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문학』에서 장편동화 "너와집 산소년"을 소개합니다.
매월 연재되는 동화이어서 항상 궁금증을 가지게 되는 동화입니다.
산소년의 활약과 애절한 가족애를 느껴보세요.
너와집 산소년
14. 아버지의 기적
축구대회가 끝나는 날 텔레비전에 찬이의 얼굴이 크게 나왔습니
다. 신문에도 가슴에 새겨진 ‘돌아와요 울엄마’란 글귀가 또렷했습
니다. 사진은 축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신문
기사에 더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암과 싸우는 환자와 그 가족들이었
습니다. 또한 한국에 와 있는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찬이는 하나의
희망이었습니다. 특히 베트남 사람들은 일을 하다가 사고로 죽은
뒤로 모두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서로 도와
주며 똘똘 뭉쳤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카페를 통해
‘엄마 찾기 운동’을 폈습니다. 그 역할에 앞장선 사람이 바로 한배
형이었습니다. 사진을 본 베트남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베트남에서 시집온 사람들의 대부분은 농촌에서 살았습니다. 배움
또한 넉넉하지 못해 컴퓨터를 배울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런 베트
남 사람들이 인터넷에 오른 찬이네 엄마를 보기 위해 컴퓨터에 관
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신문과 텔레비전에 나온 찬이의 기사는 ‘엄마 찾기 운동’에 불길
을 당겼습니다. 이제 베트남 사람들뿐만 아니라 한국 사람들도 ‘한
월’를 찾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인터넷의 힘은 대단했습니다.
찬이네 집은 갑자기 나라를 들썩이게 했습니다. 아빠는 암환자
와 그 가족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의사들은 ‘자연치유법’의 효과
에 대해 과학적으로 분석했습니다. 엄마의 사진은 베트남 사람들
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게 했습니다. 스포츠계에서는 원시적 훈련
법의 효과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축구계에서는 찬이의 타
고난 재능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런 관심거리는 곧 기자들의 특
집 기삿거리로 충분했습니다. 신문사와 방송사 기자들이 앞 다투
어 찬이네 집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방송과 신문들은 병원 치료 없
이도 ‘자연치유법’만으로 암을 물리쳤다고 했습니다. 조금은 빠르
지만 아버지의 기적이 온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기적은 아버지가
기자들에게 어떻게 말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아빠, 기자들이 인터뷰를 하자고 하면 어떡하지요?”
“글쎄다. 석 달만 살아야할 내가 일 년을 산 것만으로도 기적
아니니?”
“너무 많은 말을 하지 마세요.”
“왜?”
“아버지의 마음 다스리는 데 방해가 되니까요.”
“그럼 나 대신 네가 해라.”
“그럴 필요 없어요. 우리 사는 모습이 곧 자연치유법이니까요.”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벌써 대한방송에서 기자들이 왔습니다.
“대한방송에서 왔는데 인터뷰 좀 합시다.”
“난 당신네들에게 할 말이 없으니 보고 느낀 대로 적어 가시오.”
찬이네 아버지는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문조차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마치 적들 앞에서 굳게 잠근 성문처럼 좀처럼 열리지
않았습니다. 기자는 문밖에서 서성거렸습니다. 처마 끝에 주렁주
렁 달린 무청을 엮은 꾸러미들이 성을 지키는 병사처럼 기자들과
맞서고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이 재치 넘치는
기자 하나가 나섰습니다.
“찬이 아버지, 찬이네 엄마 소식을 가져 왔는데요.”
보고픔과 그리움에 목말라 있던 찬이네 가족이 그토록 기다리던
말입니다. 이 말 한마디는 굳어 있던 찬이네 아빠의 마음을 봄눈
녹듯 녹아버리게 했습니다.
“아니, 그게 사실입니까?”
좀처럼 열리지 않을 것 같던 문이 슬며시 열렸습니다. 기자들이
우르르 문앞으로 몰려갔습니다. 방에서 황토 냄새가 확 풍겨 나왔
습니다. 한약 달이는 냄새도 났습니다. 찬이네 아버지는 마치 원시
인처럼 맨발에 헝겊으로 앞을 가린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겉모습
만으로도 철저한 원시인이었습니다.
“찬이네 엄마가 지금 어디에 있단 말이오?”
아버지는 빛바랜 바지를 추스르며 물었습니다.
“예. 2년 동안에 베트남 출국자 명단에 ‘딘틴안’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국내에 있는 게 분명합니다.”
“그럼 어디에 있는지 모른단 말이오?”
“아마 내일쯤 이곳으로 올 수 있을 게요.”
기자는 자신 있게 말하며 문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방안 황토
벽에서 물씬 흙냄새가 풍겨왔습니다. 벽에는 주렁주렁 망태가 걸
려 있습니다. 숨은 이야기들이 망에서 술술 기어 나오는 것 같았습
니다. 기자는 부지런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찬이의 가슴은 엄마
생각으로 한껏 부풀어 오르고 있었습니다.
찬이는 신이 나서 고개를 들었습니다. 푸른 산자락이 산바람을
타고 너울너울 춤을 추었습니다. 산등 사이로 열린 파란 하늘이
가을만큼이나 맑고 파랗게 보였습니다. 하늘도 산자락도 오늘따라
더욱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온 세상이 찬이를 위해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물었습니다.
“우리 엄마가 내일 안 오시면 어떡할래요?”
“우리 대한방송사의 명예를 걸고 맹세하지.”
“우리는 방송사의 명예보다 엄마 소식이 더 중하다고요.”
“우리 방송에서 벌이는 ‘울 엄마 찾기’ 운동 본부에 연락이 왔단
다.”
기자는 방송국에서도 ‘울 엄마 찾기 운동’을 펼치고 있다고 했습
니다. 여러 사람들이 이리저리 연락하며 엄마를 찾았다고 말했습
니다.
“그럼 울 엄마한테서 직접 연락이 왔다는 말이지요?”
“엄마를 아는 사람한테서 연락이 왔지. 아마 내일이면 이리 오실
거야.”
기자의 말에 아버지는 멍하니 넋을 잃고 있었습니다. 기자는 이
런 아버지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습니다. 아버지는 최면에 걸린 사
람처럼 묻는 말에 다 대답했습니다.
“정말로 먹는 약은 없습니까?”
기자 말에 문득 의사 선생님 말이 생각났습니다. 암과 싸워 이기
기 위해서는 ‘플라시보 효과’를 믿으라고 했습니다.
“기자님. ‘플라시보 효과’라고 아십니까?”
아버지가 기자에게 되물었습니다.
“알지요. 효과가 없는 가짜 약을 환자에게 특효약이라고 주면
환자는 그 밀가루 같은 가짜 약을 먹고 병을 고친다는 말 아닙니
까?”
“그래요. 가짜 약을 먹고도 병이 낫는다는데 나는 진짜 특효약만
을 날마다 먹고 사니 병이 나을 수밖에 없지요.”
“그 진짜 약이란 것이 뭡니까?”
“산의 자연 식품은 모두 약이 되고, 자연은 나를 치료해주는 의
사가 되지요. 그래서 이미 죽었어야 할 내가 덤으로 살고 있으니
감사할 뿐이요.”
아버지는 산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푸르게 살아나는 산비탈에
서 꿩이 봄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벌써 양지쪽에 핀 풀꽃들이 향기
를 뿜었습니다. 뜰에는 벌써 옻나무가 첫 순을 내밀고 있습니다.
뻐꾹새 소리가 봄을 알리면 산골 여기저기엔 약초들이 돋아납니
다. 약초들의 새싹을 말려 일 년 반찬을 마련합니다. 겨울을 나고
도 아직도 남은 약초들이 봉지에 담겨 주렁주렁 천장에 매달려 있
습니다. 창출 싹인 삽추, 잔대 싹인 딱추, 그리고 더덕 순, 버섯
등 수많은 약초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날마다 먹는 저런 자연식이 나에게는 특효약이지요.”
아버지는 봉지들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비록 종교인은 아니었지만 나을 수 있다는 믿음만은
철저했습니다. 자연식품만을 먹었던 원시인들에게는 병이 없었다
는 믿음 때문입니다.
“자연 식품을 제때에 구하지 못하면 어떡하지요?”
“그건 제가 보여 드릴게요.”
찬이가 기자들을 바위굴로 안내했습니다. 뻐꾹새들이 오늘따라
유난히 목청을 가다듬었습니다. 시원한 바위 토굴엔 더덕, 칡, 도
라지, 산마 등을 담은 자루들이 있었습니다. 종이 봉지도 걸려 있
었습니다.
“저 종이 봉지엔 뭐가 들었니?”
기자가 종이 봉지를 가리키며 물었습니다.
“저건 아버지의 영양식이 될 고기 말린 것이지요.”
“그럼 고기를 말린 육포란 말이니?”
“예, 내 친구 누렁이가 잡은 오소리, 토끼, 꿩 육포들이지요.”
찬이는 문밖에서 꼬리치고 있는 누렁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
습니다. 사진 기자들이 누렁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오소리를 사냥
했을 때처럼 누렁이는 지그시 눈을 감으며 턱을 들었습니다. 그러
자 찬이와 누렁이는 서로 몸을 붙이며 기대었습니다.
“개가 오소리도 사냥했단 말이오?”
“했지요.”
찬이는 누렁이가 오소리를 사냥하던 때를 떠올렸습니다.
지난 가을입니다. 버섯을 따려고 산을 오르는데 누렁이가 보이
지 않았습니다. 봄에 오소리 굴을 발견한 뒤로 누렁이는 산에 오
를 때마다 오소리집 근처만 가면 어디론지 사라졌습니다. 아마
오소리 사냥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어느 날 갑자기 자갈
구르는 소리가 났습니다. 돌아보니 오소리가 누렁이에게 쫓기고
있었습니다.
‘오소리는 아버지 병에 좋다던데…….’
찬이는 이런 생각을 하며 지켜보았습니다. 그 순간 누렁이가 오
소리 뒷부분을 물었습니다. 잠시 둘은 엉켜붙었습니다. 가슴이 쿵
쿵 뛰어 그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찬이는 몽둥이를 들고
누렁이가 있는 맞은편 비탈로 달려갔습니다. 덩치는 누렁이가 더
크지만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멍 멍 멍.”
마침내 누렁이의 외침이 들려왔습니다. 메아리로 이어지는 누렁
이의 밝고 우렁찬 소리는 승리자의 외침이었습니다. 마침내 누렁
이가 해낸 것입니다.
“누렁아!”
찬이는 뛰어가 누렁이를 안았습니다. 누렁이가 꼬리를 치며 쓰
러진 오소리를 눈으로 가리켰습니다. 피투성이가 된 채 오소리는
꼼짝도 안 했습니다. 누렁이 콧등에서도 피가 흘렀습니다.
“누렁아!”
찬이는 누렁이를 안은 채 쑥을 뜯어 으깨었습니다. 푸르스름한
쑥물에서 진한 풀냄새가 났습니다. 찬이는 쑥을 콧등에 대고 한
참을 꾹 눌러주었습니다. 산골에는 약이 없어도 약초는 많았습니
다. 척척박사 할머니 때문에 찬이도 이젠 산골 의사가 다 되었습
니다.
“많이 아프지?”
찬이는 쑥을 대주며 머리를 쓸어주었습니다. 그러자 주둥이를
슬그머니 들며 누렁이는 눈을 지그시 감았습니다. 아플 텐데도 웃
고 있는 누렁이야말로 감사생활을 하는 찬이네 식구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그때 잡은 오소리 고기를 소금에 절여 열과
연기로 익힌 뒤에 말린 것입니다.
오소리 육포뿐만 아니라 물고기 말린 것도 있었습니다. 바위굴
은 곧 냉장고였습니다. 넓은 냉장고엔 먹을거리로 가득 채워져 있
었습니다.
“무슨 먹을거리가 이렇게 많니?”
“원시인들이 먹고 살던 것들이지요.”
찬이는 이렇게 말하며 빙그레 웃었습니다. 그리고 의사선생님
말씀에 따라 철저하게 원시생활을 했던 과정들을 설명해주었습니
다. 그 사이에 산새들이 노래하고 뻐꾹새도 신나게 노래를 불러
주었습니다. 어느새 서산 위로 붉은 놀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바람
에 실린 풀 향기로 공기는 상쾌함을 더해주었습니다. 벌써 해가
서쪽 산 능선에 있는 나뭇가지에 걸쳐 있었습니다. 찬란한 저녁놀
이 나뭇가지에 걸렸습니다. 황금빛 놀 속에 나뭇가지들이 왕관처
럼 빛났습니다. 산등은 석양이면 커다란 황금 왕관을 쓰고 있었습
니다.
“산골의 밤은 빨리 옵니다. 더욱이 이곳에는 등불도 없습니다.”
찬이는 걱정이 되어 말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밤 시간을 보내니?”
“일찍 자지요. 풀벌레 소리 들으면 잠이 빨리 오거든요. 특히 산
골에서는 별빛이 유난히 밝아 불은 필요 없어요.”
“그럼 나도 내일 또 오기로 하고 내려가야겠구나.”
기자는 급히 산을 내려갔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김상삼 선생님 -----------------------------------------------------------
∙ 남성고등학교, 대구교대 및 대학원 졸업.
∙ ≪매일신문≫과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 수상 : 창주문학상, 대구문학상, 계몽문학상, 도서저작상, 한국동화문학상.
∙ 저서 : 동화집 ≪느티나무가 있는 학교≫ 외 30여 권.
∙ 대구 남명초등학교 교장 퇴임 후 대학과 창작교실에서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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