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선님이 《표현》에 상처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상처.... 항상 감싸안아야 할 마음의 흔들림이겠죠.
상 처
항아리가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하얀 달의 파편들이 바닥에 꽃잎처럼 흩어졌다. 유난히 정성을 들인
달항아리였다. 십일월 전시회를 앞두고 달항아리 다섯 점을 구울 예정
이었다. 다른 작품을 구우면서 달항아리 한 점씩을 만들었다. 오늘 세
번째 작품이었다.
무언가 예감이 이상했다. 준은 한 번도 작품을 꺼내다가 떨어뜨린
적이 없었다. 그는 항아리를 떨어뜨린 거칠거칠한 두 손바닥을 나무라
듯 오래오래 들여다보았다. 이상하다. 무언가 불안한 기운이 감돈다.
그는 아직도 따끈따끈한 가마 안의 그릇들을 꺼내놓은 뒤 쉼방에
들어가 소파에 덜렁 누워버렸다. 쉼방은 열 평 남짓한 공간에 책상 하
나가 있고, 낡은 소파 하나를 얻어다 놓은 곳이었다.
준의 공방은 서른 평정도 되는 공간으로 작업대 세 개와 가마까지
놓여있어 작업실로는 조금 부족한 공간이었다. 사방 벽에는 가마 있는
쪽을 제외하고 그릇과 다기들이 촘촘히 도열하고 있다. 쉼방의 벽에도
큰 항아리들이 꽉 차 있었다. 쉼방 바닥은 사방에 수건이며 다기포장
박스묶음, 아무렇게나 벗어던져진 티셔츠 등으로 어수선했다. 전엔 꽤
깔끔하던 때가 있었다. 아내 정이 곁에 있을 때.
가을벌레들이 쏴아쏴아 창밖 풀숲에서 울어댔다. 몇 년째인가…….
그는 빨리 이 좁은 공방을 벗어나고 싶었다. 십년 전 이곳에 빈손으로
왔을 때는 참으로 막막했었다. 그때 도예학과 교수인 대학선배로부터
이 공간을 얻은 것은 큰 행운이었다.
선배는 작업실을 지어놓고 가마도 들여놓았으나 대학에 작업공간이
있어 놀리던 것을 까마득한 후배에게 거저 쓰라고 선심을 썼다. 나중
에 알고 보니 지원금을 받아 지은 거라서 작업실을 사용하지 않으면
돌려주거나 철거해야 할 판이었다. 어쨌거나 그에겐 거저 작업실이 생
긴 것이다.
준은 무작정 그릇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무도 오지 않는 곳, 아무도
모르는 곳, 아무도 모르는 존재가 아무도 모르는 그릇들을 빚었다. 삼
년여를 그렇게 그저 흙만 만지다보니 모습이 귀신형용이었다. 게다가
돈이라곤 없는 빈털터리여서 굶거나 라면으로 때우기 일쑤였다. 그때
까지는 그러니까 모아둔 돈도 없고, 수입이 없었으므로 간간이 어머니
의 도움으로나 빈한한 끼니를 이어갈 수 있었다.
죽어라 그릇만 몇 년을 만들다 보니 제법 도자기 그릇들이 쌓였다.
그리고 어느 때부턴가 하나 둘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고, 구워놓은 그
릇들도 팔리기 시작했다. 그때 비로소 그는 쌀을 살 수 있었다. 빈손으
로 들어온 지 사년 만에 준은 비로소 도예가라는 이름을 얻었다.
만 사년을 넘기면서 비로소 허리를 펴고 공방 뒤로 우뚝 솟아있는
산의 뒷모습을 보았다. N산이었다. 까치봉의 뒤 자태가 손으로 어루만
져지듯 가깝게 올라 있었다. 늘 그 산이 있었는데, 그 산 덕분에 공기
는 달콤하고 바람은 신선했으며 새들의 노래가 창창했을 텐데 이제야
보이는 것이었다.
사실 공방은 시 외곽에 있는 제법 큰 식당의 마당 위쪽에 위치해
있었다. 식당의 마당을 지나 몇 발짝 올라드는 언덕에 있었으므로 한
울안에 있는 셈이었다. 너른 마당의 정원에선 때때로 바비큐 파티가
열렸다. 그 식당에 예약된 손님들이 올 때면 주인 L은 늘 고기를 굽기
위한 준비를 했고, 고기를 굽느라 바빴다.
모임이 낮에 있거나 이른 저녁이면 손님 중 한두 명이 공방을 기웃
거리거나 가끔 작은 그릇들을 사기도 했다. 그럭저럭 몇 년이 지나면
서 입소문이 사람들을 불러준 셈이었다.
“야, 준아. 내가 손님들한테 선전했다. 곧 사람들이 올 거다. 두고
봐. 내 덕분에 니 그릇들 좀 팔릴 테니.”
사장 L은 그렇게 생색을 냈다. L의 말대로 식당 손님들의 입소문이
효과를 낸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쓸데없이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많아
차츰 귀찮아졌다. 그때부터는 늘 열어놓던 공방 문을 닫거나 잠가놓게
되었다.
그때쯤 그는 P시의 여러 예술단체에 속해졌고, 많은 사람들과 알고
지내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오늘까지 왔어.’
그는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참 어려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힘들
다는 생각보다는 하루 빨리 무언가를 확립하고 도예가로서 당당하게
공방을 운영하고 싶은 욕구가 시련을 이기게 하는 힘이 되었을 것이
다. 젊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홀로 삼년을 버티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선천적으로 몸이 약해서
더운 여름날엔 쓰러진 적도 부지기수였다. 공방은 조악한 조립식 건물
이어서 여름에는 무척 더웠고, 겨울에는 추웠다. 우뚝 솟은 산봉우리
아래라 추위는 더욱 힘든 혹독함이었고 겨울은 길기만 했다.
허리를 펴고, 사방을 둘러보고 사람들과 알고지내며 단체 활동을 시
작하던 그때 서예가 유가 어떤 여자를 소개시켜 주었다. 연애경험도
없고 역시 돈도 없던 때였다. 차를 한대 주문하고 유치원이나 초등학
교에 도예체험을 나가기 시작하던 때이기도 했다. 흙과 도구를 싣고
다니려면 차가 필요했는데, 돈이 없던 그는 어머니의 도움을 얻어 녹
색 스타렉스를 구입했다. 여자 경험도 없고 돈도 없으며 남 앞에서는
말도 잘하지 못했던 그는 역시 자신처럼 순해 보이는 여자를 만나 석
달 만에 결혼을 했다.
지금 그의 아내는 세상에 없다. 결혼한 지 이 년 만에 임신중독증에
걸린 채 아이를 낳다가 숨을 거두었다. 조산이었다. 아이는 인큐베이
터에 있다가 나왔으나 엄마를 따라 하늘나라로 갔다. 좌절할 틈도 없
었다. 그는 다시 음지의 산자락에 있는 자신의 둥지 안에 파묻혔다.
그렇게 다시 이년이 흘러갔다.
아내 정은 순하고 말이 없는 여자였다. 그 자신도 남 앞에서는 말도
잘 못하던 사람이라 그런 점에 약간의 불만은 있었으나 고분고분한 아
내의 성격에 위로를 받는다는 생각으로 살 수 있었다.
작은 평수의 아파트를 얻고 아내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알뜰하게
싸주는 도시락을 먹는 기쁨도 있었다. 비로소 공방에서 새우잠을 잘
필요가 없었다. 매일 온종일 물레를 돌리고 흙을 주무르던 것도 작업
시간을 정하고, 보통사람들처럼 일정한 시간에 집에 돌아가는 것으로
바뀌어갔다.
허나 그런 시간은 너무도 허망하게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아내가 없는 집에 돌아갈 수 없어 한동안 옛날처럼
공방에서 칩거하듯 지내기 시작했다. 어머니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공방으로 찾아와 사정하듯이 제발 정신 차리라고 했지만, 그는 이곳에
서 처음 시작했을 때의 그 맨손의 막막함보다 더 막막한 트라우마 속
에 빠진 자신을 느꼈다.
‘산이 힘이 되어주었어.’
그랬다. 산이 힘이 되어주었다.
아내를 보내고 다시 혼자가 된 뒤, 손을 놓고 N산의 뒷자락을 타고
올랐다. 그저 오를 뿐이었다. 올라가면 내려오고, 올라가면 다시 내려
왔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나니 저 뒤쪽으로 턱 버티고 있는 N산의 자
태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공방 주변의 나무들이 몇 년 사이 많이 자라
있었다. 식당은 여전히 주말이 되면 바비큐 냄새가 가득 차고, 사람들
로 시끄러웠다.
준은 다시 아이들을 위한 수업준비를 하고, 세 개의 작업대에 스무
명 분의 흙을 준비하고 의자를 배치했다. 다시 나머지 시간은 온통 물
레를 돌리거나 흙 반죽을 하는데 바쳤다. 그는 흙만이 자신을 구원해
줄 거라고 믿기 시작했다. 오래 전 처음 맨몸으로 이곳에 들어왔을 때
무조건 믿었던 것도 흙이었다.
사람들이 다시 공방에 왔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먼 곳에서도 그의
공방의 그릇들을 보러 오거나 배우기 위해 왔다. 도예를 배우기 위해
오는 사람들은 주로 아이를 다 키운 엄마들이었고, 친구들 몇 명이 같
이 오거나 아이들과 같이 왔다. 국악원이나 회사 같은 데서 단체로 오
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들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왔고,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는 그런 여자들이 늘 공방 작업대에 있었다.
어느새 그는 사람들, 특히 삼사십 대의 여자들 속에 있었다. 그녀들
은 그의 소식을 들었고, 안타까워했으며, 같이 아파했기 때문에 늘 간
식거리나 반찬 등을 가져다주었다. 때때로 그는 그녀들이 사는 밥도
먹었다. 처음엔 사양했으나 차츰 익숙해졌다. 때로는 공연 때문에 먼
도시에서 온 같은 나이 또래의 무용수와 전화를 주고받기도 했다. 주
로 활달한 성격이었던 그녀가 전화를 했고, 그는 그저 전화를 받는 정
도였지만, 그녀가 그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느낌은 갖고 있었다. 그
러나 그 정도였다. 그는 아무에게도 관심을 가질 수 없는 깊은 우물
속에 있었다.
그렇다 해도 사람들 특히 주변의 여자들에 둘러싸여 지내는 것은
사실이었다. 사십대 중 후반의 그녀들은 그를 보호하려 했고, 자식이
나 동생처럼 보살피려 했다. 때때로 그런 여자들이 거추장스럽고 짜증
이 날 즈음 문화센터의 강의를 맡게 되었다. 그는 그녀들을 모두 센터
의 수업에 보내버렸다. 공방에서 따로 수업은 하지 않으니 문화센터
강좌를 신청하라고 했더니 일이 수월해졌다.
다시 그는 아이들이 체험하러 오는 시간을 빼고는 혼자 작업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상처란 쉬 아무는 것이 아니었다. 인생에 가장 큰
상처를 경험한 그로서는 자신의 밖으로 한 발짝도 내디딜 용기가 없었
다. 다만 삶의 형태를 띤 하루하루의 일과를 그저 시간표대로 처리해
나갈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년 전 가을이었다.
십일월 십일일 오후 네 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시내에 나갔다가
호숫가를 휘돌아 나있는 도로를 타고 산 아래 공방에 도착해 막 원통
형의 흙을 두드리던 참이었다.
“들어오세요.”
그는 흙 주무르던 일을 멈추지 않고 다소 퉁명스럽게 말했다. 문고
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나더니 멈추고 다시 노크소리가 났다. 이 시간
에 올 사람이 없었다. 대부분 아는 사람들은 전화를 하고 왔다. 이렇게
불쑥 오는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손에 흙을 묻힌 채 뚜
벅뚜벅 걸어가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제비꽃 같이 발랄한 여자가 싱긋 웃으며 문밖에 서 있었다. 그는 깜
짝 놀라 문고리를 잡은 채 멍하니 그녀를 쳐다봤다. 그가 그냥 서 있자
그녀가 물었다.
“들어가도 돼요?”
그제야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났다. 보랏빛 가죽재킷을 입
고 긴 머리가 곱슬거리는 눈이 큰 여자였다. 한눈에 공방을 드나드는
여자들하곤 뭔가 다른 여자라는 게 느껴졌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위
축되었다. 그녀는 뭔가 압도하는 게 있었다. 모든 상황을 금세 자신의
분위기로 바꿔버린다고나 할까. 그는 첫눈에 ‘그녀’를 느꼈다. 그녀의
존재를.
“앉아도 돼요?”
그녀는 계속 물었고 그는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간신히
물었다.
“어떻게 오셨나요?”
“네. 제가 테라코타를 몇 점 만들었는데요. 굽질 못했어요. 저 식당
이층에서 잠깐 커피를 마셨는데 도자기 조형물이 있더군요. 물었더니
자기가 만들었대요. 주인이. 아, 나도 테라코타 구워야 되는데, 했더니
바로 여기 코앞에 공방이 있다고, 거기 가서 구우면 된다고, 불이 켜져
있는 걸 보니 선생님이 계신 것 같다고 해서 쏜살같이 달려왔어요.”
그녀가 숨도 쉬지 않고 말했다.
“그러시군요……. 차 한잔하시겠어요?”
그녀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그렇게 왔다. 이 년
전 가을이었다.
준은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 몸이 가위에 눌린 듯 무거웠다. 자꾸
감기려는 눈꺼풀을 문지르고 가마 앞의 깨진 항아리 파편을 줍고 있는
데 느릿한 재즈 음이 들렸다. 자신의 휴대폰이 울리는 것도 모르고 준
은 멍하니 그 귀에 익숙한 재즈연주를 듣다가 마침내 전화가 왔다는
것을 깨닫고 작업대 위에 올려져 있던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서준 씨세요? K시의 119입니다. 지금 ○○에 있는데요. 유한나 씨
가 약을 먹어 응급상황입니다. 병원으로 출발했으니 K병원으로 오세
요. 유한나 씨가 연락해 달라고 해서 연락드리는 겁니다. 방금 유한나
씨는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
준은 항아리를 떨구듯 휴대폰을 바닥에 떨구었다. 아파트에 갔구나.
거기서, 왜? 준은 꼼짝 할 수 없었다. 항아리가 깨졌어. 한나가 죽으려
고 해…….
한나를 만난 건 사흘 전이었다. 그녀는 K에 전에 살던 아파트가 있
지만 머물지 않고, 이곳 P에 집을 얻어 살고 있었다. K의 아파트엔 그
녀의 짐만 있을 뿐 가지 않는 곳이었다. 그녀와 헤어진 남편은 중국으
로 떠났다고 했다. 그녀는 아파트를 팔려고 내놓은 지 오래였다. 조만
간에 짐도 다 정리할 예정이었다. 그녀는 자신에 대해서 잘 얘기하지
않았지만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두어 번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
지 입술을 깨물며 가만가만 얘기했었다. 그것은 참 말하기 힘든 얘기
였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난 매 맞고 산 여자야. 바보같이 맞고 살았어. 헤어질 생각도 못하
고. 일 년 전 헤어졌어. 남편은 중국으로 가면서 아이도 데려갔어. 위
자료 조금 많이 받고 아파트 내가 가졌어. 남편은 부자거든. 아니 시댁
이 부자지. 이혼을 안 해줘서 법원에 가서 끝냈어.”
얼마나 삶이 고통이었을까. 아내와 아이를 보낸 나의 아픔과 어떻게
다른가? 준은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상처한 남자와 매 맞고 산 여자의
아픔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 년 전 십일월의 열 하룻날 준에게 온 여자는 종달새처럼 명랑하
고 쾌활했었다. 차를 마시고 준은 이리 와보세요, 저리 와보세요 하면
서 그녀를 데리고 진열되어 있는 다기와 그릇들을 보여주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아무도 들여다 볼 수 없는 쉼방의 큰 항아리들도 일일
이 설명을 해주었다.
“참 친절하네요.”
그녀가 그렇게 말할 정도로 준은 섬세하게 그릇들을 소개해 주었다.
“나랑 저녁 먹을래요? 어차피 나도 혼자 저녁을 먹을 건데 내가 살게
요.”
준은 몇 번 사양하다가 그녀와 함께 근처 쌈밥집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테라코타를 보고 싶네요.”
“그럼 우리 집에 가볼래요? 집이 멀지 않아요. 친구네 친정집을 내가
사서 리모델링한 작은 기와집인데 거기 작품이 있어요. 친구 덕분에
이곳으로 흘러들어왔죠.”
그녀는 원래 K시 사람이었다.
준은 그날 밤 작업도 포기하고 그녀와 저녁을 먹고 그녀의 집에 가
서 테라코타를 보았다. 집 뒤로 포장된 마을길이 나 있는 일자형 기와
집은 원룸형태로 리모델링되어 아담한 거실과 작은 방 두 개와 부엌,
화장실이 있었고, 거실엔 온통 벽에 책이 꽂혀 있었다. 거실 한쪽에
이젤과 화구들이 널려있었고, 테라코타는 그 한쪽 진열대 위에 네댓
개가 놓여있었다.
“실은 이 테라코타는 배우면서 만든 것들인데 굽기 전에 그만 두어
서 그냥 이대로예요. 지금 만들고 있는 건 이거…….”
테이블 한쪽에 작은 손물레가 있는 것을 미처 보지 못했는데 거기
비닐에 덮인 작품이 있었다. 제법 큰 인물 한 쌍이었다.
“오늘 밤새워 작업할 거예요. 실은 밤에 잘 자지 못해요. 오랫동안
그랬는데 지금도. 이곳의 어둠도 아직 익숙해지지 않아서 밤을 새기
일쑤죠. 시골집들은 마당이 깊어서 뒷집의 불빛도 잘 보이지 않아요.
자동차로 오 분이면 시내에 가는 거리라 그리 시골스럽지도 않은데 밤
엔 너무 조용해서 좀 아직도 힘들구요.”
그녀의 집에 머문 건 잠깐이었다. 그러나 참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았다. 그렇게 편하고 자연스러운 여자는 처음이었다. 참 편안하
다……라고 생각하면서 준은 그녀의 집을 나와 산 아래 호숫가를 휘돌
아드는 곳까지 난 새 도로를 탔다. 자꾸 차를 돌리고 싶었다.
준은 공방으로 돌아와 비닐에 덮인 흙을 꺼내다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다시 흙을 비닐로 덮었다. 마침 전화한
친구가 있어서 만나 술을 마시고는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녀, 한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새벽 두 시였다. 하지만, 밤새워 작업을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밤새워 작업하신다고 해서 전화했어요. 친구와 술 한잔하고 들어가
는 길입니다.”
“아, 놀랐어요. 새벽 두 시에 전화벨이 울려서…….”
“아까 어두워서 집을 잘 보지 못했는데 낮에 한번 가보고 싶네요.”
“그래요? 그럼 난 낼 오전에 좀 자야하니까……. 일어나서 전화 할
게요. 그때 오세요.”
새벽 두 시, 빈 집으로 들어가기 싫어하는 자신을 보면서 그는 그녀
도, 나도 혼자 자야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쓸쓸함이 가슴을 가
득 채웠다.
그는 어찌할 줄 몰라 망설이다가 쉼방에 들어가 얼른 옷을 갈아입었
다. 구월의 중순을 넘기는 중이었다. 스트라이프 체크 남방을 입다가
그는 멈칫 했다. 한나가 사준 옷이었다. 목이 메었다.
‘아아, 한나, 무슨 일이야?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무슨 일이
라도 생긴 거야? 내가 모르는. 중국에서 무슨 전화가 왔어? 아이 때문
에? 내 생각은 안 했어?’
그는 속으로 수도 없이 한나를 향해 뇌었다. 마치 그녀가 듣고 있는
것처럼. K시까지 달려가야 한다. 한 시간이면 도착하겠지만 슬픔에 가
슴이 찢기는 듯한 고통이 점점 커져갔다. 준은 공방의 문을 잠그고 차
에 올라 빠르게 마당을 내려갔다.
‘진정해. 진정하자……. 그녀는 살아날 거야. 제발 날 생각해줘. 한
나…….’
해가 지기 시작했다. 호숫가를 휘돌아 달릴 때 꼴깍 산마루 뒤로 해
가 지는 것이 보였다.
제비꽃처럼 환한 그녀가, 모차르트 음악처럼 명랑한 그녀가 깊은 우
울에 빠져 힘들어 하는 것을 처음 보았을 때 준은 너무 놀라웠다. 평상
시의 모습과 완전히 딴 판인 어둠이 가득 채워진 눈빛은 슬픔으로 강
처럼 일렁거렸다.
그녀가 공방에 두 번째 온 날 준은 그녀의 집에서 잤다. 그날 오후
한나는 테라코타를 가지고 왔고, 머그잔을 두 개 만들었으며, 저녁이
되자 같이 시내에 나가 술을 마셨다. 그날 밤 술에 취해 그녀의 집 거
실 바닥에 누워 있을 때 그녀는 말했다.
“나 있잖아요. 나는 매 맞는 아내였어요. 바보같이 십년을 맞고 살았
어요. 작년에 헤어졌는데, 헤어지고 나서 정신적 후유증이 심해 올 봄
까지도 상담을 받았어요. 내 친한 친구 하나가 친정집이 여기 있어서
봄에 그 집을 고치고 들어왔어요. 상담을 받으면서 치유에 도움이 된
다고 요가, 명상, 수묵화, 헬스……. 다 해봤고. 제일 최근에 한 것이
테라코타예요. 그리고는 멈췄어요. 흙을 만지다가 가끔 욱, 해서 부셔
버리는 통에…… 누가 또 그러더군요, 도예를 해봐라…… 그래서 테라
코타도 굽고 도자기도 한번 해보려고 했는데 선생님을 만난 거예요.”
준은 깜짝 놀랐다. 제비꽃처럼 환한 여자가 매를 맞고 살았다니……
믿기지 않았다. 준은 한나를 끌어당겨 안고 등을 쓰다듬었다.
“그런 줄 몰랐어요. 어떻게 살았어요? 왜 바로 헤어지지 않고…….”
“빚이 있었어요. 친정집에 돈이 많이 갔죠. 처음부터 때린 건 아니었
고 삼년쯤 지나면서 그 사람 의부증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이혼하고
싶었지만 워낙 돈을 많이 썼기 때문에 조금만 조금만 하다가 십년이
되어버렸어요. 아버지 사업 망하고 집도 뺏기고 여동생 두 명 가르쳐
야 했고, 돈이 필요했죠.”
한나의 고백이 두 사람을 가깝게 했을까. 아니다. 그녀가 처음 온
날 밤 새벽 두시에 그녀에게 전화하면서 그때부터 준은 그녀생각에 빠
졌다. 다음 날 오후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을 때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집으로 달려갔고, 밤새 만들었다는 꽤 큰 크기의 테라코타 인
물상을 보고, 작은 데크에 앉아 두건을 쓴 그녀와 앞마당을 내다보며
커피 한잔을 마실 동안 온통 그녀생각 뿐이었다.
일자형 기와집의 한쪽 앞을 작은 마루와 연결시켜 데크를 만들어
놓고 낮은 난간을 설치한 것이 꽤 아기자기한 공간이었다. 유일하게
내가 만들어 달라고 부탁한 곳이라고 그녀는 설명했다. 꽤 높은 담장
이 집 뒤쪽과 옆으로 올라있어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는 집이었다.
그녀의 집 뒤로 마을길이 있고, 띄엄띄엄 집들이 이어져 있었다.
왼쪽은 공터처럼 빈 밭이고 앞쪽도 저 멀리까지 빈 밭이었다. 마당
끝에는 빙 둘러서 나무들이 제법 서 있었다. 빈 밭 너머로 마을로 들어
오는 큰 도로가 보였다. 마당을 별로 가꾼 흔적은 없고, 다만 노랗게
퇴색해가는 잔디가 깔려있고 나무 밑을 따라서 약간의 화단 같은 모양
새가 길게 있었는데 거기 구절초들이 애잔하게 피어있었다. 단풍 든
나뭇잎들이 떨어지거나 바람에 소슬하게 날리던 날이었다. 밭 너머 큰
도로까지 온통 가을빛이 가득했다.
“내년엔 뭔가 야생화를 좀 심어보려고 해요. 올해는 신경을 못 썼고.
좀 그렇죠?”
“아니 그냥 이대로 좋은데요. 가을이라 그런지.”
“그럴 거예요. 가을이라 그저 좋은.”
그녀는 가을 같은 미소를 지었다. 그날은 준의 차를 타고 시내에 나
가 저녁을 먹고 일찍 헤어졌다. 얘기로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공방에
가겠다, 뭐 그 정도였으나 준에게 이미 그런 것쯤은 상관이 없었다.
어쩌면 그 이상으로 그녀를 만나게 될 것이라는 알 수 없는 확신이
생겨났다.
준의 생각대로 그녀가 공방에 자주 온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
는 금세 그의 곁에 머물게 되었다. 그의 마음속에 쑥 들어와서 늘 함께
있었다. 일주일 후 그녀의 집에서의 동침이 시작이었다. 어쩌다 이렇
게 시원시원하고 매끈하며 매력적이고 영민한 여자가 어떻게 십 년을
그렇게 살았단 말인가……. 믿기지가 않았다. 그녀는 그것을 견뎌야만
할 이유가 없었다.
“단지 돈이 얽혀 있었어. 나는 그것 아니면 얼마든지 뛰쳐나올 수
있었어. 아이도 아니었다고…….”
“…….”
“나는 마흔둘이야.”
준은 서른일곱이었다. 그녀는 마흔둘로 보이지 않았다. 반대로 준은
마흔 살로 보였다.
“마음속의 에너지 때문일 거야. 난 한 번도 불꽃처럼 타보지 못했거
든. 너무 힘들게 살았어. 끝없이 저 가마에 불을 땠지만 나 자신은 그
저 숯이 돼버린 것 같아. 별로 웃어본 적도 없는 것 같아. 그래서 내가
자기보다 들어보일 거야.”
준은 팔 년이라는 세월의 지난함을 생각하면서 말했다. 그는 늙는다
는 것에 저항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여덟 해를 그렇게 살아왔으므로.
그저 자신의 줄을 타고 있을 뿐이었다.
“참 대단해. 어떻게 아무 것도 없이 그렇게 흙만 만지고 살았을까.
이렇게 일궈낸 건 정말 대단한 일이야.”
한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렇게 말했다.
“이제 작품을 좀 하려고 해. 전시회도 해야 하고. 그동안 힘들었지.”
아내는 그가 지탱해 온 버팀목을 일시에 끊어버렸다. 그 순간 그가
간신히 만들어낸 모든 것들도 정지한 것처럼 멈췄다. 그렇게 아프게
이별해야 하는 순간도 있는 법이라고 말하고 싶었을까.
아내는 사랑했다기보다 홀로 세상과 싸우던 그에게 조용히 나타난
동반자였다. 아무것도 가진 것도 가질 것도 없던 그의 빈한한 장소에
스며들어온 약한 빛 같은 존재였다. 아내는 그리 환하거나 빛나는 별
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작은 빛만으로도 그는 충분했었다. 늘 옆에
그 작은 빛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혼자 견딘 황량한 세월의 막막함은
스러졌다. 그러나 그마저도 신은 질투했던가 보았다.
한나를 만나면서 준은 눈물겨웠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황야를
헤매는 한 마리 늑대의 외로움 같은 자신에 대한 속내를 풀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한나에게선 경이로운 존재감이 넘쳐났다. 그
녀가 느닷없는 울증 속으로 숨어들어 어쩔 줄 모르는 그런 순간 외에
는 한나는 늘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준을 흥분시키는 여자였다.
한나는 화요일 오후와 금요일 오후에 공방에 왔다. 때때로 오고 싶
은 때 왔지만 가능하면 그 시간에 와서 도자기 빚는 것을 약간씩 배우
고 원래 흥미가 있던 부조를 만들었다.
한나는 전에 간호사였다.
“미술대학에 가고 싶던 여학생이었지. 아버지 사업이 그때부터 기울
기 시작한 것 같아. 어머니가 극구 반대했어. 그래서 간호사가 된 거
야.”
결혼하면서 그만 두었고, 지금은 휴식기였다. 그녀는 다시 간호사가
되고 싶은 맘은 없었다. 불쑥불쑥 치미는 울증이 나아지면 카페나 한
번 해볼까 싶다고 했다. 작은 갤러리를 열거나. 도자기가 그녀에게 도
움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었다.
갑자기 그녀의 이상기후를 본 것은 그녀가 찾아온 지 석 달 쯤 후였
다. 그때까지 그녀는 마음에 상처 같은 건 있을 성 싶지 않은 맑은 여
자였다. 만난 지 일주일 만에 자신이 매 맞고 살았던 여자라는 고백을
해서 깜짝 놀라긴 했지만.
한나는 일주일에 한번씩 K에 가서 커피수업을 받고 있었다. 그날도
그녀가 K에 갔다 돌아온 날이었다. 늦은 저녁을 같이 먹고 그녀의 집
에서 와인을 마시던 중이었다. 느닷없이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왜, 왜 그래. 한나? 응?”
준은 어쩔 줄 모르고 그저 한나를 안고만 있었다. 그녀는 한 시간
이상을 울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 다음엔 며칠 동안 전화 통화를 하려
하지 않았다. 그런 때 그녀는 대문을 걸어 잠그고 꼼짝하지 않았다.
준이 달려가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 후로 그런 일이 몇 달에 한 번씩 나타났다. 준은 슬펐다. 그 며칠
이 지나면 한나는 다시 제비꽃처럼 환했다. 그러나 그 며칠은 암흑 같
은 것이었다. 그녀가 상담을 더 받도록 조심스런 권유도 해보았지만
한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년쯤 내 전시회 끝나고 나면 여행을 좀 하자. 나도 이곳을 좀 떠
나 있고 싶고……. 자기한테도 도움이 될 거야.”
준도 벗어나고 싶었다. 오랫동안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흙만 만지고 살아왔던 시간들이 끔찍하기도 했다. 지금도 시간은 계속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 끝없는 흐름을 거슬러보고 싶구나, 하는
욕망이 꿈틀대고 있었다. 쉼 없이 달려왔잖은가? 상처도 빈한한 세월
도 아랑곳없이.
여행이란 말에 한나의 눈이 번쩍 빛났다.
“그래. 그거야. 그게 있었구나. 여행……. 정말 해 본지 오래된 일이
야. 그거라면 괜찮겠어. 커피수업도 끝나고, 또 다른 공부 시작하기 전
에 가면 좋겠네. 내년이면 근데 아직 멀었네.”
“그게, 내가 벌려놓은 일들 좀 정리하고, 가을 전시회 끝나면 한가해
지니까 그 즈음이나 다음해 봄이 좋을 것 같아서.”
“그래. 당신이 좀 바쁘지.”
그 며칠의 암흑이 끝내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던가. 꽤 많은 것을 같
이 하고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 여자의 암흑을 그가 어찌할 수 없었듯
이……. 더 세월이 많이 필요한 것이었을까.
준은 그녀를 사랑했다. 첫 만남에서 벌써 그것은 예견된 것이었다.
이 년 동안 준은 자신의 아파트보다 그녀의 데크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왜 아직도 K의 아파트를 방치해 놓았을까. 왜 거기 간 것인가. 그녀
는 그 집에 들어갈 자신이 없다고 했다. 짐이 그대로 있지만 가져올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그냥 불태워버리고 싶다고……. 집도 나머지
모든 것들도. 그녀는 친정식구들에게도 발길을 끊었다. 가슴 아픈 일
이었다.
그녀는 혈혈단신이었다. 그가 그렇게 살았듯이. 문제는 그는 그녀를
보고 세상을 느꼈는데, 그녀는 암흑으로 세상을 가져가 버린 것이었
다. 그녀의 세상은 그렇게 동강이 나 있었던 것이다.
달려도 달려도 그녀에게 가는 길이 자꾸 멀어지기만 하는 것 같았다.
어둠이 달려드는 창밖으로 씩씩 바람 부딪는 소리가 드셌다. 어디선가
교통사고가 났는지 반대편 차선에서 응급차가 시끄럽게 지나갔다.
‘제발, 제발 깨어나. 한나.’
핸들을 잡은 손이 진저리를 치듯 떨려왔다. 며칠 전 한나가 한 말이
문득 뇌리를 스쳐갔다.
“그 애를 생각하지 않으려 무지 애썼는데 언제부턴가 아이가 너무
그리워. 내가 얼마나 바본지 이제야 깨달았어. 내 아이…… 내 아이를
찾아보고 싶은데 어쩌지? 어떻게 해?”
이전에는 아이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다.
“내가 낳은 자식인데…… 내가 키웠어. 근데 그냥 주어버렸어. 그땐
그 애도 싫었거든. 이해를 못했어. 애가 내 편이 안 돼주고 그냥 숨어
버리는 것을. 얼마나 두려웠을까. 엄마가 맞고 있는데 어린 것이…….”
“…….”
“혹시 내가 무서웠을까? 나는 웃지 않았거든. 늘 입을 앙 다물었어.
그 애한테도. 그것이 그 애한테는 모질게 보였을 거야. 나 어떡하지?
아이를 데려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응?”
준은 그저 한나를 쓰다듬고 있었다. 퍼내도 퍼내도 가득 차는 빗물
같구나. 한나의 가슴은.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은 이년 동안에
처음이었다. 준이 묻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참았었다. 어휘만으로
도 아이는 가슴을 할퀴는 단어였다.
그녀가 사실 전혀 자신의 어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였다는 것을 준
은 어렴풋이 느꼈다. 아이 이야기를 꺼낼 때. 실은 그것이 가장 두려운
것이어서 꺼내지도 못하고 감춰두고만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픔의 한
가운데에 아이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내 그녀의 아픔은
거기서 온 것이라는. 폭력에 대한 것보다 더 깊고 깊은 상처가 아이의
상실이었다는 것을. 더 이상 감춰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끝내 뱉어
내고 만 것이다.
그것이었구나. 그래. 핸들을 잡은 손이 다시 파르르 떨렸다.
‘중국엘 갈 수도 있는데. 가서 아이를 데려오자고 하자. 지금 갈 수
도 있어. 내년이 아니라……. 한나, 제발 깨어나기만 해…….’
퍼뜩 떠오르는 말이 또 있었다.
“그 집엔 내가 모아둔 약이 아직도 있어. 난 몇 번이나 죽으려고 했
었어. 언젠가 그 약을 먹을 것 같은 위기감이 있어.”
그 말을 간과한 건 아니었다. 그녀는 K시의 그 집을 싫어했고 가지
않았다. 그녀가 그곳에 가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준은 제비꽃을
생각하려고 애썼다. 달항아리 두 점만 더 만들면 전시회 준비도 거의
다 되는 셈이었고, 그 후엔 여행을 갈 생각이었다.
‘그렇지, 한나?’
저만치 K시의 톨게이트가 나타났다. 한나는 깨어날 것이다. 준은 자
꾸 그렇게 외쳤다.
한지선 -----------------------------------------------------------
?자유문학? 신인상, 청구문화제 소설부문 대상 수상.
장편소설 「그녀는 강을 따라갔다」
단편소설 「겨울이별」, 「달빛꿈들」, 「누워있는 아이」, 「장미공원」,
「고요한 속삭임」, 「속삭임」, 「형의 여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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