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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 2012년 봄호, 다시 읽는 좋은 수필] 담뱃대 - 김교신

신아미디어 2012. 3. 6. 08:00

좋은수필 2012년 봄호에서 해학과 풍자가 가득한 다시 읽는 좋은 수필을 소개합니다.

 

담뱃대


   진위眞僞를 보증하기까지는 어려우나 어렸을 때 들은 말이다.
아라사(편집자주=러시아) 사람들이 조선朝鮮사람의 담뱃대[연죽 :
煙竹]를 해부하였더라는 것이다. 대체로 문명文明한 선진 제 국민들
은 무장한 군대가 앞선 뒤에 상인商人이 따라가거나 혹은 개개인이
피스톨, 그밖의 호신용 무기를 몸에 지니고라야 외국 영지領地, 특
히 시베리아 같은 황야에 들어설 것인데, 조선인만은 조직체의 무
력적 원호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몸에 아무런 보신용구도 가진 것
이 없이 다만 담뱃대 하나씩만 들고 편편단신片片單身에 만주와 시
베리아의 넓은 들을 횡행활보橫行闊步하니 짐작건대 그 담뱃대 속에
는 반드시 비상한 장치가 있을 것이다. 평상시에는 담뱃대로 사용
하나 일단 완급緩急한 경우에는 그 대 속에서 5연발 혹은 10연발의
탄환도 튀어나올 수 있도록 되었기에 저 담뱃대 하나만 스틱처럼
흔들면서 송화강을 오르내리고 바이칼호를 넘나드는 것이 아니냐
고 추측했더라 한다. 서양 제품製品의 활동사진을 한 번이라도 본
일이 있는 사람은 아라사 사람들에게 이만한 상상력이 있는 것도
별로 기이한 일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저희들이 예리한
메스로써 담뱃대 하나를 해체解體하여 물뿌리, 대, 대꼭지의 세 부
분을 세밀히 검토하여 보았다마는 예기하였던 발사장치는 기어이
찾아볼 수 없고 오직 악취 분분한 니코틴(댓진)만이 대 속에 차 있
음을 발견하였을 때에 자못 실색失色하였더라고 하였다. 듣고 다시
생각하면 과연 백의인白衣人들의 신천적信天的대담성도 놀랄 만한
것이 없지 아니함을 스스로 깨닫는다. 우리의 무심한 담뱃대는 오
랫동안 아라사 사람들에게 한 가지 수수께끼가 되었다.
   수수께끼는 담뱃대에 한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친구 중에 의식
을 위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을 위함이 아니므로 농촌에서 야
학 혹은 강습회를 개최하는 이가 있다. 5, 6명을 모아 시작한 것이
5, 60명이 되고, 2, 3백 명 아동의 일단이 되며, 움집 같은 양조업
자의 빈방을 빌어 시작한 것이 2칸, 3칸도 좁아서 나중에는 시멘트
횟가루를 사용한 교사校舍를 건축하는 데까지 피땀의 공으로 성취
하여 놓으면 그제야 세상이 주목하고 감독 관청이 간섭하기 시작한
다. 기본 재산이 날 데 없는 것과 아동의 부담이 근소한 것이 명백
한데 이만한 발전이 되어가는 것은 오직 그 교사의 열성에 기인하
는 것이 분명하다. 경제적 조건이 부족하고 사회적 인식도 향기롭
지 못한 일에 저와 같은 열성이 있음은 이는 필연코 무슨 주의主義
를 선전하려는 자가 아니면 안 된다. 그렇다면 그 교사는 위험인물
이다. 이처럼 하여 삼단논법으로 아라사 사람들의 연죽관煙竹觀이
곳곳에 횡행한다. 《성서조선聖書朝鮮》과 같이 주판이 맞지 않는 사
업을 경영함도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는 백의인의 담뱃대이다. 그러
나 세밀히 해부한 결과‘십자가를 우러러보는 죄인’이라는 니코틴
신앙神仰밖에 그 속에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음을 볼 때에 아라사
사람들과 같이 저들도 실색대경失色大驚할 것이다.


김교신(金敎臣,1901 ~ 1945) ----------------------------------------

무교회주의를 제창한 교육자·종교인.

양정고보養正高普·개성 송도고보松都高普·경기중학 등에서 민족주의 교육과

국적 있는역사교육을통해학생들에게독립정신을고취하였다.

《 성서조선聖書朝鮮》을 창간하여 교리전파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제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