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돌이 마을
회룡포를 제대로 보려면 비룡산 전망대에 올라야 한다. 산은 야트막
하지만 가풀막져 숨이 가쁘다. 회룡대에 올라서니 절경이 눈앞에 펼쳐
진다. 그야말로 자연이 선물한 곡선미의 극치다. 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乃城川이 둘러싼 동네. 불어난 물이 뿅뿅 다리를
넘치는 날엔 아슬아슬하게 남겨진 산길이 아니면 고립되는 한국 최고의
물돌이 마을 예천의 회룡포回龍浦.
어머니 품에 안긴 듯 편안하다.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과 포근하게 마
을을 감싸 안은 넓은 백사장. 긴 띠를 이룬 갈대숲은 금방이라도 서걱대
는 잎을 우수수 떨어뜨릴 것만 같다. 온기가 묻어나는 십여 채의 아담한
집.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잘록한 산허리. 추수를 끝낸 허허로운
논과 수확하지 않은 배추밭의 조화는 잘 그려진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이토록 아름다운 섬 아닌 섬이 조선시대에는 죄인들의 임시 귀양처요,
한국전 당시에는 피난처였다니 가슴이 먹먹하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서 소통과 단절이 반복되었던 회룡포 주민들의 생활은 더더욱 지난했을
것이다.
노곤한 삶을 살면서도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대를 잇는 사람들은 어
쩌면 굽이굽이 흘러가는 내성천의 물살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때때
로 물로 인해 고립되는 고단함 속에서도 회룡포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
는 것이다.
문득 고향 풍경이 겹쳐진다. 그곳에도 모래밭이 있었다. 하지만 농지
를 만들기 위해 축조한 제방으로 백사장이 모두 사라졌다. 세상 이치는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반드시 잃게 된다는 사실이다.
고향을 닮아서일까, 회룡포만 바라봐도 가슴이 따뜻하다. 객지에서
온 시동생을 위해 허리 굽은 사촌형수가 끓여준 뜨끈한 시래깃국을 한
사발 먹고 난 느낌이다. 펄펄 끓는 사랑방 아랫목에 누워 낮잠을 한숨
자고 난 기분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에서는 내려놓고 싶어도 내려
놓을 수 없었던 삶의 무게들이 어디론가 달아난 듯 몸도 마음도 편안하
다. 나그네를 위해 물돌이 마을이 준비해 놓은 선물인가 보다.
따뜻하게 맞아준 회룡포의 품에서 노년을 보내고 싶다. 마른장작으로
군불을 지피고, 흐르는 강물과 백사장, 갈대를 벗삼아 멋진 수필 한 편
완성할 있다면 무슨 욕심을 더 부리겠는가.
변종호 ----------------------------------------------------
2006년 ≪수필과비평≫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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