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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3월호, 사색의 창] 서울별곡 - 전해주

신아미디어 2012. 3. 22. 09:00

전해주님의 서울에 대한 애정을 《수필과 비평》에서 느껴보세요. 중독......

 

 

서울별곡

 

   신길역 근처의 삼거리는 차량들로 복잡했다. 막 교차로에 진입하려는
순간 신호등이 황색으로 바뀌었고, 나는 급히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정
지선을 조금 넘어섰다. 차가 정지하는 순간이었다. 좌회전을 하던 오토
바이가 차 앞 범퍼에 슬쩍 부딪혔고 동시에 오토바이와 운전을 하던 청
년이 함께 길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혼비백산하여 차에서 내렸다. 잠시
후 청년은 옷을 툴툴 털며 일어났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순간 사람들이 몰려왔다.
그리고 100% 운전자 잘못이라며 한 남자가 언성을 높였고, 옆에서 이
말을 듣고 있던 사람은 오토바이 운전자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점잖게
훈수를 두었다. 또 다른 남자는 병원으로 가서 당장 사진을 찍자며 안내
하기에 바빴다. 그는 가까이 있는 건물을 가리키며 그 병원직원이라고
했다. 큰 사고라고 떠드는 사람, 조용히 합의를 보면 되겠다는 사람들로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들 자기 일인 양 나서서 진지
하게 시시비비를 가리고 있었다.
   나는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다. 난데없이 나
타난 자들이 마치 짜여진 각본처럼 상황을 몰아갔다. 며칠 전 자해 공갈
단의 사기 수법에 당했다는 친구의 일이 생각났다. 남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내게도 일어난 것 같았다. 서울 생활 30년이나 된 나를 저 바람
잡이들이 우습게보다니! 나는 태연하게 가입한 보험회사에 신고를 하고
사고 처리 요원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리곤 마치 이 일과 아무 상관
도 없는 사람처럼 입 꾹 다물고 그 자리에 서서 사방을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잠시 후 모였던 사람들은 경찰과 보험회사 직원이 도착하자 뿔뿔이
흩어졌다. 경찰은 경미한 접촉사고로 처리했다. 나는 씁쓸한 마음으로
다시 차에 오르면서 오래전 처음 서울 구경을 했던 날들이 떠올랐다.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 때였다. 그때 창경원과 워커힐 그리고 국립현
충원을 둘러보았던 것 같다. 시골에서 처음 서울에 올라온 내게 나름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종로 어느 여관 2층에서 내려다 본 거리의
자동차 물결이었다. 전조등을 밝힌 차들이 건널목에 파란 신호등이 켜
지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제히 멈추었다가 한꺼번에 밀려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것보다 자동차의 홍수를 바라보는
게 더 재미있었다. 자가용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것이 놀라웠다. 번쩍이
는 네온사인과 높다란 빌딩, 번화한 거리를 누비는 차들을 보며 바로
이곳이 내가 살아야 할 곳이라는 직감이 왔다. 저 문명의 대열에 끼여
치열하게 경쟁해 보고 싶었다.
   그 후, 나는 오직 서울을 가기 위해 목숨을 건 사람처럼 부모님을 졸라
댔다. 나의 꿈은 대학에 입학하면서 겨우 이루어졌다. 신입생 오리엔테
이션 시간은 주의사항이 너무 많아 서울에 대한 동경보다 주눅이 앞섰
다. 복잡한 서울은 여럿이 외출하지 않으면 엄두도 낼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움츠러들게도 했다. 그러나 나긋나긋한 서울 말씨는 세련되고 예
의가 있어 보였다. 화려한 명동거리에서나 필하모니 음악실에서 촌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며 나는 차츰 서울에 길들여지고 동화되어 갔다. 멋
진 서울 토박이와 결혼해야지 하던 꿈도 이루었다. 그 후 친정 식구들도
차츰 서울로 올라와서 이제는 시골과는 상관없는 사람처럼 살고 있다.
   이제 서울에 익숙해져 보니 서울이란, 젊은 시절 도전과 경쟁의 터로
는 적당할 것이나 평화롭고 안정된 삶의 터전은 되지 않는 것 같다. 차들
로 부대끼며 거리에서 시간을 다 보내는 서울에서 벗어나 한적한 고향
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동창회에 가면 고향에 남은 친구들의 순박
한 모습에 제대로 살고 있는 것 같아 부러웠다.
   지나던 차가 내 차에 부딪히고 내가 남의 차와 부딪칠 뻔한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세상사에는 바랐던 일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거나 그
렇게 갈망했던 일들로 오히려 피해를 보는 일이 허다하다. 처음 자동차
의 물결을 보고 부와 문화생활을 꿈꾸며 서울로 오기를 갈망했으나 이
제는 되레 차 때문에 이곳을 떠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여 자주
귀촌을 꿈꾸어 보고 적당한 곳을 찾아다니기도 하지만 아직 이래저래
서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주, 서울 근교에서 전원생활을 하는 친구가 한번 다녀가라고 했
다. 그곳은 집 앞에 강물이 흐르고 억새가 물결처럼 출렁이고 있어 고즈
넉한 가을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강 주위를 걸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여치와 메뚜기도 폴짝거리며 날았다. 흐르는 강
물 소리를 들으며 앉아 있는 한나절 동안 그곳을 지나는 차량 한 대 없어
적막하였지만 그 한적함이 오히려 고향에 온 것처럼 정겨웠다. 하지만
한 이틀이 지나자 차츰 무료해지고 슬그머니 서울이 궁금해졌다.
   어쩌면 평화로운 곳은 이미 내가 살 곳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한적함
을 즐기기에는 서울의 문화와 소요에 너무 깊이 중독되고 경쟁의 삶에
나도 모르게 물들고 만 것일까. 그러고 보면 나는 아무래도 소음으로
시달리는 서울에서 내 자신이 함께 소음을 만들며 사는 삶으로부터 벗
어날 수 없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