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마저 풍경이 된다
바람조차 풍경이 될 때가 있다. 철썩이는 파도가 쉬임없는 풍경이 되
듯이, 흐르는 강물이 시간의 모래톱이 되듯이…….
내가 그를 만난 것은 참으로 우연한 상황에서였다. 저녁이면 가끔씩
아파트 베란다에 나가, 지는 해와 떠오르는 달, 그리고 어슴푸레 번져
나오는 도시의 불빛들을 바라보곤 했다. 그날도 무심히 하늘을 스치는
구름과 구름을 스치며 지나는 저녁달을 바라보다 저만치 사람들과 자동
차들의 행렬을 따라 불빛 흐르는 거리의 가로수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
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참으로 우연한 일이 벌어졌다. 가로수 은행나무에 어떤
형상이 불빛을 받아 오롯이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얼
굴이었다. 키 큰 가로수들이 원추 모양으로 뻗어나간 가지들 사이로 수
많은 은행 이파리들이 엷은 겨울바람에 흔들리고 있었고, 나뭇가지들의
굴곡진 부분과 불빛에 반사된 나뭇잎들의 음영이 기묘하게 어우러져 은
연중에 한 남자의 얼굴을 기묘하게 연출해 내고 있었다. 우연히 내 망막
에 여울져오는, 마치 접사렌즈에 초점이 딱 잡히듯이 떠오른 얼굴, 음악
에 무지한 사람조차도 금방 알아볼 수 있는 그 사람, 바로 베토벤의 얼굴
이었다.
수많은 은행나무 이파리들이 가로등 불빛을 받아 사람의 얼굴 모습으
로 모자이크해낸 금빛 초상화 한 폭. 도대체 그가 떠난 지가 얼마인데
지금 이 낯선 도시의 가로수에 그가 얼굴을 내밀다니, 나무에 혼령이
씌었는지, 그 표정, 그 얼굴이 너무도 흡사해서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하지만 그는 나의 의구심과 놀라움에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늘상 하
던 버릇처럼 약간 침울한 표정으로 길가에 앉아 무거운 얼굴을 길거리
가드레일에 괴고 이내 깊은 생각에 잠기곤 했다. 날마다 밤이면 어김없
이 나타나곤 하던 그는 어느 날은 악상을 떠올리며 작곡을 하는 듯한
얼굴이었고, 어느 날은 달빛 아래 피아노 건반에 손을 얹고는 <월광소나
타>를 미친 듯이 연주하는 듯하였고, 어느 날은 들리지 않는 귀를 통하
여 지나간 세상의 소리를 불러내는 듯하였다.
또 어느 날은 가드레일 같은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거나, 밤거리를 질
주하는 차량들의 불빛 꼬리를 따라 소란스러운 도시의 길바닥에다 곡을
사각사각 쓰고 있는 그의 펜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였다. 그리고 하루하
루 그가 등장하는 횟수가 거듭되면서부터 이 소란스럽고 무질서하던 거
리가 낮은 음정으로 가라앉으면서 오래된 연주장의 어느 한 귀퉁이 같
은 분위기를 연출해내고 있었다.
밤이면 밤마다 나는 나뭇잎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흔들리고 있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려 베란다로 나갔고, 그의 침울한 얼굴과 표정을 관찰하
면서 어쩌면 그리도 흡사한 모습인지 놀라워 하며 아득한 시절 그와 관
련된 추억들을 떠올려보곤 했다.
내 어릴 적 초등학교시절 음악공책이면 으레 표지 그림으로 도배를
했던 그 얼굴, 악성 베토벤의 헝클어진 머리칼과 검고 넓고 두터운 눈썹,
그리고 꽉 다문 입술, 그 모습과 오늘 내 앞에 나타난 그의 얼굴은 어쩌
면 저리도 빼다박은 듯 닮았는지, 학부시절, 먼지와 담배연기 자욱한 음
악 감상실에서 골방의 유령처럼 듣곤 하던 그의 음악들, <운명>, <영웅>,
<합창교향곡>, 그리고 <전원교향악> 등, 오래전 유럽 출장길에 들렀던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풍경, 스위스 산록을 흐르는 교향곡의 배경 화면
들, 독일의 고즈넉한 전원 마을의 저녁 풍경들이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옛사람의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듯이, 그의 얼
굴과 모습 속으로 시적시적 걸어 들어가 보았다. 그가 거닐었던 시골마
을과 전원의 숲과 작은 집과 달빛 쏟아지는 창가에 오롯이 열려있는 피
아노와 삐거덕거리는 마루와 계단을 올라가서 먼지 나는 서재의 흔들의
자에 앉아보기도 하고, 겨울 밤이면 어김없이 마시곤 하던 비엔나 커피
한 잔과 케이크 한 조각을 씹으며 방 안 가득히 퍼지는 멜로디와 그 소리
의 향내에도 취해 보았다.
그리하여 날마다 낯선 도시, 이 거리는 불빛을 받아 은은하고도 불콰
한 얼굴을 내밀어 그로 하여금 일순간 비엔나의 어떤 거리로 현현한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거나, 그가 고뇌에 차서 걸었던 산책로가 되기도
하였다. 그즈음 매일 밤 나는 그를 만나서 몽상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마치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열리듯이 나는 그에게로 나아갔고 그 또한
말없이 나의 동행을 허락하였다. 청춘의 어느 한 시기에 점멸했던 욕망
과 갈등, 환희, 그리고 고통과 좌절을 물어보았고, 그의 굴곡진 생애를
물었고, 삶의 고비고비마다 저려오던 고뇌와 번민들을 그려 보았다. 그
가 악상을 떠올리던 때의 심상을 떠올려보았고, 그는 예의 심각한 얼굴
로, 그 표정으로, 그 무거운 침묵으로 나의 질문에 반응하곤 했다.
그는 청력을 완전히 잃고 난 후, 어느 푸른 들판에서 작은 새가 지저귀
는 숲 속을 거닐다가 문득 악상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것이 <전원교향
악>이 되었고 그 후로도 그는 수시로 완전히 먹통이 되어버린 귀를 통
하여 소리를 주워 담아가며 곡을 썼다고 한다.
나는 오래된 내 삶의 의문을 그의 생애를 빌려서 다시금 물어보았다.
운명은 어느 순간에 온다고 생각되던가요? 당신이 귀를 잃은 그 순간에
찾아오던가요? 아니면 사라진 기억을 찾아 몸부림치던 순간에 빛처럼
열리던가요? 당신의 고뇌가 멈춘 시기는, 아니, 당신이 고뇌로부터 멀어
진 시기는 어느 순간이던가요? 귀가 멀어서 세상 사람들이 악쓰며 살아
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그때이던가요? 아니면 세상의 소음 속에 흔들
리면서 번민에 빠져 있을 때, 잠시 음악 속으로 도피하던 때이던가요?
당신이 아름다운 세상을 보게 된 것은 또 언제부터이던가요? 태어나
서 처음으로 바람소리, 물소리, 그리고 숲 속의 새소리를 들으면서부터
이던가요? 아니면 언젠가 사라지고 말 그 한순간의 소리로부터 벗어나
흔들림 없는 정적의 세상으로 들어가던 때이던가요?
당신은 소리가 멎어버리고 온갖 음률이 끊어져 버린 세상에서 비로소
참소리가 보이던가요? 진동과 음향이 멸절된 세상에서 비로소 진정한
득음을 이루게 되었나요? 그때 비로소 티끌 하나 없는 순수의 소리, 그
절대음을 발견하였나요? 당신은 이제사 소리는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본다는 관음觀音의 경지에 든 것인가요?
‘빛을 듣고(청시聽視), 소리를 본다.(관음觀音)’는 세상은 그 어떠하던
가요?
당신이 참으로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이던가요? 비지땀을 흘리던 삶에
열심한 꼭짓점이던가요? 아니면 고뇌의 끝에서 그 고뇌를 던져버림으로
써 고뇌로부터 비로소 쉴 수 있었던 비움과 버림의 순간이던가요?
이 많은 질문에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가 내겐 들리진 않았지만, 그는
언제나 그 말없음으로 하여, 그의 주름살 깊은 곳에 감추어둔 그 무엇인
가 설명할 수 없는 모순과 초월을 말하여주었다. 그것은 질문에서 질문
으로, 의문에서 의문으로 끝나곤 하는 대화였지만, 대답없는 질문이란,
스스로 던지는 질문 속에, 그 질문과 질문 사이, 그 행간에 대답이 이미
깃들어 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지난 몇 주 동안 즐거이 그의 옛 세계로 여행을 떠났고,
그와 간단없는 대화를 나누었지만, 내가 그의 옛 그림 속에서 돌아 나올
때 쯤, 나는 그의 세상으로부터 아무것도 들고 나올 수가 없었다. 그것은
다만 그의 세상에서만 존재하는 것들, 반출되자마자 연기처럼 사라지고
마는, 입김 같은 것이었다. 음으로 하여 그의 세상 밖으로는 아무도, 아
무것도 가져나올 수 없어 그의 세계에서는 그저 수증기처럼 홀연한 것
들뿐이었다. 그래서 그의 세상에는 모든 게 다 바람(風)이고, 모든 게 다
기나긴 여행의 발자국에 불과하였다.
청신경을 완전히 잃어버린 다음에 그는 무슨 소리의 기억으로 음악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일까? 무너진 기억, 흔적의 일탈, 그리고 존재의 망
각, 그 끝없는 함몰상태에서 그는 소리 듣기를 도대체 어떻게 지속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아무런 단서나 기미조차도 알아차릴 수 없었음에도, 그의 얼굴
에서 내비치는 적요한 심상으로부터 번져 나오는 악상들이 내 마음속으
로 안개처럼 스며드는 듯하였다. 신묘한 가락, 고아한 선율, 인적이 끊어
진 거리, 스산하고 쓸쓸함마저 감도는 한밤의 풍경 속에서 요요한 음률
이 울려나오고, 시린 겨울의 대기 속으로 바람들이 그렇게 꼬리를 일렁
이며 투명한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그것은 세상이 모두 잠든 밤에 이루
어지는 괴이한 조우이자 남모를 신령스러운 만남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나뭇잎 흉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나무숲에 새겨진
실루엣을 따라 그와 몽중행을 다닌 지 대략 한 달만에 그가 소리없이
떠나버린 것이다. 어느 날 바람이 스산하게 불어와 겨울비 후두둑 떨어
지던 날, 노오란 은행잎들이 우수수 떨어져 앙상한 가지만을 남기자 그
의 모습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의 얼굴이 사라진 나뭇가지 사이로 겨울
바람이 숭숭 지나다니고 있었고, 다만 바람의 물결 사이로 사람들이 들
락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강물처럼 흘러 다니고 있었다. 그때 문득 나는
그의 세상으로부터 빠져나와 나의 세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내
가 나의 세상으로 돌아와 이렇게 묻고 있었다. 내가 선 이 자리에 내가
떠나고 나면 내 뒤로 어떤 풍경이 남을까?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히 잊히는 세상사, 바람 같은 내 상념의 이파리
들을 다 떨구고 나면 나는 무슨 흔적으로 남을까? 그리고 허허롭게 다시
물어본다. 내 의식의 뒤편에는 무엇이 남게 될까? 나는 어디서 왔다가
무엇으로 머물다, 어떤 흔적과 그림자를 남기며 떠나게 될까?
나는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사라진 그의 얼굴, 투명한 대기 속으로
떠나버린 그의 심상을 들여다보며 서늘한 겨울바람 속에 서서 나뭇잎
같은 마음의 티끌을 털어내어 보려 하였다. 시리고, 맑고, 안타까운, 생
의 한살이, 겨울바람 속으로, 그 풍경 속으로.
여승동 -------------------------------------------------------
2011년 ≪수필과비평≫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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