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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3월호, 신작에세이 특집] 참 좋은 이야기 둘 - 정진권

신아미디어 2012. 3. 25. 20:26

수필과 비평에서 신곡문학상 대상을 받으셨던 작가들의 신작에세이를 특집으로 꾸몄네요.

고수의 햇살과 숨결을 같이 느껴보시고, 신인작가들에게 좋은 영양분이 되었으면 합니다.

 

 

참 좋은 이야기 둘

   * 내가 언제 이 글을 썼는지는 확실치 않다(미발표). 아마 우리 대통
령께서 취임하신 지 한 1, 2년쯤 후가 아닌가 한다. 그러니까 시효가
지난 글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글을 여기 싣는 것은, 결코 그동안 애
많이 쓰신 우리 대통령께 흠집을 내려는 것이 아니고, 다만 다음에 오실
대통령을 생각해서다. -2012.


첫째 이야기.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이 포천군수抱川郡守로 있으면서 임금께 글월을
올렸다. 가로되 용인用人은 반드시 그 재才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덧
붙였다.
   “매(海東靑)는 천하의 매서운 새지만 울어서 새벽을 알리는 데는 닭만
같지 못합니다. 말(汗血駒)은 천하의 날랜 짐승이지만 쥐를 잡는 데는 고
양이만 같지 못합니다. 물론 닭으로 꿩을 잡게 하게나 고양이로 수레를
끌게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지함은 탁월한 인재로 매인 데가 없었다.


둘째 이야기.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가 여덟 살 남짓해서 한훤寒暄 김굉필金宏弼의 문
하에 가 공부를 했다. 그런 어느 하루 한훤이 몹시 화가 나 계집종 꾸짖
는 것을 보았다. 고양이가 포육脯肉을 물고 달아난 것이다. 포육은 한훤
이 그 어머니에게 드리려는 것이었다. 한훤의 꾸중이 그치지 않자 어린
정암이 천천히 말했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선생님의 정성은 참으로 지극하십니다. 그러나
고양이가 그런 것을 알 리 없고 계집종 또한 일부러 놓친 것이 아닌데,
선생님께서 이처럼 화를 내시니 제 마음이 오히려 불안합니다.”
한훤이 놀라워하며 말했다.
   “아, 그렇구나. 네 어린 나이로 나에게 와 배우는데 지금은 내가 오히
려 너에게 배우는구나.”
   한훤은 그 하루를 온종일 정암을 칭찬하며 즐거워했다.


   이 두 이야기는 정홍명鄭弘溟의 ≪기옹만필畸翁漫筆≫에 전하는 것을
내가 다소 첨삭해서 옮긴 것이다. 정홍명은 우리 문학사의 거봉 정철鄭澈
선생의 아드님이다. 나로서는 참 좋은 이야기여서 소개하는 것인데 여
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 어떻든 이 두 이야기에 내 생각 몇 마디 덧붙여
볼까 한다.
   우선 첫째 이야기부터.
   매는 천하의 매서운 새인지라 꿩 잡는 데는 탁월한 재才가 있다. 하지
만 울어서 새벽을 알리는 데는 꿩 못 잡는 닭을 당하지 못한다. 그러면
꿩 잡는 데는 매를 쓰고 새벽을 알리는 데는 닭을 쓰면 된다. 그런데
이런저런 사정私情에 끌려, 또는 매와 닭의 재才를 잘 몰라 꿩 잡는 데
닭을 쓰고 새벽을 알리는 데 매를 쓰면 어찌 될까? 때는 때대로 놓치고
꿩은 꿩대로 놓칠 것이다.
   지금 몇몇 장관長官들이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다. 그중 일부는 끌라
는 수레를 못 끈 사람들이다. 그들이 혹 쥐 잘 잡는 고양인지는 잘 모르
겠다. 그중 일부는 잡으라는 쥐를 놓친 사람들이다. 그들이 혹 수레 잘
끄는 말인지도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럼 그중에 말도 아니고 고양이도
못 되는 그런 사람은 없을까? 글쎄다. 용인用人은 재才를 보아야 한다.
물론 도덕성道德性도 함께.
   다음은 둘째 이야기-.
   한훤이 그 어머니에게 드리려고 마련한 포육을 고양이가 물고 달아났
다. 해서 한훤은 그 계집종을 몹시 꾸짖었다. 그런데 어린 정암은, 계집
종이 일부러 놓친 게 아니라고 한다. 얼마나 속 넓은 말인가? 하지만
내가 더 탄복한 것은, 오히려 어린 너에게 배운다는 한훤의 그 한마디였
다. “네까짓 놈이 무얼 안다고!” 하고 윽박지를 법도 한데 한훤은 오히려
어린 정암을 칭찬해 마지않는다.
   지금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진동하고 있다. 내
가 다 안다며 주위의 충고를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요 며칠
사이엔 스님들도 만나고 목사님들도 만나고 어제는 추기경도 만났다.
참 잘했다. 그러나 나는, 닭똥집에 소주 한잔 하는 포장마차, 그 민심
최일선의 소리도 좀 들었으면 한다. 물론 들은 대로 따르라는 뜻이 아니
다. 듣고 좀 생각하라는 것이다.
   내가 오늘 이 글을 쓰는 것은 우리 대통령께서 꼭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록되기를 바라서다. 나는 그런 염원으로 한마디 더 적고 이 글을 마칠
까 한다.
   “매는 천하의 매서운 새지만 울어서 새벽을 알리는 데는 닭만 같지
못합니다. 용인用人은 재才와 덕德 이외에 다른 것은 보지 마셔요. 인사人
事가 만사萬事라고 했습니다.”
   “네 어린 나이로 나에게 와 배우는데 지금은 내가 오히려 너에게 배우
는구나. 하찮은 백성이 내뱉는 한마디를 소홀히 듣지 마셔요. 그게 민심
입니다.”

 

 

정진권 ---------------------------------------------------------------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명지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석사과정) 졸업.
문교부(현 교육부) 편수관, 한국체육대학교 교수 역임. 현재 동대학 명예교수.
수필집: ≪푸르른 나무들에 저 붉은 해를≫, ≪분이별, 삼돌이별≫ 등.
역해서: ≪한시를 읽는 즐거움≫, ≪한국고전수필선≫ 등, 그 밖에 선집, 논저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