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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 신작수필 17인선] 대답하다 - 이향아

신아미디어 2012. 1. 15. 14:59

   1. 며칠이면 이런 책 한 권 쓰세요?
   요즘 며칠 집안일을 도와주러 오는 아주머니가 있다.
   첫날 내가‘아주머니!’하고 불렀을 때 그녀는 다소 놀라는 기색으
로 돌아다보며,
   “사모님은 나를 특별하게 부르네요.”했다.
   아줌마라고 부르지 않고 아주머니라고 부르는 것이 생소했던 모양
이다.
   아주머니는 나보다 훨씬 젊은데도 별로 건강해 보이지 않고 억척
스럽지도 않다. 그러나 늘 웃는 얼굴을 하기 때문인지 건강한 것처럼
보인다. 천성이 착한 것 같다.
   엊그제는 책상 위에 놓인 내 시집들을 떠들어보더니 맨 앞에 나와
있는 사진을 들여다보고 내 얼굴을 쳐다보고 했다. 우리는 서로의 이
름도 몰랐었는데 책의 겉장에 쓰인 이름과 그 안쪽의 사진을 연결하
여 내 이름을 알게 된 모양이다.
   “이거 사모님이 지은 책이에요?”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주머니는 고개를 깊이 끄덕이더니,
   “며칠이면 이런 책 한 권 쓰세요?”
했다.
   나는 대답하기가 난처해서 잠시 머뭇거렸다.
   시는 몇 글자 되지도 않으니까 한 권이라도 금방 쓸 수 있겠다 싶었
을 것이다. 그래서 며칠이나 걸리느냐고 물었을 것이다. 3, 4년씩이
나 걸린다고 하면 놀랄 것이니 5, 6년 걸린다고는 더욱 말하기가 어
려웠다. 사실 5, 6년이 지났다고 무조건 시집 한 권이 나오는 것도 아
니지만, 그렇다고 10년 이상이 걸릴 수도 있고, 영 써지지 않을 수도
있다고 어찌 말하겠는가.
   그래도 대답은 해야겠기에 대폭 단축하여서 ‘한 3년쯤은 써야 한
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그렇게 오래 걸리느냐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책 뒤에 적힌 정가를 읽었다.
   ‘만 원!’
아주머니가 입 밖으로 내어 읽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기껏 만 원밖에 하지 않는 것을 3년씩이나 시간을 들여서 쓰느냐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가를 밝혀야 하기 때문에 표시를 했다고, 그리고 좀 위신
을 지키고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만 원’으로 올려 적었다고, 육천 원
혹은 오천 원이라고 해도 별로 팔리지 않는다고 길게 설명하고 싶지
는 않았다.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종종 있다.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이해를 받기가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 이해 받을 수 없는 일에 나
는 왜 목을 매고 있을까? 마음이 쓸쓸했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혼잣
소리로,
   ‘책을 쓰는 사람이라서 아줌마라고 부르지 않고 아주머니라고 부
르는구나.’했다.
   아주머니는 책을 쓰는 사람을 그래도 괜찮은 사람, 특별한 사람이
라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2. 산책하러 나가세요?
   이른 저녁을 먹고 아파트 현관을 나서는데 경비 아저씨가 알은 체
를 했다.
   “산책하러 나가세요?”
   어제 경비를 섰던 아저씨는 산책하러 가느냐고 묻지 않고 운동하
러 가느냐고 물었었다. 내가 저녁이면 시냇가 둔덕을 걷는다는 걸 그
들은 알고 있다.
   ‘운동하러 가느냐.’고 물었거나‘산책하러 가느냐.’고 물었거나 물
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특별한 의미의 차이를 담아내지 않았을 것이
다. 그냥 평범한 저녁인사였을 것이지만 듣는 내 마음의 상태는 다소
달랐다.
   나는 어제 운동하러 나가느냐고 물었을 때도, 오늘 산책하러 나가
느냐고 물을 때도 똑같이 ‘예.’라고 대답했다.
   천천히 걸으면서 생각하였다. 나는 지금 운동을 하러 나가는가, 산
책을 하러 나가는가.
   운동을 하러 나간다면 운동이 될 수 있도록 걷는 모습이 달라지고
걸음의 강도나 속도가 달라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산책하러 나간다면 별로 구애받을 것이 없다. 산책이니까
유유자적 즐기면서 아무런 부담을 가지지 않아도 될 것이다.
   시냇가 둑길에는 오늘도 사람들이 많았고, 그들 대부분이 나를 추
월하여 바삐 걸었다. 팔을 좌우로 흔들면서 씩씩하게 걷는 그들은 분
명 운동을 목적으로 나온 사람일 것이다. 천천히 냇물을 들여다보기
도 하고 숲을 둘러보기도 하고 별을 쳐다보면서 걷는 사람은 산책을
했을 것이다.
   스스로 세운 목표 때문에 지칠 때가 있다.
   젊은 시절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나는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에게
목표가 없음을 지적하고 독려했던가. 이상과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올라야 할 산정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얼마나 함께 목이 말랐던가.
그게 결코 잘못은 아니었지만 지금 돌아다보기에도 숨이 찬다.
   목표와 목적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언제까지 몇 페이지의 책을
독파해야 하고, 원고지 몇 장을 써내야 하고, 몇 시까지 어디에 가서
누구를 만나야 하고, 만나서 확실한 대답을 들어야 하고. 해야 하는
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산정
에 올라야 한다는 목표 때문에 산길의 아름다운 경치를 놓치고 싶지
는 않다.
   도전하고 성취하고 획득하고 달성하는 일. 그것은 목표를 이루는
데에 필수적인 투쟁이다.
   그러나 사색하고 반성하고 전망하고 반추하는 일은 무목적의 방심
상태가 주는 안정이며 쾌락이다.
   ‘예술은 게으른 상태에서 탄생된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던가, 그
말이 지금 생각난다.
   목표와목적에얽매이지 않고계산에 쫓기지않고걷는것이즐겁다.
   슬슬 산책할 수 있다는 것이 갑자기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