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활님의 글을 읽고 있으니 올해 1월에 있었던 수필과 비평 행사가 풍경처럼 지나가네요.
무언가를 향해 가는 길은 향기가 나는 길인가 봅니다.
향로
함박눈을 원 없이 맞으며 들뜨고 설레며 달렸던 그 길을 오늘은 문우
들과 동행하여 달려간다.
정년 없고 퇴출 모르는 직업을 성취한 지 8년 차다. 삭아드는 세월이
아닌 성숙한 나이라고 배려하고 챙겨주는 대구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
원들의 정성과 성의가 고마웠다.
쾌적한 승용차 상석에서 스쳐지나가는 산천경개와 풍광을 탐색하며
나누어 마시는 여행주는 온갖 근심 걱정을 날려 버린다. 잘 다듬어진
도로, 적당한 거리에서 기다려주는 시설 좋은 휴게소 쉼터를 이용하며
참 풍요롭고 좋은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온 날들이 미
안스러울 뿐이다.
네 시간 넘게 달려 도착한 전북대학 최명희홀 행사장. 서정환 발행인
과 수필과비평 유인실 주간님의 살갑고 환하게 맞아주는 배려는 고향에
찾아온 기분이다. 무엇보다 축하하고 반가운 일은 대구수필과비평작가
회의 조병렬 회장이 신곡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일이다.
전국에서 모여든 수필과비평 출신 작가들의 얼굴을 볼 수 있어 즐거
웠다. 작품은 읽었지만 얼굴을 모르는 작가들이 태반이다. 먹고 살기에
쫓기고 팍팍한 삶을 우선순위에 두다 보니 나의 처지는 불문가지로 여
겨졌다.
신곡문학상과 신인상 행사가 성대히 끝나고 식사는 구내식당에서, 숙
소는 캠퍼스 안 대학생기숙사에 마련되었다. 기숙사 규율이 9시부터 출
입을 통제하고 남학생 여학생 숙소가 구별되어 있었다.
기숙사 시설은 깔끔하고 좋았다. 싱글 침대 두 대에다, 난방도 잘 되어
있고, 세면대도 일류 호텔에 손색이 없었다, 텔레비전은 공부에 지장을
초래하는지 보이지 않았다.
은행시험에 실패하고 도제살이 신세에서 그렇게도 가고팠던 대학이
아니었던가! 캠퍼스 안 대학생 기숙사에서 하룻밤을 지새운다는 감회
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심정을 짐작이나 하리오. 도수 있는 음료수
를 저녁식사자리에서 몰래 마련해, 대구문우들끼리 한방에 둘러 앉아
문학토론이며 정치, 경제, 의학, 여행, 온갖 얘기를 나누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이튿날 칼바람이 몰아치는 매서운 날씨에도 백제의 향기를 찾아가는
발길은 가볍고 신명이 났다. 능산리 백제왕릉, 정림사지, 궁남지, 국립부
여박물관, 웅장하고 화려하지는 않아도 아담하고 정갈한 조상들의 순박
한 삶을 자취를 엿볼 수 있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진본이구나. 가슴에 미진을 일으키고 시야를 사롭
잡는 진열품에 빠져든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돼서 일본에 계시는 장인 어른께서 전화를 주셨다.
동생 파친코 개업식에 건너올 때 신라금관 복제품을 구해 왔으면 하는
전화였다. 지인에게 탐문을 하니 금관 복제품은 자격증을 소지한 기능
인만이 제작할 수 있다며 소개시켜주었다.
어렵사리 마련했지만 일본세관에서의 웃지 못할 에피소드는 접어두
고, 신축건물 진열장 중심부에 금관 놓을 자리를 별도로 마련했다.
개업식 날 밀려드는 고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신라 금관이었
다. 진품, 복제품 하는 논쟁에는 관심 없고 찬란한 황금빛 화려함과 수천
년역사의 유산에 도취되는 이국인들의 관심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교
과서에서나 경주 박물관에 들르면 으레 접하는 금관, 별 관심 없이 보아
왔기에 국보에 대한 무지함을 자책할 따름이었다.
일본인들과 사석에서 흉금을 터놓고 대화를 하다 보면 역사성을 도외
시 하고 어딘가 모르게 우월성을 갖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한자, 불교,
도자기를 우리나라로부터 배워간 것은 까맣게 접어두고, 독창적인 자기
들 문자도 하나 가지지 못한 주제에, 사무라이 정신 운운하면서!
백제금동대향로의 예술적 가치며 심오한 사상은 문화유산담당자나
전문가에게 맡겨 두자. 살펴보면 볼수록 감탄할 수밖에 없고 기가 차게
아름답고 신비하다. 높이 61.8㎝, 무게 11.84㎞ 크기에 놀란다. 향로가 왜
이리 커야 했을까? 선계와 속계의 상서로움의 총 집합 도안과 설계며
섬세한 세공의 기법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는 장인의 천재성에 머리가
숙여진다.
원고 청탁을 받고 단문을 쓰려 해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고뇌에
찬 밤을 며칠씩 지샌 글이 발표되면 냉엄한 비판이 기다린다.
1500여 년 전 창조된 작품이 진흙 속에 잠자다 깨어나 물질 문명이
고도로 발달된 현대인에게 감동과 감명을 안겨준다는 것은 기적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마음을 깨끗이 하고 나쁜 기운을 없애준다 하여 사람들은 일찍부터
경건한 의식에는 향을 살랐다. 금동대향로에서 백제시대의 숭고하고 순
박한 생활상과 성심성의를 다하는 경건한 의식을 말해주고 있다.
인류역사를 찬란히 빛내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창조한 조상의
DNA를 전수받은 후손들의 무한한 가능성이 세계 1등 반도체 나라를 만
들고, 기능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독차지한다.
언 볼을 비비며 맛있게 먹는 점심식사, 옆 테이블 몰래 얻어 먹는 고기
한 접시 그 맛 그 재미, 천하일미는 거기에 있었다.
일정이 바빠 백마강, 낙화암, 고란사를 코앞에 두고 돌아서기가 아쉬
웠다. 신노우 회장의 “여태 백마강 낙화암도 여행 안 하고 뭐하고 살았는
교.” 핀잔에 멀리서나 보자며 고개를 돌렸다.
김종활 --------------------------------------------------------
2006년 ≪수필과비평≫ 등단.
'월간 수필과 비평 > 수필과비평 본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수필과 비평 2012년 3월호, 월평] 감성 소통으로의 구조 미학 - 유한근 (0) | 2012.03.23 |
|---|---|
| [수필과 비평 2012년 3월호, 사색의 창] 서울별곡 - 전해주 (0) | 2012.03.22 |
| [수필과 비평 2012년 3월호, 스페인기행] 해를 안고 날다 - 한계주 (0) | 2012.03.20 |
| [수필과 비평 2012년 3월호, 사색의 창] 속이산에게 듣다 - 최용규 (0) | 2012.03.20 |
| [수필과 비평 2012년 3월호, 사색의 창] 걱정하지 마라 - 김재훈 (0) | 2012.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