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각시가 어디에 숨어있나 했더니 논에 숨어있었네요.....
《수필과 비평》에 수록된 정지호님의 마음을 느켜보세요.
논에 숨겨 놓은 우렁이
내가 어릴 때 자란 곳은 합천의 어느 농촌 마을이었다. 우리 집 근처에
는 커다란 저수지가 하나 있었다. 비가 많이 와 물이 가득 찼을 때 저수
지를 지나가면 둑이 흔들리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평소에 엄마는 어린 내가 저수지에 빠질까 봐 근처에는 얼씬도 말라
는 주의를 많이 주셨다. 하지만 저수지 둑은 봄이면 잔디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맨발로 다니기 좋았다. 둑길로 지나가기만 해도 내 발은 초록물
이 들어 버릴 것만 같았다. 또 여름엔 저수지 위를 불어오는 바람이 너무
나 시원했다. 가을이면 갈대꽃을 한 손 가득 꺾어 꽃꽂이도 하고 친구들
과 어울려 고무줄놀이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였다. 겨울이면 물이 꽁꽁
얼어붙어 썰매 지치며 놀기 좋은 그야말로 자연의 놀이터였다.
그때는 아침저녁으로 소 풀 먹이는 일이 나의 하루 일과 중 하나였다.
어느 날 아침에 소 풀을 뜯어 먹이기 위해 저수지 둑으로 소를 몰고
갔다. 이른 아침이라 오가는 사람도 없고 저수지는 조용했다. 혼자 있자
니 심심해서 저수지 속을 들여다보았다. 아니 이게 웬일인가? 저수지
둑 주위의 크고 작은 돌덩이 위에 우렁이들이 새까맣게 붙어 있는 것이
었다.
나는 깜짝 놀라 소는 저수지 둑에 말뚝을 박아 매어 놓고, 봉지를 하나
주워 들고 우렁이를 비닐봉지에 담았다. 한참을 줍고 나니 우렁이는 비
닐봉지에 가득했다. 허리가 아팠다. 힘은 들었지만 우렁이 잡는 기쁨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소를 몰고 집으로 오면서 우렁이 봉지는 우리
집 대문가에 숨겨 두었다.
아침을 먹고 가방 메고 학교 가기 위해 대문을 나섰다. 부엌에서 엄마
몰래 커다란 주전자를 가지고 나와 숨겨놓은 우렁이를 부었다. 주전자
가 가득하였다. 엄마에게 우렁이를 잡았다고 갖다드릴 수가 없었다. 근
처에도 가지 말라고 당부하셨는데 저수지에서 우렁이를 잡았다면 꾸중
듣기 십상이었다. 학교 가는 길에 있는 논 가운데에 숨겨 놓고 학교로
갔다.
학교에서는 우렁이를 누가 가져가지는 않을까? 우렁이들이 도망가지
는 않을까? 별의별 생각을 하느라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그렇게 수업
이 끝났다.
책가방을 메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침에 숨겨놓은 우렁이 주전자를
찾으러 논으로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우렁이들이 논바닥에 기어
나와 있거나 주전자 둘레에 가득 붙어 있었다. 우렁이를 다시 잡아 주전
자에 넣어 집에 돌아와 엄마께 드렸다. 엄마는 논에서 잡았다는 내 말을
믿고 칭찬하며 우렁이국을 끊여 주셨다. 국은 시원하고 맛있었다. 저녁
나절, 배가 출출할 때라 꿀맛이었다.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저수지 둑으로 올라가 보았다. 이번
에는 우렁이가 아침과는 달리 한 마리도 없었다. 그래서 엄마께 여쭈어
보았더니 “우렁이는 이른 아침이나 해가 질 무렵에만 저수지 둑 돌에
많이 붙어 있다.”라고 하셨다. 나는 엄마 말씀을 듣고 다음 날 아침에
우렁이를 잡고 싶었다. 엄마가 아시면 꾸중할까 봐 머리를 썼다. 내가
자는 방에 베개 하나는 가로로 놓고, 기다란 등받이 베개는 세로로 놓아
이불을 뒤집어씌웠다. 내가 누워 있는 것처럼 꾸민 것이다. 그러고는
주전자를 들고 몰래 저수지로 갔다.
엄마 얘기대로 저수지 이곳저곳 돌덩이에 우렁이가 많이 붙어 있었
다. 하나하나 잡아 주전자에 담는 기쁨은 잡아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색깔은 검지만 주전자 가득히 잡으면 콧노래가 절로 나오게 된다. 나는
어제처럼 논에 주전자를 숨겨놓고 학교에 갔다.
그렇게 한동안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우렁이를 잡는 부지런을 떨며
보냈다. 그 덕에 아침에 항상 일찍 일어나는 좋은 버릇도 생겼다. 비록
엄마 몰래 하면서 마음은 졸였지만 우렁이를 잡는 재미는 컸다.
그렇게 자란 소녀가 세월이 흘러 이제 두 아이 엄마가 되고, 두 아이는
자라 엄마가 우렁이 잡던 나이가 되었다. 이번 가을 추석에 고향에 다녀
왔다. 고향에 내려가면 항상 저수지 둑을 지나 시댁으로 간다. 저수지
둑을 내려가 보고 싶었지만 남편의 차는 휙 지나 그냥 가버렸다.
다음 날인 추석날 아침, 차례와 성묘를 마치고 나는 우리 아이들과
저수지가 보고 싶어 어릴 때 놀이터처럼 놀던 저수지 둑을 찾았다. 저수
지는 그대로 있는데 저수지 안에 있던 우렁이 친구들은 온데간데없었
다. 시퍼런 물만 가득 차 무심하게 찰랑이고 있었다. 둑에는 나무들이
자라 우렁이가 붙어 있던 돌들을 뿌리로 덮었다. 차라리 오지 말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너희들 나이에 이 저수지 둑에서 우렁이도 잡고,
고무줄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면서 놀았다는 추억을 웃으면서 이야기
해 준다. 아이들은 엄마 어릴 적 모습을 상상하느라 사뭇 진지한 표정들
이다. 지금의 농촌에는 젊은이들이 어려운 현실로 너나없이 고향을 떠
나고 있다. 제대로 관리를 못하고 방치해 둔 탓에 저수지도 볼썽사납게
된 것이다.
이곳저곳의 들녘도 한 바퀴 돌아보았다. 논들은 경지 정리로 바둑판
처럼 다듬어지고 곡식들은 익어 황금 들녘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그
때 계셨던 고향 어른들은 한 분 한 분씩 세상을 떠나 보이지 않았다.
고향은 말만 들어도 설레는 곳이다. 농촌을 지키고 가꾸려면 젊은이
들이 귀농하는 현상이 일어나야 될 것 같은데 쉽지는 않아 보인다. 농촌
의 어려움이 해결되어 농촌에 정착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우렁찬 아
기 울음소리와 우짖는 까치 소리가 아름답게 어우러질 그런 날을 그려
본다.
정지호 -------------------------------------------------------
2007년 ≪수필과비평≫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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