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우님의 시 2편을 기쁜 마음으로 『표현』에서 소개합니다. 즐겨주세요.
얼음눈동자 외 1편
여덟 살 다팔머리 맏딸은
쭈그렁냄비를 들고 봉래동 시장통에 서 있었다
아부지가 월급 대신 받아온 동태가마니, 새 운동화를 약속했던 엄마
는 그 북태평양 살점을 팔기로 했다 쏟아진 얼음눈동자들, 훤히 아는
듯 두릿거리는데 “더하기빼기 할 줄 알제!” 갈기 푸른 엄마가 쥐어준
냄비를 안고
더하기빼기가 막막한 딸은 하늘만 바라보았다 얼음눈동자들이 봄구
름을 넘고 있었다 물갈퀴가 된 엄마손도, 오원짜리 지폐로 퍼덕이는
바다도, 세 동생이 끌던 슬리퍼도, 귀퉁이 깨진 두레밥상도, 낮은 천장
을 달리던 쥐들도 얼음눈동자로 둥둥 떠가고 있었다
아부지가 끌고온 바다가 앞으로 억 년은 걸어야 할 하늘임을 몰랐던
그때, 운동화 한 켤레가 비싸다는 것을 알았고, 정말 미안했다 온 천지
에 미안했다 낱돈이 아가미처럼 담기던 손냄비가 그 모양 그대로 제
가슴이 되어버린 지금,
두릿두릿, 얼음눈동자로 본다
바다의 단칸방들
흰색에 대한 백두의 추억
절름발이 백두는 흰색만 보면 짖는다
백두가 기억하는 건 안개벽이다 제 삶이 실험용인 줄 몰랐어도 백두
는, 흰색이 싫다, 사육된 흰색은 어둠보다 질기다 그 질긴 껍데기를
매일 물어뜯는 백두
알루미늄에 오래 갇혔던 백두는 모른다
흰옷 입은 벽들이 누군지 매끄러운 눈들이 누구신지 제 실험이 마취
약의 통증 반응인지 새 각막술 효능인지 꿈의 색채분해에 관한 것인지
제 털이 흰색인지 모르는, 제 이름이 백두인지 모르는, 흰색에 대한
백두의 추억은 까맣다
흰색을 짖을 때마다 거세된 울음 쇳소리로 허공을 긁는다 안락사
대신 먼 절간에 보내준 인연도 잊은 백두,
하품한다, 하품에서 쇳소리가 난다
꿈속의 백두를 쓰다듬는 꿈속의 노스님
첫눈이 걱정이다
김수우 --------------------------------------------------------------------
1995년 ?시와 시학? 신인상으로 등단.
2005년 부산작가상 수상. 계간 ?신생? 편집위원.
저서 : 시집 ?길의 길?, ?당신의 옹이에 옷을 건다?, ?붉은 사하라?.
산문집 ?씨앗을 지키는 새?, ?유쾌한 달팽이?. 아포리즘 집 ?百年魚?.
사진에세이집 ?하늘이 보이는 쪽창?, ?아름다운 자연 가족?, ?지붕 밑 푸
른 바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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