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소병근의 작품세계 및 작품에 대한 감상평을 이승우님이 『표현』에서 소개합니다.
그림을 통해 사물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교감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서정적 낭만의 리얼리티
― 화가 소병근의 작품세계
대상을 그린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관찰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이 때 대상에 대한 관찰이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 뿐 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봄으로써 사물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아니
대상과 나와의 경계 자체를 허물어 버림으로 주체와 객체가 하나임을
인식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행위는 대상에 대한 공경과 지극함에서 비롯된다.
무릇 나와 관계 맺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지극함이야 말로 대상
과 나와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고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도록 하며 사
물들이 가지고 있는 본질을 헤아릴 수 있는 지혜를 제공해 준다.
<소중한 재산>
따라서 그린다는 것은 지극함을 통하여 새로운 창조를 경험하는
일이다.
또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 세상은 참으로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반면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에게 그저 고난의 바
다일 따름이리라.
그림도 그렇다.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낙관적이고 긍정적
인 사고의 소유자일 가능성이 높다.
화가 소병근은 무한히 긍정적인 시각으로 사물을 보고, 또 내면을
응시한다. 자연과의 묵시적 교감과 대화로 이루어지는 풍경화나 인물
화가 있는가 하면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추상화도 있다.
그는 다양한 장르를 아무런 주저없이, 자연스럽게 섭렵하고 표현
한다. 재현적 묘사 속에서 내밀한 자연의 소리가 감지되는 그림이
있는가 하면 밀도 높은 테크닉으로 이루어지는 추상화가 또한 압권
이다.
조선 말 우리나라의 문인화단을 추사 김정희와 함께 이끌어 갔던
우봉 조희룡은 그림의 즐거움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그림은 즐거움을 위하여 그린다. 그려서 즐겁고 보아 즐거워야 한
다. 강태공들에게는 물고기를 낚아 올리는 것이 즐거움이듯 화가들에
게는 붉은 물감 연지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즐거움이어야 한다.”
화가 소병근의 그림에서는 부드럽고 따뜻한 자연의 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말하자면 갈등이 없는 조화의 세계다.
물론 그림을 그리는데 갈등과 고통이 없는 화가가 어디 있으랴만
소병근의 그림에서는 갈등보다는 세상을 보는 긍정적인 시각과 따뜻
함이 물씬 풍긴다.
그는 수채화를 주로 그린다. 수채화의 진정한 의미는 채색을 물에
풀어서 그리는 그림이라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포도주의 고향>
<오스트리아의 성곽>
소병근의 수채화는 대상의 형태를 단순화시키면서 내적 감성과 이미
지의 극적 표현에 주력하는 다양하고 변화된 조형상의 특징을 보여준다.
그것은 「오스트리아의 성벽」이나 「노이지들러 호수」 등 거의 모든
작품에서 보여주듯이 서정적 감성의 리얼리티가 점차 두리뭉실해지면서
사물이 지닌 내적 진실, 즉 대상의 본질을 묘사하고자 하는 심화된 시
각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다.
흔히 수채화라고 하면 맑고 담백하면서도 신선한 느낌을 주는 투명
수채화를 지칭하는 것이 보편적인 추세라고 할 수 있다. 이전의 전통
수채화가 르네상스 시대부터 가장 많이 사용되어 왔으며 일반적으로
회화를 전공하는 대부분의 작가들 중 수채화를 그리지 않은 작가가 거
의 없을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닌 까닭이다.
그러나 수채화는 가장 일반적인 표현의 장르이면서도 회화적 특성
상 고도의 테크닉이 필요한 조형분야이기도 하다.
<오케스트라>
고전적인 투명 수채화의 특성이 흰 종이 위에 비교적 많은 물과 채
색안료를 사용해 그려지는데 비해 단번에 칠해지고 흡수되는 즉발성과
문인화적 일회성이 주류가 되는 까닭이며 겹쳐 칠할 때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하여 천변만화의 변화를 보이는 것은 능숙한 작가라 할지라도 객관적
역량이 요구되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이유이다.
따라서 작가는 이러한 정통 수채화의 특성을 적절히 활용하면서도
점차 불투명 안료의 혼합을 통하여 새로운 조형 실험의 기술성을
탐구하는 변화된 미감을 간직함으로써 대상의 외형적 모습이 아닌
내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하겠다.
그동안 작가는 상상에 의한 이상적 풍경화나 인물화 또는 추상화를
보여 주었는데 이는 회화를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생생한 정경들
을 표현의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는 데서 비롯되고 있다.
그의 작품 「오케스트라」의 경우는 제목 자체가 추상이다.
제목 자체가 추상인 것은 많다. 「벌거벗은 여자」나 「초가지붕 위의
박 넝쿨」 같은 구상 명사에 비해 「꿈」이나 「사랑」 등은 추상명사일
수밖에 없다.
여기 「오케스트라」에서는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을 총체적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오케스트라 음악을 듣고 그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
이다.
대상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깨뜨리고 한없이 겸손한 시선으로 대상
과 나와의 경계를 무너뜨리려는 시도이다. 대상과 겨루고 대상을 자신
의 의지대로 부리려기보다는 대상과 조화를 이루고 대상에 깃들어 대
상과 하나되고자 하는 마음이다.
다른 풍경화와는 달리 이 작업은 대상을 정밀하게 묘사하기 보다는
흔적과도 같은 몇 개의 면으로 단순화 한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순수
한 눈과 마음으로 사물을 보고 듣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때의 단순함은 미당의 「국화 옆에서」처럼 ‘돌아와 거울 앞
에 선 내 누님 같은 꽃’으로서 온갖 시령과 고난을 이겨낸, 그래서 한결
단아하고 깊어짐을 뜻한다.
<속삭임>
젊음의 뒤안길을 걸어온 사람으로 이제 얻는 것보다 버리는 것의
어려움을 아는 사람만이 찾을 수 있는 경지이다.
소병근은 국제적인 작가다. 국내외 개인전을 60회나(오스트리아 34회,
한국 13회, 크로아티아 1회, 타이완 1회, 헝가리 7회, 영국 1회, 일본 2회,
케냐 1회) 하고, 또한 국내외 단체전도 200회 이상을 해냈으니 말이다.
또한 건축공학 박사로서 서해대학에 20여 년간 봉직하고 정년퇴임
하였으며 디자이너 협회 회원전도 43여회나 참여한, 그야말로 경계가
없는 예술 활동을 해온 전천후 작가이다.
영어 속담에 “Stop and smell the roses.(잠시 멈추어 장미꽃 냄새를
맡아보라.)”라는 말이 있다.
이제 우리 잠시 멈추어 전천후 예술가의 향기를 맡아 봄이 어떻겠
나?
<양귀비들의 잔치>
이승우 ------------------------------------------------------------------------
개인전 16회,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
전북예술상 수상.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및 각종 미술공모전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
저서 : ?색채학?, ?현대미술의 이해와 감상?, ?아동미술?, ?미술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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