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비평》도 다문화에 대한 고민을 해봅니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가족은 소중합니다.
우리도 엄마라구요
- 영화 <완득이>, <달리는 차은>을 통해 본
다문화가족의 ‘엄마’ 그리기
‘가족’이란 화두는 늘 뜨끈한 곰탕 같은 것이다. 우리고 우려도 많은
이야기거리들이 묵근하게 끓어오르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다문화가족
을 소재로 한 영화 <완득이>(이한 감독, 김윤석․ 유아인 주연, 2011)가
기대 관객수였던 250만을 돌파하고 530만 이상의 흥행을 거두었다고 한
다. 2011년 개봉 한국영화 중 흥행순위 3위이다. 물론 연기파 배우와 핫
한 꽃미남 배우가 투톱을 맡았으니 어느 정도 기대치가 있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간의 한국영화 흥행판도로 봐서는 조금은 신선한 지점이라 눈
여겨볼밖에.
그렇다면 이제쯤 한국사회에서 ‘다문화가족’이란 핫한 아이콘이 공감
을 얻어가고 있다고 조심스레 예측을 해보아도 될까? 이에 대한 대답은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노!이다.
새로운 분류, 낯선 얼굴의 익숙한 ‘엄마’라는 이름의 그녀들
다문화사회로 가는 길목에서 현재 가장 중요한 시금석 역할을 하는
것이 결혼이주여성이다. 그런데 이들은 보통 한국사회에 만연한 순혈주
의, 배제적 민족주의, 정비되지 않은 시민권제도 등에 근본적인 문제제
기를 하는 존재였다. 그간 우리 문화에서 결혼이주여성이 그려지는 방
식은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저출산과 고령화를 해결해 줄 영웅’, ‘돈 때문
에 팔려온 불쌍한 여자’, 또는 ‘한국 남성의 성적 욕구를 풀어주기 위해
인신매매성 결혼을 한 여자’ 정도의 범주에서 어떻게 해서든 기존 가족
의 틀 안에 가두어 놓으려는 속내가 배태된 결과물들이 대부분이었다.
즉, 한 인간으로서의 목소리, ‘개별자로서의 실존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이
낮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혼이주여성이 어떤 사랑을 꿈꾸고 이주를
감행했으며, 또 행복한 결혼생활을 만들어가기 위해 어떤 문화적 자원
을 활용해서 살아가고 있는지 등은 관심의 초점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
러다 보니 결혼이주여성은 거미망에 걸려 파닥거리는 나방처럼 다층적
권력망에 포획된 존재가 되고 마는 것이다.
최근 학내 왕따가 큰 고민거리로 떠올랐다. 이는 진작부터 시한폭탄
같은 현실적 사안이었다. 이 문제가 불거지면서 또 기사화되는 것이 다
문화가정 자녀들의 왕따 문제이다. “다문화 가정 자녀 37%가 왕따…엄
마, 학교엔 제발 오지마”(조선일보 2012년 1월 10일 A10면)라는 기사제목
에서 시사하듯 가정 내에서조차 결혼이주여성들은 죄의식을 가질 수밖
에 없는 존재다. 해당되지 않는 나머지 63%까지도 37%의 문제로 전체가
뭉뚱거려지는 것이 우리의 담화구조이다.
그렇다면 가족이란 가장 친밀한 집단에서조차 숨기고 싶은 존재가 되
어버린 낯선 외모의 엄마들이 설 자리는 어디란 말인가. 한국의 사회구
조가 급격하게 변모하면서 새로운 이웃의 형태로 등장한 다문화가정은
이런 ‘한국인’되기의 이중고를 지고 있다. 더군다나 여기에 더해진 불쌍
하다고 보는 시각, 무턱대고 고달픈 삶을 살고 있다고 예단하는 시각,
위장결혼자가 대다수라고 보는 시각이 더해진 편견은 결혼이주여성에
게 문화적 갈등 외에 사회적 갈등까지 야기하고 있다.
나도 엄마라고요
영화 <완득이>는 장애인 편부 밑에 성장한 완득이가 괴짜 담임선생님
똥주의 속 깊은 애정으로 필리핀출신 생모와 만나게 되는 성장담을 그
리고 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성장이란 미성숙한 세계를 벗어나 기
존의 세계가 가진 가치를 내면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
다면 영화 <완득이> 속의 완득이는 이미 성장해버린 어른아이의 모습이
다. 남다른 피부색 때문에 왕따를 당하는 존재라기보다는 스스로를 고
립시키고 신비화하는 대장같다. 완득이에 무관심한 장애인 아버지에겐
생계를 이어나가야 하는 어쩔 수 없는 고단한 일상이 있고 애환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그런 삶의 페이소스를 체득해버린 완득이는 스스로의 삶
을 상식적인 것에서 분류시켜 속 깊은 아이로 커버린 것이다. 이런 완득
이의 옆집에 하필이면 무심한 듯 시크하게 완득이에게 무한 애정을 쏟
아붓는 담임선생 똥주가 산다.
이 똥주 선생은 요즘 우리 사회의 실상에 비춰본다면 참 반갑지만 또
한 익숙하지 않은, 너무 이상적이어서 어쩐지 비현실적이기까지한 캐릭
터이다. 1980년대 열혈 운동권을 연상시키는 그의 삶의 태도는 부잣집
아들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죄스러워 하며 외국인 노동자를 막 부리는
사장인 자기 아버지를 미워한다. 가장 높은 옥탑방에 기거하는 똥주 선
생의 정의감은 완득이의 말대로 “가난을 체험하기” 위해 지상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는 인상마저 준다. 때문에 나이 어린 완득이보다 도리어 더
어리광스러운 똥주 선생의 트라우마는 그다지 설득력을 가지진 못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완득이의 성장담이라기보다는 진짜 가난을 체감해 가
는 똥주 선생의 성장담이 된다.
원작소설 <완득이>(김려령 지음, 제1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는
다문화가정의 이야기, 소외된 이웃을 소재로 하되 성장기 청소년의 보
편적인 고민인 꿈, 사랑, 정체성의 혼란 등을 끌어안아 그 당위성을 확
보했다. 그렇게 원작에서 어렵사리 균형을 맞춰낸 보편적 공감대를 영
화에서는 급작스럽게 똥주 선생이 자신의 건물을 다문화센터로 탈바꿈
시키고 까칠하고 적대적이며 백수로 보이던 옆집 아저씨가 화가여서
그 센터에 벽화 봉사를 하는 등 갑자기 온 동네사람이 화합해버리는
환타지 같은 결말로 몰고 간다. 이 축제 같은 갈무리는 어째 좀 너무
쉽게 봉합해버리는 것 아닌가란 의혹이 고개 들게 하는 것이다. 그저
너무 훅 착해져버리는 결말은 계몽영화를 본 듯한 상투적인 미적지근
함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완득이>는 착한 영화다. 가난, 장애, 다문
화가정, 이주노동자, 결손가정, 차별, 문제아란 소외된 패키지 꾸러미를
잘 묶어내고도 따뜻하고 명랑한 건강함을 잃진 않았으니 말이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영화 <완득이>가 해낸 일이라면 드디어 피부색이
다른 낯선 엄마의 목소리를 등장시켰다는 것이다. 이는 그간 주체/타자
라는 이분법 가운데 박제화되고 정형화되어 주눅들어 있던 결혼이주여
성과는 사뭇 다른 방식이다. 일방적인 배역으로 삭제되어 결혼이주여성
이기만 했던 그녀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 <완득이>에는 스위트홈 드라마에서 전형화된 캐릭터처럼 경우
가 반듯한 엄마가(너무 반듯한 나머지 자신의 아들 완득이에게까지 높
임말을 쓴다.) 피부색만 살짝 다를 뿐이다. 이 엄마는 남편에게 결혼생
활의 불만을 논의하고 자기 앞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든 꾸려나가려는
현명한 여자이다. 이런 형상화야말로 결혼이주여성이 이제 다문화가족
의 문제를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단초를 연 셈이 아닌가 말이다.
피부색은 낯설지만 어쩌면 너무도 익숙한 이 엄마들의 홈드라마는 조금
더 많이 그려질 필요가 있다.
실제로 현장에서 결혼이주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간 얼마
나 잘못된 시각에서 그녀들을 상상하고 있었나를 절실히 깨닫게 된다.
그녀들은 한국의 여느 엄마들처럼 우리 사회의 심란한 교육열을 걱정하
고 엄마 역할을 어떻게 해낼 것인가에 골몰해 있다. 결혼이주여성들은
어딘가에 있는 먼 이웃이 아닌 우리 옆집 아줌마나 누이와 같이 2012년,
대한민국의 현재적 삶을 함께 살아가는 일원이다. 이제는 우리의 이웃
에 사는 그 엄마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낯설되, 낯설지 않은 엄마의 이름으로
김태용 감독의 2009년작 단편영화 <달리는 차은>(전수영, 아르세니아
주연)은 살아있는 우리 이웃의 그럴 법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달리는 차은>은 김태용 감독이 농촌 가정의 20%가 다
문화 가정이라는 점에 포커스를 맞춰 연출한 영화다. 청소년 인권영화
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던 김태용 감독은 답답한 현실이지만 당당하고
도 자신감 있는 십대인 아이가 시원스럽게 대지를 박차고 달리는 상상
을 했다고 한다.
김 감독은 새만금을 배경으로 다문화가정에 사는 중학교 육상부 소녀
의 이야기를 그려야겠다는 기획을 하고 주연배우부터 전국의 도내 체전
을 돌고 돌아 캐스팅했단다. 주인공 장차은 역을 맡은 전수영은 실제
육상 선수다. 영화와 연예계에 관심조차 없는 학생이었다. 그리고 실제
에 가까운 다문화 가정을 보여주기 위해 필리핀 이주 여성 ‘아르세니아’
를 어머니로, 혼혈아인 동생 동민 역시 실제 다문화가정의 아이로, 아버
지역을 맡은 배우도 동민 역을 맡은 아이의 실제 아버지로 캐스팅했다.
이런 디테일한 공을 들여선지 이 영화는 있을 법한 이웃집 이야기를 만
난 듯 편안하다. 또 이 영화는 시나리오가 우수하고 영화가 감동적인데
다가 청소년과 다문화가정이 결합된 주제의식도 적절하다는 이유로 중
학교 교과서에 대본이 실리기도 하였다.
달리는 걸 좋아하는 중학생 차은이는 육상부 선수이다. 그런데 갑자
기 육상부가 없어진다는 말에 속이 상한다. 달리기 실력이 자기보다 훨
씬 못한 다른 육상부 아이들은 선수교습을 받기 위해 서울로 전학을 간
다고 한다. 차은이도 가고 싶은데 가난하고 무뚝뚝한 어부 아빠는 그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아빠가 재혼한 엄마는 필리핀 사람. 한국
어가 여전히 어눌한 필리핀 출신 엄마하곤 이런 고민을 함께할 수도 없
다. 차은이를 내심 좋아하는 남학생 영찬에게 엄마가 필리핀인임을 들
킨 후 차은이는 학교에서도 놀림감이 된다. 엄마를 비롯해 누구와도 소
통이 되지 않는 차은이는 집을 뛰쳐나간다. 엄마는 그런 차은이의 마음
을 풀어주기 위해 따라 나선다.
모녀는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이
영화에는 질펀한 감정이 오가지도 않고 그렁그렁한 눈물도 없다. 사춘
기 여중생과 한국생활에 적당히 익숙해진 필리핀 출신 엄마가 맛나게
라면을 먹으며 티격태격대는 모습엔 엇비슷한 상처를 서로 보듬어 안는
교감이 있어 따뜻하다. 무리한 포즈나 과장된 설정 없이 소소하기에 더
욱 잔잔한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엄마: 아……. 춥다……. 내가 한국 첨 왔을 때, 정말 추웠다. 추워서
바로 도망가려고 그랬다.
차은: 그때 도망가지 왜 안 갔어?
엄마: 니가 꽉 잡았잖아!
차은: 내가?
엄마: 그래, 꽉 잡았어.
차은: 내가 언제?
엄마: 니 세 살 때
차은: 그런 적 없어.
엄마: 그랬어.
차은: 안 그랬어!
엄마: 그랬다니깐!
차은: 안 그랬다니깐!
<달리는 차은>은 훈훈하다. 하지만 사실적이다. 일상적이지만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대로 어우러져 살아가는 가족의
일상을 녹여낸 품새가 뭉클하다. 아무도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
아 답답한 소녀와 소녀의 엄마이지만 엄마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어 답
답한 엄마는 그 ‘답답함’으로 소통한다. 이 모녀의 답답함은 어쩌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상적인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인간의 삶도 그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른 환경과 문화에 대한
소통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나와 다른 익숙치 않은 것들에 배타적이
고 나부터 감싸는 것이 인간이란 동물의 속성이다. 다른 환경과 문화에
대한 소통의 필요성이 절실하다. 소통이 이해가 되고 친숙해진다면 그것
이 바로 인권이다. 영화는 연민과 동정이 아닌 이해 그 자체를 보여줄
수 있는 채널이다. 그 이해의 실마리로 향해 가는 건널목에 영화가 서
있다.
현재 한국사회에는 다문화와 관련된 담론이 무성하다. 많은 수의 한
국인들은 자신의 이해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지 않을 때에는 다문화
주체에 대한 차별이 부당하다는 데 쉽게 동의한다. 그렇지만 그것이 나
의 문제가 되었을 경우에는 다문화 주체에 대한 차별과 무시를 적극적
으로 혹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데 별 주저함이 없다.
보통 소수자․ 약자에 대한 무시와 냉대가 이루어지는 매커니즘에는
‘그들’을 ‘우리’와 똑같은 인격을 갖춘 인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시선’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럴수록 주류의 가치를 생각없이 ‘내뱉는 데’ 아무
주저함이 없어진다. 그렇지만 만약 그 일이 내 가까운 이웃이나 가족에
게 벌어진다면 ‘우리’의 느낌은 대번에 달라질 것이다. 그것은 그 이웃과
‘같은 감수성’을 갖고 그들의 체험과 느낌을 체감적으로 받아들이기 때
문이다. 따라서 약자들을 자신의 이웃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노력이 필
요하다.
때문에 다문화교육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고의 한 부분에 문제의식
을 던져주고 이는 각 개인의 정체성교육과도 연결되어야 할 것이다. 따
라서 다문화교육은 잡화점격 문화체험식의 교육보다는 다문화가족들의
처지에 공감할 수 있는 사유능력을 배양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필요가
있다. 이처럼 일상의 행태에 대해 평화의 관점에서 질문하도록 하려면
감수성 훈련이 동반되어야 한다. 대중의 감수성을 단련시키는 데 영화
는 퍽 효과적이다. 영화가 가진 힘은 세다. 그렇기에 더욱 건강하고 다양
하며 생기있는 다문화가족을 스크린에서 만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길 수
밖에.
서연주 ------------------------------------------------------
평택대학 국문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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