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비평에서 신곡문학상 대상을 받으셨던 작가들의 신작에세이를 특집으로 꾸몄네요.
고수의 햇살과 숨결을 같이 느껴보시고, 신인작가들에게 좋은 영양분이 되었으면 합니다.
일흔 고개를 넘어도
“똑 딱! 똑 딱! 똑 딱!”
시계바늘은 지금도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 누가 뒤에서 쫓거나 앞에
서 끌어당기는 게 아닌데도 시계바늘은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앞으로
달린다. 큰 시계나 작은 시계나, 내 시계나 남의 시계나 시계바늘의 속도
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동서고금이 다를 바 없다.
우리 집은 거실과 방마다 벽시계가 걸려 있다. 그러고도 책상에는 탁
상시계가, 팔목에는 손목시계가, 핸드폰에는 전자시계가 있다. 하지만
그 시계바늘들은 하나같이 ‘똑 딱!’ 소리조차 내지 않고 달린다. 입을 꾹
다물고 앞으로만 달린다. 옛날 괘종시계처럼 일정한 시간이 되면 ‘뎅!
뎅! 뎅!’ 소리를 내어 시간을 알려주지도 않는다. 요즘 시계들은 아예
사람의 귀[耳]와는 소통을 끊고 눈[目] 하고만 거래를 한다.
임진년 새해가 되자 내 나이도 일흔 고개를 넘었다. ‘똑 딱!’ 하며 달려
온 세월이 쌓여 그렇게 된 것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흘러버렸다.
어렸을 때는 일흔 살이라면 까마득하게 생각했었다. 내게 그런 나이가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런데 어느새 내 나이가 그 일흔 살이 되어
버렸다. 일흔 고개를 넘어섰는데도 인생이란 게 훤히 내려다보이지 않
는다. 일흔 살이 되기 전이나 뒤나 다를 바 없이 시간은 여전히 같은
속도로 달릴 뿐이다. 나이가 높아지니 지금은 오히려 옛날보다 시간이
더 빨리 달리는 것 같다.
일흔 살을 고희古稀라고 했다. 옛날에는 일흔 살까지 사는 이가 드물
었기 때문에 그런 말이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고희를 넘겨도
노인대접 받기가 어렵다. 적어도 일흔다섯은 되어야 떳떳이 노인대접을
받는다. 모든 분야에서 현역으로 뛰는 80대 어르신들이 많아 70대는 뒤
로 밀리기 때문인 것 같다.
옛날 같으면 고희古稀를 맞으면 성대하게 잔치를 벌였다. 그렇지만 지
금은 마음에 점을 찍듯 자녀들과 간단히 식사나 하고 만다. 손자손녀들
의 백일이나 돌잔치에 밀려서 어른들의 회갑이나 고희잔치는 점차 사라
져가는 유풍遺風이 되고 말았다.
일찍이 공자는 나이 70이 되면 마음 내키는 대로 행해도 법도에 어긋
나지 않는다는 뜻으로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慾不踰矩라고 했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도 그런 말이 통할 수 있을까?
지금도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건강관리를 위해서 식사를 하거나 운
동을 해도 시간은 가고, 지식을 충전하려고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검색
해도 시간은 가며, 텔레비전을 보거나 신문을 뒤적거려도 시간은 간다.
부부가 사랑을 나눌 때도 시간은 흐르고, 친구와 소주를 마실 때도 시간
은 흐른다. 시간은 사람의 신분을 따져 차별대우를 하지 않는다. 대통령
이나 말단공무원, 재벌회장이나 구멍가게주인, 박사나 유치원생을 가리
지 않는다. 참으로 공평무사한 것이 시간이다.
지금은 인생 100세 시대로서, 우리나라 사람의 평균수명은 여성이 83
세이고 남성은 79세다. 그 평균수명은 해가 갈수록 자꾸 늘어나고 있다.
미국 존 홉킨스 의과대학 어느 교수는 새로운 나이계산법을 소개했다.
자기 나이에 0.7을 곱하면 그게 그 사람의 건강나이라는 것이다. 일흔
살인 나는 내 나이에 0.7을 곱하니 49다. 내 건강나이는 49살이란 이야기
다. 줄잡아 20년쯤 젊어진 셈이라고나 할까?
세상에 태어나서 70년쯤 살았으면 인생을 알만하고, 느낄만하며, 앞날
을 내다볼 줄 알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내가 겪어보니 아직도 긴 터널
속을 달리는 기분이다. 거울에 얼굴을 비추어 보기도 두렵다. 어느새
얼굴과 목 그리고 손등엔 잔주름이 많이 그어져 있는 까닭이다. 누가
내 몸에 이렇게 마음대로 그림을 그리는 것일까?
철강왕 카네기의 거실 벽에는 그림 한 점이 걸려있었다고 한다. 가난했
던 청년시절에 만난 그림이다. 커다란 나룻배에 노櫓 하나가 그려진 그림!
그렇다고 그게 값비싼 유명화가의 그림도 아니다. 화가는 그 그림 밑에
“반드시 밀물이 올 것이고, 그날 나는 바다로 나아가리라.”
라고 써놓았단다. 철강왕 카네기는 그 글귀가 마음에 들어 그 그림을
벽에 걸어놓고 보면서 날마다 꿈을 키웠다고 한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
도 꿈을 꿀 일이다. 그 결과 카네기는 세계적인 철강왕이 되지 않았던가?
언젠가는 밀물이 올 것이니 그때 나룻배를 타고 노를 저어 바다로 나
가겠다는 꿈! 그 꿈은 기다림이요 믿음이며 기대였다. 그것은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나름대로 꿈을 꾸어야겠다. 그
래야 밀물이 왔을 때 노를 저어 바다로 나갈 수 있을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는데도 시간은 흐른다. 잠시도 멈추지 않고 시간은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
김학 -------------------------------------------------------------
1980년 ≪월간문학≫으로 등단. ≪수필아, 고맙다≫ 등 수필집 11권.
수필평론집: ≪수필의 맛 수필의 멋≫, ≪수필의 길 수필가의 길≫.
펜문학상, 한국수필상, 영호남수피룬학상 대상, 신곡문학상 대상,
연암문학상 대상, 대한민국 향토문학상, 전주시예술상, 전라북도문화상, 목정문화상 등 다수 수상.
전북수필문학회 회장, 대표에세이문학회 회장, 임실문인협회 회장, 전북문인협회 회장,
전북펜클럽 회장,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부이사장 역임.
한국문인협회 이사,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전담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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