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님의 시를 《표현》에서 소개합니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네요.
옥수수 따는 곰
만주벌판의 옥수수 밭을 지나가는데
만주벌판에서 사셨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생각하는데
여행 안내자가 옥수수 따는 곰 이야기를 한다
밤이 되면 북쪽 산에서 내려온 곰이 옥수수를
하나씩 따서 겨드랑이에 끼고
또 하나를 따서 겨드랑이에 다시 끼면서
남으로 남으로 내려간단다
새로 딴 것을 겨드랑이에 끼우느라
방금 끼운 것을 땅에 떨어뜨리고
맨 나중에 남은 하나만 겨우 가져가는
만주벌판의 옥수수 따는 곰을
가이드는 멍청하다고 자꾸 웃어쌓는데
만주벌판을 다 일구고도
식솔만 달랑 거느리고 돌아온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만주 벌판 다 지나도록 내내 숙연하다
그 넓은 벌판에다 발자국을 새기고 다닌 곰의 후예
남으로 남으로 길을 열어 조국에 돌아온
우리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버리고 온 발자국들보다 달랑 챙겨 온
가난한 꿈이 더 소중했던가보다
달개비꽃
닭장 밑에서
닭똥 받아먹으며 산대서
닭의장풀이라고도 부른단다
코끼리를 닮아 상아를 가졌지만
상아가 아닌 닭부리라며
닭애비라는 누명을 쓴 채
드넓은 풀밭과 우거진 삼림을 빼앗기고
제가 누군지도
어디가 고향인지도 까마득하여
닭똥 같은 눈물만 흘리다
제 눈물에 녹아내리는 꽃
제가 누군지도 고향도 모르는
천덕꾸러기 닭애비들이
나라 망한 줄은 어떻게 알고
하필이면 창덕궁 낙선재
담 모퉁이 응달에 와서
제 세상 만난 듯 무리지어 피어 있다
김 영 --------------------------------------------
1995년 ?자유문학?으로 등단.
저서 : 시집 ?눈감아서 환한 세상?, ?다시 길을 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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