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된장국이 최화경님에게는 어떠한 존재이고, 생각과 고민은 무엇이었을까요?
양파 된장국
크리스마스 이브다.
남편은 올해도 밖에서 저녁 먹자는 내 뜻을 거절(?)한다. 특별한 날,
북적이는 곳에서 세상 끝인 양 너도나도 엉겨 비슷한 방법으로 특별함
을 즐기는 걸 제일 싫어하는 남편이 할 만한 일이다. 내가 까다로운 것인
지 그가 무심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심 역정이 났다. 한두 해 일도 아니
고 벌써 이십 년도 넘게 이런 사소한 일로 마음을 다친다. 무뎌질 때도
됐건만 가슴 한쪽이 여전히 찌개냄비 끓듯 보글댄다. 남편은 퇴근해서
집에 와 있을 것이다. 급할 것도 없고 애통터질 것도 없었다. 느릿느릿,
천천히 집으로 왔다.
멸치 냄새, 다시마 냄새, 튀긴 두부 냄새, 남편은 저녁반찬으로 두부조
림을 한 것 같았다. 혼자 밥을 먼저 먹은 듯 식탁이 엉망이었다. 이것
또한 음식 만들기 좋아하고, 외식 싫어하고, 배고픈 것 못 참는 남편이
할 만한 일이다. 짜증과 우울함이 함께 밀려왔다. 그릇장 위에 놓인 갖가
지 양초가 날 비웃는 듯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다. 백작 부인처럼 화려하
던 넝쿨 모양의 촛대가 오늘따라 내 마음같이 초라해 보였다. 촛불을
켜고 마주 앉아 와인을 마셔도 시원찮을 크리스마스 이브에 두부조림이
라니…. 어금니 사이로 신음 같은 비애를 지그시 밀어넣는다.
“두부 맛있어. 밥 먹어.”
불편한 내 심기를 알아챈 듯 남편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두부조
림을 생각하자 또 신경질이 난다.
‘뭐 하나 맞는 게 있어야지!’
이상한 일이다. 남편은 기름진 걸 아주 싫어하면서도 두부조림만은
꼭 튀긴 두부를 쓴다. 난 튀긴 음식을 유난히 좋아한다. 그러나 두부조림
은 튀기지 않은 두부로 조린 걸 좋아한다. 다른 입맛이 한두 가지도 아니
건만 오늘은 참기 힘들다. 두부를 튀기고, 멸치와 다시마로 국물을 내고,
다시 졸이고 그 번거로운 일을 꼭 크리스마스 이브에 하고 싶었을까.
냄비를 열어보니 두부가 먹음직스러워 보이긴 했다. 그러나 무슨 심술
인지 먹고 싶진 않았다. 다른 반찬을 꺼내려고 냉장고를 열었다. 순간,
목구멍으로 비명 같은 게 올라온다. 처박히듯 냉장고 구석에 서 있는
와인 병 때문이었을 것이다. 못 볼 것을 봐 버린 듯 눈을 질끈 감았다.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한 여자가 된 듯 절망스럽기까지 했다. 언제
사다 놓은 건지 기억도 안 나는, 아니 생각하기조차 싫은 너무 오랜 시간
이 지나버린 와인이, 다시는 뽑히지 않을 말뚝처럼 서 있었다. 남편과
한번쯤 무드있게 마셔 보려고 사다 놓았지만 와인 따위엔 관심도 없는
무심한 남편을 기다리다 지친 내 허영에 와락 염증이 났다.
텔레비전에선 계속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쳐대고 있었다. 있는 반찬
에 밥을 먹다 보면 내 초라함에 어딘가가 폭발해 버릴 것만 같았다. 뭔가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 이 위기를 넘길 수 있을 것 같은 절대적인
순간순간이 지나갔다. 그냥 라면을 먹어 버릴까 생각도 해봤다. 아니,
그렇게 극단적일 필요까진 없지 싶었다.
뭐가 좋을까. 김치찌개, 너무 자극적이어서는 안 된다.
소금에 절인 고등어구이, 그건 역겨울 수도 있다. 생선 비린내가 어디
만만한가.
무를 넣은 맑은 동탯국, 이거야 말로 오늘처럼 무심하고 무정해서 버
럭 소리를 지르고 싶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역겹
지도 않고 무심하지 않아 노엽지 않은 맛이 과연 있을 수 있을까. 그렇다
면 그건 이미 음식이 아닐지도 모른다. 뭐든지 다 좋을 순 없을 테니까.
만드는 사람 마음대로 맛을 조절할 수 있는 음식도 이럴진대 오만 정이
끓어오르는 사람 마음이 한결같아지는 것도 쉽지 않을 듯싶다.
난 싱크대 앞에서 전전긍긍했다. 냉장고 문을 신경질적으로 열었다
닫았다 하며 혀를 찼다. 이렇게 터져버릴 것같이 팽창되고 뾰족해진 내
심장을 다독이며 푸근하게 감싸줄 음식 같은 건 없을까. 뒤틀리는 내
위장을 순하게 달래주고 위안을 주는 음식 같은 건 없을까. 푸근하고
순한 것, 거기다 뜨거운 국물. 그리고 손쉬운 재료까지-. 그래, 된장국!
난 뚝배기에 멸치를 넣고 국물을 내서 된장국을 끓이기 시작했다. 매
운 고추 말고 좀 더 부드러운 맛을 낼 수 있는 재료를 생각하다가 양파를
넣기로 했다. 평소엔 들큰해서 잘 넣지 않던 양파를 오늘은 뚝배기가
넘치도록 듬뿍 넣었다. 양파된장국이 끓고 있는 동안 정답고 익숙한 냄
새에 신경질과 짜증이 다 녹아든 듯 다른 생각은 별로 없고 오직 식욕만
느껴졌다.
남편이 지어 놓은 촉촉한 밥에 뜨거운 양파 된장국을 호호 불어 가며
먹었다. 후련했다. 실컷 울고 났을 때처럼 가슴속 응어리가 다 풀어지는
듯했다. 양파된장국은 칼칼한 맛보다 들큰한 맛이 더 많았다. 팽팽하던
신경줄들이 느슨해지는 듯 기분이 한결 가벼워졌다. 사각사각 씹히는
양파가 꼭 변덕쟁이 나를 닮은 듯 해 쿡, 웃음마저 나왔다. 앙칼지고 매운
날것의 양파를 조금만 따뜻하게 해 주면 이토록 부드럽고 달콤해지는
건 변덕이 아니라 변화겠지만 말이다. 변덕이든 변화든 난 왜, 변하는
사람일까. 내가 너무 가볍고 기복이 심한 걸까. 항상 냉장고 구석에 준비
되어있는 된장, 흔해서 귀한 줄도 모르는 된장, 웬만해선 변질되지 않는
된장, 먹을 때마다 한결같이 구수한 된장국처럼 왜, 난 변함없는 사람이
될 순 없는 걸까. 혹시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닌가. 그러고 보니 남편
이 된장과 닮은 듯도 했다. 나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난 맞지 않는 부분을 이해하려 들지 않고 나쁘다고
만 생각한 건 아니었는지.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산만큼 커졌다.
식곤증이라도 밀려드는지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던 남편이 가늘
게 코를 곤다. 저녁 준비하느라 피곤하기도 했을 것이다. 측은한 마음에
날양파를 먹었을 때처럼 싸하니 가슴 어딘가가 아려왔다. 내가 원색적
인 말로 후벼파고 공격적으로 덤빌 때 남편의 마음도 맵게 아려 왔을지
도 모를 일이다. 나만 아프고 나만 상처받는다고 생각하며 이기적으로
살아왔던 것 같아 또 미안했다. 남편의 피곤한 콧소리만 들어도 이 지경
으로 마음이 헝클어지는 걸 보면 오늘의 양파된장국은 단순히 음식이
아니라 묘약 같은 게 분명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수고롭게 양파 된장
국을 끓이게 한 게 꼭 누군가의 계시같이 느껴졌다. 있는 그대로 사랑하
라는 메시지 같은 걸 전하려는 방법으로 말이다.
최화경 -------------------------------------------------------
2003년 ≪좋은 문학≫ 등단.
수필집: ≪음악 없이 춤추기≫, 공저: ≪그리운 것은 그리운 대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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