정말 싫단 말이야.’
나는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 크레파스를 내 책상 서랍 깊숙이
넣어 놓았습니다. 지금까지도, 아니 더 오래오래 넣어 놓을 것입니다.
나는 지금도 선생님의 환한 웃음을 떠올리면서 이따금 그 크레
파스를 꺼내보곤 합니다.
‘이 크레파스는 영영 안 쓸래요. 선생님 마음이 줄어드는 것은
싫으니까요. 선생님, 선생님 사랑해요.’
그 이듬해 봄, 선생님은 시내 큰 학교로 전근을 가셨습니다. 좋
은 선생님으로 칭찬을 받게 되어서 영전하셨다고 어머니들이 말씀
하셨습니다.
윤이현 선생님-------------------------------------------------
∙ 전북 남원 출생.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
∙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아동문학회 지도위원.
∙ 저서 : 동시집 ≪내 마음속의 가을 하늘≫, ≪야웅이는 신났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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