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비평 2012년 2월호, 다시 읽는 이달의 문제작 3편 중에 박미서님의 '밥값'을 여러분들께 소개합니다.
밥값
여름내 신열을 앓았던 나뭇잎들이 붉은 열꽃을 피우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나, 파킨스병이래.”
수화기를 통해 전해지는 목소리가 너무도 명랑해 처음에는 잘 알아들
을 수가 없었다. 마치 “손자들 와서 같이 놀아야 해.”라는 말씀을 하신
걸로 착각할 정도였다. 오래 살면 반도사가 되는지는 몰라도 어떻게 그
리 평정심을 갖고 계신지 모를 일이다. 불과 몇 달 소식 뜸하던 차에
단체전 작품 자료사진 때문에 드린 통화 중에 하신 말씀인 것이다.
워낙에 고령이라 언제 어떻게 짚불 사그라지듯 할지 모를 노릇이라고,
작년 이맘때 화실에 들렀다 가시는 뒷모습이 유난히 좁아 보일 때부터
얼마 남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라고 마음에 단단히 일러두었지만 이리
빨리 닥치리라곤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이 선생님은 우리 청소년 시절 이 지역의 소문난 수학강사셨다.
대단한 실력의 소유자인 선생님의 수학강의는 늘 학생들이 몰려들어
수강신청을 받자마자 마감이 되곤 했다. 스타강사 중의 스타강사였던
셈이다.
8, 9년 전이나 되었을까. 문화센터 한국화 강좌에서 이 선생님을 처음
만났는데 호리호리한 몸매에 깐깐한 성품으로 문인화를 열심히 연마하
시는 모습이 참 건강해 보이셨다. 퇴임한 후, 붓 잡기 시작해서, 이미
몇 년 동안이나 서예와 문인화를 연마해 오고 있던 선생님은 상당한 수
준의 작품을 해오시곤 하셨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국화 강의는 중단
되었지만 선생님은 댁 가까이에 있는 내 작업실에 자주 찾아와 이것저
것 궁금한 것도 물어보고 작품 평도 부탁하곤 하셨다.
취미로만 하실 게 아니라고, 미협에 가입을 권유하고 지역 미협 고문
에 추대하여 원로작가의 위치를 자리매김해드리기도 하면서 이런저런
일 때문에라도 선생님과는 돈독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었다.
“나랑 저녁이나 먹을랑가?”
“선생님, 저, 일 있는데요.”
생각하니 송구스런 일 참 많이도 했다. 은퇴한 선생님께 매번 밥 얻어
먹는 일도 송구스러워 적당한 이유를 대 슬그머니 빠져나간 적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선생님 친구분들은 거의 세상을 떠나거나 병석에 누워있어 술 한잔
살래야 살 사람도 없다며 나를 볼 때마다 밥 먹자는 말씀을 하셨다. 어디
밥 먹자고 할 사람이 없어서겠는가. 노상 추워 보이는 내게 따뜻한 국
한 그릇 먹이고 싶은 마음인 걸 왜 모르겠는가.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저녁을 먹을 때면 선생님은 동석한 우리들에게
회고록을 쓰시곤 하셨다. 참 치열하고도 긴 여정이었다며 다시 한 번 살아볼
수 있다면 수학선생으로 말고 그림 그리고 음악하며 살고 싶다고 하셨다.
어느 저녁이었다. 저혈압인 선생님은 벌써 소주를 반병이나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풀어 놓으시는데 같이 간 성주와 난 구운 고기가 어찌
나 입에 살살 녹던지 선생님 말씀은 듣는 둥 마는 둥 고기 먹는 일에
정신이 팔려 허겁지겁 다 먹어버리고는 추가로 2인분을 더 먹어치우고
서야 부른 배를 문지르며 선생님을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별로 고기를
탐하는 것도 아닌 내가 어찌나 맛있게 먹었던지 지금도 그때 먹은 고기
육질의 맛이 입에 감겨 침이 고일 정도다.
선생님과 같이 먹은 밥자리가 어디 그때만 기억에 남아 있겠는가. 선
생님은 소주를 유난히 맛있게 마셨다. 선생님이 소주를 드시는 동안 나
는 주로 밥을 먹었다. 선생님 연배가 되면 나도 후배들에게 빌려줄 건강
하고 따스한 어깨를 가져야지. 후배들에게 아낌없는 술 한 잔 사주는
선배, 그리되고 싶었다.
참으로 염치없지만 지난 세월 동안 나는 선생님과 함께하면서 밥값이
나 술값을 단 한 번도 내 본 적이 없다. 아니 낼 수가 없었다. 늘 평온하
고 온화한 모습의 선생님이셨지만 내가 어쩌다 밥값을 내겠다고 말씀드
리면 단호하게 말리는 선생님 때문에 감히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자식 가르치는 어미는 허투루 돈 쓰는 게 아니다.”
아이의 외국유학 뒷바라지를 하는 내 처지를 두루 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선생님 앞에서 지갑을 여는 건 막무가내로 못하게 하셨지만 어쩌다가
화선지나 붓, 깔판 같은, 새로 나온 재료 등을 나누어 드리면 아주 좋아
하며 받으셨다.
봄꽃들이 다투어 피어난 화창한 날이었다. 선생님 모시고 성주네 음
식점에 갔다.
“오늘은 제가 낼 게요.”
아이가 드디어 졸업했다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그러면 가을부터나 내소.”
그런데 밥값 내라던 이 가을에, 파킨슨병이라니, 그래서 바깥출입을
조심해야 한다니, 그러면, 그렇다면, 나는 어느 세월에나 선생님께 맛있
는 밥 한 끼 소주 한 잔 대접할 수 있으려나.
가을은 점점 깊어지고 여름 강수량이 많아서인지 단풍은 요 몇 년 동
안 보기 드물게 예뻐 아침마다 집을 나서면 눈이 황홀한데 마음엔 선생
님이 떠나지 않는다.
산수화를 배우고 싶어 하던 선생님은 결국엔 시작도 못해보고 마는구
나. 절대적 내 편을 들어주는 또 한 분의 어른을 잃어버리게 되는구나.
폐 끼치는 게 싫은 선생님이 모시러 간다는 걸 마다하시고 4층 작업실
에 쉬엄쉬엄 올라오셨다. 단체전에 낼 두루마리 문인화 한 점을 가지고
오신 것이다. 병세를 늦추는 약을 복용하고 열심히 운동하는 일로 하루
를 보내신다고 한다. 그림을 펴니 매화 가지에 꽃이 화사한데 새 한 마리
가 선생님인 듯 가지에 단정하게 앉아있다. 나뭇잎 지는 늦가을에 화사
한 매화꽃이라…….
밥 먹으러 가자는 선생님께 “밥값은 누가 내는데요?” 어리광을 부리니
선생님 왈, “당연히 내가 내지.” 가을부터는 내가 내기로 했잖으냐고 했
더니 무효란다.
밥값을 선생님이 내면 어떠랴. 선생님이 사주시는 밥을 먹고 밥값을
잘하는 게 선생님께 대한 나의 도리일 거라고 짐짓 자위해본다. 어떻게
살아야 비싼 밥값을 하는 걸까.
약 잘 챙겨 드시고 운동 열심히 하면서 한 십 년만이라도 더 사시면 그런
대로 괜찮은 일이라고, 손이 떨려 그림 그릴 기분이 영 나지 않는다는 말씀
에 떨리면 떨리는 대로 운필을 하시라 했다. 붓 타령을 하시더니 두 자루를
챙겨 드신다. 작업실 분위기에 아마도 그림 그릴 의욕이 솟아난 듯하다.
선생님과 나와의 이야기는 이렇게 계속될 것이다. 선생님 말씀마따나
벌어놓은 돈 다 쓸 때까지는.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선생님의 말년이 유난히도 화려한 금년 단풍
처럼 밝고 화사하게 빛나기를 빌어보는 내 목소리는 허공에 흩어지고
마음은 무겁기만 한데, 이제 곧 겨울이다.
-≪수필과비평≫, 1월 123호.
신재기 교수님의 작품론 ----------------------------------------
박미서의 <밥값>을 읽어 보자.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그 이야기의
윤곽이 흐릿하다. 이야기가 보일 듯 말 듯하다. 여러 사건을 하나로 통일
하는 온전한 플롯을 지니지는 못했다. 미소한 이야기들이 거의 드러나
지 않을 정도로 잔잔한 물결을 이룬다. 화자는 자신에게 잘해 주는 선생
님 한 사람을 이야기한다. 어느 날 그 선생님께서 명랑한 목소리로 “나,
파킨슨병이래.”라고 하면서 전화를 걸어왔다. 여기서부터 이야기의 실
마리가 풀려나간다. 예전에는 지역에서 이름난 수학 강사이기도 했던
그는 퇴임 후 서예와 문인화를 연마하여 상당히 높은 작품 수준을 보여
주고 있다. 화자는 한국화 강좌에서 그를 만나 이런저런 일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작품에서 화자는 그 선생님에 관한 작은 이야기들
을 엮어가면서 그의 따뜻한 인간성을 부각한다. “참으로 염치없지만 지
난 세월 동안 나는 선생님과 함께하면서 밥값이나 술값을 단 한 번도
내 본 적이 없다. 아니 낼 수가 없었다. 늘 평온하고 온화한 모습의 선생
님이셨지만 내가 어쩌다 밥값을 내겠다고 말씀드리면 단호하게 말리는
선생님 때문에 감히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이 작품은 화자가 선생님과 식사를 함께하면서 경험했던 몇 개의 작
은 이야기 조각들을 차분하게 엮어간다. 그 화소는 너무 단편적인 조각
이라서 무의미한 듯하지만, 잘 어울려져 전체적으로 통일된 분위기를
연출하는 데 깔끔한 접착력을 발휘한다. 한 사람의 다정다감하고 온화
한 인간성을 주제로 삼고 있는데, 이런 미소한 화소들이 오히려 굵직한
마디를 가진 사건의 극적 전개보다 주제를 더욱 효율적으로 형상화한
다. 극적 서사로 구성된 수필도 있다. 소설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서사
를 전면에 부각하는 작품도 흔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수필의 서사는
뚜렷한 극적 마디를 드러내는 데는 한계를 지닌다. 수필가가 일인칭 화
자로서 깊숙이 개입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객관적인 화자에 의해 형상화
되지 못하고 작가의 직접적인 교술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
에서 서사의 이야기성은 그 각이 깎여 밋밋하게 변한다. 마디가 분명한
극적 플롯을 갖추거나 선명한 주제를 드러내는 수필도 나름대로 문학작
품으로서 강점을 가진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은 잔잔한 일상
의 화소를 담담하게 하나의 이야기로 결합하여 주제를 은근하게 암시함
으로써 수필의 묘미를 잘 살렸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성과는 ‘이야기하
기’라는 수필의 건강한 방식을 활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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