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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문학 2012년 3월호, 아름다운 책앞에] 수세와 공세 - 김종상

신아미디어 2012. 4. 7. 10:32

소년문학의 편집고문이신 김종상님이 독서의 이유에 대해서 간결하면서도 깊이있게 설명을 하고 계시네요,

아이들이 이글을 읽고 책에 관심이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수세와 공세


‘바람이 오솔길을 휘적휘적 지나간다
길섶의 벌레 소리가 마디마디 끊어진다.


바람이 넓은 들을 헐레벌떡 뛰어간다.
들판의 풀꽃 향기가 갈래갈래 흩어진다.


바람이 시냇물을 철벅철벅 건너간다.
물속의 달그림자가 조각조각 부서진다.’


   이 글은 제19회 MBC창작동요제에서 중국 조선족 어린이 ‘최단’
이 노래로 불러 대상을 받은 나의 졸작 동요이다.
   오솔길을 휘적휘적 지나가고, 들판을 헐레벌떡 뛰어가고, 시냇
물을 철벅철벅 건너가는 것은 바람이다. 이 바람은 물리적인 공기
의 이동이 아니다. 태풍처럼 우리에게 휘몰아오는 외래의 문화를
말한다. 지금 우리는 그러한 외래문화를 맹목적으로 수용하다 보
니,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많은 갈등이 생기는데, 그 갈등이 곧
바람에 쏠리고 무너지는 우리 정신문화의 현상이다. 현재 우리를
향해 걷잡을 수 없이 몰아오는 외래문화는 모든 것을 휘젓고 뒤흔
들고 쓸어버리는 미친 바람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것을 막아
낼 아무런 방풍장치(防風裝置)가 없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지금
바람 부는 황야에서 이정표를 잃고 지향 없이 표류(漂流)하고 있
다. 가치관이 흔들리고 전통이 무너지고 역사적 사실마저 도전을
받고 있다. 우리 고유의 것은 모두 상처받아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산사의 적막을 깨워주는 절간 추녀 끝의 풍경소리처럼 길섶
의 벌레 소리, 들판의 풀꽃 향기, 물속의 달그림자는 우리의 정서
이다. 그런데 그것을 흩고 짓밟고 부수는 것은 외래의 정서이고
밀물처럼 몰아오는 서양의 문화이다. 나는 이 시 <바람>을 통하여
정적(靜的)이고 수세적(守勢的)인 우리 고유의 정서며 전통과 문
화가 동적(動的)이고 공격적(攻擊的)인 외래의 그것에 밀리고 있
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보려고 했다.
   전쟁으로 불타서 지금은 모두 없어졌지만 옛날에는 경기도 개평
군 천마산과 강원도 고성군 구정봉에는 적멸암이라는 이름의 암자
가 있었고, 경상북도 청도군 내연산에는 적멸사라는 절이 있었다.
지금도 강원도 오대산에는 적멸보궁이라는 불상을 모시지 않은 법
당이 있다. 여기에서 적멸(寂滅)이란 ‘죽음’을 뜻하지만 불교에서
는 세상의 온갖 번뇌에서 벗어나 열반(涅槃)에 이른다는 뜻으로서
일반적으로 고요의 우리 정서를 가장 강렬하게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에 마음속에서 끝없이 일어나
서 타오르던 욕망(慾望)의 불길이 꺼져서 완전히 사그라진 상태와
같은 것에 비유된다. 그리하여 삶의 인과(因果)를 벗어나 미(迷)한
생사를 끊은 경지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에는 좋은 것을 가지려고 욕심을 내고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애
를 태우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미워한다. 늙음을 슬퍼하고 병들
어 괴로워하며 죽음의 공포로 떨기도 한다. 이것은 살아 있는 동안
에는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고 고통이다. 그래서 불교에서
는 이 세상을 고통의 바다(苦海)에 비유하고 있다. 적멸은 생사고
해(生死苦海)의 이 바다를 찰나(刹那)로 보고 여기에서 벗어나 영
원히 열락(悅樂)을 누리게 될 이상향인 피안(彼岸)에 도달하는 것
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현세(現世)를 살아가는 일은 오
욕칠정(五慾七情)의 불길에 휩싸여 온갖 고통으로 몸부림치는[動]
찰나의 현상이다. 그렇게 세상을 단숨에 삼킬 듯 기세 좋게 활활
타오르던 불길도 순간에 꺼지고 나면 모든 것이 한 줌의 재(灰)로
고요히 가라앉는다. 불길이 꺼진 뒤에 오는, 가라앉은 재처럼 오는
고요함[寂滅]의 경지를 불변의 영겁(永劫)으로 드는 현상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고해는 찰나로 끝나지만 적멸은 사람의 본디 성정
인 영겁의 고요로 향하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삶과 죽음, 격
동과 고요의 세계를 찰나와 영겁이란 말로 대비시킴은 매우 추상
적이지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찰나는 가장 짧은 순간을 나타내는 말로서 일념(一念)이라고도
하며, 지금의 시간 단위로 따져서 75분의 1초 정도라고 계산한 과
학자가 있지만 실제는 계산할 수 없는 가장 짧은 순간을 상징적으
로 나타낸 말이다. 아주 긴 시간을 나타내는 겁(劫)이란 것도 비유
예로 밖에 말할 수 없는 무한한 세월을 의미한다. 즉 세상에서 제
일 단단한 돌로 된 아주 큰 산[石山]이 있는데, 이 산이 3년마다
한 번씩 스치고 지나가는 천녀(天女)의 치마꼬리에 닿아서 다 닳아
없어지는 기간이 일 겁(一劫)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반석겁(盤石
劫)이라고 한다. 또 세상에서 제일 큰 곳간에 가득찬 겨자씨(芥子)
를 장수천인(長壽天人)이 100년마다 한 개씩 꺼내 갈 때, 그렇게
해서 겨자씨가 다 없어지면 그 시간이 일 겁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겨자겁(芥子劫)이라고 한다. 이러한 겁이 모여서 소겁, 중겁, 대겁
으로 되고 그 대겁이 한없이 겹쳐서 영겁(永劫)이 된다. ‘삶은 순간
이나 죽음은 영원이다.’라는 말이 이러한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찰
나에서 벗어나 영겁의 세계로 든다는 적멸(寂滅)이란 말의 뜻을
사전적으로 풀이하면 ‘고요할 적(寂)’에 ‘멸할 멸(滅)’이니, 고요함
마저 없어진 상태로, 고요의 극치를 말한다. 우리의 정서는 본디부
터 이러한 고요의 세계(靜寂, 寂滅)를 숭상해 왔기 때문에 옛 조상
들은 적멸이라는 단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왔다. 지금은 이러
한 고요의 우리 정서가 소란하고 격동적인 서양의 정서에 밀려나

으깨어지고 있다. 사람들의 마음이 들떠 있고 사회가 혼란스러운
것이 이러한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길섶의 벌레 소리가 마디마디 끊어진다.
들판의 풀꽃 향기가 갈래갈래 흩어진다.
물속의 달그림자가 조각조각 부서진다.’


에서 풀벌레 소리가 끊어지는 것도, 들꽃 향기가 흩어지는 것도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이다. 물에 비친 달그림자만큼 신비롭고 고
요한 것도 없다. 그 신비로움과 고요가 산산히 부서지는 것은 바람
이 휘젓기 때문이다. 고요한 세상을 흔드는 것은 바람이다. 우리의
정서와 전통과 문화를 흔들고 짓밟는 것은 외래의 바람이다. 여기
에 맞서 우리 자신을 흔들림 없이 지키려면 우리의 정서를 잃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세계 속에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힘이고 까
닭이다. 이런 문제는 좋은 독서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
야 한다.

 

김종상  -------------------------------------------------------------------

본지 편집고문,

1958년 ≪새교실≫소년소설 입선,
1960년 ≪서울신문≫신춘문예 동시 당선.

∙ 동시집 ≪흙손엄마≫, 동시조집 ≪꽃의 마음≫등 27권의 동시집.

∙ 대한민국문학상 본상, 대한민국동요대상, 대한민국5·5문화상 등.

∙ 현재 새문학신문 주필, 한국불교청소년문화진흥회 부이사장,
  한국문인협회 고문, 한인현장학상 운영위원장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