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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3월호, 신인상 수상작] 고자촌 - 김인호

신아미디어 2012. 3. 12. 08:52

수필과 비평 신인상 작가의 글을 소개합니다. 고자촌..... 발칙한 상상을 즐겨주세요.

 

고자촌鼓子村

   결혼 35주년날 저녁이다. 멋진 이벤트를 계획하고 예약한 식당으로
차를 몰고 가 있는 내게 아내가 느닷없는 엉뚱한 제안을 한다. “여보,
우리 거기 한번 가 봐요. ‘짱구 만두집!’”
   나는 그 옛날 만두집이 금세 떠오른다. 나도 모르게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좋지, 하지만 예약해 놓은 식당은 어떻게 한담. 그럴 마음이었으
면 미리 전화라도 해줄 일이지, 하는 생각에 속이 좀 불편하기는 했지만
내색할 순 없다. 오늘은 우리들의 결혼기념일이 아닌가. 내 속은 아랑곳
없이 아내는 더 크게 회상의 날개를 펼친다.
   “힘들었던 그때 말이에요. 그 집은 우리 단골 외식집이었잖아요. 이제
그 동네가 어떻게 변했을까도 궁금하고…. 오늘 같은 날 양식보다는 짱
구만두에 단무지가 어때요, 더 좋잖아요?”
   큰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고 두 살 터울의 작은애는 시도 때도 없이 밖
으로만 나가려 하던 무렵이었다. 군의관을 마치고 소아과 전공의를 하
던 시절이었으니까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빠듯했다. 하루 건너 당직이
어서 집에 돌아오면 곯아떨어지기 바빠 식구들과 어울리는 건 겨우 한
달에 한두 번뿐, 그것도 토요일에나 아이들과 함께 조금 여유롭게 저녁
식사를 했다. 그때 간 곳이 아파트 단지 앞에서 버스로 세 번째 정거장
앞 고갯길에 있던 분식집이었다. 음식 맛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딱 들어
맞아 주말 나들이 코스로 제격이었다. 들창코 주인아주머니는 마음이
넉넉했다. 우리들이 들어설 때마다 “고자촌 가족이 납시었네.” 하는 인
사로 반갑게 맞고 겨울철이면 따뜻한 우동국물에다 밥도 말아주는 등
아이들을 퍽 살갑게 대했다. 아이들도 “안녕하세요?” 답인사를 하면서
집에서보다 더 편안하게 밥을 먹었다. 메뉴라고 해 봐야 짱구만두, 우동,
오무라이스 정도였지만 우리에겐 즐거운 만찬이었다.
   어느새 30년이 지난 그 힘들었던 시절을 아내는 그리움으로 간직하고
있는 모양이다. 당시는 우리나라가 건설 붐이 한창 일던 때였고 서울시가
강북의 경계를 벗어나 강남 개발을 시작한 때였다. 지금의 강남고속터미
널 근방 신반포 주공아파트를 건설하여 분양하는 대규모 국민 주택 보급
프로젝트가 발표될 시점으로 우리나라가 부흥의 기치를 내걸 때였다.
   ‘고자촌鼓子村’ 아파트를 분양받는 우선 조건 때문에 한두 자녀만으로
단산 수술을 받았던 신반포 단지를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고자촌이라
고 불렀다.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다면 고자와 마찬가지란 말이었을
까? 군주시대 내시처럼 성적性的장애자로 보이는 흉한 이름을 그들은 별
칭처럼 아무렇지 않게 불렀지만 입주자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집 없
는 서민의 애환으로 마음이 착잡했다. 인구증가 억제정책을 서민 아파
트 입주자에게 강요하는 주택 플랜이 통했던 그 시대는 군사정권 특유
의 일방적인 명령하달식 사회였다. 자원부족과 환경오염 등을 이유로
인구 억제정책을 시행하여 마침내 여성 1인당 합계 출산율이 1960년대
6명에서 1995년 1.65명으로 줄었다. 이제는 출산율 1.08명으로 홍콩, 우
크라이나, 슬로바키아 다음으로 세계 네 번째의 저출산 국가가 되었으
니 우리 가족도 고자촌 입주로 큰 기여를 한 셈이다.
   근래에 와서는 인구증가 억제책보다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대한 새
로운 시책이 필요해졌다. 육아휴직 급여를 올리고 3세 미만 자녀를 둔
근로자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육아휴직’ 등을 도입하여 OECD 평균
치인 1.6명까지 올려야겠다는 것이다. 가족계획용으로 임의 선택을 강
요했던 출산억제 주택분양 조항도 이제는 다자녀 우선으로 변했다. 그
러나 요즘 사회상의 변모는 아무리 출산을 장려하는 유인책을 펼쳐도
젊은 세대 특히 직장 여성들이 받아 주지 않는다. 아이들을 키우고 교육
시키는 데 필요한 시간과 정력을 자신들의 인생을 즐기고, 자아실현 욕
구를 키우는 데 투자하겠다고 가치관이 바뀐 것이다.
   지금 ‘고자촌’은 재개발한다고 인근에 공사파일기둥이 잔뜩 올라가고
있다. 아마 ‘다산촌多産村’으로 이름을 바꿔 불러야 할 것 같다. 우리 부부
는 옛날 집터 앞에 내려 주위를 걸으며 회상에 잠겼다.
   “여보! 그때 둘째가 유치원을 빼먹고 여자애들과 소꿉놀이 하던 곳이
저 모퉁이에요. 그날 유치원 선생님이 아이가 오질 않았다고 해서 얼마
나 놀랐던지 원….”
   그렇게 뛰놀던 애가 벌써 그 또래의 아이를 키우고 있다. 30년 전 이
고자촌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뛰어놀던 추억이 향수가 되어 가슴이 아련
해진다.
   “아주머니, 우리 알아보시겠어요?”
   짱구집은 제법 근사한 홀에 종업원이 많은 칼국수집으로 변해 있었는
데 카운터에 앉아 있는 아주머니의 들창코가 낯이 익어 반갑게 인사를
했다. 한동안 기억을 더듬던 아주머니가 “아니, 그때 그 고자촌 가족이시
네.” 하고 반색을 하며 손수 자리를 마련해준다. 또렷하게 우리를 기억
했다.
   “그때 토요일마다 만두 파티 하던 두 아들, 이제 그 아이들은 다 컸겠
네요.” 하고 세월까지 가늠해준다. 두 아들이 장가를 가서 자식들을 얻
었다는 것과 가족이 모이면 뜨뜻한 우동국물 같던 아주머니의 정을 이
야기한다며 결혼기념일인 오늘 여기를 찾아온 사연까지 아내가 자세하
게 설명했다.
   “그래. 결국 아들 형제로 끝이었군요. 딸아이가 있었으면 했었는
데….”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아주머니는 그 당시 셋째 딸을 가졌으면
했던, 그래서 집사람의 단산수술을 후회했던 우리들의 아쉬움을 대신
떠올려주고 있었다.

 

작가의 수상 소감 ------------------------------------------

   감칠 맛 나는 수필 한 편을 읽고 난 후 한참을 멍해져 안개 속 같은
여진餘振에 빠질 때가 있다. 그것은 숙련된 프로페셔널리즘이 보여 주는
감동 깊은 연주이거나 강렬한 그림, 객석을 떠날 줄 모르는 한 편의 잔잔
한 영화를 본 후의 잔상과 같다. 어떻게 이런 감정을, 이렇게 표현해
낼 수 있을까.
   나도 하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하고 흉내를 내 보지만 그 결과와
한계는 역시 아마추어임을 깨달았다. 그것을 알 때까지 너무 많은 고통
과 세월이 지났다. 지금 와서 뒤돌아보면, 기초와 뿌리가 허약한 의사가
함부로 넘보지 못할 세계를 겉멋만 내며 변죽을 울린 것 같아 나의 주제
넘은 행적에 수치와 회한을 느낀다. 그러나 이제 그 심오한 영역의 늪에
조심스럽게 첫발을 담그려 한다. 불비한 저를 프로의 세계로 받아 주신
≪수필과비평≫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시점에서 다짐하건대 ‘내 수필 중 딱 한 문장만이라도 독자의 가슴
에 오랫동안 남길 수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깊이 고뇌하고 노력하여
보답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