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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3월호, 나의 대표작] 안단테, 안단테 - 김수자

신아미디어 2012. 3. 11. 17:00

김수자님이 추천하는 김수자님의 작품입니다. 작가의 소중한 생각을 나누어 보세요.

 

안단테, 안단테

   7년간 애지중지 타던 차를 바꿨다. 10년을 채우기로 작심했던 차를
7년 되는 해에 바꾼 것은 차가 자주 말썽을 부렸기 때문이다. 말썽은
창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맑은 날씨에는 멀쩡하던 창문이 비가 오거나
흐릴라치면 제멋대로 작동이 멈추어버리는 것이었다. 유리창을 시작으
로 차는 골병든 노인처럼 여기저기 아픈 곳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대물
림은 못하더라도 최소한 10년은 넘게 타야지, 차를 오래 타는 것도 돈
버는 일이다. 하면서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정비소를 드나들었지만 수리
비며 시간낭비가 많아 새 차를 사지 않을 수 없었다.
   타던 차를 바꾸는 일은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 정든 친구나 애인을
바꿔치는 것처럼 썩 내키지 않을 때가 많다. 색깔이며 모양을 선택하는
일에서부터 금액이며 취향 등 따져볼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중에
서도 힘든 것은 정 붙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옷이나 사람이나 가재
도구와 쉽게 정들지 못하는 나로서는 차라고 예외일 수가 없다.
새 차의 이름은 ‘라비타’다. 겉모양이 자그마하고 수수하며 단단해 보
이는 것이 무난한 인상이다. 그러나 내가 라비타를 선택한 속내는 그
무엇보다 이름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라비타는 이태리어로 ‘삶’이
란 뜻이라고 한다. 새 차가 도착한 지 이틀이 지나도록 나는 차를 타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차를 볼 때마다 함부로 할 수 없는 묵직한 것이
나를 압도하는 것이었다. 남의 차를 얻어 타거나 걷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이삼일을 보냈다. 차는 내게 ‘삶이란 대체 뭘까요?’라는 질문을 나
직이 그러나 집요하게 던져왔다. 열쇠를 꽂는 순간에도, 신호대기를 하
고 있을 때도, 무심히 달리고 있을 때도 차는 나에게 ‘삶’을 생각하게
했다. 그래서 나는 내 자신의 삶에 대해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피카소가 자신의 예술세계를 ‘색깔’로 구분했듯이 나의 삶은 내가 탔
던 자동차의 종류로 대변할 수 있다. 그동안 ‘포터’를 시작으로 ‘픽업’ ‘프
라이드 3도어’ ‘프라이드 5도어’ ‘세피아’ ‘악센트’ 그리고 라비타까지 모두
7종에 이른다. 차의 이름만으로도 내 삶의 변천사를 대충 짐작할 수 있
으니 우연치고는 참 재미있는 우연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차는 처음 탔던 ‘포터’다. 첫 차에 얽힌 추억은 첫사
랑의 기억만큼이나 감미롭고 강렬하다. ‘짐꾼’이라는 뜻의 포터는 1톤짜
리 화물차다. 포터 시절, 나의 삶 또한 짐꾼의 그것이었다. 적재함 가득
대가족의 먹을거리를 사 나르고, 방문하는 손님도 태워 나르고, 씨돼지
를 구입해오는 등 짐꾼의 역할은 막중했다. 차가 귀했던 시절이라 비록
짐차였을 망정 포터의 인기는 상한가였다. 시내 어디든 차를 세워도 단
속에 걸리지 않았고, 중앙시장 한가운데 차를 세워놓고 시장을 보는 일
도 거뜬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이는 시장 아주머니들의 환대
며, 덤을 듬뿍 얹어주는 시장인심도 푸짐했고, 차례를 기다리는 곳에서
는 남자기사들이 선뜻 앞자리를 양보해주었다. 그 시절 포터를 한번이
라도 타봤던 어린 조카들이나 친지들은 적재함에 앉아 우툴두툴한 비포
장도로를 달렸던 일을 ‘멋진 추억 1호’로 간직하고 있으니, 추억은 참
소박하고 사소한 데서 시작되나 보다. 고급 승용차가 흔해빠진 지금 굳
이 짐차를 타고 즐거워할 일이 있을까?
   변두리에 살면서도 일찍 운전을 배웠던 것은 근교에서 농장을 하는
환경 탓이 컸다. 한 시간마다 다니는 버스를 타고 시장을 봐 나르는 일이
힘들었을 뿐더러 양손에 짐을 들고 택시를 타는 일은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다. 택시기사들의 승차거부와 요금시비에 주눅이 들었기 때문이
다. 남편을 기사로 부리는 일은 더욱 불편했다. 애걸복걸해서 차를 얻어
타면 시장입구에 달랑 내려놓고 “5분이다.” 하며 선심 쓰듯 위세를 부린
다. 사야 할 물건이 얼마인데 사정사정하면 “옜다, 10분.” 하고 시간을
늘려준다. 포터를 만난 뒤로는 누구에게 시간을 구걸할 필요도 없었고
산더미만 한 짐도 겁나지 않았다.
   두 번째 만난 차는 픽업이다. ‘사람을 마중가다’라는 뜻의 픽업은 주로
아이들을 태워 날랐던 차다. 유치원을 시작으로 초·중·고 15년간 나는
아이들의 기사 노릇을 도맡았는데 아이들의 몸집이 불어나는 속도에 맞
춰 프라이드 3도어, 5도어로 옮겨갔다.
   세 번째 차 프라이드는 ‘자랑스러운 마음 또는 자존심’이다. 자존심은
제 몸이나 품위를 스스로 높게 가지는 마음이다. 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 자신의 자존심을 증명해 보일 요량으로 <우리들의 고향>이라는
글을 써 신동아 논픽션 최우수상을 받았다. 결혼 16년 되던 해, 수입개방
과 가격 폭락으로 농장이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한 자 한 자 썼던 글이다. 으리으리한 시상식장에서 수상
소감을 발표하는 행운을 잡았다. 내가 노린 것은 최우수상이라는 영예
보다 바로 이 수상소감이었다. 수상소감은 ‘고별사’로 대신할 예정이었
다. 땀과 열정의 무대를 떠나는 주인공으로서 화려한 고별사 한 편을
읊게 되니 이런 영광이 또 있겠느냐…. 과연 객석 어디선가 “본문보다
수상소감이 더 걸작이다!”라는 환호성이 들려왔다. 글쓰기에 치유의 힘
이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누덕누덕 흥부네 입성처럼 해진 자존심에
위로와 보상이 내리는 순간이었다.
   네 번째 차 ‘세피아’의 뜻을 나는 알지 못한다. 취향이 맞지 않는 친구
처럼 웬일인지 나는 이 차에 정이 들지 않았다. 아이들이 자라서 대학기
숙사로 떠나고 나니 휑하니 넓은 공간이 부담스러웠다. 서둘러 크기가
한 단계 낮은 ‘악센트’로 바꾸었다. 내 삶에서 강조될 만한 거대사건은
시부모님과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신 일이다. 나를 이끌어온 근엄함謹嚴
과 자애慈愛의 두 축이 지상에서 사라져버렸다. 동시에 나는 명실상부한
어른(?)의 반열에 올랐고 자애와 근엄함을 행사해야 할 몸이 되었다.
   지금 나는 라비타를 타는 60대의 아낙이 되었다. 먹을거리를 자급자
족하며 쉬엄쉬엄 살아가는 것이 나의 꿈이다. 음악적 표현으로는 ‘안단
테, 안단테’쯤 될까. 굳이 애걸복걸하지 않아도 시간은 내 편이 되었고
이젠 바쁘게 실어 날라야 할 짐 같은 건 있지도 않다. 그래서 생각해
보는데 아마도 ‘라비타’는 내가 타는 마지막 차가 되지 않을까. 심심풀이
로 장을 한 바퀴 구경하고 먼 도시로 나들이 가는 정도라면 대중교통으
로도 충분할 것이다. 세상의 공기를 더럽히지 않고 외화를 절약하는,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애국의 길이기도 하다. 안단테, 안단테를 흥얼거리
며 또박또박 걸어 다니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나에게 신선한 자유를
수여했으며 내 눈물과 땀, 열정, 슬픔과 애정까지도 가장 가까이서 지켜
본 차들아, 정말 고맙다.

----------- 작가메모 ---------------------------------------------

진정한 나의 동반자
   돌아보니 내 양손엔 언제나 시장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시장을 들락거릴 때도 있었다. 차 없이는 한 발자국도 옮길 수 없는
변두리에서 줄곧 살아왔으므로 차는 일찍부터 필수품이었다. 아마도 철이
든 이후 내 인생의 절반은 차 속에서 보내지 않았을까. 그러니 차를 바라보
는 나의 시선 또한 각별한 것이었다. 차는 나의 가장 만만한 피신처였다.
아니 안락한 거주지였다. 나와 함께 나의 인생을 밀며 끌며 살아준 차에게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 세상에 보답해야 할 것이 차뿐이랴. 고맙다. 나의
차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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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자 ------------------------------------------------------------------
1988년 월간 ≪문학정신≫ 수필부문 신인상.
1990년 신동아 논픽션 최우수상, 농민신문 ‘돼지엄마 김수자’의 세상 사는 이야기 집필.
1991년 전남문학상, 2009년 순천문학상.
수필집: ≪돼지일가≫, ≪낭만산골≫, ≪돼지꿈≫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