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에 관한 명상
태초의 소리
음속의 단위는 마하이며 마하 1은 시속 1,200km이다. 마하 1을 넘어서
면 초음속이라 하고 마하 1을 넘나드는 것은 천음속, 마하 1에 못 미치는
속도는 아음속이라 부른다. 그런데 빛의 속도는 시속 10억8천km로 이는
90만 마하에 달한다. 빛은 변하거나 썩는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지금의
빛의 속도나 창세기 때 하나님이 불러온 빛이나 그 속도는 변함이 없을
것 같다.
태초에 빛을 부른 것은 소리였다. 구약성서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그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가라사대’로 시작되는 음성을
소리라고 치면 소리가 앞서고 빛이 뒤에 서서 천지 창조의 서막을 연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인 “빛이 있으라.”는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
오는 순간 우주 공간에서 대기하고 있던 빛이 음속을 앞질러 이 세상에
광명을 먼저 뿌린 건 혹시 아닐까. 총알의 속도는 마하 2.7~2.9 정도이
다. 전쟁터에서 총알을 맞은 군인이 머리가 수그러질 무렵에 총소리가
들린다고 하니 태초의 소리와 빛이 어느 것이 먼저인지 서열을 정하기
가 매우 까다롭다.
소리와 분노(The Sound and the Fury)
<소리와 분노>는 미국의 작가 윌리엄 포크너가 쓴 소설의 제목이다.
통상적으로 소리(sound)가 주제가 될 때마다 이 소설의 제목이 떠오르지
만 소설 전체를 통해 소리에 대한 따듯한 설명이나 배려는 없다. 다만
작가는 몰락하는 미국 남부의 명문 가문의 가족사를 통해 ‘인간은 누구
나 시간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작가는 인간의 내면에 흐르고 있는 ‘의식의 흐름’과 ‘내면의 독백’을
적절히 구사하면서 소설의 줄거리를 끌고 간다. 인간의 의식은 과거의
추억을 끊임없이 회상하고 미래의 꿈과 희망을 한없이 기대하고 희원하
는 것으로 뭉쳐져 있다.
이 소설은 벤지의 장, 퀜틴의 장, 제이슨의 장, 딜지의 장 등 4부로
엮어져 있다. 작가는 의식의 흐름 속에 소리 없이 외쳐지는 내면의 독백
을 하나의 ‘소리’로 뭉뚱거리지 않았을까.
뭉크의 <절규>
소리는 귀로 듣는다. 맞는 말이다. 불가에서 흔히 말하는 ‘보이지 않는
것은 보이는 것의 위에 있다.’는 법문을 상기하면 들리지 않는 소리는
영혼의 울림으로 알아차려야 한다. 정좌난문향靜坐蘭聞香이란 말이 있다
‘조용히 앉아 난초의 향기를 듣는다.’는 옛 선비의 말씀은 냄새를 맡는
코가 아닌 향기를 듣는 귀를 치켜세우는 최고의 찬사다. 향기를 들을
수 있는 보청기가 있다면 당장 하나 끼워 봤으면 싶다.
몸이 귀일 때가 있다. 노르웨이 표현주의 작가 에드바르드 뭉크의 걸
작 <절규>를 난초 향을 듣는 마음가짐으로 들여다보고 있으면 소리가
너무 강렬하여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정말 형용할 수 없는 절규가 공중
에서 날아와 심장에 박히는 것 같다. 이 소리는 귀가 아닌 온몸을 통해
들린다. 뭉크의 <절규>를 만날 때마다 오장육부가 확 뒤집어지면서 눈
귀 코 등 몸의 구멍마다 소리가 튀어 나올 것 같다. 소리향연은 음악회에
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화집에도 있고 “사이소.”가 범벅이 되어 있는 장바
닥에도 있다.
감옥에서 들리는 소리
<오적五賊>의 시인 김지하가 감옥에서 한 경험이다. “심한 벽면증壁面
症·독 감방에서 오래 있을 때 앓게 되는 정신착란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백일
참선에 들어갔다. 수행 후반기의 어느 저녁 취침 나팔 소리가 갑자기
고막을 찢고 허공을 가르는 우레 번개처럼 크게 울렸다. 그때 독수리의
발톱 같은 것이 내 두개골의 두피를 콱 찍어 위로 끌어올려 몸이 반쯤
허공에 솟았다가 쿵하고 떨어져 마룻바닥에 뒹군 적이 있다. 그때의 나
팔 소리! 그것은 과연 소리였을까.”
그것은 내가 더러 경험하는 뭉크의 그림 <절규>에서 느끼는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음으로써 일어나는 착란 현상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는 들리는 소리와 들리지 않는 숨은 소리가 서로 상호관계를 갖고 교감
하고 있다. 귀에 들리는 소리는 끊어져도 숨은 소리는 계속 영혼을 울리
고 있다. 뭉크의 그림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그 소리가 죽어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늘에도 검은 그늘이 있고 흰 그늘이 있다. 햇빛이 났을 때 땅에
드리워진 그늘이 검은 그늘이라면 비가 오거나 날씨가 흐릴 때 보이
지 않는 그늘은 흰 그늘이라 말할 수 있다. 그늘이 보이지 않는다고
그늘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소리도 마찬가지다. 꼭 들려야만 소리
인가.
수화 찬송
기독교 봉사단체 회원들과 함께 소록도에 간 적이 있다. 소록도 내
교도소에서 죄수들과 함께 예배를 보게 되었다. 교도소 마당에 나란히
앉아 예배를 보는 중에 찬송가를 부르는 순서가 되었다. 단원 중에 청각
장애자 한 사람을 둘러싼 대여섯 명의 소녀들이 단상으로 올라가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이란 찬송가를 수화로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교인이긴 하지만 한번도 은혜를 받아 본 적도 없고 불같은 성령
의 힘을 경험하지 못한 냉담신자였다. 그런데 수화 찬송을 듣고 있으니
갑자기 섬광 같은 불방망이가 뒤통수를 내려쳐 온몸에 전율이 일면서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쏟아져 손수건
을 적시고 그것도 모자라 웃옷의 양 소매를 흠뻑 적셨다. “야곱이 잠깨
어 일어난 후 돌단을 쌓은 것 본받아서 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아멘.” 하고 4절이 끝나도록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울고 나니 후련했다. 무엇이, 어떤 힘이 나의 두 눈에 그렇게 많은
눈물을 흘리게 했는가. 그것은 아마 수화 찬송이라는 육신의 귀로는 들
을 수 없는 영혼의 귀가 듣는 소리였음이 분명하다. 들리지 않는 소리의
힘은 인간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사악함과 간악함을 눈물로 변주시키는
무서운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늦게서야 알게 됐다.
수화로 울부짖기
수화로 울부짖는 소리가 이 세상을 감동시킨다. 바람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바람은 그냥 바람이듯이 소리가 귀에 들리지 않아도 소리 속의
진실은 절대로 거짓 속에 묻혀 없어지지 않는다. 광주인화학교 청각장
애자 성폭력 사건을 지켜보면서 새삼 들리지 않는 소리의 분노가 얼마
나 큰 파장으로 지축을 울리는지 똑똑히 알 수 있었다.
소위 교사라는 자들이 자식 같은 농아들을 성폭행하고 두 손을 뒤로
묶어 캄캄한 교실에 버려둔 채 퇴근해 버린 경우도 있었다. 이게 인간
이며 스승인가. 좁은 지면에서 더럽고 추악한 짐승들의 비열한 행동을
일일이 기록할 수는 없다. 유전자는 먼 선조의 악행까지도 똑똑히 기
억한다는데 그들이 지은 죗값은 후손들이 반드시 갚아 줄 날이 올 것
이다.
검사의 고백
1심 공판의 검사였던 임은정(37·법무부 법무심의관) 씨가 검찰 내부 통
신망에 올린 글이다. “<도가니>란 영화를 보고 그때 기억이 떠올라 밤잠
을 설쳤다. 피해자들이 납득할 수 없는 재판 결과에 경찰 검찰 법원 변호
사의 유착이 있을 것이라고 오해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싶다.”
다음은 임 검사가 2007년 3월 17일 당일의 법정 상황에 대해 쓴 글이
다. “6시간에 걸친 증인 신문, 이례적으로 법정은 고요하다. 농아들은
수화로 이 세상을 향해 소리 없이 울부짖는다. 어렸을 적부터 지속돼온
짓밟힘에 익숙해져 버린 아이도 있고, 끓어오르는 분노에 치를 떠는 아
이도 있고…. 눈물을 말리며 그 손짓을, 그 몸짓을, 그 아우성을 본다.
변호사들은 그 증인들을 거짓말쟁이로 몰아붙이는데 내가 막을 수가 없
다. 피해자들 대신 세상을 향해 울부짖어 주는 것.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2009년 9월 20일에 쓴 글이다.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됐지만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왔다는 뉴스를 들었다. 현실적으로 성폭력에 관대한
선고 형량을 잘 아는 나로서는 분노하는 피해자들처럼 황당해 하지 않
지만 정말 치가 떨린다.”
이 사건을 폭로한 최사문 교사의 말이다. “그동안 청와대 교육청 등
관계기관에 수차례 진정을 했지만 어느 누구도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도가니>란 영화 한 편으로 여론이 들끓고 있는데 거품처럼 금세 꺼지
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픈 아이들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수화의 울부짖음이 드디어 하늘에 닿은 것이다.
이 세상에는 저주받아 마땅한 인간들이 너무 많다. 저주에 대한 징벌도
소리 속도쯤으로 빨리 와 닿았으면 좋겠다.
구활 ---------------------------------------------------------
경북 경산 하양출생. 매일신문 문화부장 논설위원.
에세이집: ≪그리운 날의 추억제≫, ≪아름다운 사람들≫, ≪시간이 머문 풍경≫,
≪하안거 다음날≫, ≪고향집 앞에서≫, ≪바람에 부치는 편지≫,
≪구활 선집 정미소 풍경≫등을 출간.
현대수필문학상, 대구문학상, 금복문화예술상, 원종린문학상 등을 수상.
매일신문에 ≪구활의 스케치 기행≫100회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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