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좋은수필/좋은수필 본문

[좋은수필, 신작수필 17인선] 절반의 행복 - 최운

신아미디어 2012. 1. 15. 15:02

   시장 길에서 S 씨를 만났다.
   “오늘은 또 어디를 급히 가십니까? 날이 쩔쩔 끓는데.”
   그의 말마따나 시장 통이 영락없는 불가마 속이다. 오후 4시 직전
에 집에서 나왔으니 아침에 기상청이 발표한 일기예보대로라면, 지
금쯤은 오늘의 최고 기온인 40도에 다다를 바로 그 시간대이지 싶다.
마주 선 S 씨의 얼굴은 땡볕에 익어 시뻘겋고 땀에 젖어 번들거렸다.
내 얼굴도 마찬가지로 보였을 것이다.
   그는 ‘또’에다 힘을 주어 큰 목소리로 말했는데, 그 까닭이 짐작되
었다. 두어 달은 되었을까? 여느 날보다 일찍 아침을 해결하고 아들
네 집으로 걸음을 재촉하다가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그와 마주친 적
이 있다. 그날도 그는 무슨 용무가 급하기에 젊은이가 출근하듯 아침
부터 바삐 움직이느냐는 물음으로 인사를 건네왔다. 아들 내외가 가
게 일로 부득이 함께 나가야 하기 때문에 집도 지키고, 첫돌이 막 지
난 손녀의 재롱도 볼 겸 부리나케 가는 길이라고 좀 길게 설명을 해
주었다.
   “힘이 든다고 불평하시면 안 됩니다. 손자 손녀를 보고 싶어도 맡
겨주지 않아서 못 보는 시부모가 많답니다. 행복하신 줄 아십시오.”
   손녀 시중들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라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았는데, 내가 속으로 그러려니 했던 모양이다. 내 손자 내 손녀를
왜 못 보느냐는 대꾸에 그는 달다 쓰다 말이 없이“나는 갑니다.”한
마디를 나직이 떨어뜨리고는 휑하니 가버렸다. 세상 물정 모르는 이
런 숙맥을 봤나, 하는 표정만은 아니었던, 그날 그의 얼굴이 언뜻 되
살아났다.
   오늘은 아들네 집이 아니라 아들네 가게로 가는 길이다. 아들 내외
는 며칠 전에 방학 중인 손자 손녀와 젖먹이를 함께 데리고 피서 여
행을 떠났다. 그 애들이 돌아올 때까지 가게의 매상 돈 걷어 오는 책
임을 내가 맡고 있는 중이다.
   ‘이 더위에 늙은 아비에게 일을 떠맡기고 저희들만 피서를 가다니,
이거 되겠습니까?’내 안에 이런 불만이 들어 있을 것으로 S 씨는 또
지레짐작을 한 것 같다. 오늘도 그의 입에서는 서슴없이 행복론이 튀
어나왔다.
   “행복하신 줄 아십시오. 돈 통은커녕 가게 근처에 얼씬도 못하는
시부모가 어디 한둘인 줄 아세요? 업어 주셔야 해요.”
   “업어 주기는 누구를 업어 줘요?”
모르는 척 일부러 퉁명스럽게 되받았다. 그의 가정에 고부간의 갈
등이 오래 계속되고 있다는 소문을 며칠 전에 들었기 때문이다.
   “누구긴 누구에요…….”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어제 한국 뉴스를 못 들으셨군요.”
한다.
   무슨 뉴스지? 내 시선은 저만치 걸어 가고 있는 그의 뒤를 지남철
에 끌리듯 바짝 쫓아갔다. 땀을 뻘뻘 흘리며 떠벌이던 그가 땡볕 속
으로 흐물흐물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어쩐지 측은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한 달 전에도 그의 모습은 말소리처럼 그렇게 당당하지 않았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인터넷 뉴스부터 뒤졌다.
   “시부모는 가족 아니다 50%.”
이것이었구나. 잔등이의 땀이 싹 가시더니, 삼동에 문밖에서 떠는
몰골 흉한 늙은이가 그려졌다.
   갈피도 잘 잡히지 않았다. 아들네 집을 내 집처럼 맘대로 드나들면
서 손자와 손녀를 언제라도 볼 수 있고, 가게 돈도 내 돈인 양 만질 수
있는 걸 보면 절반의 이쪽이 분명하다. 그런데 아무리 자청한 일이라
하더라도 불볕 더위에 일은 내게 맡겨 놓고 저희들끼리만 피서지로
간 것을 보면, 절반의 저쪽인 것 같기도 하지 않은가.
   S 씨의 행복론으로 흐믓한 마음이 없지 않았으나, 그다지 행복한
저녁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