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 비평/수필과비평 본문

[수필과 비평 2012년 3월호, 사색의 창] 속이산에게 듣다 - 최용규

신아미디어 2012. 3. 20. 09:00

속리산은 들어 보았는데, 속이산은 무엇일까? 수필과 비평에 최용규님의 글이 실렸습니다.

산이 하는 말을 여러분들도 들어보세요..

 

 

 

속이산에게 듣다

 

   산은 속을 떠나지 않건만, 속이 산을 떠나는구나(山非離俗 俗離山).

   고향을 떠나 충북 땅에 뿌리를 내린 지 벌써 20여 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났다. 그 긴 시간 동안 줄곧 속리산을 가슴에 품고 싶다며 꾸욱
점 하나 찍어 놓고는 있었으나 어찌된 영문인지 정작 그 산의 실체를
마주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그동안 속리산을 방문할 기회는
많았으나, 그때마다 나의 발길은 법주사에서 멈추었을 뿐이었다. 사찰
경내를 한 바퀴 돌고 나서는 이내 절 앞 길거리에 나앉아 산촌막걸리
에서나 산의 정기를 찾으려 했으니 나는 그저 영락없는 속인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법주사 경내를 탑돌이 하듯 돌아보는 것으로 산행을 끝내곤
했던 내가 감히 문장대 등반에 도전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의
일이다.
   몇몇 시각장애인들이 봉사자들과 함께 산행을 하기로 뜻을 모으게 되
었고, 그 첫 번째 산행 목표로 속리산 문장대를 선택했었다. 당시는 잔설
이 남아있던 2월 중순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나만 아이젠은 커녕 등
산용 지팡이도 준비하지 못한 채 산을 올랐고, 그런 나 때문에 일행들
모두 중도에 되돌아서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산길을 덮은 눈과 부족한
장비 탓으로 돌리긴 했어도 실은 평소 나의 체력이 산행을 감당하지 못
했기 때문인지라 늘 마음속에 후회로 남아 있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난 11월, 우리 일행은 두 번째로 속리산 문장
대 등반에 도전했다.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상주 화북에서 출발하여 중
도에 쉬지 않고 곧바로 문장대로 올라가는 직선코스를 선택했다. 이번
에는 등산용 지팡이까지 준비했기에 처음부터 기운차게 산길로 들어섰
다. 그런데 예전 기억과는 달리 산길이 많이 변해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산길에 계단이 놓인 것이다. 끝없이 이어진 계단을 밟고 나아가는 동안,
봉사자의 리더인 김 선생이 내 뒤를 바짝 따르면서 이번에는 중도에서
포기하면 안 된다며 다짐을 놓았다. 한 시간여쯤 올랐을까, 이곳이 예전
에 내가 주저앉았던 곳이라며, 오늘은 꼭 문장대까지 가자고 일행들은
나를 부추겼다. 그러나 나와 짝이 된 조 선생은 벌써부터 점점 속도가
떨어지는 나를 걱정하는 눈치였다.
   얼마쯤 더 올라갔을까. 무언가 미세하면서도 촉촉한 기운이 뺨 위에
내려앉았다. 조 선생이 알려 주기도 전에 이것이 운무雲霧임을 감지했다.
내가 이제 구름 속으로 진입해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문득 산허리에 구름이 감긴 웅장한 산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제야 속리산이 일천 미터를 넘는 높은 산임을 실감하게 되었다. 속리
산을 생각하면 고작 법주사를 다녀온 기억만을 떠올렸던 나였는데 이제
야 비로소 산행다운 산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마음이 설렜
다. 그러나 하필 이때부터 내 다리의 체력은 바닥이 나기 시작했다. 왼쪽
무릎 위 근육에 경련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안간힘을 쓰며 이번만
은 동료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 했던 내 의지가 스르르 무너지기 시작
했다. 나의 한계는 여기까지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만 주저앉고 말았
다. 힘을 내보라는 일행들에게 손사레를 치면서 나를 제발 남겨두고 떠
나라 부탁했다. 서너번의 실랑이 끝에 결국 나와 봉사자인 조 선생은
쉴만한 자리를 찾아 엉덩이를 걸쳤다.
   그렇게 구름 속에서 한참이나 머무는 동안 온몸에 축축이 물기가 배
었다. 침묵을 깨고 조 선생은 내게 “위로 가는 길도, 그리고 우리가 올라
온 저 아래쪽도 구름에 덮이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네요.”라며 말을 건네
왔다.
   “조 선생 역시 시각장애인인 나처럼 앞뒤가 꽉 막힌 길 위에 있게 되었
겠네요.”라며 나도 실없이 대꾸를 하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
다. 어라, 이건 또 무슨 심리란 말인가. 정체모를 감정의 미세한 조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내 의식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길 옆 한켠으로 물러선
나의 옆으로 수많은 등산객들이 웃고 떠들며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앞을 멀리 볼 수 없을 만큼 갇힌 시야 속에서도 산으로 오르는 길의 존재
를 믿으며 확신에 찬 발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떼어 놓고 있었다. 곧바
로 무의식으로부터 반향이 있었다. 어둠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
한 탈출 방법은 이렇게 담대해지는 일이었던 게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그만인 것이었다. 그래 맞다. 인간은 어느 누구라
도 위기를 겪는다.
   “지금 여기서 다시 시작하거라.” 속리산 구름 속에서 산의 음성이 들
리는 듯싶었다.
   그 순간 내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든 풀잎에 물이
오르듯, 풀렸던 다리에 다시 힘이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천천히 손을
내밀어 조 선생의 팔을 힘껏 잡았다. 조 선생은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어
우리의 출발을 알렸다. 다른 일행들에게 나와 조 선생을 정상에서 기다
려 달라는 전갈을 보낸 것이다.
   얼마쯤 더 걸었을까. 찬바람이 옷깃 사이로 파고 들어왔다. 구름 사이
를 빠져나온 것이다. 아니, 구름 위로 탁 트인 산길로 접어든 것이다.
나 속인은 이제 산의 진면목을 만나는 셈인가. 조 선생은 정상까지
1.7km란 표지가 나타났다고 알려준다. 벌써 정상까지 다녀온 후 하산하
는 등산객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정상에 가까운 지점에서 산길은 갑
자기 평지를 만나고 이 높은 곳에서도 물이 흐르는지, 나무다리도 지났
다. 조 선생은 산길 양 옆으로 조릿대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음을 알려주
었다. 나는 조릿대를 어루만져보았다. 손안에 가늘고 질긴 조릿대의 생
명력이 느껴졌다. 식물이 모진 환경과 결핍 속에서도 성장하려면 몸집
을 작고 단단하게 그리고 자세를 낮추어야 하는 법. 산은 또 다시 조릿대
를 통해 내게 충고해 왔다.
   “장애를 지닌 채 행복하게 살고자 한다면 부디 겸손하거라.”
   문장대가 머지않은 지점에 두 개의 큰 바위가 수문장처럼 우리를 맞
이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좁은 문으로 통과해야만 했다. 이 수문장
바위는 세속의 욕심으로 덩치가 커질 대로 커진 사람들이 정상에 발을
들여놓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좁은 문을 통과하고 나니 마지막 남은 길은 가파른 계단길이다.
온 힘을 짜내어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을 한 걸음 한 걸음 올랐다. 마라톤
코스의 마지막 백 미터를 통과하는 모양새였다. 그때 가파른 그 길 끝에
서 앞서 올라온 일행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의 환호는
내 귀에 승리의 나팔 소리로 들렸고, 내 마음속 하늘 위로 폭죽이 터져
오르는 것 만 같았다. 김 선생은 나를 덥석 껴안으며 이렇게 끝까지 완주
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온몸으로 전해주었다.
   문장대 아래에서 먹은 김밥과 컵라면 그리고 한 잔의 커피는 내 몸에
새로운 기운을 다시 찾게 해 주었다. 완주의 기쁨도 잠시, 내려가는 길
은 올라올 때와는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발밑을 조심해야 했다. 헛디
디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테니까. 그러다 보니 조 선생의 고생이 막심
했다. 거의 조 선생에게 매달리는 형세로 내려오며, 내가 미끄러지면
그도 따라 미끄러졌다. 내가 튀어나온 바위에 기어이 무릎을 찍었을
때는 자기 탓이라며 나보다도 더 아파했다. 그 순간, “고통도 은총이니
라.”라는 말이 떠올랐다. 산이 나에게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인가
보다 생각했다.
   내려오는 길에도 나와 조 선생은 자꾸만 뒤쳐졌다. 주차장에 있어야
할 승합차는 산자락 밑까지 올라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이나
일찍 하산한 일행들은 나와 조 선생을 걱정하며 조바심했을 터이다.
   시각장애인 여섯 명과 봉사자 여섯 명을 태운 승합차는 어둑해질 무
렵 식당 앞에 도착을 했고 모두가 함께 저녁을 먹으며 오늘의 산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행들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무사히 산행을
완주한 나를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자
꾸만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들었다. 산을 오르고 또 산을 떠나는 내내
산이 내게 전해준 이야기 때문이다. 산의 목소리와 함께한 등반을 통해
나는 지금, 여기서 다시 시작할 것이며, 앞으로 내게 닥칠 많은 고통도
은총으로 여길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산행은 시각장애인들을 집까지 내려놓는 일로 마무리 되었다. 거리상
내가 오늘도 승합차에서 내리는 마지막 차례가 되었다. 나를 내려주며
김 선생은 평소처럼 내 두 손을 잡고 따뜻한 온기를 건넸다. 그 깊고
진실한 온기는 산의 목소리와 하나가 되어 나를 푸근하게 감싸 올리는
듯한 기분 좋은 착각에 빠져들게 하였다.

 

최용규  ------------------------------------------------------
2008년 ≪수필시대≫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