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굶었는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요즈음의 내 생활이 시큰둥해졌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건강을 위해 술을 거의 끊다시피 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지만,
그 이유가 어떠하든 새로운 생활의 활력소를 찾지 못한다면 우울증으로
발전되지 않을까 두려울 지경이다.
우울증이 갱년기 여자에게나 찾아오는 병인 줄 알았는데, 뜻밖에 그
병을 앓는 남자도 많이 있다는 것이다. 소심한 나에게는 당연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되었다. 특히 긴 방학 때 시간이 남아돌다 보면 쓸데없
는 망상에 빠져들곤 하는데, 조금 섭섭한 일이 엉뚱하게 비약하는 때도
있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얼마 전에는 퇴직을 기다려왔다. 내가 선택한 직업에 비교적 만족을
했으면서도, 같은 일에 매달려 살아온 햇수가 30년을 훌쩍 넘기면서부터
조금은 생활의 변화를 원했기 때문이다. 연금으로 기본적인 생활이 보
장된다고 한다면,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텃밭에 꽃과 채소를 가꾸며 살
아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내 건강을 위해서도 여러모로 좋겠다는 생각
이었다.
이제 막상 그 퇴직이 임박하니 어느 곳에 어떻게 살 집을 마련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부터 골치가 아프다. 마땅치 않으면 농가 주택이라도
구매해서 수리를 할 생각이었는데, 그 비용도 만만치 않거니와 신축하
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어떤 선배의 말씀에 의하면, 전원주택이
나 집을 지을 땅이 마음에 들면 돈이 부족하고 돈에 맞추다 보면 영 마음
에 들지 않아서 여간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퇴직금을 연금으로 받는다
면, 시골에 집을 마련할 자금이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당장 그 문제
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을 보면 모두 그런 정도의 여유가 있어 보이는
데, 그야말로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게 한다. 요즈음 마음이 그렇다 보니
별스럽지 않은 일에 심통이 나곤 한다. 긍정적인 생각과 너그러운 마음
으로 살려고 노력해 왔는데, 나이가 많아지면서 오히려 더 속이 좁아지
는 것은 아닌가 싶다. 예부터 ‘늙으면 애 된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나는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내 표정이 좋지 못하면 “왜 저녁을 굶은 시에미
상을 하고 있느냐?”라고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심산유곡의 두메산골
에서 태어나 한글도 깨치지 못하신 어머니가 그 외에도 어떻게 그렇게
재미있는 표현을 많이 알고 계셨는지 지금도 깜짝 놀랄 때가 잦다.
어머니가 살아 계신다면 요즈음 내가 그 말씀을 자주 듣게 되지 않을
까 싶다. 그렇다면 무언가 나에게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문득 어떤 스님의 법문이 떠오른다.
쌀이 떨어져서 밥을 굶었는가? 아니면, 어디가 아픈데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하는가?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얼굴 찌푸리지 말고 고마
운 마음으로 살아가자는 말씀이셨다.
우리는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씀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기’가
아닐까? 주례사의 내용이 대부분 그렇고,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 또한
마찬가지이다. 내가 교회를 다니진 않지만, 말씀을 재미있게 잘하시기
로 유명한 대전의 어떤 목사님도 TV에서 그런 내용으로 설교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그렇다. 상황에 따라서는 저녁을 거를 수도 있는 일이다. 단지 쌀이
떨어져서 굶은 것이 아니라면 얼굴을 찌푸리지 말기로 하자. 이제 나이
를 더 먹어갈수록 아픈 곳도 생겨날 것이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걸 어쩌
겠는가. 그저 병원에 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하기로 해야겠
다. 그럴 수만 있다면 얼굴을 찌푸릴 일도 없을 것이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나에게도 고마운 일이 얼마나 많은가.
어렸을 때부터의 꿈이었던 교사가 되어 짧지 않은 세월을 어려움이
없이 보냈고, 퇴직하면 먹고 살 걱정이 없게 연금이 나온다고 한다. 아직
크게 병원 신세를 질 일도 없었고, 걱정하던 혈당치도 잘 조절이 되고
있다고 하니 내가 노력하면 더 좋아지리라 여겨진다. 각종 범죄가 난무
하는 세상인데, 큰 죄를 짓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만도 고마운 일이
다. 하늘을 향해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자부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비교적 ‘나쁜 놈’이란 말은 듣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또한 더없이
고마운 일이 아닌가.
김세관 ------------------------------------------------------
≪수필문학≫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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