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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 비평 2012년 2월호, 내게로 가는 여정] 의자왕 가라사대 - 노혜숙

신아미디어 2012. 3. 5. 10:00

 

의자왕 가라사대

   “어찌 오셨는가?/ 방금들 많이 다녀가셨지…./ 흔하게 많이들 오는 그
사람이신가?”
   왜 아니랴. 유적지를 찾을 때마다 나는 여전히 ‘흔하게 많이들 오는
그 사람’을 면치 못한다. 유적의 내력보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일별하는
것에 그치기 때문이다.
   패망한 백제의 도읍지 부여. 그곳에 대한 나의 기억 역시 의자왕과
삼천궁녀, 낙화암, 부소산성에 건조하게 머물러 있다. 아무런 깊이도 넓
이도 없이 그저 일렬횡대로 얻어들은 정보가 전부다. 그보다는 언젠가
부소산성에 올라 낙화암으로 가는 길의 소나무숲 바람소리가 더 오랜
여운으로 남아 있다. 문학기행지인 부여로 출발할 때도 지레 감성의 결
을 출렁이게 한 건 바로 그 바람소리였으니.
   능산리陵山里 고분古墳에 들어선다. 세월에 깎이고 다듬어진 옛 왕릉의
능선들은 편안하고 아늑하기조차 하다. 영욕의 세월을 내려놓고 오래
전 한 줌 흙이 되었을 왕과 귀인들의 무덤. 천삼백사십 년의 시간을 거슬
러 당시 풍전등화의 백제 운명을 떠올리는 일은 왜 그리 아득한가.
   백제만큼 남아 있는 유물이 적은 나라도 없다 한다. 남아 있는 것이라
곤 고분, 탑만 휑한 절터, 무너진 성곽 그리고 불교 유물과 금제 장식,
토기 항아리 등이다. 학자들은 패망이 그 원인일 것이라고 지적한다.
춘원 이광수도 한 기행문에서 “쓸쓸함이 역사의 값이라면 부여만큼 고
적다운 고적은 없을 것”이라고 역설적인 표현을 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백제에 대해 좀 더 애틋한 정서를 갖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몇 년 전 낙양洛陽에서 발견된 예식진禮寔進의 비문을 통해 백제 패망
의 비밀이 밝혀진 적이 있었다. 웅진성을 지키던 장수 예식禮植(예식진
과 동일인물)이 의자왕을 배반, 나당羅唐의 편에 가담했고, 믿었던 도끼
에 꼼짝없이 발등을 찍힌 왕은 그날 밤 포로가 되어 적국의 수장에게
술을 따르는 굴욕을 겪었으며, 예식은 반역의 공로로 정3품의 벼슬을
얻고 평생 당황제의 총애를 받았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아마 사전
에 얻은 이러한 배경지식이 없었다면 나 역시 단순한 기행자의 낭만으
로 유적지의 무덤들을 훑는 데 그쳤을지 모른다.
   배신은 쓰라리다. 그 배신 때문에 한 나라의 명운이 끊겼다면 그보다
통한한 일은 없으리라. 천년세월을 훌쩍 넘어 한 줌 고혼으로 패망한
땅에 돌아와 가묘假墓에 누운 의자왕의 심정이 그러하지 않을까.
   의자왕은 사치와 향락으로 나라를 망하게 했다는 오명을 벗을 수 있
었으나 일국의 왕으로서 내우內憂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책임까지 면
할 수는 없을 테다. 충신은 내치고 예식뿐 아니라 그의 왼팔 노릇을 했던
좌평左平 임자壬子마저도 김유신과 내통하여 백제의 멸망을 거들게 했으
니 그의 인사가 지혜롭지 못했다는 비판은 면하기 어렵겠다.
   점풍이역占風異域 취일장안就日長安. 예식이 주군을 배반하기 전 바람
의 방향을 헤아리면서 어느 줄에 서야 할지를 점쳤다는 글귀다. 그는
치명적인 반역자로서 700년 역사의 백제가 무너지는 현장에 중심인물이
었고 그에 대한 공으로 평생의 영달을 보장받았다. ‘목적을 위해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열함도 불사하라.’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마
음에 들지 않지만 현실은 인간에 대한 그의 통찰이 예리했음을 알려준
다. 예식뿐 아니라 수시로 말을 바꾸고 줄을 갈아타는 요즘 정치판에도
그의 처방이 맞아떨어진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
   백제의 굴욕적인 패배의 흔적은 정림사지 오층석탑에도 뚜렷이 새겨
져 있다. ‘정림사지는 백제의 명운과 직결된 상징성의 공간’이다. 그 탑
하단부에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정벌한 기념탑’이라고 낙인처럼
새겨 한때 평제탑平濟塔이라 불렸었으니 패전국의 치욕과 슬픔이 오죽했
을까 싶다. 발굴 작업을 통해 탑의 연대와 절 이름이 밝혀진 것도 근래의
일이다. 온전히 백제 시대의 이름은 아니나 평제탑이란 오명을 벗게 된
것만도 다행이라 해야 할지. 부여 패망의 일주일 동안 치솟는 불길 속에
서 고스란히 그 참상을 지켜본 오층석탑이야말로 진정한 백제 패망의
증인이라 해야 하리라.
   한 나라의 패망에는 여러 요인이 있을 터이다. 그 해석은 역사가의
관점이나 입장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대개 역사는 승자의 입장에서
기록되며 왜곡되기 마련이다. 백제 패망의 요인을 오로지 의자왕 개인
에게만 돌리는 것이나 과장되고 윤색된 삼천궁녀의 전설 같은 것 등이
그러하리라. 그럼에도 패망을 가져온 필연적인 요인들은 분명히 존재하
고 그러한 사실들을 숙고하는 것은 난세를 사는 우리에게 통찰력을 갖
게 해줄 것이다. 비로소 알 듯싶다. 저 무연하게 들리는 부소산성 바람
소리의 의미를. 의자왕 가라사대, ‘실패를 통해 배우지 못하면 다시 실패
할 수밖에 없느니!’

 

 

노혜숙 ----------------------------------------------------
2006년 ≪수필과비평≫ 등단.
수필집: ≪조르바의 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